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57화 (457/1,329)

제6화 수술이 가져온 여파 Ⅰ (1)

복부를 소독하던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비쩍 마른 진상미의 육신에서 8년의 고통이 보였다.

“너무 말랐네. 수술하기는 편하겠네요.”

서도진의 말대로 그 덕에 수술은 용이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소독이 끝난 후, 고성문의 참관 아래 수술이 시작됐다.

배꼽 양쪽을 집게로 들어 올린 후, 10밀리미터 트로카(배를 뚫는 수술 도구)로 강하게 복벽을 찔렀다. 별다른 저항도 없이 쉽게 배가 뚫렸다. 그 부분에 공기 주입기를 찔러 넣고 이산화탄소를 불어넣었다.

처컥! 처컥! 처컥!

규칙적인 기계 소리를 따라 배가 부풀어 올랐다. 복강 내에 충분히 가스가 주입된 것을 확인하고 카메라를 넣었다.

트로카 끝에 달린 송곳처럼 생긴 부분이 배 속에 손상을 주었는지 점검했다. 안전하게 복벽을 뚫었다. 이후 5밀리미터 트로카를 이용해 상복부 세 곳을 더 뚫었다.

각 구멍으로 필요한 수술 기구를 넣었다. 카메라 하나와 1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수술 기구가 달린 라파로용 수술 기구 3개로 배 속 전체를 샅샅이 확인해야 한다. 통증이 유발되는 위치는 우상복부였지만, 소장이나 대장 일부는 이리저리 움직이기 때문에 전체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간 주변부터 확인하자.”

카메라를 간 쪽으로 돌렸다. 선홍색의 간과 분홍빛의 담낭이 관찰됐다. 건강한 모습 그대로였다. 소장과 대장이 밀려오며 주변부의 시야를 가렸다.

김지훈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마취과, 환자 좌측과 아래쪽을 최대한 내려 주세요.”

위이이잉!

나직한 모터 소리와 함께 수술 침대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소장과 대장이 기울기를 따라 좌하부로 스르르 밀려났다.

이준영 교수가 능숙하게 아직도 남아 있는 장들을 밀어내고 주변부를 살폈다.

총수담관이나 담낭관, 그리고 췌장의 머리 부분이 있는 부위도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소견이었다. 보다 자세하게 보려면 겉을 싸고 있는 지방으로 된 막을 제거해야 하지만, 상당히 마른 탓에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했다.

어쨌든 병변이 없다니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별거 없어 보이지?”

“예, 선생님.”

이준영 교수가 우상복부를 더욱 자세하게 볼지, 아니면 다른 부분부터 살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했다. 라파로용 수술 기구로 이 부분을 박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일단 상대적으로 안전한 부분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였다.

“비장하고 방광 쪽 확인하고, 그다음에 장을 확인하자.”

위이잉!

수술용 침대가 우하로 기울었다.

비장과 주변부는 정상 소견이었다.

위이잉!

수술용 침대의 발쪽 부분이 높게 올라갔다.

방광과 난소는 물론 자궁까지 모두 정상 소견이었다.

마지막으로 신중하게 소장과 대장을 확인했다. 지루하리만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자그마한 기구로 5미터에 육박하는 장과 장간막을 모두 확인하는 데만 40분이 넘게 걸렸다.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배 속을 모두 확인했지만 아무런 이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콧소리만 들렸다. 이렇게 된 이상 위험을 감수하고 우상복부에 위치한 장기들을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손으로 직접 장기를 다룬다면 어려울 것이 없었고, 그만큼 위험할 일도 적어질 것이다. 라파로용 수술 기구가 갖는 한계와 카메라 각도로 인한 시야의 제한을 생각하면 차라리 개복을 하는 편이 나았다.

‘계속 복강경으로 확인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집도의와 함께 수술을 이끌어 가는 퍼스트이자 제자라는 사실 이전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전공의였다.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생각해 낼 수도 있었다.

“개복을 하는 게 좋겠지?”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의견을 물어본 것이다. 이준영 교수의 성격이나 그동안의 행동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놀라야 할 김지훈은 이마에 주름살을 만든 채 말이 없었다. 도리어 고성문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환자에게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기쁜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진상미는 반대였다. 어떻게 보면 우스우면서도 슬픈 일이었지만, 반드시 이상 부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번 수술의 목적이었다.

‘라파로로 췌장이나 총수담관이 있는 부위를 박리하는 것은 너무 위험해. 이렇게 된 이상 스승님 말씀대로 개복을 하는 것이 최선일까?’

마냥 고민만 할 수는 없었다. 수술실에서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담낭과 간을 비추고 있는 모니터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아픈 지점이 담낭 근처가 맞나?’

“선생님, 잠깐 배 쪽을 확인 좀 해도 되겠습니까?”

“왜?”

“압통과 반사통를 호소한 지점이 담낭 바로 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약간 밑에 쪽인 것 같은데요.”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빨리 확인해 봐.”

김지훈이 압통을 호소했던 지점을 눌렀다. 모니터에 눌려진 복벽이 보였다. 배 속에 가스가 차 있기 때문에 실제 위치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눈가를 잔뜩 좁힌 채 수차례 배를 눌러 보던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확실히 담낭 근처가 아닙니다. 십이지장이 공장으로 이행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십이지장이 나오는 지점?”

위에서 이어지는 십이지장은 후복막에 반쯤 묻혀 C 자 모양으로 주행한다. 이후 대장의 장간막 사이로 빠져나오고, 이 부분부터 공장이라고 부른다.

김지훈이 지목한 부위는 바로 십이지장이 공장으로 바뀌는 부분, 즉 대장의 장간막에 싸인 부분이었다.

이 부위 역시 박리하기 쉽지 않았지만 췌장 주변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았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수술 시야부터 확보해야 했다.

위이이잉!

수술용 침대가 좌하로 기울었다. 길고 구불구불한 소장이 한쪽으로 밀렸다. 곧 십이지장이 공장으로 이행하는 부분이 드러났다. 이준영 교수가 그 위를 덮고 있는 대장 장간막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카메라를, 서도진이 남은 수술 기구 하나를 잡고 손을 맞추기 시작했다. 전기 소작기와 작은 가위가 지방으로 이루어진 장간막을 자르고 지졌다.

주변에 산재한 혈관들을 피해 장간막을 모두 박리했다.

십이지장의 마지막 부분까지 모두 노출시켰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다만, 다른 부위와는 달리 부종이 관찰됐다. 처음으로 이상 소견을 찾았지만, 이것이 통증의 원인이 되기에는 너무 미약한 소견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나직한 한숨을 터트렸다.

“이 정도로 통증이 유발되기는 힘든데. 어때?”

김지훈이 눈가만 찡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압통을 느낀 부분이 맞았지만, 진상미가 호소하는 통증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카메라를 더욱 근접시켰다. 주변을 주행하는 혈관들이 보다 확실하게 보였다.

다소 의아한 소견이 관찰됐다.

“선생님, 지금 보이는 혈관에 밴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이준영 교수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십이지장 말단, 혹은 공장 초입으로 들어가는 혈관에 밴드처럼 생긴 구조물이 걸려 있었다. 혈관을 둘러싼 조직의 일부가 두꺼워진 양상이었다. 폭이 2센티미터에 가까웠지만, 미세한 변화라 육안으로는 보기 어려운 소견이었다.

카메라를 조작해 수술 부위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선천적으로 발생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보이긴 하는데 허혈을 일으킬 정도로 문제가 된다면 모를까, 통증의 원인으로 보긴 힘들어.”

허혈(Ischemia)은 어떤 이유로든 장기로 가는 혈류가 일정 부분 이상 차단되는 것을 말한다. 만일 조직의 일부가 괴사 직전까지 몰리면 극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는 있었다. 그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안이 좁아지거나, 아니면 혈관이 심각하게 눌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찾은 이상 소견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맥이 빠질 정도였다.

이준영 교수도 그런지 개복을 하자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사실 이 상황에서는 배를 크게 연다고 해서 병변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난감한 상황이 이어졌다.

복강경을 이용한 개복의 결정은 이준영 교수가 했지만, 김지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점점 가중되는 부담에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소장과 대장이 꾸불꾸불 움직이고 있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히 이 부분이 맞는데. 정말 밴드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까? 연동운동이 겹치거나 심하면 혈관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시도는 해 볼 일이었다.

김지훈이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혹시 장운동이 밴드처럼 생긴 구조물에 싸인 혈관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요? 자극을 가해 보면 어떨까요?”

솔직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이준영 교수도 같은 마음인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김지훈이 왼손으로 수술 기구를 잡고는 대장과 소장을 살짝살짝 찔렀다. 자극을 받은 장들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지켜보던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배를 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수술 기구를 뒤로 빼며 입을 열었다.

“김지훈, 안 되겠다. 여기까지 온 이상 배를 열고 보는 게 확실하겠어.”

결국 복강경을 이용한 진단적 개복은 실패로 돌아갔다.

김지훈도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참관하고 있던 고성문이 혀를 차며 눈가를 찌푸렸다.

“이 교수, 수술을 하다 보면 이럴 때도 있잖아.”

김진호 교수도 입맛을 다시며 침대 조절 스위치를 잡았다. 한쪽으로 기울었던 침대를 바로잡고 배를 열 수 있는 자세를 확보해야 할 때였다.

그때 갑자기 심장박동 소리가 빨라졌다.

띠띠띠띠띠!

김진호 교수가 깜짝 놀랐다. 마취 중에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였다.

마취과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급히 혈압을 재고, 비지에이를 내보냈다. 소변이 잘 나오는지, 인공호흡기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했다.

수술 팀 역시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김진호 선생, 괜찮겠어? 여기서 끝낼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필요하면 마취부터 끊겠습니다.”

띠띠띠띠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덩달아 혈압이 상승한 것 이외에 다른 이상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도 심장박동은 돌아오지 않았다.

김진호 교수마저 당황해 수술을 끝내자고 소리를 쳤다.

“수술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깨우겠습니다. 김지훈, 배에서 가스부터 빼. 가스가 심장을 누르는지도 모르겠다.”

수술에 이어 마취까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에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급히 수술 기구를 빼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갑자기 수술 전의 일이 생각난 것이다.

‘복통을 호소할 때 심장이 이렇게 뛰었잖아?’

“선생님, 잠깐만요. 십이지장 한 번만 더 확인하겠습니다.”

미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김지훈의 손이 움직였다.

미적거릴 틈이 없었다. 오른손으로 카메라를 잡은 채 왼손 하나만으로 장을 밀어냈다.

십이지장을 빠르게 노출시켰다.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허혈성 통증이 맞습니다!”

밴드처럼 보이는 구조물 양쪽의 혈관이 눈에 뜨일 정도로 심하게 꺾여 있었다. 혈류가 부족해진 십이지장의 일부분이 하얗게 탈색되고 있었다. 심지어 검게 변하는 부분까지 보였다. 기능적으로 막힌 장을 뚫기 위한 보상기전으로 주변의 소장과 대장이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김지훈이 김진호 교수를 보았다.

“선생님, 마취 전에 심장이 뛴 이유가 이거였던 것 같습니다. 수술 진행하겠습니다.”

오케이 사인이 나자마자 이준영 교수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가위와 전기 소작기가 달린 수술 기구로 밴드처럼 생긴 구조물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빠른 진행이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김지훈이 서도진 대신 남은 수술 기구를 잡았다. 아주 익숙한 것처럼 왼손으로 능숙하게 보조를 맞추었다. 가느다란 혈관 분지들을 클립으로 일일이 잡았다.

마침내 혈관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조직이 모두 제거됐다. 곧게 펴진 혈관을 따라 힘차게 혈액이 흘렀다.

십이지장의 색이 돌아왔다. 격렬하게 움직이던 주변 장들도 부드러운 연동운동을 보였다.

잠시 후, 숨 가쁘게 뛰던 심장까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띠! 띠! 띠! 띠! 띠! 띠!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 소리가 터졌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우연히 일치할 수도 있었다. 최대한 확인을 해 보고,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했다.

“선생님, 자극을 다시 한 번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좀 더 강한 자극이 가해졌다.

모두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0여 분의 시간이 쏜살처럼 흘렀다.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야 이준영 교수가 입을 열었다.

“김지훈, 담낭 쪽 다시 확인하고, 십이지장 부분 정리한 후 수술 끝내자.”

“밴드가 확실한 원인이었을까요?”

“어떻게 생각해?”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다른 이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진상미의 극심한 통증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어떤 유발점이 있는지 모르지만, 일차적으로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꺾였을 것이다. 이로 인해 이차적으로 허혈과 함께 혈관과 소장의 경련이 발생한 것이다.

경련으로 인한 통증, 특히 혈관 경련(Vaso Spasm)은 참기 힘들 정도로 극심한 것이 일반적이다.

알기 쉽게 다리에 쥐가 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된다. 여기에 허혈성 통증까지 겹쳤으니 얼마나 통증이 심했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역시 밴드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차근차근 신중하게 수술이 진행됐다. 밴드를 제거한 부분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어떤 구조물도 혈관에 영향을 주거나, 소장의 혈류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배에 난 상처 네 곳을 봉합했다. 네 바늘로 충분했다. 그만큼 진상미가 느끼는 수술 후 통증은 미약할 것이고, 그 때문에 라파로를 이용한 진단적 개복술을 한 것이다. 모든 목적을 충분하고도 확실하게 달성했다.

장갑을 벗던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정확한 판단과 능숙한 손이 아니었으면 배를 열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김지훈이 아니었다면 원인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녀석, 라파로 기구를 이 정도까지 다룰 정도로 연습을 한 거야? 환자에 대한 관심부터 의학적인 판단까지, 이젠 가르칠 것이 별로 없겠어. 잘했다. 고맙다.’

“수고했다. 고맙다.”

고성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3년차인 놈이 도대체 뭘 어떻게 배운 거야? 이런 일로는 네놈하고 줄다리기를 해 봐야 머리만 아프겠다. 경아가 사람 하나는 정말 잘 봤네.’

“자네, 제법이야. 원주에서 정식으로 밥 먹자.”

김지훈이 눈만 멀뚱거렸다. 스승의 입에서 고맙다는 소리를 듣다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꼬장꼬장한 장인어른에게 정식으로 밥을 먹자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수술의 고단함과 긴장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하마터면 소리 질러 만세를 부를 뻔했다.

‘만세! 만세!’

이렇게 기쁜 순간은 다신 없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던 김지훈이 딴청을 피우며 헛기침을 해 댔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지우지도 못했다.

서도진과 박순용이 묘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선생님, 지금 휴가 중입니다. 웃음이 나옵니까?’

그런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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