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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463화 (463/1,329)

제9화 집도의의 책임 Ⅰ (1)

수술실에서 있었던 일에 다시 화가 치솟는지 이경석이 한동안 숨을 고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터진 아뻬를 못 찾아서 한참 헤매다가 간신히 찾아서 제거를 했어. 자기 실력 모자란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 댔지만, 어쨌든 수술은 끝냈으니까 마음을 놨지. 근데 배를 닫기 시작한 지 조금 지나서 거즈 카운트가 안 맞는다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거즈 숫자가 안 맞았다고요?”

김지훈과 신현수가 동시에 깜짝 놀랐다.

어떤 수술이든 반드시 수술 전후에 거즈 숫자를 센다. 즉, 50장을 준비했다면 수술 후에도 50장이 있어야 한다. 한 장이라도 모자란다면 수술 부위에 거즈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무척 중요한 절차였다.

특히 배 속은 거즈 한 장 정도는 아차 하면 사라질 정도로 숨은 공간이 많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만일 거즈를 남긴 채 배를 닫는다면 과실이 아니라 사고이기에 더욱 주의해야 할 문제였다.

“그래. 성미경 간호사하고 마취과에서 몇 번이나 확인을 해도 한 장이 모자란다는 거야. 다시 배를 여는 수밖에 더 있어? 전종훈이 오만상을 쓰면서 자기 혼자 뒤지더라. 한 20분쯤 찾았나? 배 속에는 없는데 공연히 시간만 낭비했다고 갑자기 성질을 버럭버럭 내는 거야. 당연히 간호사들은 난리가 났지.”

“그럼 애초에 잘못 센 거 아니에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봐도 아뻬를 제거한 부위 근처만 확인하는 거 같더라구. 그래서 배 아래쪽까지 확인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 내가 못할 말 한 거 아니잖아? 근데 갑자기 자기가 직접 확인했는데 어디서 그런 소리를 하냐면서 성질을 더 내는 거야. 거의 욕을 하더라. 수술 못하면 퍼스트 말이라도 듣든지. 이건 뭐, 교수라고 정말.”

“그래서요?”

이경석이 생각만으로도 어이가 없는지 연거푸 혀를 찼다.

“배 속에서 거즈 나오면 자기가 책임지겠다면서 그냥 바로 배 닫았어. 찜찜해 죽겠다.”

아무리 아뻬가 터졌다고 해도 3시간이 넘게 수술을 했다. 거즈 찾느라 소비한 시간을 따져도 족히 2시간 반 이상은 걸렸다. 교수가 수술한다고 해서 이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었다.

문제는 전종훈 교수의 부족한 실력과 자존심이었다. 평소 수술 실력을 인정받았다면 어쩌다 있는 일로 치부하고, 스스로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반대로 실력이 부족하다면 아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남들의 시선부터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전종훈 교수는 분명 얼굴을 들기 힘들 정도로 창피함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경석의 말에 무시당했다고 느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종훈 교수의 태도보다 거즈에 신경이 더 쓰였다. 만일 배 속에 거즈가 남아 있다면 당장은 증상이 없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큰 문제를 일으켜 난리가 날 것이다.

‘전종훈은 싫지만, 그런 일이 있으면 절대 안 되지.’

김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설마 배 속에 있겠어요? 아마 애초에 거즈 카운트를 잘못했을 거예요. 열 장 단위로 일일이 묶어야 하니까 실수할 수도 있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게 좀 비싸더라도 엑스레이에 찍히는 거즈를 써야 한다니까. 그랬으면 사진 한 방으로 그냥 확인할 수 있잖아요.”

거즈 한 장은 싼 정도가 아니다. 그러나 하루에 소모되는 거즈를 모두 합치면 적지 않은 수량이다. 이것을 한 달, 또는 일 년으로 연장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이 된다.

저수가로 인해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엑스레이에 찍히는 거즈를 사용할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상당히 비싼 데다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일에 대비하기에는 효용 가치가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여타 안전 문제와 맥락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전은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지훈의 말에 이경석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그랬으면 지금 이럴 일도 없겠지. 현수야, 이런 문제는 이사장님께 직접 건의해도 좋지 않을까? 사람이 평생 실수 한번 안 할 수는 없잖아.”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가를 찡그렸다.

가끔 병원 경영의 어려움을 듣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비용에 너무 민감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견해가 조금 달라졌다. 궁극적으로는 결국 돈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행된 수많은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신현수는 이사장의 아들이기 전에 전공의였다. 전공의들의 주 관심사가 돈이 될 수는 없었다. 안전을 위한 투자가 결국 비용을 절감한다는 생각까지는 못한다고 해도 환자에게 무엇이 안전한지는 명확했다.

“예. 기회가 되면 말씀드려 볼게요. 하여튼 그건 그거고,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지. 안 그러면 너도 고생이다. 어차피 2년차가 전종훈 환자를 주로 보겠지만, 오늘 수술한 환자는 현수 니가 신경 좀 많이 써. 2년차 말은 씨알도 안 먹힐 거야.”

오늘 처음 전종훈을 보았지만 신현수도 걱정이 되는지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김지훈 역시 한숨을 쉬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첫날부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

4년차들의 공백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정말 끊임없이 수술이 이어졌다.

중간에 연철희가 퇴원을 했지만, 수술 중이라 나중에 말만 전해 들었다.

신현수와 이경석도 아침 회진 때 아니면 일과가 끝난 후에나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어쩌다 마주치지 않는 한 하루 종일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치프들이 이렇게 바쁘면 일이 년차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다들 일에 파묻혀 살았다.

그래도 치프는 치프다. 비록 3일에 한 번이었지만 오프는 무조건 챙겼다. 그것도 저녁에 오더만 내고 나면 바로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어느새 금요일 밤이었다.

김지훈이 수술 수첩을 펼쳤다.

이번 주 들어간 수술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내일 있을 주말 집담회를 대비했다.

교수들의 질문은 치프들에게 집중된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일이 년차들 앞에서 창피당할 수는 없지.’

교과서는 물론 참조할 책까지 펼쳤다. 신현수도 가끔씩 한숨을 내쉬며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한 주 동안 벌어진 모든 수술을 보고해야 하는 이경석은 아예 말도 붙이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어째 몸에 익을 정도로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금경태 과장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환자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쌓은 인맥을 총동원해 정보를 얻는 데 여념이 없었다.

확실한 소득이 있었다. 모든 정황이 외과 센터 건립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MRI와 CT에 초음파까지 최신형으로 구입을 추진하고, 백제 병원 리모델링 계획까지 잡으라는 오더가 떨어졌다면 거의 100퍼센트라는 말인데.’

그뿐이 아니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간호사와 방사선과 기사 등 외과 센터에 필요한 인력 충원까지 추진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확신을 가져도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정한득과 바로 연락해서 세무조사 건 마무리 짓고, 다음 주 내에 계약을 성사시켜야 돼.’

남은 시간이 없었다. 신동석 이사장이 백제 병원 건물주와 구체적인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건물 매입을 매듭지어야 했다. 상황을 봐서는 이미 접촉까지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자칫하다가는 건물 가격만 올라갈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정한득의 인맥과 힘이 필요했다. 세무조사를 빌미로 강하게 압박하지 못하면 계약은 물 건너갈 것이다. 필요하다면 소방을 비롯한 행정적인 문제까지 손을 뻗쳐야 할 수도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금경태 과장이 부리나케 사라졌다.

단 한 시간이라도 빨리 결정을 지어야 손에 떨어지는 돈의 액수도 커질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건물을 매입할 자금을 확실하게 마련하는 것이 먼저였다.

한 사람당 최소한 50억을 확보해야 한다. 신동석 이사장이나 진평호가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해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액수였다. 지금 금경태 과장은 그런 돈을 걸고 있는 것이다. 25억을 먹기 위해서 말이다.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그 말이 딱 맞았다.

주말 집담회가 무사히 끝났다.

송재덕 교수와 이혁민 교수의 날카로운 질문이 있었지만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금경태 과장은 집담회 내내 별말이 없었다. 신현수가 들어간 수술과 관련해서만 관심을 보였을 뿐이었다.

토요일 오후 회진까지 끝낸 3년차, 아니 치프들이 지난 일주일을 마무리하며 이제야 한숨을 돌렸다. 주말 오프인 전공의들에겐 일주일 내내 기다리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경석이 가장 먼저 오프를 갔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부러워하다 말고 머리를 톡톡 쳤다. 문득 지난 주말 아뻬가 터져 수술한 환자가 생각난 것이다.

‘그 환자는 괜찮은가?’

마침 신현수가 숙소로 들어왔다.

“현수야, 전종훈 교수가 수술한 아뻬 환자 괜찮아?”

“아뻬 환자? 조금 불안하긴 한데 순조롭게 회복됐어. 다음 주 주중에 퇴원할 것 같아.”

“그래? 다행이네. 거즈는 정말 잘못 센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던 신현수가 눈가를 좁혔다.

인간의 육체는 오묘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일이 큰 문제를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전전긍긍했던 일이 무사히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만일 거즈가 배 속에 있다고 해도 어떤 증상을 보일지는 예단하기 어려웠다. 당장은 별문제 없이 넘어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에는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지훈이가 보면 나와는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까?’

환자에 관한 한 자존심을 세우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동안 무수히 느껴 왔다. 지금이야말로 김지훈의 도움, 혹은 조언이 필요한 때일지도 몰랐다.

아주 잠깐, 아주 조금 자존심에 머뭇거렸던 신현수가 훅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훈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환자 한번 볼래?”

김지훈이 다소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내가?”

“그래. 한 손보다는 두 손이 낫다는 말이 있잖아.”

‘뭐 불안한 게 있나? 많이 변했다고 해도 이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네. 야! 그런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지?’

환자 때문만이 아니었다. 신현수는 진정한 의사이자 동료가 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든 그만큼 빠르게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다. 지금도 상대하기 힘든 라이벌이 점점 더 강력하게 변하고 있었다.

은근한 긴장감을 느끼며 신현수와 병실로 향했다.

24세 여자 환자. 노윤미

상처는 단단히 아물고 있었고, 심지에서 나오는 삼출액은 깨끗했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일단 감염 없이 수술은 잘된 것으로 판단됐다.

신현수가 양해를 구하고, 김지훈이 촉진을 했다.

전종훈 교수가 확인하지 않은 것 같다던 아랫배 쪽을 중점적으로 진찰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은 수술 부위 통증을 느낄 때였다. 더구나 배 속에 심지까지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 점을 감안한다면 별문제가 없어 보이긴 했다. 그런데 왠지 감이 안 좋았다.

‘뭔가 애매모호하긴 한데, 거즈가 남아 있다면 이것보다는 증상이 심해야 하지 않나? 심지를 제거했을 때 지금 느끼는 통증이 사라진다면 없다고 확신해도 되지 않을까?’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한참 동안 촉진을 하던 김지훈이 불안해하는 환자를 보고는 신현수에게 눈짓을 했다.

병실에서 나와 조용히 의견을 나누었다.

“현수야, 지금은 정상적인 회복 과정인 것 같아. 하지만 뭔가 불안해. 환자한테 말하고 초음파라도 해 보는 건 어떨까?”

“사실 어제 전종훈 교수한테 똑같은 말을 하긴 했어.”

“그래? 뭐라고 해?”

“경석이 형 말이 이해가 되더라. 솔직히 기분 나빴지만, 어쨌든 환자가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는데 더 말하기도 그래서 입 다물었다.”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여러모로 입장이 곤란했다.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도 않는데 고집을 굽히지 않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전종훈 교수가 사고 냈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교수 말을 무시하고 환자에게 독단적으로 권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김지훈은 이미 전적이 있기에 더욱 난처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너하고 나하고 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자. 근데 그동안 수술 분위기는 어땠어?”

신현수가 콧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단순한 종물은 호석이가 들어가고, 난 유방암 수술만 들어갔는데 솔직히 그런 교수 처음 봤다. 툭하면 성질내고, 뭐 하나 잘 안 되면 내 탓 하고, 참 어이가 없더라.”

김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환자 문제는 사고일 수 있으니까 성질을 낼 수도 있지만, 수술 중에도 똑같다고? 금경태 라인이 아니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성격이 완전히 개차반이라서 그런가?’

그간의 행동이나 상황을 볼 때 분명히 금경태 과장의 라인이 맞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런 문제에 김지훈이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누구보다도 기분 나빠 했을 신현수가 별다른 눈치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나 이사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일종의 특혜를 받아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손일석이 훨씬 과격하게 반응했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자식, 정말 많이 변했네. 그래도 속으로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 있겠지?’

“다들 고생했으니까 성질나도 참아.”

“참을 게 뭐가 있어? 난 배울 수만 있으면 돼. 솔직히 저런 의사를 보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알 수 있잖아. 인간성 나쁜 거야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겠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그전에 좋아지면 교수다운 교수가 될 테고, 아니면 병원에서 나가야 하지 않겠어?”

‘얼마 전부터 그동안 나만 우대받아 왔다는 생각에 불편했는데, 전종훈 덕에 도리어 마음은 편하네.’

전종훈 교수에 대한 불만으로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 속에 어딘지 모를 담담함이 있었다. 배울 수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강렬하게 뇌를 자극했다.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급작스럽게 변한 신현수였다. 단순히 겉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뭐야? 너 정말 신현수 맞아? 어떻게 그새 이렇게 변할 수 있지? 구미에서 벼락이라도 맞은 거야?’

신현수가 김지훈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화를 내면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는 생각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이젠 달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나 역시 그렇게 살았다는 것도 알았어. 이게 다 네 덕분이다. 고맙다.’

신현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지난날 김지훈에게 가졌던 나쁜 감정들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만일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최고의 의사가 되기는커녕 최악의 의사가 됐을 것이다.

신현수가 아직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김지훈의 등을 툭 두드렸다. 마치 별일 아닌데 표정이 왜 그 모양인지 묻는 것 같았다.

비상이다. 실력과 지식을 모두 갖춘 신현수가 이젠 자신의 단점마저 하나둘 버리고 있었다. 강력한 라이벌이 어쩌면 이미 자신보다 훨씬 앞에서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지훈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반갑고 기쁜 마음 한가운데 팽팽한 긴장이 서리기 시작했다. 결코 지고 싶지 않은, 절대 져서는 안 될 라이벌인 신현수가 너무도 강력해 보였다.

우워워워워!

그동안 행복한 일들로 무뎌졌던 김지훈의 전투력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두 눈이 무시무시하게 빛났다. 마치 1년차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젠 치프다. 일해야 할 때는 일에만 집중하고, 쉬어야 할 때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더구나 이번 주말은 오프다.

가공할 눈빛을 보이던 김지훈이 고경아 앞에서 한 마리 순한 늑대가 됐다.

“경아 씨, 주말인데 우리 바다라도 갈까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빠가 지훈 씨 옷 좀 챙기래요.”

“옷이요?”

“시대가 어느 땐데 단벌이 뭐냐고 그러셨어요. 오늘은 간단하게 티하고 바지 사고, 내일은 양복 보러 가요. 겸사겸사 나도 가을 옷 좀 사고요.”

중환자실에서 킵하는 것보다 더 힘든 쇼핑이다.

그것도 이틀 연속이다.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차라리 당직을 설까?’

김지훈이 우두커니 서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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