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전공의도 의사다 Ⅱ (1)
그날 밤, 의국에 남아 논문을 정리하던 김지훈이 콜을 받았다. 진상미 환자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모양이었다.
원래 전종훈 교수는 이혁민 교수 파트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해당 파트 1년차가 먼저 봐야 했다. 하지만 이미 한 말도 있는 데다 담당 1년차가 응급실에 내려간 터였다.
‘논문만 보려고 하면 콜이 오네.’
입맛을 쩝쩝 다시며 병실로 향했다.
경제적인 여유는 충분한지 1인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삭막했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도 없었고, 그 흔한 난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진상철 교수까지 가족 중 3명이나 의사로 근무를 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환자분, 많이 아프신가요? 배 좀 보겠습니다.”
복통으로 새우등을 한 진상미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너도 전종훈에게 잘 보이려고 내게 신경을 쓰는 거겠지? 그래야 아무 소용 없어. 더 이상 매달릴 곳이 없고, 진통제라도 잘 놔 줘서 온 것뿐이야. 전종훈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 너도 다신 내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을 거야.’
그동안 어느 병원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괜히 시간만 잡아먹지 말고 진통제나 줘요.”
김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 악어 일가의 특징인 모양이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대로 나오고 싶었지만 그놈의 반사통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환자에 대한 의사의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배부터 본다고 했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힐끗 시선만 준 진상미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통제나 달라고.”
“환자분, 배부터 본다고 했습니다. 협조를 안 하는 환자에게 진통제를 놔 줄 수는 없습니다.”
그제야 진상미가 몸을 돌렸다. 복통이 상당히 심한지 다리를 펴지 못했다.
정신과 질환으로도 실제와 같은 통증을 느낄 수 있다고 배웠지만 어쩐지 감이 안 좋았다.
김지훈이 지그시 우상복부를 눌렀다. 진상미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꽉 눌렀던 손을 빠르게 떼자마자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응급실에서와 똑같은 반응이었고, 위치마저 동일했다.
‘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왜 정신과 진단만 있지? 혹시 진통제 중독인가? 그럼 반사통이 뭔지 알고 아픈 척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경우라면 촉진할 때마다 위치가 변해야 할 텐데 이상하네.’
다시 한 번 촉진을 했다. 정확하게 똑같은 자리에서 반사통이 나타났다.
“아프다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거야? 진통제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간호사한테 말만 하면 되잖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식은땀까지 흘렸다.
‘어따 대고 자꾸 반말이야? 이 집안 피에 문제가 있네. 그나저나 정말 반사통을 느끼는 것 같은데, 왜 모든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는 걸까? 진통제는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순간 말투가 심하게 거슬렸지만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 반사통의 정체와 원인이 점점 궁금해졌다.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당장은 다른 방법은 없었다.
어차피 수술의 수 자도 안 나온 상황인 데다 급해 보이지도 않았다. 일단은 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김지훈이 인터폰을 들었다. 곧 연락을 받은 간호사가 병실로 와 진통제를 투여했다. 만에 하나 진통제 중독이라도 마약류가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일이십 분은 있어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물끄러미 진상미를 보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5분도 안 돼 다리를 쭉 펴며 온몸을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정말 이상하네. 그동안 진통제를 무지하게 맞았으니까 효과가 점점 더 약해져야 하는데 바로 좋아져? 이렇게 되면 저절로 좋아졌다는 말이잖아. 그럼 반사통은?’
진상미의 짜증을 무릅쓰고 다시 촉진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동일한 위치에서 반사통이 느껴졌지만,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해졌다. 진통제 때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냥 신경 끊고 전종훈 교수가 알아서 하게 놔두면 되는데 공연한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정신과 질환을 두고 엉뚱한 추측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잠시 진상미의 상태를 보던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쉬며 의국으로 돌아갔다.
진상미가 밤새 두 번이나 더 복통을 호소했다. 그때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직접 진찰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종훈 교수와 악어가 밉다고 해도 진상미는 가족일 뿐이었다. 성격에 문제가 있는 환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의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사에게 주어진 의무였다.
더구나 반사통은 수술을 해야 할 배라는 의미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해야 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문이 깊어졌다.
정확하게 똑같은 부위에서 반사통이 나타났고, 진통제의 효과는 의심스러웠다. 5분 만에 사라졌던 통증이 한 번으로는 조절이 되지 않아 두 번을 투여해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의심되는 질환조차 없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8년 동안 병원을 다닌 환자지만 빠트린 게 있을 수도 있어. 조금만 더 보자.’
하루가 더 지났다. 진상미의 증상과 반응은 여전했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시간만 맞으면 진상미를 찾았다. 때론 가운을 입고, 때론 수술복 차림으로 나타나 반사통이 정말 확실한 것인지 확인했다.
담당 일이 년차에게도 통증을 호소하면 반드시 진찰을 하고, 노티를 하라는 오더까지 내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났다.
전종훈 교수는 수술 때마다 여전히 짜증을 부렸고, 진상미 환자에 대한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파트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회진조차 돌지 않은 것 같았다. 악어 역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가족인데 가족이 아니네. 도대체 어떤 사이야? 이 정도면 애초에 입원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때문인지 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느새 금요일이 왔다.
김지훈이 아침부터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거대한 바윗덩어리처럼 무거워진 피곤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이제 하루만 지나면 휴가라는 사실에 불현듯 조바심이 난 것이다.
‘확실히 뭔가 있어. 휴가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이준영 교수와 회진을 돌고 난 김지훈이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전종훈 교수에게 말은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 진상미 환자분 문제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진상미? 왜?”
“아무래도 복통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뭐? 너 계속 진상미를 보고 있었던 거야? 응급실에서 입원시켰으면 끝이지, 니 파트도 아닌데 도대체 뭘 한 거야?”
말 한마디에도 짜증이 팍팍 실려 있었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환자를 위한 일이었다.
“말씀드리지 않은 점은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김지훈이 그동안 진찰을 하며 의문이 든 증상들을 설명했다.
전종훈 교수의 얼굴에까지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짐작은 했지만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다.
‘가족한테도 이러면 도대체 다른 환자들은 어떻게 생각한다는 거야? 최소한 표정이라도 감추는 게 예의 아닌가?’
“그래서? 뭘 어쩌자고? 너 차트는 다 읽어 봤어?”
“예. 다 확인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증상과 진단이 맞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일단 정신과 진료를 다시 받고, 복부 검사도 재시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종훈 교수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금경태 과장이 잘 보라는 말을 괜히 한 게 아니었네. 이렇게 낄 때, 빠질 때를 모르니 마음에 들 리가 있나.’
“김지훈, 넌 니 파트나 신경 써. 왜 내 환자까지 건드려? 혹시 너 병원에 남고 싶다더니, 돈 벌어 주고 싶은 거냐? 이 새끼가 벌써부터 아부를 할 생각을 하네. 그런다고 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는 소리야, 인마. 쥐뿔도 없으면 주제라도 알아야지.”
도대체 왜 이런 말까지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못한 일은 없었다. 도리어 파트가 다른데도 신경을 썼다고 좋아해야 할 일이었다.
더구나 사이가 좋든 나쁘든, 자신의 가족을 걱정해서 한 말인데 자존심을 꺾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뭐? 아부? 주제를 알라고?’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이대로 넘어갈 수도, 더 이상 참을 수도 없었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교수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하는 이상 흥분은 금물이었다. 머리와 가슴을 차갑게 유지해야 했다.
김지훈이 전종훈 교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교수님 파트 환자를 말도 안 하고 본 것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분명히 환자에 대해 말씀을 드린 건데,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나직하면서도 또박또박한 목소리였다.
전종훈 교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은 교수고, 김지훈은 전공의다. 문제가 커지면 피해를 보는 쪽은 무조건 전공의인 사회가 바로 의사 사회였다. 더구나 막말을 하는 교수가 자신만도 아니었다.
그동안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고, 경원시하던 전공의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였다. 김지훈은 수술 중에 지적까지 한 놈이었다.
전종훈의 입가가 말렸다.
‘이 새끼 봐라. 너 잘 걸렸어.’
“김지훈, 지금 뭐하는 거야? 너 어디서 감히 그따위 소리를 해? 내가 교수로 안 보여?”
복도가 울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들으면 김지훈이 큰 실수를 한 줄 알 것이다.
이 정도면 당연히 꼬리를 말아야 했다. 그런데 김지훈이 도리어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따위 소리? 하지도 않은 말을 꾸며 내고 싶은 겁니까? 우리 역시 의사고, 당신이 교수라고 해도 마음대로 욕하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전 분명 진상미 환자의 치료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하셨죠? 아부한다는 말도 모자라 주제를 알라고 하셨습니까? 환자들 두고 아부와 주제를 알라는 말이 도대체 왜 나옵니까? 진상미 환자가 왜 아파하는지 고민이나 해 보셨습니까?”
김지훈의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간호사들까지 모두 일어났다.
예상치 못했던 행동에 흠칫 놀라던 전종훈 교수의 눈이 돌아갔다. 이건 하극상이었다. 전공의가 감히 자신에게 목소리를 높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이 새끼가 정말! 너 옷 벗고 싶어? 어디서 전공의 새끼가 교수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몇몇 교수들이 널 예뻐한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어?”
여기서 한마디만 되받아치면 정말 큰 사달이 날 상황이었다. 그 점을 빤히 알고 있을 텐데도 김지훈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이경석이 재빨리 달려왔다.
“전종훈 교수님, 참으시죠.”
“넌 뭐야? 이거 안 놔?”
“지훈이가 뭘 잘못한 것 같은데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지훈아, 너 뭐하고 있어? 이준영 선생님이 찾으시니까 빨리 외래로 내려가 봐.”
김지훈이 버티고 서 있자 이경석이 인상을 팍팍 쓰며 소리를 질렀다.
“뭐해? 인마! 빨리 외래 가 봐. 급하다고 하셨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승인 이준영 교수가 급히 찾는다는데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눈가를 좁힌 김지훈이 입을 꾹 다물고는 돌아섰다.
“저, 저 새끼가 이젠 인사도 안 하네. 어휴!”
“선생님, 참으시죠.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경석이 길길이 날뛰려는 전종훈 교수를 붙잡고 의국으로 들어갔다. 갑갑하기만 한 일이었다.
연거푸 심호흡을 한 김지훈이 외래로 향하다 말고 가볍게 콧등을 찡그렸다. 진상미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친척이어도 그렇지, 저런 사람을 의사라고 믿고 찾아오다니 당신도 참 불쌍한 사람이네요. 아니지. 애초에 서로 가족이라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저러지도 않았겠지.’
터벅터벅 외래로 향했다.
진료실 앞에 서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준영 교수가 자신을 찾은 적이 없다는 외래 간호사의 말에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경석이 형, 문제가 커질까 봐 그런 거예요? 제길! 교수와 붙어 봐야 나만 손핸데 참았어야 했나?’
문득 고경아의 얼굴이 스쳤다. 장인어른과 가족들까지 생각났다. 욱하고 올라온 것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토해 내면 잠깐은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 것이다.
오늘 일을 그냥 넘어갈 전종훈 교수도 아니기에 잘못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비굴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전공의도 엄연히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묵묵히 의국으로 다시 올라가던 김지훈이 눈빛을 굳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종훈, 당신은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써전이 될 테니까 그때 다시 봅시다. 당신이 의사로서 얼마나 자격이 부족한지 똑똑히 알려 주겠습니다.’
그래도 짜증은 짜증이다.
“에이! 정갑수에 악어에 금경태에 전종훈까지, 정말 왜 이러냐.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었나?”
투덜거리며 병동에 도착한 김지훈이 의국 문을 열다 말고 힐끗 복도 쪽을 바라보았다. 진상미가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선생님,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진상미가 먼저 말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목소리조차 달라진 것 같았다.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더 이상 일을 키울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전종훈 교수님과 상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혹시 제 치료 문제 때문에 서로 목소리를 높인 것 맞나요?”
김지훈이 입을 꾹 다문 채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네요. 전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도 이미 알고 계셨죠? 나하고 사이가 어떤지도 아셨으면 이런 일이 벌어질지 분명히 알았을 텐데, 왜 나한테 신경을 쓰는 거죠?”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어쩐지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한 겁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가요?”
지극히 당연한 소리일 뿐인데 진상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왠지 가슴이 무거워졌다.
문득 지금까지 병문안 온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환자의 성격이 문제인지는 몰라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최소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은 해 주고 싶었다.
“제가 섣부른 판단을 하는 건지 몰라도, 환자분의 복통에는 다른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원인이 있다고요?”
“예. 그런데 전 정신과 의사가 아닙니다. 그쪽 진단을 무시할 수만은 없네요. 먼저 정신과 진료를 다시 받은 후, 여러 번 찍으셨지만 복부 CT와 초음파도 새로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처럼 아무것도 안 나오면요?”
김지훈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저도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을 못했습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있다면 시도해 봐야죠. 전종훈 교수님과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 번은 더 기회를 가져 보세요. 우리 병원만 대학 병원은 아니니까요. 그럼 이만.”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새로운 병원을 찾는 편이 나았다. 공연히 씁쓸해진 마음에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자 했다. 그런데 진상미가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소매까지 잡았다.
“선생님,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다른 병원은 가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싶어요.”
김지훈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