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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466화 (466/1,329)

제10화 집도의의 책임 Ⅱ (2)

그 시간, 금경태 과장과 정한득이 전화기를 앞에 두고 심각한 고민에 잠겨 있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계약을 진행하고 있는 거지? 신동석 주변에 그런 놈이 있었나?’

지난 일주일간 건물주와 줄다리기만 했다.

맨 처음 세무조사 무마를 조건으로 80억을 제시하며 약간의 실랑이 정도는 예상했다. 그런데 건물주의 반응이 의외였다. 누군가 95억을 제시한 것이다. 자신들처럼 신동석 이사장도 대리인을 내세운 것으로 여겼다.

세무조사로 얻는 이득이 10억을 상회했지만 경쟁이 붙은 이상 액수를 다시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민 끝에 95억을 불렀다.

단번에 15억 이상을 올리면 건물주도 순순히 계약을 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마치 정보가 새기라도 한 것처럼 상대는 무려 110억을 제시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여기서 액수가 더 올라간다면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백제 병원을 인수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신동석 이사장은 150억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손을 떼면 가슴은 쓰릴 테지만 손해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금경태 과장과 정한득은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협상을 이어 가다 마침내 오늘 최종 조건을 제시했다.

건물 인수 대금 : 110억

세무조사 무마

만일 다른 사람과 계약을 하면 일선 세무서가 아닌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은근한 협박도 곁들였다.

건물주가 바보가 아니라면 얼마가 추징될지 모르는 국세청 세무조사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세무서 직원이 한 차례 연락을 했으니 엄포로만 여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금 과장, 외과 센터에 대한 정보는 확실한 거지?”

“병원 말고는 다른 용도로 쓰기 힘든 건물을 사려는 놈이 누구겠어? 이미 제반 준비까지 모두 진행되고 있어. 게다가 신동석은 어떻게든 신현수에게 병원을 물려줄 생각이야. 외과 센터만큼 확실한 발판도 없지.”

“그 정도면 확실하긴 한데, 110억은 너무 커.”

“정 국장, 자네가 인수를 포기한다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어. 하지만 길어야 두세 달이야. 그럼 각자 20억이 떨어져. 포기할 수 있겠어? 자네도 더 크려면 상당한 돈이 필요하잖아?”

일개 대학 병원 과장과 중앙 부처 국장에게 110억은 어마어마한 돈이다. 일이 잘되면 돈벼락을 맞겠지만, 잘못되면 쪽박을 차는 정도가 아니었다. 사실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금경태 과장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금 과장, 건물주가 어떻게 나올 것 같아?”

“국세청이 먹힌다면 신동석이 150억을 불러도 우리와 계약을 하지 않겠어? 어차피 그놈도 구린 구석이 많으니까 무시하지는 못할 거야. 이득보다 세금을 더 뜯길 수도 있잖아.”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정적을 찢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금경태 과장이 정한득을 보았다.

“정 국장, 건물주가 우리 조건에 동의를 했어. 계약금은 10억이야.”

주말까지 건물주와 협상을 한 덕인지 신동석 이사장도 미처 손을 쓰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제 도장을 찍으라는 말만 하면 끝이다.

그러나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10억은 곧 110억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거금을 걸고 도박을 하는지도 몰랐다.

‘20억, 20억이야.’

길게 숨을 내쉰 정한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한 사람의 최종 결정만 남았다. 한동안 말이 없던 금경태 과장이 눈빛을 굳혔다.

“도장 찍어. 내일 아침에 전에 알려 준 이름으로 송금한다고 해. 착오 없게 확실히 처리해.”

전화를 끊은 금경태 과장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슴속 가득한 불안감을 두세 달 후에 손에 쥘 20억이란 돈으로 달랬다. 돈이 몰고 온 유혹은 무시무시했다.

***

다음 날 아침 회진 분위기가 무거웠다.

노윤미 환자의 상태는 무척 좋았다. 통증도 거의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송재덕 과장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다른 교수들도 대충 얘기를 들었는지 조용히 회진을 끝냈다.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다.

신현수에게 노티를 받은 전종훈 교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지훈하고 이경석, 의국으로 들어오라고 해.”

치프 3명이 나란히 앉았다.

“김지훈, 확실히 거즈가 나왔어?”

“예. 나왔습니다.”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나한테 먼저 연락을 했어야 할 거 아냐? 너 지금 나 엿 먹으라는 거지?”

말이 참 쌍스럽다.

“계속 연락을 드렸습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서는 연락을 했다고? 이 새끼가 지금 뭐하자는 거야? 거즈는 어디 있어? 그리고 아는 사람이 누군지 모조리 말해.”

있는 그대로 다 얘기했다.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전종훈 교수가 이를 갈았다. 거즈가 나왔다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씨펄! 나한테 노티만 먼저 했어도 별문제 없이 넘어갈 일이었잖아. 이것들이 아주 사람 하나 병신 만들려고 작정을 했네. 니들 다 각오해. 에이! 이 자식들은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네.”

전종훈 교수가 버럭버럭 성질을 내며 의국을 나갔다.

김지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석이 형, 지금 별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다고 한 거 맞지? 그게 말이 돼?”

“저 인간 정말 대단하네. 어제 연락돼서 수술했으면 거즈 없애 버리고 시치미 뚝 떼고도 남을 인간이다. 우리나 간호사는 힘으로 누르고 말이야.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나대지? 믿는 구석이 있는 거야, 아니면 생각이란 게 아예 없는 거야. 현수야, 이럴 땐 니가 좀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

신현수가 답답한 한숨만 내쉬었다. 한때 가장 믿고 의지했던 금경태 과장이 모든 일의 근원이었다. 그깟 라인이 뭐기에 전종훈 교수와 구미의 강기웅 과장을 추천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야심과 욕심이 마구 뒤섞인 탓일 것이다.

수술실 분위기도 말이 아니었다. 항상 활기차고, 때론 즐거움까지 넘쳤던 수술실에 찬바람만 불었다.

금경태 과장은 무슨 일이 있는지 예정됐던 수술까지 미룬 채 아직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경석아, 노윤미 환자 아뻬 수술할 때 들어왔던 사람들 다 불러. 내가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해.”

수술이 끝난 뒤에도 송재덕 과장이 한동안 수술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전종훈 교수가 수시로 들어와 찾았지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치프들이 차례차례 의국 일을 관리하는 책임을 가진 이혁민 교수와 면담을 했다. 각자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솔직하게 말을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 일과가 거의 마무리됐다.

오후 회진을 끝낸 교수들이 하나둘 의국으로 들어갔다. 치프들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참 동안 얼굴을 맞댔던 금경태 과장과 전종훈 교수가 들어갔다.

스테이션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몇몇 교수들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제대로 짚고 넘어갈 모양이었다.

수술 중에 이경석의 말을 존중했다면.

입원 중에 최선을 다해 환자를 봤다면.

지금이라도 실수를 인정하고 사죄를 한다면.

무수한 기회가 있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에 보았던 전종훈 교수의 태도와 방금 전 의국에 들어갈 때 보인 얼굴은 그런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었다.

답답한 일이었다.

‘원칙만 지키면 설혹 실수를 했다고 해도 어디선가는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왜 그걸 모를까?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운 걸까?’

누구나 두려워하는 일이지만,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솔하게 행동하면 사회는 관용을 베푼다. 하기에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자를 중심으로 삥 둘러앉은 교수들이 묵묵히 자리만 지켰다. 금경태 과장은 눈가를 잔뜩 찌푸린 채였고, 전종훈 교수는 실눈을 한 채 교수들의 눈치만 보았다.

이혁민 교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왜 모였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피와 체액이 엉겨 붙은 한 장의 거즈가 담겨 있었다.

전종훈 교수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씨펄! 저걸 왜 이혁민이 갖고 있는 거야? 송재덕이 더 상대하기 쉬울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이야?’

“전 교수, 이번 일을 책임져야겠어.”

“예, 선생님.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습니다. 다만 고의가 아니고, 사실 수술 방에서 원활한 협조만 이루어졌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첫마디부터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잠자코 듣고만 있던 송재덕 교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준영 교수도 눈가를 찌푸리고 말았다.

“원활한 협조? 그게 무슨 말이야?”

“애초에 배를 닫기 전에 거즈 카운트를 미리 했거나, 퍼스트가 제대로 도와줬다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환자를 위한다고 배를 적게 연 탓에 더글러스 포치까지 확실하게 확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점은 제가 좀 실수를 했습니다.”

“간호사와 퍼스트가 잘못했다 이거야? 그럼 입원 중에 검사하자는 말은 왜 무시했나?”

전종훈 교수가 헛기침을 했다.

“초음파 말씀이시군요? 별다른 증상이 없었던 데다 심지를 뽑고 나서도 특별한 변동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검사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유가 없다? 그래. 집도의의 판단을 두고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전 교수 말대로 책임은 져야겠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지금부터가 핵심이었다. 아무리 시작이 그럴듯해도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전종훈 교수가 지그시 이를 물었다.

‘제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간단한 방법이 있잖아?’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혁민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우리한테 물어보는 거야? 과 차원에서 책임져야 할 일은 신경 쓰지 마. 전 교수가 어떻게 책임질 생각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나?”

전종훈 교수가 슬그머니 교수들의 눈치를 살폈다. 금경태 과장은 당연히 일을 키우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자신을 싫어하는 교수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으레 교수들이 그렇듯, 결국은 과의 체면을 중시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평판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송재덕 교수가 마음에 걸렸지만 병원장까지 한 사람이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더욱 체면에 민감하고, 안 좋은 일은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기 마련이었다.

‘그래. 내게 좋으면 당신들한테도 좋은 거야. 거즈까지 제거한 마당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씨펄! 더러워도 당분간 조용히 지내야겠네.’

“제 문제도 문제지만, 먼저 과의 입장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소문나면 좋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야?”

전종훈 교수가 잠시 뜸을 들였다. 금경태 과장은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환자에게 비밀만 유지한다면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수술 방과 우리 과 입단속은 같은 의사들이니까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런 일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다면 다른 과 앞에서 교수님들도 얼굴을 들기 힘드시지 않습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회의를 주관하는 이혁민 교수는 물론 송재덕 교수가 듣고자 하는 말은 이게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가 더 이상 듣기 힘든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가슴에 불길이 확 치솟은 신기동 교수가 먼저 치고 나왔다.

“전종훈, 환자는 어디 갔어? 사고를 내고도 네가 수술한 환자는 안중에도 없어?”

사고라는 말에 전종훈 교수가 발끈했다.

“사고라니요? 이건 실수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내가 싫다고 해도 단순한 실수를 사고라고 하면 나보고 지금 형사처벌이라도 받으라는 겁니까? 말이 심하십니다.”

“실수? 과실? 수술실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네 행동은 과실이 아니라 사고야.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모두 무시한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런데 그따위 말이 나와? 최소한 환자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사죄부터 한다는 말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냐?”

“요새 환자들이 어떤지 모르십니까? 돈이 될 것 같으면 악다구니를 쓰는 게 환잡니다. 그런데 이까짓 거즈 문제 하나로 그런 일을 벌이라는 겁니까?”

점입가경이다. 애초부터 환자에게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못하겠다 이거야?”

“못합니다. 만일 이 문제를 사고로 밀어붙이면 저도 가만히 안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공의들은 무사할 것 같습니까? 형식이든 뭐든 주치의는 제가 아닙니다. 신현수만이 아니라 수술에 들어온 이경석과 김지훈도 모조리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급기야 전공의까지 물고 늘어졌다. 금경태 과장이 눈을 부릅뜨며 전종훈을 보았다.

‘절대로 전공의 탓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저 자식 지금 뭐라는 거야? 신현수 때문만이 아니야.’

절대 내뱉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막아야 했다.

그 순간 송재덕 과장이 번쩍 눈을 떴다.

“야야야!”

난데없는 고함 소리에 화들짝 놀란 전종훈 교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종훈, 넌 이제부터 교수 아니다. 의사도 아니야. 어디서 자식을 팔아먹어? 이 교수, 신 교수, 이런 놈은 상대할 가치도 없어. 짐승이야, 짐승.”

버럭 소리를 지른 송재덕 교수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느새 거즈가 담긴 통이 손에 들려 있었다. 줄줄이 교수들이 뒤를 따랐다. 오상익 교수는 물론 구영선 교수까지 고개를 흔들며 의국을 나갔다. 옹호를 하고 싶어도 변명과 핑계로 일관하는 모습에는 어떤 도리도 없었다.

금경태 과장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건물 계약 건으로 신경이 곤두선 참이었다. 오늘 아침 10억이라는 거액을 보내고 나서는 불안감에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전종훈 교수가 사고를 쳤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일단 잘못했다고 하고 머리를 숙이라니까,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저렇게 앞뒤 못 가리는 놈을 진평호는 왜 이렇게 감싸는 거야? 제길! 가뜩이나 골치 아파 죽겠는데 이런 일까지 터지다니.’

결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다.

평소 허허! 웃기만 하지만, 일단 화가 나면 송재덕 교수는 확실하게 끝을 보는 사람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아마도 자식이라고 부르는 전공의들뿐일 것이다.

백제 병원 일까지 걸린 이상 진평호의 눈 밖에 벗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는 일이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주무르며 부리나케 외래로 달려간 금경태 과장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송재덕 교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전종훈이 이를 갈고 있었다. 다급해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화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전종훈, 무조건 고개 숙이라고 했지? 전공의 탓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한 말 잊었어?”

“과장님, 사고라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누구 인생 망치는 꼴 보고 싶으세요? 그리고 짐승이 뭡니까! 짐승이! 녹음이라도 했어야 하는 건데.”

끝까지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래도 겁은 나는지 늦은 밤까지 대책을 세우느라 동분서주했다. 욕은 먹었지만 진상철 교수까지 만나 대충 상황을 정리했다.

“쯧쯧! 제대로 좀 하자. 곧 병원이 내 손에 들어오는데 널 믿고 어떻게 운영하겠어? 일단 환자 만나서 입막음부터 해. 돈 아까워하지 말고.”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그렇게 믿었다. 세상이 그렇기도 했다.

얼마를 주어야 할지 고민만 했다. 환자가 문제를 삼지 않는다면 송재덕 교수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또 다른 면이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 날 오후, 전종훈 교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한 장의 공문을 들고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금번 사고에 대해 내일까지 소명할 것.

의료사고 대책 위원회>

병원장인 신상민 교수의 직인이 선명했다.

‘사고? 사고라니? 이건 실수에 불과해.’

불과 하루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순간 두려움에 질린 전종훈이 그대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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