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75화 (475/1,329)

제4화 최선의 선택 (1)

침대가 시뻘겋게 젖어 있었다. 환자는 창백해진 얼굴로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저혈량성 쇼크가 발생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빨리 라인 추가로 잡고 피부터 시켜요.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의식 상태까지 명료하지 못했다. 이런 출혈을 일으킬 부위는 단 한곳이었다. 환자의 항문을 확인한 김지훈이 눈가를 잔뜩 찡그렸다. 지금도 덩어리 섞인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양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었다.

“간호사, 빨리 수액 갖고 와요. 바이탈 체크합시다.”

김지훈의 고함이 복도를 울렸다.

간호사들은 물론 회진을 돌고 있던 공정식까지 다급히 달려왔다. 수액을 최고 속도로 주입하며 환자의 바이탈을 측정했다. 심장박동은 100회를 넘어섰고, 혈압은 떨어져 있었다. 원인은 단 하나였다.

심한 간경화는 간 기능을 크게 떨어뜨려 이차적으로 혈액 응고 기능을 상실하게 한다. 이로 인해 치질 덩어리에서 발생한 출혈이 멈추지 않은 것이다.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외과 질환인 치질이 한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직접 보지 못했다면 일반 외과 전공의마저 농담으로 치부하며 웃을 일이었다.

공정식에게 환자를 맡기고 오상익 교수에게 바로 노티를 했다. 서도진을 호출하고, 박순용에게 천유섭 환자의 수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아직 피를 확보하지 못해 수혈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수액을 빠르게 공급한 덕인지 천만다행으로 환자의 의식은 돌아왔다. 일시적인 회복일 뿐이었다.

“보호자분, 혹시 환자분이 어제 설사를 하셨나요? 아니면 변비에 시달리지는 않았습니까?”

“요새 변비가 심했어요. 어젯밤에도 화장실에서 나오질 못하더라고요.”

보호자의 말에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항문에 과도하게 가해진 힘과 돌처럼 딱딱해진 변이 점막을 찢으며 출혈을 야기한 것이다.

‘제길! 변비가 원인이었네.’

김지훈이 직접 소변 줄을 끼운 후 출혈 여부를 확인하는 사이, 오상익 교수가 도착했다.

“김지훈 선생, 무슨 일이야?”

“밤새 항문에서 출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멈추지 않은 상태입니다. 변비로 인해 치질 중 일부가 찢어지면서 혈관 손상까지 유발한 것 같습니다.”

오상익 교수가 장갑을 끼고 환자의 항문을 살폈다. 항문에 손가락을 넣었다 빼자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출혈 부위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김지훈 말대로 치질 내의 정맥이 찢어진 것이 분명했다. 보존적 치료로는 출혈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김지훈 선생, 응급으로 수술해야겠다.”

오상익 교수가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수술 이외에는 방법이 없으며, 최악의 경우 수술로도 출혈을 잡지 못할 수 있다는 말에 보호자가 주저앉았다.

한시가 급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수술실부터 확보해야 수술을 할 수 있다. 정규 수술 때문에 수술 방에 여유가 없을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막 병실로 들어선 서도진에게 눈짓을 하고는 다급히 수술 방으로 달려갔다.

“김진호 선생님, 간경화로 치질이 발생한 환잔데 지금 출혈이 멈추질 않습니다. 바이탈까지 흔들리는 상태라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예.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김진호 교수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빈방이 없어. 11시는 돼야 나올 거야.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에 없어.”

“선생님, 환자가 급합니다. 어떻게든 방 하나만 빼 주세요.”

“있어야 주지. 이미 8시 반이 넘었어. 환자들도 내려올 준비를 다 끝냈을 텐데, 이 시간에 어떻게 취소를 해? 그것도 치질 환자잖아. 솔직히 치질에서 출혈하는 거면 임시로라도 막을 수 있지 않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치질로 초응급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 힘들 것이다. 몇 번을 더 사정했지만 김진호 교수는 난처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사실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김지훈도 잘 알고 있었다. 수술이 예정된 환자들을 임의대로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취과 입장에서도 어느 한쪽의 말만 듣고 스케줄을 조정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말도 안 되는 일로 곤욕을 치를 수 있었다.

급하지 않은 환자도 없을 것이다. 하필이면 정규 수술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시간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재수가 좋아 멈춘다면 모르지만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만일 그때까지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면 환자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용케 버틴다고 해도 대량 수혈 때문에 간경화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했다.

진퇴양난이었다.

‘송재덕 선생님께 수술을 미뤄 달라고 말씀드려 볼까? 된다고 해도 천유섭 환자에게는 뭐라고 설명하지?’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내과 병동으로 달려갔다.

그때 마침 천유섭 환자를 만나러 온 송재덕 교수가 허겁지겁 병실로 향하는 김지훈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훈아, 무슨 일 있니? 왜 그렇게 급해? 천천히 하자. 천천히. 혹시 수술 준비가 아직 안 됐니?”

“아닙니다, 선생님. 오상익 선생님께서 컨설트를 본 치질 환자가 있는데 갑자기 대량 출혈을 해서요. 바이탈까지 흔들려서 문제가 좀 될 것 같습니다.”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질이라는 소리에 의아하긴 했지만 김지훈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잠시 고민을 하더니 앞장서라는 손짓을 했다.

아직도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새로 간 침대보가 어느새 피로 물들어 있었다. 오상익 교수는 심각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서도진은 내과 인턴과 함께 피를 짜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거의 혈복강에 준하는 상황이었다.

송재덕 교수가 눈가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오 교수님, 응급으로 수술을 해야겠네요.”

“아! 송 교수님, 언제 오셨습니까? 간경화가 심해서 피가 멈추질 않네요. 일단 최대한 빨리 출혈 부위를 막아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 김지훈 선생, 수술실은 어떻게 됐어?”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오전이라 힘든 모양이구나. 문제네. 아! 송 교수님 수술이 있지? 김지훈 선생, 여기는 서도진 선생하고 내가 있을 테니까 빨리 가 봐. 수술실 나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상익 교수의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보호자는 어쩔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먼저 하면 안 될지 말씀을 드려 볼까?’

예정된 수술을 수술 직전에 미루는 것은 의사에게나 환자에게나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차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떻게 하지? 어후! 일단 환자부터 살리는 게 우선이야. 빨리 지혈 못하면 정말 문제 생긴다.’

김지훈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아, 치프야, 천유섭 환자보다 이 환자가 더 급하다. 그치? 이럴 땐 수술 차례 양보해 달라고 말해도 돼. 환자가 우선이잖아. 환자가. 천유섭 환자에게는 내가 잘 말할 테니까 이 환자부터 수술하자. 오 교수님, 내 환자는 이어서 해도 되니까 먼저 하시죠.”

오상익 교수가 깜짝 놀랐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우리 환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급한 사람부터 수술해야죠.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지훈아, 치프야, 뭐하니? 빨리 마취과 가서 양해 구하고 수술 준비해야지.”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지훈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수술 방으로 달려갔다. 송재덕 교수의 동네 아저씨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상황을 전해 들은 김진호 교수가 소리 내 웃었다.

“역시 송재덕 교수님이네. 다들 선생님처럼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 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지훈아, 천유섭 환자한테 설명 잘해라. 다들 아픈 사람들인데 서운하지 않겠어?”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 환자 바로 내리겠습니다.”

곧바로 환자가 내려왔다. 바이탈이 간당간당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전신마취는 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예상외로 심각한 환자 상태를 확인한 김진호 교수가 직접 척추 마취를 시행했다.

‘간경화가 있다고 해도 설마 했는데, 치질로 이 정도까지 출혈을 하는 경우도 있네.’

“환자분, 간이 안 좋으셔서 주무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수술하는 소리가 들려서 불안하시겠지만 참으셔야 합니다. 그게 환자분에게 가장 안전합니다.”

마취가 끝나자마자 빠르게 수술 준비를 했다. 치질 수술을 하면서 이렇게 서두른 적은 없었다. 오상익 교수도 마음이 급한지 곧바로 수술을 시작했다.

항문에 힘이 빠지면서 치질 덩어리들이 삐져나왔다. 그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오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박순용이 항문 양쪽에 끌개를 넣고 조심스럽게 당겼다. 항문이 벌어지며 검붉은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생리 식염수로 항문을 세척하던 오상익 교수가 혀를 찼다.

“생각보다 훨씬 심하네.”

세 곳에서 출혈이 관찰됐다.

주우욱! 주우욱!

정맥 출혈은 피가 졸졸 흘러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상 자체가 달랐다. 마치 동맥처럼 피를 쏟아 내고 있었다. 간경화로 인해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이 강하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빠른 동작으로 석션을 했다. 자칫 석션 자체의 흡입력 때문에 치질 점막이 찢어질 수도 있었다. 오상익 교수가 눈가를 좁힌 채 잠시 고민을 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니들 홀더(봉합용 수술 기구).”

치질의 가장 확실한 치료는 절제술이다. 즉, 확장된 정맥의 뿌리 부분을 봉합한 후 덩어리 전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출혈하는 정맥을 봉합해 묶을 수 있다면 지혈과 동시에 수술까지 진행할 수도 있었다.

계속되는 출혈에 마음이 급해진 김지훈이 빠르게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순간 오상익 교수가 김지훈의 손을 막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김지훈 선생, 이런 환자의 경우 출혈이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항문 점막이 상당히 약해져 있기 때문에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추가 손상까지 생기면 손을 쓸 방법이 없어. 철칙이니까 명심해.”

오상익 교수가 신중하게 출혈 부위를 확인했다. 가뜩이나 수술 시야가 좁은데, 사방에서 밀려 나오는 치질 덩어리와 줄줄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살짝 당황했던 김지훈이 침착함을 되찾았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계속해서 석션을 해야 했다. 피를 닦을 때마다 거즈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상황은 다급하기만 한데 오상익 교수는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매서운 눈길로 정확한 지점을 찾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드디어 첫 번째 봉합을 시도했다. 수술 기구를 다루는 손길이 보통 부드러운 것이 아니었다.

“타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치질 조직은 아주 쉽게 찢어진다. 만일 정맥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더 큰 출혈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항문 안쪽이라 수술 시야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좁았다.

김지훈이 최대한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타이를 했다. 손끝에 전해지는 압력을 느끼며 연약한 조직에 최대한 확실하게 매듭을 지었다.

오상익 교수가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역시 가장 믿을 만하군.’

나머지 두 부분을 연이어 봉합했다. 여전히 부드럽게 수술 기구를 다뤘지만 봉합하는 그 순간만은 과감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이런 경우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봉합을 해야 하는지 조금은 명확하게 보였다.

오상익 교수가 생리 식염수로 적신 거즈를 수술 부위에 걸쳐 놓고는 팔짱을 끼었다.

“김지훈 선생, 5분 정도 기다리자.”

수술이 중단됐다.

띠띠띠띠띠.

아직도 빠르기만 한 심장박동.

90에서 100 언저리를 오르내리는 혈압.

환자의 몸속으로 주입되는 붉은 피.

의식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간간이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김진호 교수의 나직한 목소리.

아무 말 없이 거즈만 보고 있는 오상익 교수.

아직은 안도할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보면 느긋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색하다 못해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의외일 정도로 침착하게 진행된 수술까지 맞물리며 기분이 묘해진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절대 서두르면 안 되는 수술. 이상하게 어색하네. 예외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이런 경우가 또 있을 수 있겠지?’

심전도 소리만이 들리는 가운데 5분이 지났다. 젖은 거즈를 따라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가를 찌푸린 오상익 교수가 조심스럽게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통상의 경우라면 출혈을 잡고도 남아야 했지만 거즈를 빼내자 빨간 피가 상당량 흘러나왔다. 타이를 한 정맥이 원인이 아니었다. 바늘이 들어간 자리에서 피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바늘구멍에서 말이다.

답답한 소리가 터졌다.

“거즈.”

빨간 피가 쉬지 않고 거즈에 묻었다. 멈추기는커녕 도리어 출혈이 점점 더 심해지는 양상이었다. 퉁퉁 부은 데다 염증까지 발생한 탓일 수 있었다. 하지만 혈액 응고 기능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지금도 멈추지 않는 출혈이 이를 방증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봉합 부위를 압박하며 지혈이 되기를 기다리던 오상익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다. 김지훈 선생, 밴드 라이게이션(Band Ligation)하고 경화제 쓰자.”

바늘 자국에서마저 피가 나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최대한 비침습적 수술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볼펜 심 정도로 작지만 탄력이 상당히 강한 수술용 밴드(동그란 모양의 고무줄)가 준비됐다.

봉합한 정맥을 조심스럽게 당긴 후 밴드를 끼웠다. 밴드가 조여지며 정맥이 단단하게 묶였다. 출혈을 하는 나머지 두 곳도 밴드를 이용해 동일한 방법으로 묶었다. 항문을 따라 흐르던 피의 양이 줄기 시작했다.

“경화제.”

경화제가 주입됐다. 빠른 시간 내에 딱딱하게 굳으며 정맥의 혈류를 차단할 것이다.

이젠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물에 적신 거즈 몇 장을 항문에 끼운 후 모두들 침묵을 지켰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가를 찡그렸다.

‘계속 피가 나는데도 정말 침착하시네. 이런 경우 서두르면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런데 출혈이 잡히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항문 밖으로 삐져나온 거즈에 모든 시선이 쏠렸다. 출혈이 지속되거나 양이 많으면 곧 빨갛게 물들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초조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 이상은 출혈을 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간경화가 원인이라지만, 손을 댄 이상 외과 의사가 수술 중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째깍! 째깍!

거즈가 조금씩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항문 내에 남아 있던 피가 거즈를 타고 나오는 양상이었다. 여기까지가 허용할 수 있는 한계였다.

‘이 이상 진해지면 안 되는데.’

째깍! 째깍!

5분이 넘게 기다렸다. 오상익 교수가 조심스럽게 거즈를 빼냈다. 거즈 전체가 분홍빛으로 물들기는 했지만 체액과 남아 있던 피가 섞인 양상이었다.

“김진호 교수, 바이탈 어때요?”

“아직 불안정합니다만, 조금씩 개선되고 있습니다.”

오상익 교수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김지훈 선생, 일단 출혈은 잡혔다. 수술 끝내자. 환자 절대 안정시키고, 필요하면 내과하고 상의해서 추가로 수혈해. 수고했어.”

이제야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조금은 풀렸다.

김지훈과 박순용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다시 타오를지 모르지만 급한 불은 끈 것이다.

항문에 두툼하게 거즈를 대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급박함과 위태로움 속에서도 여유를 가져야 했던 수술에서 전해진 느낌은 의외로 생소했다. 줄줄 흐르는 피와 흔들리는 바이탈 앞에서도 느긋하게 보일 정도로 침착하기만 했던 오상익 교수의 손이 떠올랐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노련한 외과 의사의 힘일까?

3년차가 된 지금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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