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전공의도 의사다 Ⅰ (2)
첫 수술은 단순 유방 종물 환자였다. 병변 위치가 깊지 않아 유두 경계를 따라 2센티미터 정도 열고 간단하게 종물만 제거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김지훈, 조금 더 벌려. 인마, 하나도 안 보이잖아. 넌 어떻게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냐. 진짜 답답하네. 더 벌리라고, 인마. 내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안 들려?”
피부는 충분히 절개했다. 혹시나 몰라 정말 안 보이는지 슬쩍 고개를 빼며 수술 시야를 확인한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이혁민 교수라면 눈 감고도 할 정도였다.
‘솔직히 손이 그대로인 사람이 누군데. 에휴! 이 정도면 나도 쉽게 하겠다.’
이미 최대한 벌릴 수 있는 만큼 벌린 상태였다. 더 이상 힘을 주면 피부가 너무 늘어져 봉합 후 미관이 더욱 나빠질 것이 뻔했다. 차라리 절개를 더 하는 편이 나았다.
“선생님, 그러면 1센티미터 정도 더 여시죠.”
“뭐? 유방 수술은 미용 문제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걸 아직도 몰라? 나 참! 기본이 안 된 놈이 또 있었네. 너 이래 가지고 전문의 시험이나 보겠냐? 환장하겠네.”
‘어이구! 내가 환장할 지경입니다.’
괜히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놈의 입은 쉬지도 않았다. 말투며 택하는 단어를 보면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를 아예 타고난 것 같았다.
한 시간이면 끝날 수술이 30분도 더 지나서야 끝났다. 마치 메이저 수술이라도 한 것처럼 피곤이 몰려왔다. 그 짧은 시간에 들은 말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수술은 유방암 수술이었다.
이혁민 교수와는 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환자가 걱정되다 못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결국 유방을 절제하고 겨드랑이를 따라 임파선을 제거할 때는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지방 조직과 연조직을 너무 심하게 제거하고 있었다. 이혁민 교수가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 바로 그 부위였다. 숨어 있는 혈관과 신경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임파선까지 조심해야 할 구조물들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선생님, 너무 깊게 제거하시는 것 아닙니까? 나중에 팔에 부종이나 통증을 야기할 것 같습니다.”
“뭐? 너 지금 나한테 한 소리야? 이 자식이 3년차라고 눈에 뵈는 게 없나. 하라는 거나 잘해, 인마. 어디서 건방을 떨고 있어.”
어디를 건드렸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눈가가 벌게진 것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건 수술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후유증과 관계된 문제였다. 한 번 칼이 지나간 자리는 다시 복구할 수도 없다.
특히 유방암 수술에서는 암의 재발을 막는 것만큼이나 삶을 질을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유방 절제는 자궁을 잃는 것만큼 심한 정신적 충격과 상실감까지 가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이혁민 선생님은 이 정도 레벨까지만 제거하십니다. 그래야 부종을 막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이 자식이 진짜! 너 지금 나랑 수술하는 거야! 집도의인 내 판단에만 따르면 돼. 어디서 돼먹지 못하게 선생질이야? 그럴 거면 나가, 이 새끼야.”
욕까지 터졌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리며 인상을 쓰는 순간, 고경아가 제발 그만하라는 눈짓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순간이었다.
“아! 그만두든지 해야지. 전공의 새끼들한테 이런 말까지 들어가면서 수술을 해야 하나. 김지훈, 너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이러면 병원 생활 못하게 만든다. 주제를 알고 까불어.”
순간 가슴에서 불덩이가 솟구쳤다. 정말 한바탕 난리를 쳐 다시는 전공의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씩씩거리던 전종훈 교수가 제거 범위를 좁히고 있었다. 공교로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인 일이었다.
‘진작 이렇게 하지. 제길! 내가 참자. 이 인간 때문에 일반 외과를 하는 게 아니잖아. 그래도 배우는 게 있네. 이렇게 수술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
단지 한 고비를 넘긴 것뿐이었다. 이혁민 교수를 들먹인 탓인지 피부 봉합이 끝날 때까지 짜증 섞인 말이 멈추질 않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엉망진창인 분위기 속에 수술이 끝났다. 고경아의 눈을 보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신 쳐다보지 않을 것처럼 인상을 팍팍 쓰며 나가는 전종훈 교수의 모습에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지훈 씨, 참아요.”
“참긴 하는데 정말 힘드네요. 그동안 경아 씨도 힘들었죠?”
“난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동안 전종훈 교수에게 훨씬 더 많이 시달렸을 고경아가 웃고 있었다.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라는 말보다 백배는 더 위력적인 미소였다.
그때 희미하게 김지훈이라는 이름이 들렸다.
‘수술 방에 있는지 빤히 알 텐데, 도대체 누가 방송을 하는 거야? 다른 과에서 날 찾나?’
병원 내에서는 입원 환자들 때문에 방송을 최대한 줄인다. 전공의를 찾을 때 역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만 방송을 했다. 그런데 호출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전종훈 교수였다.
[김지훈, 환자 깼으면 빨리 옷 갈아입고 나와. 응급실에 환자 있으니까 꾸물거리지 말고.]
“어후! 정말 왜 저러냐? 근데 자기 파트 일이 년차 놔두고 나는 왜 찾아?”
짜증이 확 솟구쳤다. 같은 파트도 아닌 데다 방금 전까지 욕을 해 댔으면서 왜 찾는지 모를 일이었다.
응급실로 향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응급실 콜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당연히 일이 년차의 몫이다. 그런데 3년차인 김지훈을 먼저 불렀다는 것은 십중팔구 잘 아는 사람이 응급실로 왔다는 말이었다. 체면치레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추측이 맞는다면 어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확인하고 볼 일이었다. 응급실로 갈 수 있는 일이 년차가 없을 수도 있고, 어쩌면 3년차가 바로 보아야 할 환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순간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전종훈 교수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환자 한 명을 보고 있었다. 문제는 그 옆에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악어가 똑같은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저 인간은 또 뭐야?’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옆에 서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환자 상태가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복통이 무척 심한지 새우등을 한 채 몸을 펴지도 못했다.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까지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전종훈 교수의 말이 의외였다.
“다니던 병원 놔두고 여기까지 따라오면 어쩌라는 겁니까?”
“제부, 나 정말 아파요.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다는데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정신과에 입원하라고 했잖아요.”
“배가 아파 죽겠는데, 왜 자꾸 정신과에만 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도 방법이 없다고 그런단 말이에요.”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내가 일반 외과 의사란 거 몰라요? 어쨌든 지금 입원하고 싶다 이거죠? 에이! 나도 방법이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며칠 있다가 알아서 퇴원해요.”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호칭을 봐서는 서로 친척 간이 분명한데 오가는 말은 남이라고 해도 못할 말이었다.
영문을 알 길이 없는 김지훈이 눈만 껌벅거렸다.
“김지훈, 이 환자 바로 입원 처리해.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 하나 주고, 특별히 할 것은 없어.”
“예? 상태가 무척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차트 확인해 봐.”
찬바람이 불 정도로 냉랭한 표정으로 전종훈 교수가 돌아섰다. 환자는 아파 죽겠다며 아우성을 쳤다.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김지훈이 입을 열려 하자 악어가 어깨를 툭 쳤다.
“야, 넌 교수가 시키면 그냥 하라는 대로만 해. 어떻게 변하는 게 하나도 없냐. 매형, 그러게 얘는 왜 불러요?”
“이번 주는 이 자식이 내 수술 들어오는데 어떻게 해?”
정말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눈치를 보아하니 해당 파트인 이혁민 교수 파트 전공의들이 이리저리 구실을 대며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감히 일이 년차들이 3년차에게 일을 떠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4년차의 암묵적인 오더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옴팡지게 걸려들었다.
“에이! 매형이나 나나 빨리 병원 일이 해결돼야지 편해질 모양이네. 퇴근하기 전에 재수 없게 이게 무슨 일이야. 누나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약이나 잘 먹어. 김지훈, 넌 입원 처리나 빨리해.”
‘누나에 매형? 그럼 다 한 가족이잖아? 근데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아무리 성격이 나빠도 그렇지, 아프다는 누나한테 신경도 안 써?’
악어의 말에 더 어이가 없어진 김지훈이 입도 열지 못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손을 흔들었다. 간호사가 진통제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잠깐, 지금 진통제 주는 거예요?”
“네. 전종훈 교수님이 주라고 하셨는데요.”
“아직 주지 말아요.”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진찰도 하지 않고 진통제부터 줄 수는 없었다.
“환자분, 잠시 배 좀 보겠습니다. 아프시더라도 똑바로 누우시겠어요?”
“선생님은 누구세요?”
“저요? 일반 외과 3년차 김지훈입니다.”
환자가 인상을 쓰며 손을 저었다.
“전공의잖아. 됐어요. 교수님 좀 불러요.”
“전종훈 교수님이 이미 보신 거 아닙니까?”
“다른 교수 없어? 아파 죽겠는데 엉뚱한 말 하지 말고 다른 교수 좀 부르라고. 나 죽을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모를 일이었다. 술에 잔뜩 취했으면 모를까, 아무리 아파도 면전에서 함부로 말하는 환자는 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말까지 짧아졌다. 전종훈 교수와 악어의 있지도 않은 위세를 믿는지도 몰랐다. 이럴 때 물러서면 더욱 막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김지훈이 얼굴을 굳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내가 먼저 봐야 조치를 취해도 취합니다. 똑바로 누우세요. 아니면 전종훈 교수님을 다시 부를까요?”
어떤 말이 효과를 본 것인지 몰라도, 환자가 기분 나쁜 눈초리를 보이면서도 몸을 돌렸다.
우상복부에서 압통과 반사통이 느껴졌다. 복막염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청진상 들리지 않아야 할 장음이 미약하게 들렸다. 더구나 복막염이라면 통증을 막기 위해 배에 잔뜩 힘을 주기 마련인데 의외로 말랑말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다른 증상은 없었나요?”
“차트에 다 있으니까 확인해 봐요. 진통제라도 빨리 줘요.”
“복통에는 함부로 진통제를 쓰는 게 아니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전히 등도 펴지 못하는 환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 김지훈이 급히 차트를 확인했다. 처음 온 환자인 데다 전종훈 교수가 바로 보았는지 인턴 기록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대신 30센티미터도 넘게 쌓인 기록이 있었다. 다른 병원에서 가져온 의무 기록이었다.
진단명을 확인한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입술을 모았다.
41세 여자 환자. 진상미
건강 염려증을 동반한 강박 신경증
원인 불명의 복통을 동반한 우울증
상세 불명의 우상복부 동통
지난 8년 동안 오늘 보인 증상과 같은 증상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복부 초음파와 CT를 여러 번 찍었고, 모두 정상 소견이었다. 치료는 정신과 약과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이 다였다.
모든 면을 종합해 볼 때, 복통은 진단명에 따른 증상 중에 하나가 분명해 보였다.
‘정신과 진단만 있는데, 왜 우리 과에 입원을 시키는 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갑갑하네.’
잠시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직접 진통제를 들고 환자를 다시 찾았다. 그런데 환자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됐던 머리도 어느새 깔끔하게 빗은 채였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지금은 괜찮아요.”
쌀쌀맞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쓴맛을 다시던 김지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외과로 입원시키는 이상 보다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야 1년차도 문제없이 환자를 볼 것이다.
“혹시 본인이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 아세요?”
“알아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우린 일반 외과 의산데 당연히 문제가 되죠.”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지만, 차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환자 여부를 불문하고 우리나라 사람 정서상 정신과라면 손사래부터 치며 기분 나빠 하는 탓이었다.
“전종훈 교수와 상의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신경 안 써도 돼요.”
이제는 눈길도 안 주었다. 점점 더 냉랭해지는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정신과 질환을 가진 환자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도 몰랐다. 어쨌든 전종훈 교수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입원 처리하겠습니다. 혹시 복통이 또 심하게 느껴지시면 간호사에게 바로 말씀하세요. 제가 보고 진통제 투여를 결정하겠습니다.”
“그때마다 날 본다고요? 왜요?”
진상미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다소 의아한 표정이었다.
“항상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해서 원인도 항상 같다는 법은 없습니다. 입원하시는 동안 가급적이면 자주 진찰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지훈도 정신과 문제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반사통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단순 장염도 아주 심하면 일시적으로 반사통을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반사통 자체가 배 속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에 감별을 할 필요는 있었다.
잠시 김지훈을 보던 진상미의 목소리가 냉랭해졌다.
“마음대로 해요.”
도대체 환자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일이었다.
‘에휴! 생긴 걸로 봐서는 악어하고 사촌인 것 같은데 성질까지 비슷하네. 전종훈에 악어 가족까지 정말 안 좋다. 재수 옴 붙었다.’
그래도 환자는 환자다. 가족들에게 냉대를 받는 모습에 은근히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사정이 있든, 아픈 사람이 약자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더구나 살인범이라고 해도 치료가 필요하면 달려가야 할 직업이 바로 의사였다.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 중에 어떤 사람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그중에 흉악범이라도 있었을지 누가 알까?
하물며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라면 두말할 이유가 없었다. 우울증과 강박증은 사람의 성격을 이상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를 감정적으로만 대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근데 만약 악어가 아프면 지난 감정을 잊고 환자로만 대할 수 있을까?’
문득 든 생각에 김지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 솔직히 자신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진상미는 악어가 아니다. 전종훈 교수의 말대로만 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