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62화 (462/1,329)

제8화 이제 다들 치프다 (2)

9명의 전공의가 모두 근무를 한 덕에 주말은 바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가했다.

여유롭게 회진을 돌며 맡은 파트 환자를 파악한 김지훈이 의국으로 들어서다 말고 환하게 웃었다.

아주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연철희였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구분이 되다니 희한한 일이었다. 아이 엄마가 칭얼거리는 철희를 달래고 있었다.

“어머니, 웬일이세요? 철희는 이제 잘 먹죠? 우리 과 문제 끝났다고 그동안 자주 못 들러서 죄송합니다.”

“바쁘신데 틈틈이 쉬셔야죠. 다른 게 아니라 다음 주에 퇴원하래요. 혹시 인사할 시간이 없을까 봐 미리 왔어요. 선생님 덕분에 우리 철희 건강해져서 퇴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철희를 업은 채 한껏 고개를 숙이는 아이 엄마의 모습에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왠지 가슴이 벅차면서도 먹먹했다.

어렵고 위험했던 수술에 이어 보름에 가까운 금식은 의사인 김지훈마저 안타깝게 했다. 열이 날 때는 물론 철희가 보챌 때마다 걱정을 하며 소아과 전공의들과 함께 곁을 지켰다.

마침내 단장 증후군 평가를 위해 장 검사를 할 때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장이 다소 짧은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코 줄을 빼고 처음 물을 먹였을 때는 엉엉 우는 아이 엄마를 보며 하마터면 눈가를 적실 뻔했다.

순조롭게 수유가 시작됐다.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바짝 말랐던 철희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올랐다. 잘 먹고, 잘 싸고, 우렁차게 울었다. 그것은 곧 아이가 건강하다는 의미였고,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3주간의 아슬아슬한 싸움을 연철희와 아이 엄마는 훌륭하게 이겨 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은 것이다.

자신을 먼저 찾아 준 아이 엄마의 마음이 고마웠다. 건강한 모습을 찾은 철희는 더 고마웠다.

“어머니, 철희 한번 안아 봐도 될까요?”

아이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등에 업었던 철희를 김지훈의 품에 안겼다. 조심스럽게 안았지만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서투르다.

막 잠이 들려던 철희는 그것이 꽤나 불편한 모양이다. 익숙한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으아아앙!”

복도를 따라 퍼진 울음소리에 환자들까지 고개를 내밀었다.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때 아닌 소란에 미안했지만 조금은 더 안고 있어야 했다. 치료할 때마다 축 늘어진 채 제대로 옹알거리지도 못했던 작은 아기가 이렇게 건강해졌다는 사실을 만끽하고 싶었다.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철희의 얼굴을 보던 김지훈이 이마에 살짝 뽀뽀를 했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아이의 이마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철희야, 이젠 아프지 마. 네가 아프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슬퍼하시겠니. 의사들도 힘들어, 인마. 그러니까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줄기차게 울어 대는 철희를 엄마의 품에 안겨 주었다.

“에이구! 철희야, 널 살려 주신 선생님인데 왜 이렇게 울어. 고맙다고 그러는 거지?”

아이 엄마가 철희를 안고 두어 번 흔들었다. 언제 울었냐 싶게 뚝 울음을 그친 철희가 옹알거리다 말고 새근새근 잠에 빠졌다.

“어휴! 제 품이 좀 안 맞나 봐요, 어머니. 죄송하지만 퇴원할 때 못 뵐 수도 있습니다. 저도 미리 인사드릴게요. 조심해서 가시고, 다시는 오지 마세요.”

“소아과에서는 한동안은 병원에 자주 와야 한다고 그랬는데요.”

“그럼 소아과만 다니시고, 우리 외과에는 철희는 물론 어머니도 다신 얼씬도 하지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몇 마디 더 나누고 철희를 배웅했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소아과 병동으로 향하는 아이 엄마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의국으로 들어갔다. 서도진의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잘 먹겠습니다.”

봉봉 두 박스가 보였다. 어느 때보다도 시원하고 달콤했다.

유리컵에 봉봉을 따라 마시던 신현수가 눈빛을 굳혔다. 환자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의지가 있다고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잊지 말고 노력해야 돼. 교수님들이 지훈이를 인정한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열정과 애정일지도 몰라.’

봉봉 한 모금을 넘기던 신현수가 캑캑거렸다. 등짝을 한 대 후려친 김지훈의 손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현수야, 봉봉은 그냥 캔으로 마시는 거야. 컵이 뭐냐. 그것도 유리컵이네.”

신현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캔에 입을 가져갔다.

깜짝 놀라 얼음처럼 굳었던 서도진이 크게 웃었다. 물론 살벌한 눈초리가 꽂히기 직전까지 말이다.

“서도진, 지금 웃은 거야? 넌 먹지 마.”

신현수의 목소리가 더없이 차가웠다. 이번에는 서도진이 캑캑거렸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정식 치프로서의 첫 회진이 시작됐다.

전공의 회진을 앞둔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떤 인연인지 계속 같은 파트를 돌게 된 서도진과 박순용이 긴장된 표정으로 김지훈의 오더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일반 외과를 도는 인턴은 아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치프로서의 첫 회진을 돌아 볼까?’

“도진아, 회진 돌자.”

김지훈의 목소리가 왠지 묵직했다.

“예, 선생님. 인턴 선생, 뭐해?”

인턴이 발소리를 죽인 채 병실 앞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하나의 파트 속에 4명의 교수.

주말 동안 환자 파악을 했지만 살짝 어지러웠다. 그러니 공력이 가장 낮은 박순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중간중간 환자를 착각했고, 김지훈이 슬쩍 눈길을 줄 때마다 흠칫 놀라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큰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무사히 치프로서의 첫 전공의 회진을 마쳤다.

곧 교수 회진이 시작됐다. 다른 때와는 달리 오상익 교수가 가장 먼저 올라왔다.

“김지훈 선생, 자네는 나하고 처음이지?”

“예. 처음입니다.”

“잘해 보자. 내일 수술할 환자들 준비 잘해.”

약간은 어색했고, 그 탓인지 더욱 긴장이 됐다. 첫 회진부터 실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지훈이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 모습에 오상익 교수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대로 일은 딱부러지게 하네.’

이어 송재덕 교수가 올라왔다. 동시에 구영선 교수와 임동완 교수까지 올라왔다. 지난 치프들이 그랬던 것처럼 교수들 레벨에 맞게 회진을 도는 수밖에 없었다.

“도진이는 구영선 선생님하고 돌고, 박순용 선생님은 임동완 선생님 맡으세요. 인턴 선생, 가자.”

급히 병실로 달려가는 인턴을 따라 송재덕 교수와 회진을 돌기 시작했다. 항상 해 왔던 일이었고, 여느 때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긴장이 되고, 부담마저 느껴졌다.

“천천히 돌자. 천천히. 치프야, 지훈아, 이 환자 어떠니?”

“치프야, 지훈아, 이 환자 심지에서 냄새 안 나니? 나면 안 된다. 안 돼. 그러면 큰일이다, 큰일.”

송재덕 교수의 끊임없는 질문 속에 치프로서의 첫 회진이 끝나 가고 있었다.

스테이션에 돌아와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정신이 없었다. 교수는 9명인데 치프는 셋이고, 남은 인원도 일이 년차들뿐인 탓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 주까지도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까 우리가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네. 그걸 이제야 느끼다니 희한해.’

“참! 지훈아, 치프야, 오늘 수술할 환자 준비 다 됐지?”

이젠 이름 뒤에 치프라는 소리가 항상 따라붙었다.

기분이 묘했다.

“예. 별문제 없습니다.”

“그래그래. 방심하지 말고 잘하자. 잘해야 된다. 에스 결장암이니까 오전에 끝나겠지? 그다음에 뭐 할까? 내가 말이야, 수술하는 날은 외래가 없어서 일찍 끝나면 할 일이 없어요. 우리 공부할까? 좋다. 공부하자, 공부.”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공부요?”

“그래. 공부. 대장에서 배워야 할 게 엄청 많다, 엄청. 게으름 피우면 금방 다 잊어 먹고 돌대가리 돼. 돌대가리. 우린 그러면 안 되잖아. 지훈아, 치프야, 내 말이 맞지? 그치?”

들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송재덕 교수는 아무리 농담처럼 꺼내도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부할 부분까지 정했다.

“어느 파트든 우리 과의 꽃은 암 수술이지. 암 수술. 오늘부터 대장암 수술에 대해 공부하자. 가만있자. 3시쯤이 좋겠다. 그때까지 총론 준비해. 할 수 있지? 치픈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암! 해야지. 지훈아, 치프야, 대장 하자. 대장.”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후 1시는 돼야 수술이 끝날 텐데, 도대체 언제 준비한단 말인가?

울상이 된 김지훈의 옆을 똑같은 표정을 한 이경석이 스쳐 지나갔다. 이준영 교수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몇 마디 던지고 있었다.

회진이 끝나고 부랴부랴 수술 방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 신현수까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허둥지둥 의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경석이 형이나 현수는 또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첫날부터 난리도 아니네. 4년차 선생님들도 이랬나?’

이런 일이 있었다면 말을 안 했을 리가 없었다. 아니면 정말 어쩌다 있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송재덕 교수의 눈치를 봐서는 결코 하루 이틀 일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빠르게 적응하고, 적절하게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단연코 100퍼센트 맞는 생각이었다.

수술이 시작됐다.

퍼스트 자리나 역할이 달라질 리도 없건만, 그 어느 때보다도 어깨가 무거워진 김지훈이 각오를 다졌다. 수술 수첩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자.’

송재덕 교수가 무서운 집중력과 번개처럼 빠른 손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김지훈 역시 거칠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최선을 다했다.

주요 과정이 끝나자 송재덕 교수가 장갑을 벗으며 당연한 것처럼 마무리를 맡겼다.

“마무리하자, 마무리. 천천히 해. 천천히. 치프야, 수술 잘했다. 잘했어. 근데 말이야. 많이 좋아졌지만 손이 아직은 거칠어. 다른 교수들 수술 들어가서 잘 봐야 한다. 지훈아, 배워야 된다. 아직은 한참 더 배워야 돼. 대장 하자, 대장.”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거칠다는 말은 곧 아직 멀었다는 말이었다. 신현수가 강력한 의지를 불태우는 이상 더욱 노력해야 할 때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벌써 나가라고? 너 나 싫어하는구나. 그럼 안 된다. 3시에 보자. 3시다, 3시. 치프야, 지훈아, 대장 하자. 대장.”

송재덕 교수가 동네 아저씨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절대 그 미소 속에 담긴 의미를 잊으면 안 된다.

그나저나 앞으로 3개월 동안 대장 하자는 소리를 무지하게 들어야 할 것이다. 은근히 부담되는 일이었다.

수술에 난데없는 이론 공부까지 첫날부터 정신이 없었다. 치프가 그럴진대 일이 년차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저녁 회진을 끝내고 난 후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당연히 식사 시간을 놓쳤다.

“아! 힘들다. 도진아, 빨리 오더부터 내고 밥 먹으러 가자.”

구미에서 이미 경험을 했지만, 오더 내는 시간 또한 치프의 위용을 보이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이경석과 신현수라는 쟁쟁한 치프들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첫 번째 차트를 집어 든 김지훈이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이 환자, 항생제 끊고 내일부터 정상 식사 시작해. 별일 없으면 모레 퇴원.”

치프는 편안하게 입으로만 오더를 내면 된다. 반면 일이 년차들은 환자 리스트 여백에 일일이 오더를 받아 적어야 한다.

일견 불필요한 일로 보이지만, 반복이야말로 일에 치이는 일이 년차들이 환자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몇몇 환자들을 빼면 일사천리였다. 후다닥 오더를 내고 우르르 병원 밖 식당으로 향했다. 습관처럼 응급실에 들러 환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당직인 이경석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지훈아, 현수야, 먼저 가라. 환자 있단다.”

“무슨 환잔데요?”

“아뻬란다. 에이! 꼭 조용하다가 밥 먹으러 갈 때 환자가 와요. 오늘은 어느 선생님이 당직이시지?”

응급실 근무 형태가 바뀐 탓에 송동화 교수가 당직인 날을 빼고는 모두 확인을 해야 했다.

당직 표를 보던 이경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후! 하필이면 전종훈 교수가 당직이냐.”

눈이 동그래진 김지훈이 하마터면 만세를 부를 뻔했다. 오늘 당직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떤 수술이 됐든 김지훈조차 피하고 싶은 교수였다.

김지훈이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형, 그래도 다행히 아뻬잖아요. 별일 있겠어요.”

“그랬으면 좋겠다만, 그 성질 어디 가겠어? 총치프 권한으로 당직 스케줄을 확 바꿔?”

그럴 수는 없다. 김지훈이 눈짓을 하며 재빨리 응급실을 나갔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짓는 신현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하여튼 내가 본 중에 성격이 가장 안 좋은 것 같아. 우리 중에 제일 무난한 일석이까지 무지하게 힘들어했어. 금경태 과장 라인들은 다들 왜 그런지 모르겠네.”

신현수가 입술을 모았다.

구미 근무를 하며 비슷한 이유로 고민을 했었다. 일이 년차들과 자신을 대하는 강기웅 과장의 태도나 행동은 천양지차였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잘 지냈지만, 안호석이나 1년차에게 하는 말과 행동을 볼 때면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었다. 이 역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일이었다.

신현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이 문제도 아버님께 말씀드리는 게 좋겠지?”

‘응? 지금 내 생각을 물어본 거야? 야! 현수 이 자식 정말 놀랄 정도로 많이 변했네. 구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 근데 교수님들께서 해결한다고 하셨어. 일단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 알았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신현수를 본 김지훈이 큰 소리로 웃었다.

기분이 좋아진 덕인지 밥이 그냥 입에 착착 붙었다. 치프라 눈치를 볼 이유도 없었다.

1년차들과 경쟁적으로 밥을 비웠다. 그런데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이경석이 보이질 않았다. 의국에도 없는 것으로 보아 수술 중인 모양이었다.

‘설마 아뻬 수술인데 별일 없겠지?’

같은 3년차라도 치프인 이상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니면 의국에서 자리를 지키면 안 된다. 이것도 치프가 되면 지켜야 할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할 일이 많은 일이 년차들이 눈치를 보느라 방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현수와 함께 숙소로 올라간 김지훈이 가운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최소한 오늘 하루만큼은 치프라는 사실을 즐기고 싶었다.

신현수도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누웠다. 슬슬 피곤이 몰려오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깜박깜박 졸던 김지훈이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에이!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형,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이경석이 잔뜩 찌푸린 채 시계를 가리켰다.

“어? 벌써 12시네. 설마 지금 수술 끝난 거예요?”

“왜 아니겠냐. 아무리 아뻬가 터졌다지만, 첫날부터 밥도 못 먹고 이게 뭐야? 지훈아, 전종훈 손이 어떤지 너도 알잖아. 그래서 내가 수술 오래 걸린 건 참는다. 그럼 최소한 성질은 내지 말아야지. 씨펄!”

욕까지 터져 나왔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신현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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