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65화 (465/1,329)

제10화 집도의의 책임 Ⅱ (1)

경계가 불분명하고, 내부가 지저분한 종물이 보였다. 염증성 낭종인지, 거즈와 체액이 섞여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도진아, 어떻게 보여? 혹시 거즈처럼 보여?”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하여튼 염증 소견이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다행히 사이즈가 크질 않으니까 이삼일 항생제 쓰면서 지켜보면 안 될까요?”

낭종이 확실하다면 적절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거즈라면 항생제를 쓴다고 해도 호전되지 않거나, 좋아진다고 해도 미봉책일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또 병원을 찾을 것이고, 그때는 더 나쁜 상황에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혼자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간호사, 전종훈 교수님 연결해 주세요.”

“네. 그런데 진단명이 뭐예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김지훈 입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었다. 복부 CT를 보며 서도진과 한참 동안 상의를 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기를 들었다. 역시 연결이 되질 않았다. 보호자의 채근에 양해를 구하고 몇 번 더 연락했지만 신호음만 울렸다.

난감한 일이었다.

‘일단 항생제 쓰고 입원을 시킬까?’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환자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미열이 고열로 바뀌었다. 복부 통증도 다소 심해졌다. 증상이 심해졌다고 해도 염증성 낭종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일단 보존 치료를 시도하겠지만 지금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전종훈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금까지 족히 열 번은 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할 만큼 다 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뺏길 수는 없었다.

송재덕 교수에게 연락을 했다. 단박에 연결이 됐다.

“김지훈입니다, 선생님. 24세 여자 환자로 열흘 전 아뻬 빤뻬리로 수술받은 환잡니다. 수술 후 발생한 염증성 낭종으로 내원했습니다.”

(그래? 사이즈가 큰 모양이구나. 수술해야 되니? 지금 나갈게. 기다려. 간다.)

송재덕 교수는 손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혹시 몰라 수술에 필요한 오더를 내고 준비하는 사이 벌써 도착했다. 누구나 쉬고 싶어 하는 일요일 밤에 불려 나왔지만 넉넉한 동네 아저씨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훈아, 치프야, 어디 보자. 환자 어디 있니? 환자.”

찬찬히 환자를 진찰한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부 CT를 확인한 후에는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치프야, 지훈아, 수술해야 하니?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일단 항생제 쓰고 보자. 이런 경우 90퍼센트는 좋아진다. 좋아져. 그 정도는 너도 알잖아? 응? 근데 전 교수가 수술한 환자를 왜 나한테 연락했니?”

의아해한 이유는 다름 아닌 김지훈 때문이었다.

노티를 했다는 것은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민데 그럴 단계가 아니었다. 이 정도 질환을 두고 실수하거나, 대충 환자를 볼 김지훈이 아니기에 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전종훈 교수가 수술한 환자였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했다.

“선생님, 단순한 염증성 낭종이라면 보존 치료부터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노티했어? 불안한 거라도 있니?”

김지훈의 목소리가 극도로 낮아졌다.

“예. 사실은 이 환자 수술 중에 거즈 한 장이 사라졌습니다. 끝까지 못 찾은 상태에서 수술을 끝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지저분하게 보이는 부분이 거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어서 노티 드렸습니다.”

“뭐? 거즈? 거즈 한 장이 없어졌다고?”

깜짝 놀란 송재덕 교수가 전에 없이 긴장된 표정으로 CT를 보았다. 눈가를 비비며 바짝 다가선 채 한참 동안 병변 부위를 확인하고는 다시 환자를 진찰했다.

미열을 넘어선 열과 점점 심해지는 복통.

만일 오염된 거즈가 원인이라면 결코 지켜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송재덕 교수 역시 CT와 증상만으로는 원인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더구나 수술을 한다면 아랫배 정중앙을 크게 열어야 한다.

상당한 부담이었다.

“지훈아, 이런 일은 집도의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해. 전 교수에게 연락해야 할 것 같다. 연락했니?”

“예. 계속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안 됩니다.”

“그렇구나. 하긴 당직도 아닌데 쉬어야지. 그렇구나. 근데 이게 단순 낭종이면 어떻게 하지? 배 크게 열어야 하는데 큰일이다, 큰일. 잘못하면 엉뚱한 수술해서 환자만 힘들어지잖아. 그치? 내 말이 맞지? 어떻게 하지?”

환자에게 최소한의 부담을 주고 배 속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이미 경험을 했고, 송재덕 교수도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아직 국내에서 시행한 보고는 없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라파로로 탈장 수술까지 시행하고 있었다. 그때 접근해야 하는 부위가 바로 더글러스 포치였다.

‘스승님께 연락을 드려야 하겠지? 죄송한 일이지만, 환자를 위한 일인데 망설일 수는 없잖아.’

“선생님, 라파로로 더글러스 포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준영 선생님께 연락드릴까요?”

“그래? 그게 가능하니? 가능해? 그렇구나. 되는구나. 근데 말이야. 진단도 불확실하고, 일요일인데 연락해도 될까? 뭐하니? 빨리 연락하자, 연락. 시간 없다.”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반색을 하는 송재덕 교수였다.

바로 연락을 했다. 별다른 질문도 없이 30분 내에 도착한다는 답을 받았다.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김지훈의 소매를 잡고는 교수 당직실로 향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결국 이경석까지 내려와 자세히 설명을 했다.

다들 심각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거즈라. 거즈란 말이지. 아니겠지. 그러면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하자. 그치? 지훈아, 치프야, 경석아, 내 말이 맞지?”

김지훈과 이경석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퇴원 전에 강력하게 주장해 어떤 방법을 써서든 확인했어야 할 일이었다. 같은 파트 환자가 아니라고, 전종훈 교수와 충돌하기 싫다고 일부러 외면했는지도 몰랐다.

곧 이준영 교수가 도착했다. 다시 환자를 진찰하고, CT를 확인했다. 서도진까지 5명이나 되는 의사들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자 환자와 보호자가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술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나고, 원인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설명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머리를 맞댔다. 최소한 확인은 해야 한다는 결정이 났다. 전종훈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지만 통화음만 들렸다. 결국 송재덕 교수가 보호자를 만나 설명을 했다.

“보호자분, 지금 배 속에 물주머니가 생겼습니다. 죄송하지만, 수술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문제네요. 게다가 열이 많이 나고, 증상도 점점 심해져서 다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환자에게 설명을 할 때는 말투가 완전히 바뀌는 송재덕 교수였다.

“수술을 꼭 해야 하나요?”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거즈를 언급할 수는 없었다. 답답한 한숨을 터트린 송재덕 교수가 애써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만, 그래야 합니다. 단, 다행인 것은 복강경으로 하면 조그만 상처만 내고도 수술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우리를 믿으시고 맡겨 주세요. 환자를 위한 일입니다.”

“그럼 선생님 앞으로 입원하게 되나요?”

난데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송재덕 교수가 쓴웃음을 내뱉었다. 보호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단박에 알아챈 것이다.

“일단 제 앞으로 입원을 하시게 될 겁니다. 환자분에게 부담이 아주 적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절 믿고 맡겨 주십시오.”

한눈에도 노련하고 능숙한 의사의 말이었다. 침착한 모습에 믿음이 생겼는지 보호자가 곧 동의를 했다.

송재덕 교수는 슈퍼바이저(Supervisor:감독관)를 하고,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 그리고 이경석까지 들어가기로 결정됐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경험이 많은 수술 팀이 필요했다.

불안과 우려 속에서 환자가 수술 방으로 옮겨졌다.

그사이 재빨리 의국으로 뛰어 올라간 김지훈이 라파로로 탈장 수술을 할 때 복부의 어느 부분을 뚫어야 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카메라와 수술 기구가 들어갈 두 곳까지 도합 세 곳만 뚫으면 됐다.

‘후우! 라파로 준비할 때 흥미롭게 읽은 덕을 여기서 보네. 연이어 수술을 하지만, 다해야 3센티미터 정도면 되니까 환자도 힘들어하지는 않겠지.’

부랴부랴 수술실로 내려가 준비를 했다.

간담도 파트를 도는 이경석의 손이 능숙했다.

“우리 치프가 참 열심히 했구나. 그래. 어느 파트를 돌든 그래야지. 잘한다. 잘해.”

아직은 송재덕 교수의 목소리에 여유가 있었다. 애써 거즈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불과 열흘 전에 수술한 환자를 다시 수술해야 한다. 그것도 카메라가 들어가기 전에는 배 속 상태를 전혀 알 수 없는 라파로로 말이다. 비록 아뻬라고 하지만 복막염을 유발했을 정도로 심한 상태였기에 상당한 주의를 요구했다.

긴장이 솟구쳤다.

더글러스 포치는 우하부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담낭 절제술과는 반대로 서야 한다. 각자 위치를 잡은 후, 배꼽 아래를 10밀리미터 트로카(복벽을 뚫는 수술 기구)로 뚫었다.

이준영 교수의 손이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처컥! 처컥!

이산화탄소가 주입되며 복부가 서서히 빵빵해지기 시작했다. 복강 내의 압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공기 주입기에서 나직한 기계음이 울렸다. 수술 기구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됐다는 의미였다.

“카메라.”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밀어 넣었다.

트로카로 인한 손상이 있는지 확인한 후, 아뻬 수술 부위를 비췄다. 아뻬를 제거한 부분의 염증이 심하면 과도한 체액 생성으로 낭종이 형성됐을 수도 있었다. 약간 부은 채 빨갛게 보였지만 정상적으로 보였다.

다행이지만 도리어 예감은 좋지 못했다.

‘여기가 깨끗하면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데, 거즈면 어떻게 하지? 수술 전에 흘러나온 내용물이 남아 고름집을 만든 거면 좋겠다.’

이준영 교수의 안색도 조금은 어두워졌다.

“수술 부위는 괜찮네. 나머지 두 군데 더 뚫자.”

5밀리미터 트로카로 두 곳을 뚫었다. 소장과 대장이 경사를 따라 더글러스 포치에서 밀려나도록 환자의 발쪽을 높이 올렸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직은 유착이 발생할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신중하면서도 능숙하게 남아 있는 장을 밀어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낭종이 있는 부위로 카메라를 접근시켰다. 송재덕 교수와 이경석이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서서히 낭종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움직여 초점을 정확하게 잡았다.

낭종은 아주 얇은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지름이 2~3센티미터 정도 됐다. CT를 보며 짐작했던 것보다 사이즈가 더 컸다. 동그란 원이 아니라 울퉁불퉁해 경계가 불확실하게 보였던 것으로 추측됐다.

“이경석, 막 제거할 거니까 석션 들어와. 내용물이 주변에 퍼지지 않도록 조심해.”

“예, 선생님.”

이준영 교수가 극도로 신중하게 수술 기구를 움직여 막을 제거했다. 얇은 막이 툭 터지며 흘러나온 노란 액체가 석션을 따라 사라졌다.

그 순간 내부를 지저분하게 만들었던 원인이 드러났다.

송재덕 교수가 탄식을 터트렸다.

모두들 말을 잃었다. 어시스트를 서던 간호사만이 뾰족한 소리를 냈다.

한 장의 거즈였다.

수술 중에 사라진 바로 그 거즈였다.

미간을 좁힌 이준영 교수가 혀를 차며 말했다.

“거즈 제거하고, 깨끗이 세척한 후 끝내자. 간호사, 마취과, 별도의 말이 있을 때까지는 조용히 해 줘야겠어.”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

설마 이대로 묻을 셈인가?

송재덕 교수까지 동의를 하자 순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과실일 수도, 사고일 수도 있었다. 만일 거즈를 없애고, 수술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문다면 아예 없었던 일이 될 것이다.

실수든 아니든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명백한 의료진의 잘못이다. 누군가는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모두들 경각심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설마 그냥 없던 일로 만드시려고 하나? 아무리 싫고 미워도 같은 일반 외과 의사라는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걸까?’

김지훈과 이경석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환자에게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 후 의사와 병원 모두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두렵고 괴로운 일이라도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 방안이었다.

‘그래. 이게 뭐 좋은 일이라고 일을 키워? 그냥 거즈 없애고 조용히 지나가는 게 의사한테나 병원에 좋은 일이지, 뭐.’

또 다른 생각을 하는 의사도 있었다.

제각각 다른 생각을 하며 송재덕 교수를 보았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따라야 하는 것이 현실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재덕 교수는 조용히 수술만 지켜보았다. 이준영 교수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거즈가 제거됐다.

눈가를 찌푸린 채 제거된 거즈를 보던 송재덕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직하기만 했다. 수술 직전까지 보였던 여유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간호사, 이 거즈 사진 찍은 후 샘플 통에 잘 넣어서 내게 줘요. 이 교수 말대로 우리 과에서 확실하게 처리할 때까지는 다들 발설하지 말고.”

환자에게 설명을 할 때처럼 말투가 완전히 바뀐 상태였다. 아니, 은근히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전종훈 교수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대략은 알기에 더욱 심각했고, 속으로는 치미는 화를 참고 있는지도 몰랐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수술실을 나가는 송재덕 교수의 뒷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잠시 후, 수술이 모두 끝났다.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가 병실까지 올라왔다.

“일단 원인은 확실하게 제거했으니까 더 이상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당분간은 회진 때 보호자분이 꼭 자리를 지키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더 있을 것 같습니다.”

보호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과 이경석이 퇴근하는 교수들을 보며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한바탕 태풍이 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어쩌면 치프들 모두 그 바람을 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에서 돌아온 신현수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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