제7화 위험하다고 회피할 수는 없다 (2)
이임순이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딸의 발을 주무르는 엄마는 눈물만 흘렸다. 오늘따라 형광등 불빛은 왜 그렇게 밝은지 모를 일이었다.
아직도 창밖은 어두웠다.
“환자분, 혈압하고 체온 좀 잴게요.”
이임순이 말없이 팔을 내밀었다. 우종철 교수가 집으로 돌아간 후 이제야 이임순의 얼굴을 보았다.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긴장된 얼굴로 혈압을 재는 간호사를 보던 김지훈이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어때요?”
“혈압은 120/80이고, 체온은 아직도 38도가 넘어요.”
“아직도 열이 떨어지질 않았네. 환자분, 힘들지 않으세요?”
이임순이 다시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에 왠지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 준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잠깐 내과 병동을 다녀온 때 외에는 내내 곁을 지켰다.
오전 8시다. 안호석이 커튼을 젖히며 조용히 김지훈을 불렀다.
“선생님, 이준영 선생님 오셨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이경석과 함께 들어왔다. 부스스한 얼굴로 곤혹스러워하는 김지훈을 본 이준영 교수가 어깨를 툭 쳤다. 어떤 분위기였을지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환자분, 9시에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했습니다. 힘들고 불안하시겠지만 희망을 잃지 마세요. 환자분이 가진 병보다는 절망이 더 무서울 겁니다.”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임순이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거렸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준영 교수가 돌아서자 이임순의 어머니가 급히 뒤따라 나왔다.
“선생님, 우리 아이 별일 없겠죠? 수술받는 게 위험한 것은 아니죠?”
“걱정하지 마세요. 잘될 겁니다.”
어머니의 얼굴에 초조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 속에 딸에 대한 사랑과 아픔이 절절하게 실려 있었다. 화목한 가정이었을 텐데 보호자라고는 어머니뿐이었다. 가족들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차마 딸자식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내과 병동으로 향했다.
“김지훈, 병실 준비는 다 됐어?”
“예. 새벽에 병실을 소독했고, 덧 가운과 일회용 모자, 마스크를 비치했습니다. 손을 세정할 준비도 다 마쳤습니다.”
병실 앞에 도착한 이준영 교수가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알콜 솜을 넣은 통과 베타딘이 담긴 대야.
일회용 모자와 마스크.
수술용 덧 가운과 슬리퍼.
앞으로 병실을 출입하는 모든 사람은 손을 깨끗이 소독한 후 덧 가운을 입어야 한다. 신발도 갈아 신어야 한다. 한두 명의 보호자를 제외하고는 면회 자체가 제한될 것이다.
환자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었다. 신장 이식을 받은 환자에 준하는 조치였지만 이임순에게 충분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퇴원할 때까지 보균자로 머문다면 모르지만, 아뻬라는 질환과 수술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환자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의료진과 직원들의 안전이었다. 개개인에게 주의만 당부한다면 그만큼 무책임한 일도 없었다.
“이경석, 환자가 사용할 물품은?”
“확실하게 소독이 가능한 것을 빼고는 모두 일회용으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알았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일이 있으면 바로 우종철 교수하고 상의해.”
이제 수술 준비를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모두들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수술 방으로 들어갔다.
준비실이다. 간호사 몇 명이 불안한 기색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료진이 가장 감염이 되기 쉬운 경로가 바로 수술실이기 때문이다. 확률적으로 극히 희박하다고 하지만 두려움을 지울 수는 없는 문제였다.
‘솔직히 나도 은근히 떨리는데 무섭겠지. 남자, 여자를 가릴 일은 아니지만, 애를 낳을 때 그대로 옮겨 줄 수 있는 병이니까 최대한 접촉하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하는 게 좋겠어.’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준비실로 들어서던 김지훈이 눈을 부릅떴다.
‘경아 씨, 당직도 아닌데 여기 왜 있어요? 설마 수술?’
고경아가 힐끗 눈길을 주고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준영 교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고경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선생님, 미경이 혼자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요. 제가 메인 어시스트를 서겠습니다.”
각오를 단단히 한 얼굴이었다. 성미경이 고개를 숙인 채 손만 조몰락거렸다. 아마도 두려움을 호소한 모양이었다. 일반 외과 주임 간호사로서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지훈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고경아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을 약속했고, 허락까지 받은 이상 둘 다 위험에 노출될 수는 없었다.
절대 안 된다고 말을 하려는 찰나, 이준영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꼭 그렇게 해야겠어?”
“네. 제가 주임 간호사잖아요.”
고경아 역시 똑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준영 교수가 답답한 소리를 냈다. 사적인 관계와 직업적인 사명, 혹은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일반 외과 교수라고 해서 간호사들의 업무에 관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경아도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말을 잃었던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수술은 안전하게 할 수 있겠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당연히 고민했다. 두려움에 빠진 이임순을 보며 도리어 더욱 안전한 수술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HIV 감염자가 또 발생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만, 고 간호사는.”
“그럼 됐다. 고 간호사 결정이다.”
그러고는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란 확신에 찬 눈빛을 보냈다. 이준영 교수도 깊은 고민을 통해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더구나 스스로 수술에 참여하겠다는 고경아를 다른 간호사들이 빤히 보는 앞에서 막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수술실 확인하자.”
이준영 교수의 말에 돌아서던 김지훈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고경아를 보았다.
‘당직도 아닌데 일부러 나올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미경이가 겁을 많이 내서 혼자 세울 수가 없어요.’
‘어후! 수술 끝나고 봅시다. 도대체 왜 들어오는 거야? 나 하나면 되잖아.’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고경아에 한해서는 털끝만치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화를 삭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라도 더욱 안전에 신경 써야 했다.
이제 막 소독을 했는지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진호 교수와 마취과 간호사가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모든 장비들을 확인하며, 수술 후 교체해야 할 물품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인튜베이션 튜브하고 호흡기에 연결되는 튜브들 말고 또 교체해야 할 것이 있을까?”
“습도 조절기도 갈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겠네. 이 방은 당분간 출입을 금지하고, 두세 번 더 소독을 할 거니까 수술 끝나자마자 버려야 할 것들을 바로 챙겨야 됩니다.”
“네, 선생님.”
수술 방 간호사들은 물론 마취과까지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감염원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확실하게 처리해야만 안전을 담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또한 이임순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다시 준비실로 간 김지훈이 고경아와 마주 앉았다. 얼굴을 보자 또 까닭 모를 화가 치밀었다.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성미경 간호사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가슴이 답답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후우!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일단 상의부터 하고 보자. 고경아, 너 수술 끝나고 나한테 혼날 줄 알아.’
고경아를 보며 눈을 부라린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떤 식으로 수술을 진행할 것인지 자세하게 얘기했다.
“고 간호사, 성미경 간호사, 잊지 말아요. 필요한 기구를 직접 건네지 말고 수술 준비판 위에 놓기만 하면 됩니다. 특히 사용한 바늘과 메스는 절대 만지지 말아요. 거즈로 우리가 처리할게요.”
“처리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수술 준비 판을 하나 더 준비하고, 소독된 비닐 봉투도 두 장 정도 준비해 주세요.”
미진한 부분이 있는지 수차례 확인하고, 주의할 사항을 거듭 강조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어느새 9시가 다 됐다. 예정대로 이임순이 수술 방으로 올라왔다.
딸의 손을 꼭 잡은 어머니의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다. 김지훈과 눈을 마주친 이임순이 어머니의 손을 꽉 한 번 쥐고는 눈을 감았다.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안전하게 잘될 겁니다. 환자분, 긴장하지 마세요.”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무언가 한마디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평소와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에게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과 수술 팀의 안전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에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드르르르륵!
간이침대 바퀴 구르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이임순이 수술 침대로 옮겨졌다.
“환자분, 마취과 김진호입니다. 긴장 푸시고 편안하게 숨을 쉬세요. 졸리면 주무시면 됩니다. 간호사, 투여해요.”
마취제를 투여하는 간호사의 손끝이 조심스러웠다. 김진호 교수는 평소와 달리 장갑을 끼고 기관 내 삽관을 했다. 타액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당연하게 보였다.
이경석과 함께 손을 씻고 온 김지훈이 고경아를 보았다. 막상 수술이 시작되자 찜찜하게 따라붙던 화는 저 멀리 사라지고 걱정만이 앞섰다.
‘경아 씨, 웬만한 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안전만 생각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고 간호사, 아까 얘기한 대로만 합시다.”
소독약을 받아 든 김지훈이 긴장을 풀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석 역시 마스크가 부풀어 오르도록 크게 숨을 내쉬었다.
“소독 시작하겠습니다.”
베타딘(요오드)으로 복부를 소독하고, 이어 알콜로 씻어 냈다. 깨끗한 천으로 환자의 전신을 덮고 우하복부만 노출시켰다. 다른 때와 다른 점이라면 환자의 다리 쪽에 수술 기구를 놓을 준비 판과 비닐 봉투 두 장을 놓았다는 것이었다.
곧 이준영 교수가 집도의 자리에 섰다. 평소처럼 수술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모두들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만 하자. 환자도 중요하지만 수술 팀의 안전도 그만큼 중요해. 절대 서두르지 말고, 특히 바늘이나 메스처럼 날카로운 기구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알았지?”
“예, 선생님.”
이준영 교수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시작하셔도 됩니다.”
“수술 팀, 평소처럼 하고 나가자. 고 간호사, 메스.”
드디어 HIV 감염자의 수술이 시작됐다.
이준영 교수의 손이 신중하게 움직였다.
우하복부에 5센티미터 정도의 절개 창을 냈다. 상처를 따라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선명할 정도로 붉은 피 속에 공포의 바이러스가 들어 있을 것이다. 메스나 바늘 끝에 묻은 극소량의 피도 상처를 통한다면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긴장이 치솟았다. 사용한 메스를 이경석이 받아 환자의 다리 쪽에 놓인 준비 판 위에 놓았다. 앞으로 사용한 기구는 모두 그 판 위에 놓고 이용해야 한다. 수술 기구를 가장 많이 만져야 하는 사람이 고경아였지만, 오늘은 새 기구를 건넬 때만 접촉하게 될 것이다.
빠르게 지혈을 하며 배를 열었다. 박순용이 리트랙터를 잡았고, 이경석은 사용한 수술 기구와 거즈를 처리했다. 수술실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피가 묻은 거즈는 곧바로 비닐 봉투 속에 넣었다.
손보다는 수술 기구를 이용했다.
복막이 열렸다. 롱포셉(Long Forcep)으로 맹장을 찾았다. 염증으로 붉게 부어오른 맹장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고름이 흘러나왔다. 김지훈이 재빨리 석션을 한 후 거즈로 고름을 닦아 냈다.
터진 아뻬가 반으로 잘리기 직전이었다. 더 이상 기구만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준영 교수가 망설이지 않고 손을 집어넣어 아뻬를 박리했다. 고약한 냄새가 퍼지며 피고름이 번져 나왔다. 두 겹으로 장갑을 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켈리.”
따르륵! 따가각!
아뻬 동맥을 잡았다.
“타이!”
김지훈이 신중하게 타이를 했다.
수술이 늦어진 탓인지 조직은 연약하기 짝이 없었다. 동맥에서 전해져야 할 탄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야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아뻬의 뿌리 부분을 잡았다. 메스로 자르고 남은 부분을 타이했다.
고경아가 제거된 아뻬를 받아 조심스럽게 밀봉했다.
배 속의 고름이 여기저기 퍼진 상태였다. 최대한 수술 기구만을 이용해 배 속을 씻어 냈다.
거즈마다 누런 고름과 피가 묻었다. 그 역시 전염원이다. 날카로운 수술 기구를 이용할 일은 없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장 사이로 퍼진 고름을 제거하고, 수술 부위를 깨끗하게 닦아 냈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 옆구리에 심지를 넣을 칼집을 냈다. 붉은 피에 수그러들었던 긴장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메스를 주고받는 손길이 더욱 조심스러웠다.
심지를 넣고 복막에 이어 복벽을 닫았다. 유난히도 바늘 끝이 날카롭게 보였다.
수처와 타이가 이어지는 내내 바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만에 하나 찔리기라도 하면 최소 한두 달은 불안에 젖어 잠도 못 잘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컷.”
드디어 마지막 수처와 타이가 끝났다.
환자의 질환을 빼면 단지 아뻬 수술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꽤 긴장을 했었던 모양이었다. 등짝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무사히 끝났다는 생각에 힘이 쭉 빠질 지경이었다.
‘후우!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수술이다.’
이준영 교수가 장갑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장갑 확인해 봐.”
메스에 베이거나 바늘에 찔리고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럴 일이 없었지만 조금은 찜찜한 마음으로 장갑을 생리 식염수로 씻었다. 말라붙은 피가 씻겨 나가고 반투명의 장갑이 드러났다.
그때 거즈로 물기를 제거하던 이경석이 마치 석상처럼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장갑과 장갑 사이에 피가 스며들어 있었다.
“경석이 형, 장갑 벗어 봐요.”
이경석이 당황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김지훈이 서둘러 장갑 한 겹을 벗겨 냈다. 남은 장갑을 따라 선명한 피가 묻어 있었다.
순간 수술실 전체가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