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전공의도 의사다 Ⅱ (2)
숱한 교수들을 놔두고 3년차인 김지훈에게 진료를 받고 싶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더구나 전공의는 입원 환자를 단독으로 진료할 수 없다.
8년이나 병원을 전전했는데, 혹시 대학 병원의 체계를 모르는 것일까?
“환자분, 전 전공의 3년찹니다. 제 파트 교수님께서 보시는 환자만 볼 수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을 믿고 싶어요. 정신과 진단을 받은 후,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선생님뿐이에요. 선생님과 함께 회진을 도는 교수님도 제게 관심을 가지실 거라고 믿어요.”
결국 이준영 교수 앞으로 입원을 해 치료를 받고 싶다는 말이었다.
처음 내원했을 때라면 모르지만, 전종훈 교수 앞으로 입원해 있는 이상 담당 의사를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방금 전에 언성까지 높였다.
난감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지 못하자 진상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잠시 눈길을 주던 진상미가 갑자기 8년 전의 일을 꺼냈다.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진료와 관련이 있다면 모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을 함부로 들을 수는 없다. 반면 정신과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유용한 정보를 얻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런 말을 복도에서 주고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환자분, 병실로 가시죠.”
김지훈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진상미는 진평호 회장의 조카였다. 젊어서 부모를 모두 떠나보낸 후, 개인 비서는 아니었지만 마치 집사처럼 지근거리에서 진평호 회장의 수발을 들었다.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신임을 얻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고가의 선물을 내밀며 진평호 회장에게 줄을 대 달라는 사람까지 생겼다.
점점 욕심이 커져 갔다. 어느 때부턴가 스스로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여기기 시작했고, 실제로도 그런 것처럼 행동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돈은 물론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7년 정도 살았네요. 그런데 8년 전 이맘때쯤 갑자기 참기 힘든 복통이 찾아왔어요.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회장님이 불편한 눈치를 보였지만 사정사정해서 허락을 받고 온갖 검사를 다 받았어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곧 통증까지 가시자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다.
그때 역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 병문안을 왔다. 귀찮을 정도였지만 이게 지금까지 노력한 결과라는 생각에 도리어 그 상황을 즐겼었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복통이 찾아왔다.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지만 이상이 없다는 말만 믿고 어떻게든 버텼다. 그 덕인지 진평호 회장의 신임은 더욱 단단해졌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자신을 대우했다.
“욕심을 너무 부렸나 봐요. 어느 날부턴가 복통이 잦아지면서 어떤 약을 먹어도 통증이 가시질 않기 시작했어요. 결국 다시 입원을 했고, 그때도 이상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네요. 못마땅해하는 회장님 눈치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일을 하려고 했는데, 뭐가 문젠지…….”
진상미가 잠시 말을 끊었다. 착잡한 눈빛으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4년 전부터는 한 달 사이에도 몇 번씩 통증이 찾아오고, 심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팠어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죽을병에 걸렸는지 알았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점에 도달했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그때마다 입원을 했다. 전종훈 교수에게 전적으로 몸을 맡겼지만 상태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당연히 진평호 회장의 수발을 들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진평호 회장 곁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의 관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언제나 웃음을 보였던 사람들이 냉담한 눈초리로 비웃기까지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3년 전에 정신과 진단까지 받았다. 강박증과 우울증이 겹쳤다는 말에 급기야 가족들까지 외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의사인 전종훈이나 진상원은 물론, 진평호 회장까지도 고개를 돌렸다.
10년이 넘게 수발을 들었으면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이라도 외면하진 못할 텐데, 눈길도 주지 않는 모습에 깊은 절망과 배신감을 느꼈다.
“그때 누구에게도 진상미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단지 진평호 회장의 곁을 지키는 사람만이 중요했던 거죠. 정말 죽고 싶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의 극단적인 변화는 더욱 극심한 복통, 불면과 스트레스를 몰고 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입원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자주 입원을 한 탓인지 의사들마저 달라졌다.
정신과든 전종훈 교수가 있는 일반 외과에 입원을 하든, 언제부턴가는 통증을 아무리 호소해도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깊은 밤이면 간호사들도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다.
진상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여기까지 오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젠 입원하기도 쉽지 않더군요. 어쩔 수 없이 전 교수를 찾아왔는데 선생님을 만났네요. 건강해져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예전 생활로요?”
“아니요. 전 교수와 상원이가 날 어떻게 대하는지 보셨잖아요. 내가 얼마나 잘못되고 허황된 인생을 살았는지 뼈저리게 느낀 세월이었어요. 내 헛된 꿈을 위해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을 보면서도 그냥 지나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회장님이 다시 날 찾는다고 해도 이제는 떳떳하게 진상미로서 살고 싶어요.”
김지훈이 눈가를 비볐다. 이제 41살인데 참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평호? 그 사람이 큰아버지였어? 금경태가 신장을 이식하려고 억지를 썼을 때 가만히 있는 걸 보고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서연이 아버님 같은 분들은 왜 그렇게 보기 힘든 걸까?’
어찌 됐든 상관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정신과 입장에서는 정말 귀중한 병력이자 과거력일 것이다.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어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지부터 확실하게 알아야 했다.
무엇보다 조금의 편견도 없이 복통의 정확한 원인과 진단을 내려 줄 의사가 필요했다.
생각나는 교수는 딱 둘이었다.
우상복부 동통과 관련된 파트여야 했다.
‘간담도 아니면 위장관 쪽이니까 전종훈보다는 훨씬 정확하고, 확실하게 봐주실 수 있을 거야. 환자 상태를 들으시면 동의는 하실 테지만, 어떻게 파트를 옮기지?’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잠시 고민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도 될지 모르지만 다른 방법이 없네.’
“환자분, 일단 퇴원을 하시고 다음 주에 이준영 선생님 앞으로 진료 예약을 해 주세요. 그리고 동시에 정신과 진료를 꼭 받으셔야 합니다. 강박증과 우울증은 우리 과가 감당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될까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요.”
한동안 고민을 하던 진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국으로 돌아오던 김지훈이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말 애먼 짓을 한 건지도 몰랐다.
‘어후! 전종훈이 난리를 치면 어떻게 하지? 스승님도 한 소리 하실지 모르는데 큰일 났네. 그놈의 반사통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에휴! 좋게 생각하자. 환자 하나 살릴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눈가를 찡그린 채 의국에 들어서자마자 이경석이 어깨를 잡아끌었다.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지훈아, 아무리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교수하고 그러면 어떻게 해? 인마, 더구나 전종훈이잖아. 모르긴 몰라도 내일 한바탕 난리가 날 거다. 금경태가 가만히 있겠어? 넌 그냥 아무 소리 말고 입 꽉 다물고 있어. 여기서 문제가 더 커지면 너만 손해야. 알았어?”
가슴이 답답해졌지만 도리가 없었다.
“예, 알았어요.”
“근데 왜 그런 거야?”
진상미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빼고는 모두 설명을 했다. 이경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그놈의 집안은 왜 그러냐? 어쨌든 겉보기에는 니가 잘못했다고 보일 수도 있으니까 내 말대로 해. 악어나 전종훈이나 정말 있어서는 안 될 놈들이네. 그런 것들이 교수라고. 에이! 그딴 놈들 때문에 니가 왜 욕을 먹어야 되냐? 더러워도 조금만 참지.”
이경석의 마음이 고마웠다.
뒤늦게 들어온 유석재와 홍재순도 욕을 한바가지 퍼붓다 말고 무척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든든했다.
“제 걱정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슨 욕을 먹든 가만히 있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니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넌 그냥 조용히만 있어. 금경태까지 난리를 쳐도, 전종훈이 그동안 한 짓이 있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전공의들 인격적으로 모욕한 거 간단한 문제 아닐 거다. 나도 가만히 안 있겠지만, 가장 많이 당한 일석이가 입을 열면 전종훈도 꼼짝 못할 거야.”
이경석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정말 3년차 총치프다웠다.
문득 고경아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전종훈 교수와의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밤새 걱정을 할까 봐 끝내 말하지 못했다.
(이번 주 정말 힘들었죠? 하루만 지나면 휴가니까 힘내세요. 그리고 아빠가 저녁 같이 먹자고 곧장 집으로 오래요. 내일 2시쯤에 출발하면 충분하겠죠? 김밥 쌀 거니까 점심은 먹지 말아요.)
의료봉사를 가야 하지만 휴가는 휴가다. 은근히 들뜬 고경아의 목소리에 더더욱 오늘 일을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김밥이라는 소리에 웃음이 나오긴 했다.
***
불길한 예측은 항상 현실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무슨 일인지 토요일 오전 회진이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시작됐다.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 상당히 굳어 있었다. 시간이 없었던 탓에 전종훈 교수와의 일을 얘기하지 못했다.
늦은 회진에 이어 주말 집담회까지 취소됐다.
사달이 난 것이 틀림없었다.
이경석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고, 김지훈은 가슴만 바짝바짝 태웠다.
유석재와 홍재순이 툭툭 어깨만 두드렸다.
금경태 과장이 모든 교수들을 집담회실로 불렀다. 웃는 것도 아니고, 심각한 것도 아닌 것이 뭔가 묘한 표정이었다.
‘결국은 사고를 치는구만. 어쨌든 교수와 언쟁을 벌일 정도로 큰 놈이 있다는 게 내겐 잘된 일이야. 라이벌이 될 만한 놈을 잘못 키우면 신현수가 절대 못 큰다는 걸 신동석이 알아야 외과 센터 건립에 속도를 더 내겠지. 겸사겸사 김지훈의 기를 확 죽여 놓으면 이준영도 속이 편하지는 않겠지?’
“김지훈이 전 교수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는 말을 회진 전에 다들 들었겠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자세하게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 교수, 자세히 설명 좀 해.”
“예, 과장님. 제 환자 중에 진상미라고 있습니다. 아픈 곳도 많고, 제 처형이기까지 해서 신경을 무척 쓰고 있었습니다. 병원을 옮기기 전부터 제가 쭉 봐 왔고요. 그런데 환자 치료를 두고, 이번에 처음 환자를 본 놈이 자기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눈을 치켜뜨고는 바락바락 대들더군요.”
얼굴이 시뻘게진 전종훈 교수가 입에 게거품을 물어 가며 흥분을 금치 못했다.
“이경석이 말리지 않았으면 주먹이라도 들 기세였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기가 막히고 창피해서 정말 말을 꺼내고 싶지도 않지만, 본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죠. 이참에 김지훈은 물론 전공의들 기강까지 확실하게 잡아야 합니다.”
이준영 교수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징계를 먹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절대 교수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할 김지훈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간의 모습을 볼 때 전종훈 교수의 말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과장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혁민 교수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유석재에게 간략하게나마 얘기도 들었다. 잘잘못을 떠나 일단은 교수와 전공의 간의 충돌이었다. 김지훈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뜻밖이네. 전 교수, 내가 전공의 트레이닝을 맡고 있으니까 책임지고 해결하면 되겠나?”
“징계를 해야 합니다.”
“꼭 그래야 하나?”
“전공의가 교수한테 덤볐는데 당연한 일 아닙니까?”
순간 이혁민 교수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알았어. 단, 김지훈은 물론 그때 옆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부터 먼저 들어야겠어. 그게 순서 아니겠나?”
순간 전종훈 교수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선생님, 저 교숩니다. 제 말로 부족하십니까?”
“부족하진 않아. 하지만 이건 정직까지 시킬 수 있는 사안이야. 그렇게 되면 수련 시간 부족으로 내년에 전문의 시험을 볼 수도 없는데, 전 교수 말만 듣고 징계를 할 수는 없잖아. 과장님, 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모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이혁민 교수가 ‘확실하게’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금경태 과장의 눈가에 살짝 주름살이 생겼다.
‘쯧쯧! 내가 들어도 네 말에 어폐가 있는데, 당연히 징계를 해야 한다는 소리는 왜 해? 정말 아무 생각 없는 놈이네. 하지만 내가 손해 볼 일이 없으니 이걸 어쩌나. 서로 물고 뜯어. 진평호가 병원을 접수하고 나면 전종훈이 난리를 칠 테니까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어.’
바둑으로 치면 꽃놀이패였다. 누가 이기든 득이 되면 됐지 손해는 없었다. 단, 과장으로서 적당히 마무리하려 한다는 표시 정도는 할 필요가 있었다.
“이 교수, 잠깐만. 김지훈은 내가 적당히 훈계를 할 테니까 이쯤에서 그만하지. 전 교수도 좀 참아. 젊으면 그럴 수도 있잖아. 이런 일 키워서 좋을 게 뭐가 있어?”
이 정도 했으면 충분했다. 이혁민 성격상 이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김지훈이 정말 잘못했다면 그에 준하는 징계를 내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송재덕 교수가 손을 마구 흔들었다.
‘경석이 말하고는 완전히 딴판이네. 전종훈 저놈은 창피한 것도 모르고 전공의들 탓만 해? 못된 놈. 이참에 버릇 좀 고쳐야겠어.’
회진까지 오후로 미루고 이경석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었다. 백번 양보해도 김지훈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교수도 교수 나름이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어디 전공의가 교수에게 덤벼? 김지훈이 잘못한 게 있으면 당연히 책임져야지. 암! 그래야지. 이 교수, 빨리 갔다 와. 잘못한 놈은 내 가만히 안 둘 거야. 금 과장도 이렇게 넘어가면 안 돼. 정직? 그보다 더한 징계라도 먹어야 할 놈은 먹어야 해. 그치? 신 교수, 내 말이 맞지? 잘못한 놈은 혼나야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누구보다 송재덕 과장을 잘 아는 교수들이었고, 말속에 숨은 뜻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럼 한 시간 후에 다시 모이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준영 선생님, 김지훈이 선생님 파트니까 함께 가시죠.”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숙이고는 집담회실을 나갔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뒤를 따르는 이준영 교수의 모습에 금경태 과장의 입가가 서서히 말려 올라갔다.
이준영 교수와 이혁민 교수가 이경석에게 당시 상황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그때 근무를 했던 간호사들에게 전화까지 걸어 재차 확인을 했다. 남은 일은 김지훈에게 직접 말을 듣는 것뿐이었다.
“김지훈이 들어오라고 해라.”
여전히 교수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의국으로 들어가던 김지훈이 심호흡을 하고는 입술을 꽉 물었다. 있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면 되는 일이었다.
다만, 스승과 멘토인 교수들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김지훈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교수들 맞은편에 앉았다. 묘한 의미가 담긴 시선들이 오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