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선택적 수술 (2)
기본 중의 기본인 장갑을 안 챙겼다. 초턴일 때도 박살이 날 일인데 이젠 인턴 후반기다. 더구나 정식 지원을 앞두고 인사를 하겠다고 온 자리였다. 치프들 앞에서 핑계를 대 봤자 돌아오는 건 험악한 눈초리뿐일 것이다.
신현수는 아예 한술 더 떴다. 목소리까지 차가워졌다.
“이혁원 선생, 인턴 제대로 돌고 있는 거야? 사소해 보인다고 해서 기본을 못 지키면 일반 외과 할 자격이 없어. 정신 똑바로 차려. 이번 한 번뿐이다.”
웃음으로 넘기려던 이경석이 헛기침을 하며 이혁원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이혁원이 살벌한 눈초리를 뒤로하고 재빨리 스테이션으로 달려갔다. 목덜미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하늘보다 더 높은 치프들에게 벌써부터 찍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유섭과 대화를 나누던 김지훈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이경석과 신현수도 환자 상태를 확인하며 보호자에게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던 참이었다.
“장갑 가져왔어? 다음부터 이러면 너 일반 외과…….”
그 순간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혁원 옆에 송재덕 교수가 떡하니 서 있었다. 치프들이 흠칫 놀라며 일제히 옆으로 비켜섰다. 하늘 위에 하늘 앞에서는 치프고 뭐고 바짝 긴장해야 한다.
“지훈아, 치프야, 장갑 가져왔다. 가져왔어. 근데 니들 뭐하니? 셋이 다 몰려와서 뭐하는 거야? 환자 보는구나. 어떠니? 어때?”
평소 중한 환자가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는 송재덕 교수였다. 그도 모자라 직접 환자를 보러 왔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재빨리 대답을 했다.
“농양을 세척해서 배출이 되나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래? 그럼 빨리해라. 빨리해. 경석아, 현수야, 환자 보러 왔지? 환자. 좋다. 좋아. 그래야지. 암! 그래야지. 어머니, 오늘 우리 환자분은 어떠셨어요?”
오후 회진 때 보고 간 지 불과 서너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전공의도 모자라 교수까지 나타나자 천유섭의 어머니인 주복주가 도리어 불안해했다.
입을 열지도 못하고 김지훈만 보았다.
“어머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의사가 환자 보러 온 겁니다. 시간이 뭐 중요한가요. 지훈아, 그치? 빨리해라. 보자. 어디 잘 나오나 보자.”
환자 앞에서는 말투가 달라져야 하는데,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20cc 주사기를 배액 관에 연결하고 조심스럽게 생리 식염수를 밀어 넣었다.
10cc 정도 들어가자 천유섭이 인상을 썼다. 묵직한 통증을 느낀 것이다.
“불편하시죠. 조금만 참으세요.”
김지훈이 신중하게 주사기를 당겼다. 생리 식염수와 함께 끈적끈적한 고름이 걸려 나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몇 번을 반복했지만 더 이상 고름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태라면 외부에서 고름을 제거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송재덕 교수가 눈가를 찡그렸다.
“잘 안 나오네. 그럴 거야. CT에서 그렇게 보이더라. 어머니, 환자분, 우리가 열심히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할 얘기가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다시 오겠습니다. 치프들아, 가자.”
스테이션으로 나온 송재덕 교수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전공의들을 한두 명 겪은 것이 아니다. 척 보는 순간 답이 딱 나왔다.
“환자를 괜히 보러 온 건 아니지? 그렇지? 그렇구나. 내 말이 맞네. 어디 들어 보자. 현수야, 나쁜 놈아, 수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너부터 말해 봐. 시간 없다. 빨리빨리.”
신현수가 힐끗 김지훈과 눈을 마주친 후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애먼 자리에 낀 이혁원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가라는 소리가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긴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회맹부를 포함해 모두 절제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됩니다. 재수술 가능성이 높지만, 어차피 수술을 해야 한다면 확실하게 제거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래. 그거 위험하긴 해도 좋은 생각이네. 경석이 너는?”
“전 좁아진 소장을 최소한으로 절제하고, 대장 및 회맹부는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농양에는 심지를 넣어 해결하고요. 수술 부위가 크면 클수록 수술 후 새로운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구나. 그래. 최소한으로 건드리자는 말이지.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지훈이 너는?”
김지훈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신현수의 제안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재수술 및 수술 후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이경석의 제안은 환자에게 가장 부담이 작지만,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 병변을 남겨 두어야 한다는 면이 마음에 걸렸다. 수술 후 내과 치료에 잘 반응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이미 나름 생각한 방법이 따로 있기도 했다.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송재덕 선생님은 가능하시지 않을까? 스승님이나 이혁민 선생님이 함께 수술을 하시면 될 것 같은데.’
“지훈아, 치프야, 뭐하니? 장고 끝에 악수 나온다고 했다. 더구나 크론이다. 크론. 신중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고민하면 쓸데없는 치료를 생각하게 돼. 빨리 말해라. 빨리.”
“예, 선생님. 전 소장과 대장을 각각 절제하고, 회맹부는 보존했으면 합니다.”
송재덕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현수나 이경석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혁원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치 김지훈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확실하게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병변이 발생한 소장을 다 자르자고?”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회맹부와 연결된 소장이 거의 남지 않을 텐데 이어 줄 수 있겠니? 재수가 좋아서 크론이 침범하지 않았다고 해도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렵다. 어려워. 힘들다. 힘들어. 그걸 누가 하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된 부분을 최대한 제거하고, 회맹부를 보존했을 때의 이점을 생각해 보면 시도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선생님들께서 서로 협조를 하신다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송재덕 교수가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젠 세 놈 다 개성이 뚜렷해졌네. 현수는 확실하게, 경석이는 안전하게, 지훈이 이놈은 과감하면서도 환자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한단 말이지. 그래. 너희들 판단이 다 정답이다. 이렇게 열심히 환자를 보고 판단을 내렸다면 틀린 답이 나오기 어렵지.’
“그래. 지훈이 니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야. 어쨌든 잘했다. 환자는 이렇게 봐야 돼. 암! 몇 번이고 확인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 의사가 할 일이다. 잘했다. 우리 치프들 잘한다. 그럼 수술은 언제 하는 게 좋을까?”
치프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이 문제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었다.
“가급적이면 빨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프들 생각이 그러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지훈아, 치프야, 이 환자 수술 준비하자. 천천히 하자. 천천히.”
김지훈이 눈을 반짝였다. 송재덕 교수가 이 밤에 환자를 보러 왔다. 왜 자신을 찾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말이었다. ‘천천히’라는 말속에 담긴 의미는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일 하자, 내일.”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예? 준비는 특별히 더 할 게 없지만 스케줄 제출이 안 됐습니다. 응급으로 하면 차례가 뒤로 밀릴 텐데요. 가급적이면 첫 번째로 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마취과에 내가 다 얘기했다. 걱정하지 말고 준비하자. 준비. 지훈이 너 들어오고, 치프들 중에 수술 없는 사람 한 명 더 들어와라. 누가 들어올래?”
송재덕 교수의 눈이 신현수에게로 향했다.
내일 오전에 수술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알겠습니다, 선생님.”
신현수가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을 하자 동네 아저씨 웃음이 터졌다. 이경석이 소리 없이 주먹을 치며 안타까워했다.
송재덕 교수의 눈길이 이제야 이혁원에게로 향했다.
“근데 넌 누구니? 인턴이지? 인턴. 맞네. 이혁원, 넌 여기 왜 있어? 일 안 하니?”
어째 가운에 적힌 이름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것 같았다. 이혁원도 그다지 당황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인사? 무슨 인사? 아! 너 외과 하는구나. 외과. 좋다. 좋아. 열심히 해라. 열심히. 치프들한테 많이 배워야 한다. 알았지? 얘들한테 배우고 못나면 안 된다. 그건 아니다. 암! 아니고말고.”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이혁원을 보며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대충 감이 왔다. 이젠 아버지를 이해하고, 정말 한 가족이 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혁원을 알 수밖에 없는 교수들이 있다. 당연히 송재덕 교수도 그중 한 명일 것이다.
송재덕 교수가 다시 한 번 검사 결과를 보고는 천유섭과 주복주를 찾았다.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에 주복주가 눈가를 훔쳤다.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들리시겠지만 이틀간 고민 많이 했습니다. 아드님을 위해서는 수술이 최선입니다. 내일 수술하기 전에 다시 뵙겠습니다. 환자분은 오늘 푹 자야 합니다.”
송재덕 교수가 이제야 퇴근을 했다. 김지훈이 이경석과 신현수를 보며 손짓을 했다.
“경석이 형, 현수하고 먼저 숙소에 가 있으세요. 혁원이 기합 좀 줘야죠. 전 오더 내고 바로 올라갈게요.”
“오케이! 내일 수술 볼 시간이 될까? 라파로 사이에 여유가 생길 것도 같은데 안타깝네.”
김지훈이 서둘러 수술에 필요한 오더를 냈다.
“환자분, 내일 첫 번째로 수술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긴장하지 마시고 가급적이면 조금이라도 주무세요. 결과가 좋을 겁니다.”
“선생님, 수술하고 나면 많이 아프죠?”
당연히 아프다. 천유섭처럼 만성 질환을 가진 사람은 같은 상처에도 더 큰 통증을 느낀다. 정신적인 피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통증은 최대한 조절해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주무세요. 어머니, 환자분이 안정을 잘 취하게 도와주세요.”
항상 해 왔던 말이었다. 숱한 환자를 보아 왔는데도 이럴 땐 여전히 답답하기만 했다. 어떤 말로도 환자의 불안과 두려움을 덜어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며 과연 어떻게 수술을 할지 생각해 보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현수나 이경석이 말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현실적이었다.
‘에휴! 허구한 날 그놈의 1~2센티미터가 사람을 잡네. 대장 쪽은 어떻게든 방법이 나오겠지만 소장 쪽이 문제네. 회맹부를 살려야 재수술을 피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몸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다. 하기에 정상 구조가 무너지면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른다. 가뜩이나 염증성 병변이 주요 병리인 크론에서 회맹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대장 내용물이 역류해 소장을 자극한다면 그만큼 염증이 더 빈발하기 때문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며 숙소에 들어선 김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혁원이 거의 차렷 자세로 선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경석이 형, 혁원이 얘 왜 이래요?”
“자식이 허우대는 멀쩡한데 멘탈이 너무 약하네. 현수가 가볍게 몇 마디 했는데 저러네.”
정말 가벼운 말이었을까?
일반 외과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1년차 때 4년차 치프가 될 선배들의 말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차가울 때는 한없이 차가운 신현수였다.
김지훈이 이혁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혁원아, 너무 겁먹지 마. 인마, 우리가 귀여워하면 귀여워했지, 설마 널 죽이겠냐? 다 좋은 사람들이야. 내가 너 굉장히 아낀다는 거 알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만큼만 하면 아무 문제 없다. 그렇게 알고 가 봐. 지원 잘했다.”
“예. 가 보겠습니다, 선생님.”
어깨가 축 처진 이혁원을 본 김지훈이 크게 웃었다.
“넌 갑자기 왜 웃어?”
“인턴 때가 생각나서요. 그때 송동화 선생님에 최철한 선생님하고 유석재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앞에만 서면 왜 그렇게 떨었는지 몰라요. 별말 아닌데도 가슴이 그냥 덜컥 내려앉았거든요. 저놈도 똑같네요.”
“다 그렇지, 뭐. 참! 송재덕 선생님이 저놈을 아는 것 같은 눈치던데, 넌 그렇게 안 느껴졌어?”
신현수도 은근히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굳이 비밀을 지켜야 할 일도 아니었다. 한 가지만 약속하면 말이다.
“경석이 형, 현수야, 알아서 하겠지만 금경태 과장 귀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 돼.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심각해질 수도 있어.”
“무슨 소리야?”
“혁원이가 이준영 교수님 아들이야. 무슨 소린지 알겠지?”
한동안 멍한 표정만 짓던 이경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이야? 자세히 좀 말해 봐.”
“나도 거기까지만 알아요. 하여튼 혁원이가 1년차로 들어오면 새카맣게 태우죠. 아니, 우리가 배운 대로 재만 하얗게 남기는 게 좋겠네. 으하하하!”
감히 이준영 교수의 아들을 태운다고?
그런 말을 하며 크게 웃다니 미친놈이다.
“왜들 그런 눈으로 봐. 곱게 가르치면 도리어 이준영 선생님한테 깨집니다. 그냥 죽일 듯이 태우는 게 우리한테도 유리하다고. 두고 봐. 으하하하! 어떻게 죽일까? 가만? 픽스턴이 있었네. 좋았어.”
웃다 못해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러다 이혁원이 다른 과 할 수도 있다.”
“그럼 치프들을 우롱한 죄로 더 죽여야죠.”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김지훈과 신현수를 보던 이경석이 고개를 흔들며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코를 고는 소리를 뒤로하고 김지훈이 사라졌다. 송동화 과장과 함께 아뻬 하나를 끝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모두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어제 일을 정리하고 아침에 있을 수술을 생각하던 김지훈이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혁원이가 우리 과를 정식으로 지원했단 말이지? 스승님과 완전히 화해를 한 모양이네. 잘됐어. 정말 잘됐어. 자식! 넌 정말 행운아야, 인마.’
가슴 한구석에 숨어 있다 가끔 나타났던 불안과 걱정이 싹 사라졌다. 그 덕인지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어쩐지 천유섭의 수술도 잘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회진을 돌자마자 수술 방으로 달려갔다. 천유섭의 수술 때문이었다.
마침 김진호 교수가 윤서연과 수술 스케줄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케줄을 묻는 김지훈의 말에 팔짱을 끼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훈아, 요즘 우리 과 전공의들이 고생 많은 거 알지? 송재덕 선생님이 냅다 수술을 밀어붙이시니까 더 힘들다. 그런데 일반 외과 총치프가 요새 조금 무관심하네. 윤서연 선생, 안 그래?”
“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며 바로 대답을 했다. 일반 외과와 마취과 사이에 오가는 최소한의 의리이자 윤활유인 맥주가 필요한 때였다.
“한 박스, 아니 두 박스 바로 올리겠습니다.”
“역시 나랑 제일 잘 통하네. 지훈이 니가 총치프를 했어야 하는 건데 아쉽다. 윤 선생, 천유섭 환자 첫 수술로 배정하자.”
수술실을 확인한 김지훈이 후다닥 내과 병동으로 올라갔다. 바로 수술 준비를 하라는 오더를 내리고 천유섭을 막 찾으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간호사 한 명이 급히 달려왔다.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선생님, 병실 환자 좀 봐주세요.”
“나요? 나 곧 수술 들어가야 하는데.”
“죄송해요. 전에 보신 치질 환자 때문에 그래요. 부탁 좀 드릴게요. 급해요.”
내과 병동은 중환들이 의외로 많아 간호사들 대부분 상당히 노련했다. 그런 간호사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에 급히 병실을 찾은 김지훈이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