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69화 (469/1,329)

제1화 인과응보 (1)

3명의 교수와 마주한 신동석 이사장이 마치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커피까지 준비시켰다. 표정도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가슴이 서늘해진 진상철 교수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전종훈 교수와 악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진 교수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너무도 태연한 목소리였다. 진상철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등을 꼿꼿이 폈다.

“예. 다름이 아니라, 전 교수와 진 교수의 권고사직 문제 때문에 올라왔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먼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교육부의 허가까지 받아야 하는 사안인데 공문 한 장으로 통보하실 문제는…….”

신동석 이사장이 툭 말을 끊었다.

“그 문제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그러면 당사자들만 올라오면 되는데 진상철 교수님은 왜. 아! 다들 한집안이시군요. 하긴 안 좋은 일은 함께하는 것이 좋은 법이지요.”

커피 한 모금을 마신 신동석 이사장이 전종훈 교수와 악어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전 교수님은 이번에 환자와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과실로 결론이 났다고요? 일이 커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여전히 진상철 교수만 입을 열었다.

“예. 그렇습니다, 이사장님. 외과 의사들은 수술을 할 때마다 이런 일이 터질까 봐 항상 불안해합니다.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요. 그래서 과실은 의사가 직무를 수행하는 데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혹시 이번 일이 사직의 이유라면 반드시 재고하셔야 합니다.”

“지금 설마 그게 이유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진상철 교수님은 한눈팔지 않고 일에만 전념하신 모양입니다. 환자를 위해서 좋은 일입니다. 우리도 교수님들 모두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다 각자 생활이 있겠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겠지요.”

신동석 이사장이 묘한 웃음까지 터트렸다.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화를 내는 기색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퍼졌다.

전종훈 교수와 악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눈가를 잔뜩 찌푸린 진상철 교수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단순한 말 몇 마디로 자신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역시 신동석이야. 아버님은 왜 전화를 안 하시지? 이럴 때는 어떻게 말을 풀어 가야 하지?’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하지만 실마리조차 풀 수가 없었다. 자칫 섣부른 말을 꺼냈다가는 자신마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에요?”

(이사장님, 진평호 이사님께서 통화를 원하십니다.)

“그래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일제히 전화기를 보는 모습에 신동석 이사장의 눈이 번쩍였다.

윤재철의 말대로 됐다.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무슨 속셈인지 대충 감이 왔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반응을 보이는군. 진평호, 이번 일을 핑계로 겸사겸사 날 떠보려는 속셈이겠지? 사돈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어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볼까?’

돈에 관한 일은 진평호나 윤재철보다 밝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대학과 병원을 훌륭하게 운영해 온 사람이 바로 신동석 이사장이었다. 그 역시 노련하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었다.

전화가 연결됐다.

“신동석입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목소리가 좋으십니다. 병원 확장 건은 의견이 달라 도움을 못 드리고 있지만, 항상 잘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십니다.”

스피커 버튼을 눌렀는지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들렸다.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전종훈 교수와 진상원 교수 때문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갑작스럽게 사직을 요구하셨다고요. 합당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제 피붙이들이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큰 문제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문제로 연락을 하셨군요. 마침 제 앞에 두 교수님과 진상철 교수님까지 계십니다만, 개인적인 문제라 개별적으로 사유를 통보할 생각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게도 말하지 못할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좋습니다. 어쨌든 인사에 관한 문제는 이사장님의 권한 중 하나니까요. 한데 저도 이사로서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해서 아주 중대한 일이 아니라면 이번 조치를 취소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진 이사님의 입장 이해합니다. 그만한 권리도 있으시고요. 하지만 이번 사안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로서는 취소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요?)

진평호의 거친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마디로 딱 자르시는 걸 보니 확실한 이유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럼 정식으로 요청드립니다. 이사에겐 이유를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으셨겠죠.)

“알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라 웬만하면 피하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가 없군요. 전종훈 교수와 진상원 교수가 사전에 병원 확장 건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 정보를 이용해 부당 이득을 취했습니다. 1인당 삼사 억 정도니까 결코 적지 않은 액수군요.”

순간 전종훈과 악어가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돈의 액수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진상철 교수의 얼굴이 벌게졌고, 진평호도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신동석 이사장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말을 이어 갔다.

“한집안 일인데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젊은 사람들 일이라 단속하기 쉽지 않으셨겠죠. 어쨌든 제 입장에서는 사직만으로 끝낼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병원 확장 건을 이용해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것도 내부에서 말입니다. 이런 일을 무작정 덮고 지나갈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지요. 그렇게 아시고, 혹 서운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정보를 제공한 사람도 최대한 찾아낼 생각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신 이사장님, 추가 조치라도 취하겠다는 소립니까?)

“구체적인 일은 당사자들과 진상철 교수에게 들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신동석 이사장이 가벼운 손길로 전화를 끊었다. 다소 당황한 것 같은 진평호의 목소리가 울리다 사라졌다.

한동안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전종훈과 악어가 주먹을 꽉 쥔 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진상철 교수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추후 서면으로 통보하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부당 이득을 취한 문제는 정식으로 법적 절차를 밟을 겁니다. 제가 법을 잘 몰라서 배임인지 횡령인지 뭔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죄가 가볍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두 분은 지금 이 시간부로 병원에서 나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진상철 교수가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칫 이번 일이 확대되면 자신만이 아니라 진평호의 계획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어쩌면 손조차 대지 못할지도 몰랐다.

“이사장님, 법적인 처분만은 고려해 주십시오. 제가 금전적인 문제까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신동석 이사장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진상철 교수, 당신이 나설 일이 아닙니다. 정히 저 두 사람을 돕고 싶다면 유능한 변호사나 붙여 주세요. 적당히 넘어갈 생각이 없으니까 상당히 유능해야 할 겁니다. 그럼 모두 나가 보세요.”

너무도 단호한 말이었다. 사안이 경미하지도 않았다. 만일 이번 일로 징역형 이상을 선고받는다면 최악의 경우 면허 취소 사유까지 될 수 있었다. 의사로서의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

사색이 된 전종훈과 악어가 무릎을 꿇었다.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계제가 아니었다.

“이사장님,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취한 이득은 모조리 반환하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아무리 용서를 구한다고 해도 동정할 가치조차 없었다. 평소 의사로서 자신의 일에 충실했고, 동료들에게 큰 신망을 얻고 있었다면 혹시 고민을 했을지도 몰랐다. 그동안 이들이 교수직에 앉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진평호의 비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차가운 눈초리로 전종훈과 악어를 보던 신동석 이사장이 인터폰을 눌렀다.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원하니까 당신들이 가진 욕망을 탓하진 않아. 그걸 조절하지 못했기에 문제가 될 뿐이야.’

“김 비서, 이분들 밖으로 모셔요. 그리고 오늘부로 교수를 그만두시니까 바로 조치를 취하세요.”

“이사장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전종훈과 악어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신동석 이사장이 힐끗 눈길을 주며 나가 보라는 손짓을 했다. 진상철 교수가 부르르 몸을 떨고 말았다. 차갑기만 한 얼굴은 신동석 이사장이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렇게 구차했던 사람들인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신동석 이사장이 휴게실로 들어갔다. 찬바람이 풀풀 날렸다.

“사돈, 잘하셨습니다. 이젠 진평호도 함부로 일을 꾸미지는 못할 겁니다. 물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금경태는 당분간 건드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윤재철과 다시 자리를 한 신동석 이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평호까지 건드린 마당인데 의아한 일이었다.

“외과 센터 문제는 사돈께 일임한 일이지만, 금경태를 더 이상 두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을 월급까지 줘 가면서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사돈, 만일 금경태를 압박해서 건물을 팔게 되면 새로운 사람을 다시 상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월급으로는 이자조차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조금만 밀고 당기면 생각보다 싼 가격에 건물을 확보할 수도 있고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경매까지 벌어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가 그 건물을 안 산다고 하면 헐값에도 살 사람이 없을 겁니다.”

금경태 과장을 아예 알거지로 만들 모양이었다.

신동석 이사장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돈으로서의 윤재철은 더없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사업가로서의 윤재철은 무서울 정도였다.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단 1년 후도 장담할 수 없는 건강 문제, 그리고 윤서연과 신현수가 아니었다면 결코 이런 일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 덕을 보는 사람은 윤재철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미안하기만 했다.

“고맙습니다, 사돈.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처음에는 서연이를 위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병원이 깨끗하게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절 믿고 이런 기회를 주셔서 도리어 제가 감사할 뿐입니다.”

목적과 수단이 정당하다면 훗날 후회할 일은 조금도 없을 것이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던 윤재철이 커피 잔을 잡으며 화제를 돌렸다.

딸자식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사위가 될 신현수가 최고의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토양은 경쟁일 것이다. 그 상대는 외과 센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 전공의이기도 했다.

“혹시 김지훈을 아십니까?”

“김지훈이요? 잘 알고 있습니다.”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앞으로도 눈여겨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에는 물론 현수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신동석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현수가 김지훈을 최고의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기고 싶다는데, 현수도 정말 많이 큰 것 같습니다.”

“허어! 그렇습니까?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런 말을 다 하다니 믿음직하시겠습니다.”

윤재철과 신동석 이사장이 모처럼 크게 웃었다. 건강하게 커 가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이었다.

‘김지훈이라. 사람 보는 눈이 누구보다도 매서운 사돈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단 말이지? 현수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겠어. 둘 다 서로를 의식하지 말고 최고의 의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군.’

김지훈의 존재가 또 한 번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

일과가 모두 끝났다.

전종훈 교수의 일로 전공의들도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안만 보면 의료 과실이 맞았다. 하지만 수술 당시와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사고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치프들만 남자 이경석이 혀를 차며 말했다.

“후우! 지훈아, 같은 과 사람들은 사고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어떻게 치료했는지 보지도 못한 사람들은 과실이라고 하는 게 웃기지 않아? 입장이 바뀌어야 하는 게 맞는 일인데 말이야. 어떻게 보면 전종훈 교수도 참 인생이 불쌍하다. 앞으로 우리 과 누가 그 사람을 따르겠어?”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이런 일이 또 벌어지면 안 되지만, 만일 다른 선생님이 불가피하게 똑같은 일을 당하셨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겠죠. 평소에라도 좀 잘하지.”

“그러게 말이다. 그나저나 앞으로 얼굴을 어떻게 보냐?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던데,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쩌면 아버지가 이사장이기에 가장 속상할지도 몰랐다. 더 이상 왈가왈부해야 입장만 곤란해질 뿐이었다.

김지훈이 딱딱 손뼉을 치며 일어섰다.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형. 우린 그냥 해야 할 일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 니 말이 맞다. 밥 얘기 하니까 배고프다. 가자. 현수야, 넌 어떻게 할래?”

“형, 오프인 놈한테 무슨 밥을 먹자고 그래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현수가 입맛을 다시며 일어섰다.

“오프 갈 기분 아니다. 밥이나 같이 먹자.”

은근히 머쓱해진 김지훈이 피식 웃으며 신현수의 어깨를 툭 쳤다. 힐끗 돌아보며 피식 웃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의국을 나오자 일이 년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우르르 따라붙었다.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한 이경석이 복도로 들어섰다. 총치프가 가는 길이다. 의국원은 당연히 그 뒤를 따라야 한다.

2층 복도를 막 지날 때였다. 외래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내밀었던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이경석을 불렀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렸다. 병원 직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전종훈 교수의 진료실에서 짐을 옮기고 있었다.

“형, 전종훈 교수 진료실 아니에요?”

“맞는 것 같은데, 지금 저 사람들 뭐 하고 있는 거야?”

진료 안내판에 적혀 있던 전종훈이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진료실 문에 걸려 있던 명패도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일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신현수를 보았다. 신현수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김지훈의 눈짓에 서도진과 안호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직원들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짐을 왜 옮기시는 거죠?”

“전종훈 교수님이 오늘부로 그만두신답니다.”

다들 깜짝 놀랐다.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일이었다. 오늘 오후까지도 눈총을 받을 정도로 멀쩡하게 행동했던 사람이 그만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형,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도 모르겠다. 그새 또 무슨 일이 있었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지만, 전공의들끼리 머리를 맞댄다고 답이 나올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땐 일석이가 정말 아쉽네. 에이! 골치 아파. 내일 아침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일단 밥이나 먹죠.”

사실 모두들 전종훈 교수가 책임을 지기를 바랐고, 그동안 병원을 그만두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닥치자 찜찜하기만 했다. 아마도 같은 과 교수이자 선배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정갑수 때도 그러더니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네. 이유가 어찌 됐든 같은 과라는 사실이 이럴 땐 참 안 좋아.’

김지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응급실에 들렀다.

간호사가 얼굴을 보자마자 쪼르르 달려왔다. 환자가 있는 줄 안 이경석이 흠칫 놀랐다. 당직이 아니더라도 식사 때는 환영할 수가 없었다. 슬쩍 이경석을 째려본 간호사가 교수 당직실을 가리켰다.

“이준영 선생님께서 치프 선생님들 찾으세요. 빨리 들어가 보세요.”

당직실에 들어서자 송동화 과장과 나직한 대화를 나누던 이준영 교수가 천천히 일어났다.

“식사는 조금 있다가 하고, 치프들은 나 따라와.”

역시나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이 밤에 도대체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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