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위험하다고 회피할 수는 없다 (1)
의사도 사람이다. 이런 질환 앞에서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 역시 채혈을 할 때부터 막연한 두려움에 가슴이 떨렸다.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불안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임순 환자에 대한 걱정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해 환자와 접촉해야 하는 모든 의료진의 감염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바늘을 꽂고 채혈을 하는 기본적인 과정이 도리어 가장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었다.
에이즈 관리를 위해서는 내과 감염 파트에 입원을 해야 하지만 아뻬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더구나 수술 중 환자의 혈액이 묻은 메스나 바늘에 찔리기라도 하면 감염이 될 수 있었다. 더욱 각별한 주의를 요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접촉한 물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방송에서 그렇게 위험하다고 떠든 질환인데, 막상 대처할 매뉴얼 하나 없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마구 뒤엉켜 혼란스러워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침착하게 대처해야 했다. 우왕좌왕하며 고민만 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에게 노티를 했다. 이경석도 반드시 사전에 알아야 할 사안이었다. 내과 감염 파트 전공의가 누군지 몰라 공정식에게도 연락을 했다. 다들 하나같이 크게 놀랐고, 이준영 교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락을 끝낸 김지훈이 곧바로 모든 응급실 인턴과 간호사를 불렀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박순용에게 이미 환자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안호석의 얼굴이 바짝 굳어 있었다.
“다른 환자들이 있으니까 놀라지 말고 제 말 잘 들으세요. 이임순 환자와 접촉하지 말란 이유는 혈액 검사에서 HIV 항체 반응이 양성으로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들 깜짝 놀라면서도 눈만 멀뚱거렸다.
“반복적인 검사에서도 계속 양성으로 나왔으니까 확실합니다. 일단 환자에게 필요한 모든 조치는 우리 과에서 하겠습니다. 간호사들은 다른 환자들이 이임순 환자와 접촉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관리해 주세요. 그리고 처음 채혈을 누가 했죠? 바늘에 찔리거나 하진 않았죠?”
순간 확연한 두려움이 퍼졌다. 채혈이나 주사를 놓는 과정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찔리지 않았어요.”
이임순 환자를 채혈했던 간호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피가 묻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지 처치실로 달려가 소독까지 했다. 직접적인 혈액 교환이 아니라면 감염 가능성은 없었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김지훈이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하려 애썼다.
“당황하지 말고 최대한 침착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격리 이외에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또 뭐가 있죠?”
주임 간호사가 입술에 침을 축이며 입을 열었다.
“환자에게 썼던 주사기나 알콜 솜 같은 건 어떻게 하죠?”
“모두 일회용 아닌가요?”
“일회용은 맞지만 원래 버리던 곳에 버려도 될까요? 치우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따로 버려야 할 것 같아요.”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응 매뉴얼조차 없지만 안전에 관한 것은 단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겠네요. 일단 환자에게 사용된 물품을 버릴 비닐 봉투와 박스를 준비해 주시고, 지금까지 사용한 것들을 버린 쓰레기통을 알려 주세요. 특히 주삿바늘은 어떤 환자에게 사용한 것인지 모르니까 절대 만지지 마세요. 만에 하나 찔리기라도 하면 하소연할 데도 없을 겁니다.”
심각한 표정을 짓던 주임 간호사가 김지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걸 선생님들이 하실 수 있어요?”
“준비해 달라는 것만 빨리 준비해 줘요.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지 않겠어요?”
“그 말은 맞지만, 환자에게 사용한 물품들을 처리하는 건 우리 일이에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하다가는 도리어 더 문제가 될 거예요. 환자와 접촉해야 하는 일도 필요한 부분은 우리가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되겠어요?”
“위험하다고 피할 수는 없잖아요.”
모두가 에이즈라는 질환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이었지만, 주임 간호사는 의료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잊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말에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고맙습니다. 그럼 빨리 움직이죠.”
이임순 환자에게 사용됐거나, 혹은 접촉이 의심되는 물품 일체를 따로 모았다. 비닐 봉투에 넣고, 다시 종이 박스에 넣어 단단히 밀봉했다. 동시에 이임순 환자를 가장 구석진 자리로 옮겼다.
“갑자기 자리는 왜 옮기는 거죠? 그리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다른 환자들 치료 때문이니까 양해해 주세요. 교수님이 곧 나오실 겁니다.”
에둘러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에이즈는 혈액이나 체액의 교환으로 전염이 될 뿐 공기나 음식, 혹은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전염이 되지 않는다. 눈물이나 타액 역시 전염원이 아니었다.
과도한 대응일지도 몰랐지만, 다른 환자들이 있는 이상 아무리 주의를 해도 모자랐다.
솔직히 김지훈도 환자 옆에 다가갈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차가워진 꼴이었다.
할 수 있는 조치를 거의 다 취했을 무렵, 이준영 교수가 도착했다. 김지훈의 보고를 받는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경석과 공정식도 눈가를 찡그린 채 입을 열지 못했다.
눈가를 좁힌 채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교수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김지훈, 일단 환자부터 보자. 통상 보는 경우가 아니지만, 이럴 땐 사실대로 설명한 후 어디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할지 환자가 직접 선택하게 하는 것이 좋아. 공정식 선생은 감염 파트 우종철 교수에게 바로 연락해서 상황을 말씀드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전화로라도 오더를 받아.”
곧바로 이임순 환자를 찾았다.
김지훈이 의료용 장갑을 내밀자 살짝 눈가를 찡그린 이준영 교수가 말없이 장갑을 끼었다. 아무리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의사라고 해도 꺼림칙할 것이다.
사실 에이즈라는 질병 앞에서는 누구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만큼 치명적인 질환이기 때문이었다.
“일반 외과 이준영입니다. 진찰부터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중하게 진찰을 하고 다시 한 번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교수 당직실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만났다.
이임순 환자가 고열과 복통으로 힘들어하면서도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이 여느 환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함께한 의사들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준영 교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환자분, 일단 맹장염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질환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이임순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만큼 곤혹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적거리는 것은 의료진에게는 물론 환자에게도 하등의 도움이 되질 않았다. 매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임순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보호자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거렸다.
“저… 지금 제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전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내가 왜 그런 병에 걸려요? 엉뚱한 사람 잡지 마세요. 검사를 잘못하신 거 아니에요?”
강한 부정이었다. 누구라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죄송합니다. 여러 번 반복해도 결과가 동일하게 나옵니다. 아마도 3년 전에 수혈을 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수혈 때문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헌혈을 하면 무조건 에이즈와 간염 등 혈액으로 전염되는 질환 유무를 검사한다. 하지만 항체가 생성되기 전에 뽑은 혈액은 건강한 혈액으로 판정을 할 수밖에 없다.
에이즈 역시 최소한 2주 이상 경과해야 항체가 형성된다. 이임순에게 투여된 혈액은 불행히도 그 전에 채혈됐을 것이다.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임순이 김지훈을 보았다.
장갑을 끼고 두 번째 채혈을 한 의사.
마치 지금 들은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김지훈이 답답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임순과 보호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왔다. 오늘도 열이 나서 그렇지, 복통으로 왔을 뿐이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검사가 잘못된 거예요. 에이즈면 피부에도 뭐가 생기잖아요. 맞죠? 그리고 면역이 없어서 감기도 잘 걸리고, 바짝 말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난 건강하게 살아왔단 말이에요.”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방송에서 보여 주는 끔찍한 모습들이다. 에이즈의 무서움을 알려 예방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잘못된 이해와 과도한 공포를 심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조용히 보고만 있던 공정식이 에이즈의 경과에 대해 조심스럽게 설명을 했다.
“아마 수혈을 받은 후, 한 달 전후에 독감처럼 심하게 앓고 지나간 일이 있었을 겁니다. 꽤 심했을 텐데, 혹시 기억하세요?”
이임순이 고개를 저었다. 웬만치 아프지 않았으면 3년 전의 일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감염자의 50퍼센트 이하에서 나타나는 일이기에 아예 증상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군요. 어쨌든 지금은 무증상기입니다. 대개 감염 후 8년에서 10년 정도 이런 시기가 지속됩니다. 겉으로 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의사들이 에이즈를 기정사실화했다.
이임순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듣고 있는지, 아예 정신이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다른 이유도 아닌 병원에서 수혈을 한 것이 원인이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위로의 말조차 건넬 상황이 아니었다.
답답한 한숨만이 터졌다. 이임순의 두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 나 어떻게 해?”
“임순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다시 검사해 보면 아니라고 나올 거야. 니가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려. 아니야.”
“엄마, 아니지? 정말 아니지?”
이임순의 손을 잡고 울음을 참느라 꺽꺽거리던 보호자가 대성통곡을 했다. 줄줄 흐른 눈물이 손등에 뚝뚝 떨어졌다. 이임순이 깜짝 놀라며 손을 뺐다.
“엄마, 내 손 잡지 마. 옮아.”
울음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갑자기 숨도 쉬기 힘들어졌다.
훗날 치료제가 나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진행을 억제할 약제조차 없는 상황이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1년 내에 대부분 사망하는 질병이 바로 에이즈다.
수혈을 받은 것 이외에는 어떤 일도 없는 한 여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말기 암 환자에게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무력감, 혹은 말로 하기 힘든 미안함일까?
그러나 이런 경우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대응해야 하는 사람이 또한 의사였다.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은 알지만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뻬를 빠르게 해결하지 못하면 잠자고 있는 에이즈를 촉발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눈빛을 굳히며 말했다.
“환자분, 보호자분, 지금 어떤 마음이신지 알지만 일단 맹장염 수술부터 받아야 합니다.”
“우리 딸이 이런 몸으로도 수술을 받을 수 있나요?”
“최선의 방안을 찾겠습니다.”
때마침 감염 교실의 우종철 교수가 도착했다.
“현재는 증상이 없지만 수술을 하고 나면 어떤 경과를 밟을지 모릅니다. 일단 무균실에서 치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현재 우리 병원에는 입원시킬 여유가 없습니다. 다른 병원에 자리가 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비상이다. 원무과를 비롯해 행정 직원들이 모두 전화기를 잡고 전 병원에 연락을 했다. 좋지 않은 소식들뿐이었다. 대학 병원이라지만 무균실은 턱도 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있다고 해도 난색을 표했다.
무작정 환자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종철 교수가 대안을 제시했다.
“1인실을 소독해서 쓰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혈액이나 체액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는 한 감염의 우려는 없지만, 만약을 대비해 출입 인원까지 확실하게 통제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병실은 내과 병동에 마련하기로 결정이 났다. 아무래도 경험이 있거나, 혹은 확실한 지식을 가진 의료진이 담당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행정 직원들과 간호사들이 모두 힘을 합쳐 병실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마취와 수술이었다.
이미 깊은 밤이 지나고 새벽 어스름이 찾아올 시간이었다.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김진호 교수까지 나와 머리를 맞댔다.
“김 교수, 몇 시면 준비가 다 되겠어?”
“일단 일회용으로 대체 가능한 것은 다 대체를 하고, 수술실 소독도 해야 합니다. 빨라야 아침 9시는 돼야 할 것 같습니다. 간호사들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보다 빨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 그럼 9시에 하는 걸로 알고 준비를 할게. 김지훈, 우리는 준비해야 할 것 없을까?”
아뻬 수술이다. HIV 보균자라고 방법을 바꿀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수술 팀의 안전 또한 환자만큼 중요했다.
“다른 건 몰라도 장갑은 이중으로 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혈액이 눈에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흉부외과에서 쓰는 수술용 고글도 착용했으면 합니다.”
“그래. 그게 좋겠다. 수술 전에 간호사들하고 충분히 상의해서 준비해. 그리고 환자가 안정될 수 있도록 잘 지켜보고 긴장 늦추지 마. 이경석, 같이 움직여.”
각자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결정이 났다.
모두들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했다.
혹시 아뻬가 아닌 경우를 대비해 복부 CT를 찍었다. 예상대로 아뻬가 터진 소견을 보였다. 수술의 난이도를 떠나 답답하기만 했다.
‘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수술 후의 감염이 문제네.’
이임순 환자 치료의 핵심은 역시 감염 방지였다. 수술 중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병실에도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잠시 병실 준비 상황을 보러 간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크론 환자에 이어 에이즈 환자까지, 의사들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환자와 접촉해야 할 간호사들의 얼굴에서 분명한 두려움까지 보았다. 그런데 그 속에 또 다른 희망과 힘이 있었다.
수술을 해야 할 외과 의사들과 간호사.
마취를 담당할 의사와 간호사.
병실을 준비하며 땀을 흘리는 행정 직원들.
지금도 이임순 환자와 접촉할 응급실 간호사들.
에이즈를 진단한 검사실 직원들.
평소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여긴 사람들이 오늘따라 특별하게 보였다.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술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그들뿐일까?
복도를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이른 새벽부터 환자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아주머니들.
응급실 앞에서 술 취한 환자들을 달래는 청원 경찰.
하다못해 환자와는 무관해 보이는 주차 요원까지.
모두 다 의료진들이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해 주는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만 병원이 존재하는 목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후우! 환자 한 명을 치료하는 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일 뿐이야.’
왜 이제야 그들이 눈에 보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지 않는 한 평생을 함께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감사한 마음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잘난 의사라도 반쪽짜리에 불과할 것이다.
응급실로 돌아와 이임순 환자를 찾았다. 그 시간까지 우종철 교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환자분,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은 보균자지, 에이즈 환자가 아닙니다. 앞으로 꾸준하게 몸을 관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절대로 환자가 되진 않을 겁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몇몇 일들을 빼고는 못할 일도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살아가시면 됩니다.”
가끔은 환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임순의 울음소리가 왠지 달라진 것 같았다.
“김지훈 선생, 수술 전까지 환자 옆에 있어 줄 수 있나?”
“예, 선생님.”
아무 두려움 없이 환자와 접촉하는 모습에 김지훈이 콧등만 찡그렸다.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만큼 이성적인 대처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절망 속에도 희망이 있다는 말을 믿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