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함께해야 할 사람들 Ⅰ (1)
크론이란 염증성 질환이 침범한 소장과 대장을 제거한 후 연결해야 한다. 남은 부분도 만성적인 염증의 영향으로 상당히 약해져 있을 것이다. 회맹부를 남기는 것보다는 훨씬 용이하다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송재덕 교수가 병변으로부터 약 1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회장을 잡았다. 육안으로는 건강하게 보이는 장이었다.
“이 정도 여유는 두어야 안전해. 켈리(Kelly).”
회장에 이어진 장간막부터 자르기 시작했다. 동맥과 정맥을 확인하며 꼼꼼하게 타이를 했다. 전기 소작기에서 기계음이 울릴 때마다 혈관 사이의 지방 조직이 타며 하얀 연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퍼졌다.
생각보다 빠르게 장간막이 모두 분리됐다.
“장겸자.”
따르륵! 따르륵!
톱니바퀴 물리는 소리와 함께 자르고자 하는 회장의 양쪽 부분을 잡았다. 날카로운 메스로 장겸자 사이에 잡힌 회장을 잘랐다. 김지훈이 재빨리 외부로 노출된 장 내부를 석션하며 소독을 했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잘린 소장에 병변이 없어야 했다. 회맹부까지 없애는 마당인데 병변을 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깨끗하게 소독한 단면을 신중하게 살폈다. 뭔가 감이 좋지 않았다. 붉으면서도 검게 변한 점막이 관찰됐다. 크론에서 볼 수 있는 염증성 변화가 의심됐다. 난감한 노릇이었다.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런 경우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송재덕 교수가 답답한 신음을 내뱉었다.
“지훈아,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더 잘라야 할까?”
김지훈이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원칙적으로는 정상 부위에서 잘라야 한다. 그런데 당연하기만 한 원칙이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에 정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에서 회장을 잘랐다. 그것도 10센티미터 이상 여유를 두었다. 얼마나 더 잘라야 정상적인 부위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더 큰 문제는 추가로 자를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해도 함부로 자를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회맹부를 제거하는 이상 소장을 충분히 남기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더욱이 크론 환자는 소장 기능이 떨어져 기본적으로 영양 흡수가 자체가 부실하다. 다른 환자와는 달리 소장이 충분하게 남아 있어도 단장 증후군이 발생할 위험성이 컸다.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기에 각별한 주의를 요했다.
신중하게 고민을 거듭한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병변이 남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이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병변을 남기자고? 그럼 수술을 하는 의미가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더 자르게 되면 단장 증후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단장 증후군은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지만, 크론은 약물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르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입니다. 병변 부위가 적어진다면 약물에 대한 반응도 그만큼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일종의 손익 계산이었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법이 없다면 손해보다 이득이 큰 쪽을 선택해야 한다. 혹은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었다. 김지훈은 치료 방법이 없는 단장 증후군보다는 약물 치료가 남아 있는 크론을 선택한 것이다.
송재덕 교수가 묘한 소리를 내며 신현수를 보았다.
“현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눈가에 주름을 만든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에 들었던 말이 피부로 다가왔다.
병변을 제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이 환자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었다. 김지훈의 생각이 최선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것이 최선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 안에 당연한 선택이 있었어. 그게 맞는 판단이겠지?’
“저도 지훈이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예, 선생님.”
“좋아. 치프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연히 따라야지. 병변이 남더라도 여기서 대장하고 연결하자.”
송재덕 교수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최선의 선택이란 말일 것이다.
잘린 회장부터 시작해 회맹부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회장과 충수돌기를 포함한 맹장은 완전히 노출된 장기다. 후복막과 연결된 장간막을 조심스럽게 박리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만성적인 염증으로 조직이 약해져 상당히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송재덕 교수와 김지훈에, 심지어 세컨은 신현수다. 빠르고도 정확하게 맹장까지 분리해 냈다.
이제 후복막에 반쯤 묻힌 상행 결장을 들어내고, 동시에 동반된 농양을 제거할 차례였다. 염증이 심한 부위이기에 가장 까다로운 부위였다.
송재덕 교수가 신중하게 접근했다. 생각 이상으로 조직이 약해져 있었다. 후복막과 상행 결장 사이를 박리할 때마다 피가 새어 나왔다. 혈관 손상이 아니라 염증으로 인한 현상, 즉 우징(Oozing)이었다.
“타이, 타이.”
쉬지 않고 타이를 해야 했다.
농양이 있는 부위를 제거할 때는 실로 사투였다. 대장은 거의 너덜너덜하다고 할 정도였고, 주변 조직은 염증으로 완전히 탄력을 잃은 상태였다. 조금만 힘을 잘못 주어도 조직이 찢어지며 피가 비쳤다.
“지훈이는 타이 들어오고, 현수는 석션하자. 조심조심.”
“순용아, 정신 바짝 차려라. 대장 터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송재덕 교수가 끊임없이 경고를 했다.
김지훈이 전에 없이 긴장했고, 신현수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봉합과 타이는 물론, 피를 닦는 동작까지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타이, 컷. 자! 조금만 더 가자.”
마침내 농양이 발생했던 상행 결장 부위를 들어냈다. 행여 찢어질까 극도로 조심스럽게 거즈와 탭으로 감쌌다. 가장 힘든 부분을 넘어섰다. 숨을 몰아쉬어야 할 정도였다.
지금까지의 과정에 비하면 남은 과정은 훨씬 수월했다. 여전히 신중한 손길이었지만 과감하다고 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상행 결장을 후복막에서 분리해 냈다. 연결된 장간막 역시 깔끔하게 잘랐다.
따르륵! 따가각!
경쾌한 톱니바퀴 소리와 함께 상행 결장을 장겸자로 잡았다. 메스로 겸자 사이의 대장을 잘랐다. 정상적인 점막이 관찰됐다. 마침내 병변이 포함된 대장과 소장을 모두 잘라 낸 것이다.
송재덕 과장이 회장과 회맹부, 그리고 상행 결장 및 연결된 주변 조직을 배 밖으로 빼냈다. 한 덩어리로 깔끔하게 제거된 모습에 모두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암 수술이 아니라고 해도 염증성 병변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들어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조직이 약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무난하게 해냈다.
김지훈이 힐끗 신현수를 보았다. 단순히 수술 시야를 확보하는 세컨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었다. 집도의와 퍼스트를 도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만큼 실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오히려 방해가 됐을 것이다.
‘역시 수술 팀이 잘 꾸려지니까 힘들기는 해도 확실하게 원칙대로 진행이 되는구나. 이런 팀워크(Team Work) 역시 써전의 힘이겠지?’
잠시 샛길로 샜던 김지훈이 어깨를 흔들며 수술에 집중했다. 마지막 단계로 상행 결장과 회장을 이어야 했다.
단면이 큰 대장과 작은 소장을 연결할 때 역시 원칙이 있다. 대장은 수직으로 자르고 소장은 비스듬하게 잘라, 잘린 장의 둘레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한쪽에 과도한 긴장이 가해지는 것을 피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봉합할 수가 있다.
익숙한 과정이었다. 송재덕 교수의 손이 빠르고도 정확하게 움직였다. 김지훈 역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 속도에 손을 맞추고 있었다. 대장과 회장이 정확하게 연결되고 있었다.
“타이, 컷(Cut).”
마지막 봉합과 타이가 끝났다.
병변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찜찜했지만 일단은 깔끔하게 끝냈고, 최선의 선택이었다. 송재덕 교수도 같은 기분인지 장갑을 벗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잘했다. 잘했어. 심지 박고 배 닫자. 지훈아, 치프야, 현수야, 천천히 해. 천천히.”
김지훈과 신현수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를 닫는 과정은 당연히 치프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수술에서 드레인(Drain), 즉 심지까지 넣으라는 경우는 드물었다. 배 속에 남은 장기들 역시 염증에서 자유롭지 못해 상당한 주의를 요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아직 모든 수술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믿는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다소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예. 천천히, 최대한 빨리 닫겠습니다.”
재빨리 집도의 자리에 섰다.
“배 속 세척하고, 드레인은 세 곳에 넣을 겁니다. 신현수 선생, 거의 다 끝났으니까 힘내세요.”
신현수가 피식 웃으며 퍼스트 자리에 섰다.
가벼운 농담을 뒤로하고 전공의 중 최고의 실력을 가진 치프 둘이 손을 맞췄다. 그동안 숱하게 해 왔던 과정의 연장이었지만, 김지훈도 신현수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수처와 타이가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깔끔하고도 깨끗하게 수술이 마무리됐다.
‘현수하고 손을 맞추니까 정말 편하네. 우리 둘이 수술하면 끝내줄 것 같네.’
‘김지훈, 생각보다 훨씬 실력이 좋아졌단 말이지. 구미에서 그렇게 수술을 했는데 앞섰다는 자신을 할 수가 없다니, 솔직히 속상하네. 기회 있으면 다시 한 번 수술 같이해 보자.’
같은 듯 다른 생각을 하며 복부 수술을 마쳤다.
메인 수술을 마쳐서인지 은근한 피로감이 느껴지며 어깨가 뻐근했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항문 주위 농양을 해결해야 할 차례였다. 복부 절개 창을 밀봉하고, 환자의 다리를 벌려 항문 부위를 노출시켰다.
송재덕 교수가 허허 웃으며 들어왔다. 오상익 교수가 수술복을 입고 있었다.
“오 교수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쪽은 아무래도 제 능력이 부족해서요.”
“예, 알겠습니다. 김지훈 선생, 준비 다 끝났으면 어디 보자. 이 환자도 최대한 간단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상당히 의아한 일이었지만 꾸물거릴 틈이 없었다. 김지훈이 재빨리 퍼스트 자리에 섰다.
항문 쪽 수술은 어시스트 두 명만 있으면 된다. 신현수가 조용히 송재덕 교수 옆에 서서 참관을 했다.
항문 한쪽이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날카로운 메스로 피부를 절개하자 노란 고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50cc 주사기를 이용해 15분 정도 농양 내부를 세척했다. 조심스럽게 농양 안쪽과 항문을 확인한 오상익 교수가 심지 두 개를 박고는 장갑을 벗었다.
“끝내자. 더 이상 건드려야 문제만 만든다. 오늘은 수술을 다 이렇게밖에 못하네.”
의외로 간단하게 항문 농양 수술이 끝났다. 오상익 교수 역시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오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훈아, 치프야, 환자 잘 봐라. 현수도 고생했다.”
송재덕 교수의 뒤를 따르던 오상익 교수가 신현수의 등을 툭 치고는 수술실을 나갔다. 자신의 파트도 아닌데 끝까지 수술에 참여하는 모습이 믿음직한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비비다 말고 미소를 머금었다.
‘두 분이 이제는 완전히 마음을 여셨나? 회진 돌 때마다 은근히 갑갑했는데 정말 잘됐다.’
잠시 후, 공정식이 또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훈아, 수술 잘됐지? 이 환자도 중환자실로 옮기자. 내일 아침까지 보고 별일 없으면 병실로 올릴게.”
“오케이! 어차피 치질 환자까지 있는데 잘됐다. 박순용 선생님, 오늘 밤 환자 잘 보세요.”
“예, 선생님.”
한 명도 모자라 두 명이라니, 잠을 자기는 다 글렀다. 눈에 잔뜩 졸음이 걸린 박순용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과 1년차를 보는 것 같은지 공정식이 피식 웃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야 막강한 전공의가 되는 법이다.
“현수야, 근데 넌 수술 왜 들어왔어? 치프가 둘씩이나 있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수술이었나?”
공정식의 말에 신현수가 웃기만 했다.
외과와 내과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해도 다른 과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각자 자기 과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말을 해 봐야 이해도 못 시킬 테고, 말만 길어질 뿐이었다. 신현수의 생각이었다.
김지훈이 공정식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정식아, 니가 약에 대해 막 말을 하면 내가 그중 상당수는 못 알아듣겠지?”
“그렇지. 당연하지. 우리 과 어려운 과다.”
“그럼 칼도 못 잡아 본 놈한테 치프 둘이 왜 들어왔는지 얘기를 해 봐야 알아들을까? 과연 내과 전공의인 공정식이 수술이 어렵다고 하는 말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공정식이 눈만 껌벅거렸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소리야?”
“니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는 소리지, 인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했으니까 환자나 잘 보셔. 이제부터 문제 생기면 니 책임이다.”
“맞아. 정식이 니 책임이야.”
신현수마저 이럴 줄은 몰랐다. 입을 벙긋거리던 공정식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2 대 1이다. 지금은 붙어 봐야 승산이 없었다.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신현수, 치프 됐다고 환자 옮기기도 전에 딴짓을 하면 되나? 안 되겠지? 공 치프는 내과니까 이해라도 한다만, 김 치프나 신 치프는 곤란하네.”
단박에 전세 역전이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자라목을 하며 급히 환자를 이동식 침대에 옮겼다.
눈을 부라리며 중환자실로 향하던 공정식이 환하게 웃었다. 김지훈의 말 때문이었다.
“정식아, 중환자실 킵(Keep) 언제 할래? 괜찮으면 우리가 새벽에 볼 테니까 니네가 2시 정도까지 커버해 줄래?”
“오케이! 오늘 밤은 우리한테 맡겨.”
역시 외과와 내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야 한 명의 환자라도 더 확실하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수술을 진행하는 오상익 교수와 이를 지켜보던 송재덕 교수가 떠올랐다.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과나 세부 전공이 다르다는 점은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협조할 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고, 그것이 곧 최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