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71화 (471/1,329)

제2화 함께 불타오르자 (1)

세상에 단 한 군데도 쓸모없는 사람 없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전종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질 않았다. 실력이 모자란 탓인지 예전에 비해 외래 환자와 수술 건수가 크게 줄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외래 상황이 변하자 의외로 큰 변화가 초래됐다.

유방 파트를 담당할 교수를 바로 뽑기 어려워 예전처럼 이혁민 교수가 유방 파트까지 맡은 후였다. 새로울 것이 없는 일이었지만 신현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혁민 교수의 레벨상 함부로 2년차를 들여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젠 모든 수술을 다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이혁민 교수가 다시 유방 파트 진료를 시작하자 줄어 가던 유방 질환 환자들이 증가했다.

결국 위장관과 유방, 그리고 신기동 교수의 혈관 수술까지 거의 매일 오전, 오후를 가리지 않고 수술실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신현수의 얼굴에 피곤이 서리기 시작했다.

“신현수, 피곤하면 유방 종물이나 마이너 수술은 예전처럼 안호석이 들어오게 해라.”

“선생님, 죄송하지만 당분간은 제가 계속 들어가고 싶습니다. 호석이도 배워야 하지만, 저 역시 아직은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이혁민 교수가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공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면 가뜩이나 기쁜 일인데, 위장관을 하고 싶다는 신현수였기에 더욱 그런 모양이었다.

또한 3년차들이 치프를 하는 시기에는 2년차들도 일에 치이기 마련이었다. 신현수가 노력하는 만큼 안호석은 더욱 병동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어차피 1년 후에는 2년차들도 치프가 된다. 욕심을 부려도 좋을 때였다.

시간이 갈수록 일이 많아졌지만 신현수의 표정은 밝았고,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도리어 마치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가운을 휘날리고 있었다.

물론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신현수, 욕심을 내는 건 좋다만 준비는 철저히 하고 들어와야 하지 않겠나? 치프는 손만이 아니라 머리로도 수술을 해야 된다.”

“신현수, 너 위장관 하고 싶다고 하더니 혈관은 보이지도 않아? 치프가 돼서도 이렇게 해부학 지식이 부족하면 어떻게 해? 이론에 관해서는 제일 나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2년차가 더 많이 알겠다, 인마.”

오전에는 조곤조곤하게 타고, 오후에는 비수가 날아와 가슴을 후벼 팠다. 머릿속에 든 것이 가장 많다고 인정받는 신현수였기에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눈앞에 최고의 라이벌인 김지훈이 있는데 태만할 수도 없었다. 결국 시간이 날 때마다 책에 고개를 박기 시작했다.

‘으아! 이 자식이 잠도 안 자고 또 책을 펴고 있네.’

김지훈이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가슴 한구석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경석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어찌 된 일인지 금경태 과장이 뭔가에 정신이라도 팔린 것처럼 진료와 수술을 등한시하고 있었다. 당연히 금경태 과장이 수술을 하는 화목은 시간이 남아돌았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이준영 교수의 수술이 엄청나게 늘기 시작한 것이다. 양승철 교수만이 아니라 원관식 교수까지 수술을 요하는 환자 대부분을 의뢰한 덕이었다. 쫓겨나다시피 병원을 나간 전종훈과 악어를 보고는 눈치 빠르게 돌아선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교수들이 고개를 저을 정도로 어려운 수술을 해낸 덕인지 외래로 내원하는 환자들까지 증가했다. 그들 중 일부는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기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온 환자들이었다. 난이도와 위험도까지 크게 증가하자 이경석 역시 한눈을 팔 새가 없었다.

“지훈아, 너 담도암 수술 들어가 봤지? 나 좀 도와줘. 툭하면 어려운 수술이 벌어져서 정말 미치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은 웃고 있었다. 여유롭던 화목에도 다음 수술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수술실에 들어가면 신현수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탔다. 치프라고 절대 봐주는 법이 없었다.

“이경석, 라파로가 쉬워 보여? 손이 못 따라오면 연습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간담도 쪽 암은 출혈이 가장 문젠데, 아직도 손이 그렇게 거칠면 어떻게 해? 너 치프야.”

이경석이 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김지훈이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으아아! 이렇게 환자가 많을 때 간담도를 돌았어야 하는 건데, 이게 무슨 일이야? 나도 타고 싶다.’

누가 들었으면 당장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지훈 입장에서는 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스승에게 배울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타도 좋았다.

그런데 김지훈이라고 상황이 다를까?

사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다르긴 했다.

오상익 교수, 구영선 교수, 임동완 교수.

예전과 비슷하게 수술을 한다고 해도 교수 3명이 하는 수술 건수는 결코 적지 않았다. 전종훈 일로 경각심을 느꼈는지 탈장처럼 파트를 구분하기 어려운 수술까지 경쟁적으로 담당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상스럽게도 오상익 교수가 김지훈을 상당히 챙겼다.

“김지훈, 쉬워 보여도 한 번 헤매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는 게 탈장 수술이야. 특히 어린아이들 수술이 더 그렇지. 내일 잡힌 탈장 수술 준비해 와. 잘할 수 있겠지?”

당연히 콧노래가 나왔다.

“잘하네. 기회가 되는 대로 케이스를 줄 테니까 이렇게만 해. 마음에 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수술이라면 밥도 포기할 수 있는 김지훈이었기에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가장 뜨거운 교수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송재덕 교수다.

어느 과 교수든 신뢰를 받으면 환자가 늘기 마련이다. 송재덕 교수 역시 천안 병원에서 올라왔다는 한계를 깨며 신뢰를 받기 시작했다. 연이어 메이저 수술이 벌어졌고, 송재덕 교수 역시 전공의를 태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잘한다. 잘해. 치프야, 지훈아, 대장 하자. 대장.”

칭찬의 연속이었다.

‘이거 이상하게 어색하네. 타는 게 아예 몸에 익었나?’

하도 좋은 소리를 많이 들어 도리어 불안할 지경이었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재덕 교수는 물론 오상익 교수까지 아무리 사소한 환자라도 항상 김지훈을 찾았다. 그야말로 전폭적인 신뢰였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균형을 맞추기 마련이었다.

“지훈아, 치프야, 컨설트 보러 가자. 바쁘다, 바빠.”

“선생님, 지금 오상익 선생님 수술 들어가야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오후 회진 때 보시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럼 그래야지. 그러자. 근데 너 요새 공부는 하니? 수술 많다고 공부 안 하면 안 된다. 안 돼. 치프는 말이야, 머릿속을 꽉 채워야 해. 텅 비면 그게 치프니? 지훈아, 치프야, 공부하자. 공부.”

은근히 몸을 떨게 하는 말이었다.

수술이 늘면서 교수들조차 시간을 내지 못해 이론 부분은 치프들 각자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몸이 두 개였으면 하는 상황인지라 다소 등한시하는 면이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었다.

그런데 수술 방에서 마주친 이준영 교수까지 한마디 던졌다.

“김지훈, 이론 등한시하면 안 돼.”

솔직하게 말할 일이었다.

“예.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수술이 갑자기 많아져서 제대로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준영 교수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치프들 다?”

“예, 선생님.”

“똑똑한 놈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너희들 세 명 모두 각자 알아서 하기로 한 거야? 힘들 수밖에 없겠네.”

그러고는 휙 수술실로 들어갔다. 김지훈이 멍하니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알 수 없는 서늘함에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사실 전문의 시험 때문이라도 이론에 바짝 신경을 써야 할 때였다.

‘여기서 시간을 더 내려면 오프를 포기해야 한단 말인데, 치프 때도 그래야 하나? 다 떠나서 경아 씨한테 맞아 죽을지도 몰라. 눈물 나게 하면 아버님한테도 죽을 거야.’

시간은 없고,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아 정말 난감했다.

좋은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던 중 갑자기 스승의 모습이 떠올랐다. 응급실 근무를 하면서도 항상 논문이나 참고 자료들을 읽고 있던 그 모습이 너무도 선명했다.

교수들은 편할까?

일견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결코 일이 적지 않았다. 외래 진료와 수술에, 입원 환자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은 교대로 응급실 당직까지 선다.

보직이 없다고 해도 진료 외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환자에 대한 최종 책임은 교수에게 있기 때문에 전공의들보다 훨씬 큰 압박과 부담을 느낄 것이다. 경험이 쌓인다고 줄어들 부분이 아니었다.

‘후우! 우리만 바쁜 게 아닌데 요즘 왜 이렇게 여유가 없지? 항상 이렇게 살아왔잖아.’

사실 하루에 수술 한두 개 많아진 것이 생각처럼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일이 쌓이고 쌓이면 개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을 훌쩍 넘게 되는 탓이다.

유석재나 홍재순도 분명히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치프들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니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찾으려면 이유를 찾아야 했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시계를 보고는 후다닥 수술실로 달려갔다.

연이어 벌어지는 수술은 할 일을 엄청나게 늘리고 있었다. 틈틈이 쉴 수 있기에 그다지 피로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몸이 마음을 쫓아갈 겨를이 없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올라간 김지훈이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이경석과 신현수가 다소 피곤한 얼굴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김지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

‘치프 되면 무지하게 편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더 피곤해 보이냐. 하긴 타는 것도 무척 피곤한 일이지.’

“경석이 형, 오늘 오프 아니에요?”

“오프지. 피곤해서 못 가겠다. 치프가 되면 편할 줄 알았는데, 왜 더 힘든지 모르겠네. 니 체력이 부럽다. 내일 수술 준비는 했어?”

“조금 쉬고 바로 해야죠. 형은요?”

“30분 동안 천장만 보고 있는 중이다.”

김지훈도 쌩쌩한 건 아니지만 이경석과 신현수보다는 훨씬 팔팔했다. 체력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어쩌면 여유가 없는 생활이 정신적 피로를 유발하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이준영 선생님하고 송재덕 선생님이 공부하라고 난리신데 큰일 났네요. 이러다 처음 치프 됐을 때처럼 갑자기 의욕적으로 나오시면 어쩌죠?”

“어쩌긴, 죽는 거지.”

한숨만 푹푹 터졌다.

그때 신현수가 크게 기지개를 펴며 새로운 폭탄 하나를 툭 던졌다.

“이혁민 선생님께서 논문 얼마나 준비했는지 확인하신단다. 최소한 다음 주까지는 초안 잡으래.”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지훈도 멍한 표정이었다. 초안이라고 해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오프를 갈 수 있다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상황인데, 어디서 시간을 빼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나야 쓰려면 쓰겠지만, 현수나 경석이 형 상태로는 초안조차 제대로 못 쓸 것 같네. 어차피 타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차원이 다를 텐데 어떻게 한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물끄러미 신현수를 보던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불현듯 이준영 교수의 말이 생각나며, 치프가 된 이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최고의 써전.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꿈.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함께 가는 게 정답이야. 그게 나한테도 좋은 일이야.’

“현수야, 지금처럼 가다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얻을 게 없어. 작년처럼 같이 수술 준비하고, 논문도 함께 고민하자. 3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준비하면 되잖아. 경석이 형, 어때요?”

“같이하자고?”

2년차 때와 치프는 여러모로 다르다. 단순히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만은 아니었다. 각자 실력이나 지식은 물론 생각도 더욱 깊어졌다. 지금이야 이상스럽게 여유가 없지만, 그 문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더구나 각자 나름대로 세부 전공을 정했다. 전문의 시험을 생각하면 전반적으로 다 준비해야 하지만, 중점을 두고 싶어 하는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신현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년에는 2년차인 데다 라파로하고 스테이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부분이 없잖아. 각자 부족한 부분도 다 다르고 말이야.”

“현수야, 어차피 기본적인 부분들까지 준비할 것은 아니잖아. 메이저 수술이나 어렵고 보기 드문 케이스들을 다루면 되지 않을까? 그런 부분은 우리한테 다 부족할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아직도 뜨뜻미지근했다. 비장의 카드를 꺼낼 때였다. 신현수를 자극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에이! 그럼 각자 하자. 이렇게 되면 체력이 강한 놈이 장땡이네. 나보다 체력 좋은 사람 있나? 어후! 논문 초안이라. 빨리 내일 수술 준비하고 초안이나 써야겠다. 현수야, 넌 오늘 당직이지? 수술 뜨면 시간이 정말 빡빡하겠다.”

신현수가 눈가를 찡그리며 입술을 모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의학은 머리 좋은 사람보다는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성취를 얻는 학문이다. 김지훈과 같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이 자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 혼자 해도 충분할 텐데 굳이 같이하자고 하는 이유가 뭐지?’

“지훈아, 그런데 너한테는 득이 있어?”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무슨 득이 있냐고? 당연히 있지. 내가 했던 말 잊었어. 적어도 최고의 써전 근처에는 가 보고 싶지 않아? 나 혼자는 아무리 아등바등해 봐야 불가능할 것 같다. 현수야, 나 좀 도와줘라. 경석이 형, 도와줄 거죠?”

이경석이 기분 좋게 웃었다.

“자식, 사람 꼬시는 재주 있네. 현수야,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난 찬성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해결해 가자.”

총치프인 이경석의 말이었다. 신현수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을 앞서고 싶은 이유는 단지 라이벌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온 것이다. 최고의 써전은 꿈과 희망이었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하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어? 일단 내가 먼저 준비할게. 자! 그럼 경석이 형은 오프 가시고, 현수는 응급실 콜에 대비하셔. 난 논문이나 준비해야겠다.”

자료들을 꺼내던 김지훈이 히죽 웃었다.

‘꿈을 잊고 있어서 더 힘들었나?’

이상하게도 힘이 나며 피로까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던 김지훈이 머리만 벅벅 긁었다. 막상 호기롭게 먼저 준비하겠다고 외쳤지만, 남은 수술에서는 적당한 케이스가 보이질 않았다.

“현수야,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네. 적당한 거 없을까? 니 말대로 2년차 때와는 다르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스윽 고개를 돌리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논문 준비를 하고 있는 신현수의 눈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무서운 집중력이었다.

‘역시 신현수답네. 제길! 잘못 건드린 거 아냐?’

김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

다음 날, 수술이 끝나자마자 오상익 교수와 컨설트를 보러 갔다. 막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간호사가 뭔가를 다급하게 흔들었다.

“뭐예요?”

“송재덕 교수님 컨설트도 있어요.”

오상익 교수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탔다. 김지훈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후다닥 뒤를 따랐다. 컨설트 용지에 적힌 진단명과 병실을 확인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나 심하기에 컨설트를 냈지? 그런데 이게 수술 케이스가 되나?’

내과 병동에 도착하자 마침 스테이션에 있던 공정식이 급히 달려왔다. 차트를 보던 오상익 교수가 고개를 저으며 눈가를 찡그렸다.

“공정식 선생, 간경화가 이렇게 심한데 컨설트를 왜 낸 거야? 치질 수술하다 사람 잡을 일 있어? 내과라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평소 점잖기만 하던 오상익 교수가 거의 힐난조로 말했다. 김지훈은 의아한 표정만 지었다. 공정식이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지 못했다.

일단 컨설트가 난 이상 환자를 안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상익 교수가 혀를 차며 돌아섰다.

“김지훈, 환자 보자.”

공정식과 함께 재빨리 병실로 달려가 환자를 찾았다. 통증이 심한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바싹 마른 몸에 거무죽죽하게 변한 피부가 심한 간경화를 알려 주고 있었다.

“환자분, 외과에서 왔습니다. 어디 좀 볼까요?”

오상익 교수의 말에 모로 누운 환자가 바지를 내렸다. 답답한 소리가 들렸다. 내과에서 왜 컨설트를 냈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심하다. 의사 입장에서 봐도 너무 심하다.

김지훈은 물론 오상익 교수까지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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