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56화 (456/1,329)

제5화 휴가와 맞바꾼 수술 (2)

외래로 들어간 김지훈이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송재덕 교수와 이혁민 교수가 자리를 함께한 것까지는 이해가 됐다. 그런데 고성문까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함께 수련을 했다지만 다소 의아한 일이었다.

‘아버님은 원주 안 가시나?’

힐끔힐끔 고성문을 보던 김지훈이 뷰박스에 복부 CT를 걸었다. 이준영 교수가 차트를 뒤적이며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환자 프레젠테이션 해.”

솔직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휴가 중에 재입원을 해 검사를 모두 다시 했다. 이준영 교수도 지나가듯 진상미 환자에 대해 언급했을 뿐이었다. 환자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시청각 설명회)을 하라니, 누가 보아도 무리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이 누군가? 환자에 관한 한 빈틈이 없는 놈이다. 더구나 이런 발표는 3년 반이나 해 왔다.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우! 이게 무슨 난리야. 혹시 내가 휴가라는 걸 잊으신 거 아냐? 아니면 날짜를 착각하시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어쨌든 스승의 오더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김지훈이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간단명료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준영이 말대로 딱부러지게 발표를 하네. 그나저나 정말 골치 아픈 환잔데 어떻게 치료할 생각이지?’

고성문이 걱정을 하면서도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원래는 연철희의 수술이 끝나는 대로 원주에 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수술실에서 김지훈의 손을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장차 사위 될 놈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진 것이다. 마침 핑계거리도 있었다.

응급실에서 들었던 진상미 환자를 거론하며 슬며시 운을 떼자 이준영 교수도 문제없다는 듯 바로 동의를 했다. 마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지훈의 발표가 끝났다. 모두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환자는 아파서 몸부림치는데 어떤 이상도 찾아내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8년 동안 겪은 고통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환자에게 확실한 육체적 이상이 있는데 현대 의학의 한계로 못 찾거나, 아니면 순수한 정신과적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조용히 복부 CT를 보던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김지훈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젯밤에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검사는 더 이상 없었다.

물론 최후의 방법이 하나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외과 의사라면 누구나 꺼려할 수밖에 없었고, 감당하기 힘든 책임까지 뒤따랐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아파하는 진상미 환자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평생 스승님을 쫓아다니면서 힘들게 할지도 몰라.’

정신과 진단이 발목을 잡았다. 건강 염려증 환자는 자신이 실제로 아프다고 확신한다. 때문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도 몸에 손을 댄 이준영 교수에게 죽자 살자 매달릴 가능성이 높았다. 할 수 있는 치료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평생 동안 그런 일을 당한다면 곤란한 정도가 아니었다.

고민스러워하는 김지훈을 본 이준영 교수가 살짝 눈가를 찡그리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떤 방법도 좋으니까 내 입장은 고려하지 말고 말해 봐. 너라면 이 상황에서 무슨 방법을 택할 거야? 환자 그냥 퇴원시킬까?”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지 말라는 말에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어쩌면 이준영 교수 역시 최후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진상미 환자의 상태도 이미 자신보다 더 확실하고 철저하게 파악했을 것이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검사상 이상은 없지만, 임상적으로는 배 속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됩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해도 저라면 진단적 개복술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진단적 개복술?

말 그대로 배를 열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방사선 검사와는 달리 몸에 칼을 대야 하기 때문에 환자는 물론 의사에게도 그만한 부담이 없었다. 개복을 하고도 원인을 못 찾는다면 멱살을 잡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구나 복부 CT, 초음파, 내시경에 MRI까지 진단 기기의 급속한 발전으로 현재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답답한 숨소리만 들렸다. 오죽했으면 개복까지 거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이준영 교수가 의외로 담담한 표정을 한 채 물었다. 도리어 무척 관심이 간다는 것처럼 보였다.

“근거는?”

“정신적인 문제라면 통증을 호소할 때마다 부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진상미 환자는 통증이 심할 때나 약할 때나 항상 같은 자리에서 압통과 반사통을 호소합니다. 기분이나 컨디션이 나쁘다고 발생하는 통증도 아닙니다. 외과적 문제를 절대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됩니다.”

이혁민 교수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근거가 되긴 한다만, 개복은 부담이 너무 크다. 배에 그 큰 상처를 내고도 별게 없다면 환자가 가만히 있겠나?”

그 점도 이미 생각했다. 이혁민 교수의 말대로 가장 큰 문제는 배를 크게 연다는 것 그 자체였다. 환자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이자, 대단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킬 나름의 대안이 있었다. 논문으로도 발표된 적이 없는 방법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적절했고,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수단이었다.

“전통적인 방법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라파로로 한다면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요?”

고성문은 물론 교수들까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까지 담낭 절제에만 적용되는 복강경으로 과연 개복을 대체할 수 있을까?

불과 1센티미터 크기의 수술 기구들을 이용해 배 속의 장기를 모두 확인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간단하게 4~5미터에 달하는 대장과 소장을 일일이 확인하려면 가능 여부는 물론 시간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정은 집도의가 한다. 복강경 수술을 경험해 본 의사도 이 자리에는 이준영 교수뿐이었다.

모두들 우려의 눈빛으로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김지훈, 라파로로 진단적 개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내친김이었다. 어젯밤 복강경을 이용해 배 속을 확인하는 방법까지 생각해 보았다. 실제로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머릿속으로는 가능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고형 장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소장과 대장 역시 환자 복부의 위치와 높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준영 교수의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라파로를 해 본 적도 없는데 방법까지 생각을 했어? 열심히 본 것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야. 우리보다 기구를 이용하는 수술에 훨씬 일찍 접한 덕일까?’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이라고 해서 생각하기 쉽다는 말은 아니다. 그만큼 환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방증이었다.

어쨌든 자신의 생각과 거의 일치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진상미에게 육체적 병변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실행하는 일만이 남았다.

“어제부터 환자에게 금식하라고 했는데 통증이 좀 줄었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금식과는 상관없이 도리어 통증도 더 심해지고, 빈도까지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말을 하는 김지훈도, 듣는 이준영 교수도 눈가를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병변이 있다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원인이 무엇인지는 더욱 흐릿해졌다. 우상복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이 명백할 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교수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환자에게 개복술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다음 주에 하자.”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확실하다. 확실해. 원인을 찾으면 제일 좋고, 못 찾아도 원은 없잖아? 환자가 매달리는 거야 의사들 운명이다. 우리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걸 어떻게 하니. 있을 거다. 원인이 분명히 있을 거야. 아 참! 고성문 선생님, 오늘 댁으로 가셔야죠? 아니면 한 잔 더 할까요? 언제 또 볼지 모르는데 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아니네. 지훈이 장가갈 때 보겠네요. 좋겠다. 지훈이 넌 좋겠다.”

다들 얼굴이 빨개진 김지훈을 보며 웃었다. 역시 긴장을 푸는 데는 송재덕 교수만 한 고수가 없었다. 고성문도 한결 부드러워진 눈빛을 보였다.

“오늘 가야지. 마누라한테 맞아 죽어.”

“어이구! 선생님도 그러세요? 우리 남자들은 왜 이렇게 살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닌데, 이 나이가 되도록 술 한잔하는 것까지 마누라 눈치나 봐야 하니 말이에요. 힘드네요. 에휴! 어젠 선생님이 계셔서 별말 없었는데, 앞으로는 무슨 핑계를 대나. 지훈아, 좋은 생각 없니? 있으면 말해 봐. 응?”

장가도 못 간 놈이 무엇을 알까?

김지훈이 우물쭈물하며 얼굴만 붉혔다.

그래도 이것으로 상황 종결이었다. 연철희는 3년차들과 소아과 전공의들이 알아서 잘 봐줄 것이다.

‘아버님하고 같이 원주에 가야 하나?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경아 씨에게 빨리 연락해야겠네.’

아직 하루하고도 반이 넘게 남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일이었다. 어떻게든 빨리 원주로 가 차를 찾고, 남은 휴가라도 즐겨야 한다.

슬며시 고성문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은 김지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선생님, 진통제를 세 번이나 투여했는데 진상미 환자의 통증 조절이 안 된답니다.”

“그래? 확실히 점점 통증이 심해지네. 김지훈, 가 보자. 고성문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환자 보고 와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헉! 이런 일이!

일순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고성문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보고 와. 혹시 수술하게 되면 그것까지 보고 가지, 뭐. 어차피 오늘까지는 의료봉사 기간이니까 자네도 불만 없지? 차 가지러 원주 가야 되지만 이제 목요일인데 급할 것도 없고, 경아한테는 내가 말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 봐.”

스승과 장인이 합공을 가한다. 아예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까지 보고 싶단다. 한마디로 날벼락이었다.

외래를 나오는 김지훈의 눈이 거의 울고 있었다.

***

진상미의 얼굴이 창백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러다 통증성 쇼크(Pain Shock)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복부 촉진상 압통과 반사통이 복막염에 준할 만큼 강하게 나타났다. 여전히 같은 자리였다.

‘과거 병력을 몰랐으면 즉시 수술을 하자고 할 정도로 전형적인 복막염 초기 증센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이준영 교수 역시 고민스러운 표정이었다.

“김지훈, 지켜볼 수 있겠어?”

휴가 중이라는 생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두고 보기에는 진상미 환자의 통증이 너무 극심했다. 솔직하게 말할 일이었다. 어차피 진단을 위한 개복을 하기로 한 이상 언제 할 것인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하자. 환자에게는 내가 설명할 테니까 바로 준비해.”

장인 말대로 됐다.

병실을 나온 김지훈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서도진과 박순용을 찾았다. 수술 준비를 하라는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희한한 표정을 지었다.

‘휴가는 어떻게 하고, 또 수술을 들어가시는 거야?’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김지훈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어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3년차들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손일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훈아, 진상미 환자 수술한다고? 그 환자 아무 이상도 없다고 들었는데, 아니야?”

“복강경으로 진단적 개복술을 하기로 했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 방법인지 빤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인을 발견한다면 모르지만, 반대라면 집도의는 물론 퍼스트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뭔 일이야? 그러면 너 이 수술도 들어갈 거야?”

“에휴! 그래야 할 것 같다. 오전에 수술한 애도 있는데, 얼굴 한 번 더 볼 시간도 생기고 차라리 잘됐어.”

또 침묵이 흘렀다. 김지훈이 들어간다니, 이준영 교수와의 수술은 피했지만 생각할수록 웃긴 일이었다.

이경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피식 웃기만 했고, 손일석은 아예 미친놈 취급을 했다.

“이 자식이 완전히 맛이 갔네. 너 휴가 중이야, 인마. 내년에는 손 놓을 때라 휴가도 없어. 이번이 마지막 휴가라는 건 알지?”

“알아. 나도 괴롭다.”

‘4일 내내 의료봉사를 해야 할 운명이었나 보네.’

김지훈이 한숨만 푹푹 쉬었다. 이준영 교수만 있다면 휴가 중이라고 말은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장인이 될 양반까지 가세했으니 피할 방법이 없었다.

손일석이 입술을 모은 채 눈가를 좁혔다.

“너 혹시 이준영 선생님께 말하기 곤란해서 그래? 음! 그런 거면 말만 해. 경석이 형이 말해 줄 거야. 대신 수술은 내가 들어가 줄게.”

“뭐? 내가 뭘 한다고?”

“형! 형이 3년차 치프잖아. 이준영 선생님이 아무리 무서워도 치프가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이경석이 눈을 부라렸다.

“누구 죽일 일 있어? 이 자식이 아주 이럴 때만 치프를 찾네. 지훈이랑 제일 친한 놈이 너니까 니가 말해.”

“예? 이건 의국원의 권익과 복지를 위한 일인데 사적인 관계를 대면 안 되죠. 그리고 수술은 내가 들어간다니까요.”

“내가 들어갈 테니까 니가 말해.”

둘이 티격태격했다.

수술 중에 타는 것쯤은 면역까지는 아니더라도 툭하면 겪는 일이었다. 반면 이준영 교수에게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무뚝뚝한 얼굴에서 나오는 묵직한 목소리는 지금도 적응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입맛만 다셨다.

“에휴! 배 속에 뭐가 들었는지 내가 궁금해서 들어가야겠습니다. 둘 다 그만 싸우세요.”

“그, 그럴까?”

이경석의 어색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외래로 향했다. 이미 이준영 교수가 내려와 있었다.

고성문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 교수 말 들어 보면 확실하게 뭔가 있네. 나도 복강경 수술을 어떻게 하는지 볼 겸 수술 참관해도 될까?”

“그러시죠. 앞으로는 라파로가 대세 중의 하나가 될 겁니다. 응용 부분도 무궁무진하고요.”

“고마워. 안 그래도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이참에 잘 봐 두고, 우리 병원에 라파로를 도입하는 걸 당겨야겠어.”

“라파로 하시려고요?”

“시대에 뒤떨어질 수는 없잖아. 그전에 일단 기회가 되는 대로 먼저 배워야지.”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이준영 교수와 고성문의 말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잘난 의사도 도태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셋이 함께 수술 방으로 향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쨌든 배를 열고 손으로 직접 복부 내 장기를 확인할 때와 같은 순서를 따라야 할 것이다.

곧 진상미 환자가 수술실로 옮겨졌다. 잔뜩 긴장하면서도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8년이란 세월과 점점 심해지는 통증은 개복의 두려움보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선생님, 교수님께 말씀 들었어요. 제가 왜 이렇게 아픈지 꼭 좀 원인을 찾아 주세요.”

“죄송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각오하고 있어요.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도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하고도 원인을 못 찾는다면 정신과 치료라도 열심히 받아야죠.”

이제야 진상미의 눈가에 두려움이 강하게 스쳤다.

김지훈 역시 불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다.

‘환자분,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8년 동안 겪은 고통을 없애고 말 겁니다.’

김지훈이 입술을 꾹 다물고는 진상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희미하지만 편안하고 신뢰가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진상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김진호 교수가 들어오며 묘하게 웃었다.

“김지훈, 넌 어떻게 휴가를 병원에서 보내?”

“상황이 그렇게 됐습니다. 선생님은 휴가 다녀오셨죠?”

“나야 잘 갔다 왔지. 아까 수술한 애는 괜찮아?”

“예. 별일 없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취 준비를 했다. 막 정맥 마취제를 주사기에 재고 인공호흡기를 점검하려는 찰나, 갑자기 진상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선생님!”

진상미가 이를 악물었다. 김지훈의 손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잡았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또 발생한 것이다.

띠띠띠띠띠띠!

격심한 고통으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김지훈은 물론 김진호 교수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진호 교수가 서둘러 마취를 시작했다. 다행히 깊은 마취에 빠진 진상미의 심장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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