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과실과 사고 (1)
노윤미 환자가 보호자들과 함께 금경태 과장을 찾았다.
몸 상태는 한결 좋아졌고, 수술한 자리도 거의 아프지 않았다. 저녁 회진 때 곧 퇴원할 수 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담당 교수도 아닌 과장과 면담을 해야 한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아빠, 무슨 일일까요?”
“글쎄다. 네가 수술을 다시 한 것 때문에 만나자고 하는지도 몰라. 안 그래도 처음에 수술한 의사가 코빼기도 안 보여 화가 나긴 해. 이번 선생님들이 워낙 친절하고 꼼꼼하게 치료해 주셔서 참았지, 안 그랬으면 아빠가 벌써 쫓아갔을 거야. 들어가 보자.”
솔직히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들었다. 하지만 애초에 수술을 잘했으면 배에 두 번 칼을 대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집도 안 갔는데 아뻬 수술 자국도 모자라 세 군데나 흉이 더 생겼다. 작다고 해도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노윤미 환자와 보호자가 흠칫 놀랐다. 5명이나 되는 의사가 자신들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금경태 과장이 자리를 권했다.
“안녕하십니까? 금경태 과장입니다. 의아하시겠지만 드릴 말씀이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앉으시죠.”
노윤미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금경태 과장 뒤로 힐끗 눈길을 주었다. 전종훈 교수와 송재덕 교수가 있었다. 다소 긴장된 얼굴을 한 김지훈도 보였다.
나머지 한 명은 가끔 보기는 했지만 정확히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이혁민 교수였다.
금경태 과장이 나직한 한숨을 내뱉으며 눈가를 찌푸렸다.
‘후우! 전종훈 때문에 별일을 다 겪네. 제길! 진평호만 아니었으면 한마디만 하고 빠지면 되는데, 이게 무슨 창피야? 쯧! 김지훈, 저놈은 또 왜 데리고 들어온 거야?’
과장으로서 응당 먼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런 일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솔직히 눈곱만치도 나서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송재덕 교수와 이혁민 교수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신이나 전종훈 교수가 제대로 처신하지 않으면 그냥 두고 볼 인간들이 아니었다.
어쨌든 대책 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환자와 합의를 봐야 유리하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었다. 그래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진평호 앞에서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생각과는 달리 말투는 정중했다.
“환자분, 몸은 어떠십니까?”
“괜찮은데요.”
“다행입니다. 같이 오신 분들은 부모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런 자리를.”
노윤미의 아버지인 노상훈이 불안해하는 딸의 손을 잡았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수술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첫 수술에서 조금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문제가 일찍 발견됐고 수술도 잘돼서 마음이 놓입니다만, 환자분과 보호자분들에게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상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지금부터는 전종훈 교수가 말씀드릴 겁니다.”
금경태 과장이 전종훈 교수를 보았다. 먼저 말문을 터 주었으면 지금부터는 문제를 만든 사람의 몫이었다. 그것이 집도를 한 의사의 책임이기도 했지만, 사실 껄끄러운 일에 계속 나설 마음이 없었다. 이런 자리를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씨펄! 뭐라고 하지? 난리치는 거 아냐?’
전종훈 교수가 눈가에 주름을 만든 채 노윤미와 노상훈 앞에 앉았다. 콧등을 찡그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송재덕 교수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못마땅한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전종훈 교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기분이 더 안 좋아. 아주 더럽다고. 내일까지 소명하라고만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급하게 환자를 만날 일도 없잖아. 당신들만 가만히 있었으면 실수로 끝날 일이었어. 최악이라고 해도 돈 몇 푼 쥐여 주고 끝낼 일인데, 지금은 도대체 얼마를 말해야 할지도 모르잖아. 제길! 지들은 실수 안 하나?’
“맨 처음 맹장 수술을 할 때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한 가지 실수가 있었습니다. 배 속에… 후우!”
노상훈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배 속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실수라니, 무슨 말입니까?”
“배 속의 고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거즈 한 장이 남았는데,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뭐요? 거즈가 남아서 다시 수술을 했다고요?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당신 실수 때문에 우리 딸이 수술을 두 번 받았다, 이 말입니까?”
노상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송재덕하고 이혁민만 안 들어왔으면 대충 설명하고, 돈으로 해결하면 되는 일이었잖아.’
얼굴이 시뻘게진 전종훈이 이를 악물었다.
“최선을 다했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수술을 할 때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기 때문에 때론 그 와중에 실수가 나오기도 합니다. 저도 유감입니다.”
“후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후!”
노윤미는 물론 노상훈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것이다. 불만은 있었지만 의사의 실수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자신들이 의문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실수를 한 의사가 먼저 말했다.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함을 넘어 어이없다는 생각까지 든 것이다.
“저도 이런 일이 생겨 당황스럽습니다. 대학 병원이라 아직은 조금 미숙한 의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누가 실수를 했든 간에 제가 수술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바로 돈 이야기를 꺼낼 모양이었다.
그때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흔들며 일어났다. 얼굴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이 정도까지 일이 진행됐으면 지금이라도 진정을 담아 사과할 줄 알았는데, 넌 틀렸다. 미숙한 의사라고? 모자란 놈. 지훈이에게 이런 모습을 더 보일 수는 없겠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제가 일이 있어서 이젠 가 봐야 될 것 같습니다. 환자분, 보호자분, 일단 말씀 나누시고 이따 병실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지훈아, 가자.”
슬쩍 이혁민 교수에게 눈길을 준 송재덕 교수가 밖으로 나갔다. 김지훈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 진정으로 사과를 하기보다는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빠져나가려는 모습에 답답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집도를 했다면 설혹 다른 사람이 실수를 했다고 해도 먼저 책임을 지겠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송재덕 교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사고든 과실이든 간에 일이 터졌다. 며칠 안에 퇴원하겠지만, 그때까지 1년차 대신 김지훈이 직접 환자를 보게 하는 것이 타당한 조치였다. 또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환자나 보호자와 대화가 통할 것이다. 그래서 자리를 함께했는데 역효과만 났다.
“지훈아, 너도 전종훈이 어떻게 하는지 봤으니까 환자에게 신경을 더 써야 한다. 사과를 하려면 마음을 담아야지. 어떤 수술이든 마지막 책임은 집도의가 져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마.”
여전히 본래의 말투는 사라진 채였다. 어쩌면 지금 모습이 송재덕 교수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왠지 더욱 가슴이 답답해졌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노윤미와 가족들이 병실로 돌아왔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 노상훈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뭐? 200만 원이면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고? 사과부터 진솔하게 해야지,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나.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야? 내 당신 가만히 안 둔다.’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송재덕 교수와 김지훈이었다.
“아버님, 밤이 늦었는데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피곤하시면 내일 뵙겠습니다.”
전종훈 교수의 무례한 태도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가운을 입은 사람이라면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 피곤해하던 노윤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들어오세요. 죄송한데,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뭐가 궁금하시죠? 말씀하세요.”
“그냥 지나갔으면 우리는 절대 몰랐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이에요? 사실 전종훈 선생님 생각은 아닐 것 같아서요.”
노상훈의 얼굴을 보니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노윤미는 이 상황에서도 전종훈 교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김지훈이 송재덕 교수를 보았다. 역시 표정이 좋지 못했다.
“환자분, 누구 생각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제일 걱정하는 건 환자분이 무사히 회복돼서 퇴원하는 것이고, 마음까지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마음이 좋지는 못해요. 하지만 선생님들 덕분에 빨리 수술을 받았고, 이유까지 알게 돼서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아요. 어쩐지 선생님들 아니었으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윤미의 말에 노상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딸의 말이 맞았다. 무례한 말과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흥분만 했다. 왜 전종훈 교수가 먼저 자신의 잘못을 꺼내게 됐는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 이분들 덕이네. 두 번째 수술을 받은 후에도 얼굴조차 내밀지 않은 전종훈이 먼저 말을 꺼낼 리가 없지. 그랬으면 오늘도 그런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을 거야.’
모두 한통속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노상훈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다른 게 뭐 있겠습니까? 죄송할 뿐입니다. 제가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버님과 상의하고 싶습니다.”
송재덕 교수가 노상훈과 함께 의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슬쩍 눈치를 본 김지훈이 병실에 남았다. 노윤미 환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환자분, 죄송합니다.”
노윤미가 눈만 깜빡거렸다. 무슨 말이라도 더 나와야 할 분위기인데, 김지훈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수술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표정이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아까 낮에는 이경석 선생님인가요? 그 선생님하고 신현수 선생님이 함께 오셔서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선생님까지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미안하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신현수와 이경석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사과하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모든 책임은 전종훈 교수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왠지 마음이 편해진 김지훈이 조금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과에서 잘못한 일이고, 저번에 입원하셨을 때 중간에 제가 봤잖아요. 그때 더 신경을 써서 환자분 상태를 알아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네요. 사실 우리도 굉장히 마음에 걸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노윤미가 웃기만 했다. 그럴수록 김지훈은 더 미안하기만 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한동안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솔직하게 마음을 전했다.
“선생님,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처음에 수술할 때 이미 자국이 크게 났는데, 몇 개 더 생겼다고 차이가 있나요? 조그마해서 괜찮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어머! 계속 그러실 거예요? 그러면 제가 죄송해져요.”
도리어 환자에게 위로를 받는 꼴이었다.
김지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역시 정직한 것이 최선이었다. 노상훈이 돌아오고 나서는 그 생각이 확신으로 변했다.
“선생님, 피곤하실 텐데 어서 쉬시죠.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종훈 교수는 마음에 안 들지만, 선생님 같은 분들 때문에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한 모양입니다. 고맙습니다.”
딸에게 생긴 문제였다. 지금도 마음은 찢어지겠지만 웃고 있었다. 아마도 송재덕 교수의 진심 어린 사과 때문일 것이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입원해 계시는 동안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김지훈이 꾸벅 허리를 숙이자 노상훈도 허리를 굽혔다. 노윤미는 병실 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웃었다. 환자와 가족들의 이해심과 따뜻한 마음에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난 이분들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노상훈의 말대로 살 만한 세상이었다.
한결 나아진 마음에 미소를 짓던 김지훈이 후다닥 달려갔다. 송재덕 교수가 막 의국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경석과 신현수가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다들 들어가. 니들 잘못 아니다. 내일 보자.”
송재덕 교수는 아직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까지 편치 않았고, 한숨 소리만 들렸다.
전종훈 교수는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그랬다. 밤늦도록 금경태 과장과 함께 대책 위원회에 참석하는 교수들과 접촉하느라 피곤한 모양이었다.
***
다음 날 예정대로 오후 대책 위원회가 열렸다.
신상민 원장이 직접 주관을 했다.
금경태 과장을 비롯해 주요 보직을 가진 의사들이 모두 모였다. 두 번째 수술을 한 송재덕 교수는 물론 이혁민 교수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첫 수술에 참여했던 성미경 간호사와 마취과 간호사, 그리고 이경석까지 줄줄이 불려 갔다. 신상민 원장이 특유의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질문을 시작했다.
“수술이 다 끝나기 전에 간호사들이 거즈 카운트가 안 맞는다고 확실하게 말했고, 자네도 들었다 이거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거즈를 찾지 못한 이유가 뭐지? 무조건 찾았어야 하는 일 아니야?”
이경석이 고개만 숙인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교수였다. 전공의가 가진 한계와 벽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말하기 곤란해? 자네가 퍼스트를 섰기 때문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어.”
“죄송합니다.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습니다.”
이경석에 이어 신현수가 호출됐다.
“입원 중에 초음파를 하자고 한 이유가 뭐였나?”
“거즈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안 했어?”
“전종훈 교수님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럼 자네 책임은 없다는 소리야?”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퇴원할 때 확인도 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누구한테 죄송하다는 말이야?”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교수님들에게 죄송하기도 하지만, 환자분에게는 더욱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상민 교수가 안경 너머로 힐끗 신현수를 보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돌아서는 신현수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송 교수와 이 교수가 전공의들을 잘 키웠네. 준영이가 꽤 공을 들인다고 들었는데, 김지훈은 뭐라고 할까?’
전공의 중에는 마지막으로 김지훈이 불려 갔다. 이경석과 신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보아도 이번 일과는 상관이 없었다. 도리어 김지훈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거즈를 제거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수술을 할 때 나온 것이 거즈가 맞아?”
“예. 맞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김지훈 선생, 한 가지만 묻자.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해? 거즈를 남기고 나온 것이 사고야?”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솔직히 과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이 과실을 사고로 만들었다. 전종훈 교수가 자초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고냐, 과실이냐는 전공의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었다.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도 중간에 환자를 봤었기 때문에 환자분과 가족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신상민 원장이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전공의들이 모두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다면 일반 외과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준영이를 스승이라고 부른다고 했나? 제자로 삼을 만하네.’
“알았네. 가 봐.”
회의실에서 나오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까지 부를 일이 아니었다. 특별한 질문도 없었고, 두 번째 수술에 대한 일은 송재덕 교수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다.
‘날 왜 부르셨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걸음을 옮기다 말고 깜짝 놀랐다. 복도 끝에 이준영 교수가 떡하니 서 있었다. 김지훈이 급히 달려갔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안에서 무슨 말이 오갔어?”
지금까지 이번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이준영 교수였다. 워낙 말이 없는 탓이라 생각했다.
김지훈이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신상민 원장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말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던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마디 했다.
“커피나 한잔하자.”
간만에 스승과 단둘이 커피를 마셨다. 캔 커피 하나를 다 마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일어섰다.
“지훈아, 잘했다.”
뚜벅뚜벅.
스승의 발소리를 듣던 김지훈이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동안 말은 없지만 항상 자신을 지켜보며 믿음을 주는 스승의 마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진하게 느껴졌다.
김지훈이 스승의 뒷모습과 커피를 번갈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