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같은 수술, 같은 환자는 없다 (1)
수술 후 합병증 중 하나인 기계적 장 폐쇄가 확실했다.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가스가 장 속에 가득 차 복부 사진이 온통 까맣게 보일 정도였다. 서도진의 말대로 상당히 심각해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태였다.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네. 왜 이제야 병원에 오신 거야? 서연이 이 자식은 아버지 상태도 몰랐나?’
눈살을 찌푸린 채 사진을 보던 김지훈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장이 막힌 원인이 무엇인지가 중요했다. 단순히 장 유착 때문이라면 수술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윤재철은 위암 수술을 받았다.
혹시 재발한 것은 아닐까?
가슴이 서늘해졌다. 암이 재발한 환자들은 예후가 극히 불량하기 때문에 장 폐쇄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동안 정기적인 검진을 했을 테니 일단 최근 검사부터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도진아, 환자분 마지막 복부 CT 언제 찍었어?”
“5개월 전에 찍었습니다.”
서도진이 바로 복부 CT를 걸었다. 소장과 대장이 달라붙은 소견은 보였지만 다행히 어디에서도 재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 시행한 내시경도 깨끗했다. 그래도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도진아, 혹시 모르니까 CT 다시 찍자.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환자가 많은 거야. 에휴! 아픈 사람 천지네.”
지금도 응급실은 환자로 넘쳐났다. 모든 과 환자들이 뒤섞인 탓에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이제나저제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고통을 참고 있는 환자들의 눈길이 안타까웠다. 각자 자신의 과 환자만이라도 빠르게 보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윤재철이 응급실 끝에 누워 있었다. 위가 없는 탓에 노란 위액이 아닌 시커먼 담즙이 코 줄을 따라 거꾸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고, 그만큼 장 폐쇄가 심한 상태라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김지훈입니다. 사진을 보니까 장이 좀 막히셨네요. 많이 아프시겠지만 촉진을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을 만해요. 김지훈 선생하고 나하고 인연이 깊네.”
꽤 오래전에 봤는데 김지훈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웃음을 보이려 애를 썼다.
반면 배를 촉진하는 김지훈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복부 사진 소견보다 더 심각한 상태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님, 아프신 지 오래되셨죠?”
“이삼 일 정도 되긴 했지만, 이렇게 심해지기 시작한 건 오늘 아침부터예요. 급한 일이 있어 바로 못 왔는데 심한가요?”
의아할 정도로 너무 빨리 진행됐다. 장끼리 들러붙는 유착으로는 이런 진행을 보일 수 없었다. 확률이 극히 낮긴 하지만, 고무줄처럼 생긴 밴드 사이에 장이 갑자기 휘감겼다면 가능하기는 했다.
도리어 다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함부로 입 밖에 낼 말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살짝 말을 돌렸다.
“아버님, 이혁민 선생님께 외래 진료를 쭉 받으셨지만 응급실로 오셨으니까 이준영 선생님께서 먼저 보시게 될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노티를 받자마자 바로 윤재철의 상태를 확인한 이준영 교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혁민 교수와 함께 수술한 환자였기에 더욱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잠시 고민하던 이준영 교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분, 당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다만, 여러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일단 복부 CT를 추가로 찍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이혁민 선생에게 진료를 받으셨으니까 저보다는 이 교수에게 수술을 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 두 분을 모두 믿습니다. 원칙대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CT를 또 찍어야 한다니, 혹시 심각한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윤재철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재발에 대한 두려움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코 줄로 인해 목소리가 갈라진 탓인지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몇 달 전에 한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술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일입니다. 일종의 원칙이죠. 윤 선생, 아버님 불편해하시면 바로 말해요. 김지훈, 검사 빨리 챙기자.”
“예, 선생님. 서연아, 너무 걱정하지 마.”
윤서연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누구보다도 초조하고 불안할 것이다. 어쩌면 이삼 일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상태를 알았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김지훈도 안절부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마음은 급한데 오늘따라 응급실이 초만원이었다. 각종 검사들이 모두 밀려 언제 CT를 찍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김지훈이 결국 윤재철을 다시 찾았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검사가 너무 밀려서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점점 심해지는 통증에 코 줄이 주는 불편함까지 겹친 윤재철이 고개만 끄덕였다. 급기야 식은땀까지 뻘뻘 흘렸다.
수술 전에는 웬만하면 투여하지 않는 진통제까지 주사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CT를 찍을 수 있었다. 필름 현상까지 밀린 탓에 사진이 나왔을 때는 거의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나마 급한 일이 있었던 이혁민 교수가 때마침 도착해 다행이었다.
“김지훈, 환자는 어떻나?”
“통증이 좀 심한 상탭니다.”
“그래? 오늘 길도 그렇고, 응급실까지 왜 이리 복잡한지 모르겠네. 일단 환자부터 보자.”
윤재철의 상태를 먼저 살핀 이혁민 교수가 복부 CT를 확인했다. 당직실에 있던 이준영 교수까지 나왔다. 자세히 보기도 전에 나직한 탄식이 터졌다.
‘길어야 3일 전인데 왜 이렇게 심하지?’
장 폐쇄로 인해 대장과 소장이 일부분이 터질 것처럼 빵빵해져 있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상 소견이 하나 더 보였다.
이혁민 교수가 답답한 한숨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어떻게 보이십니까? 수술한 부위 하부에서 보이는 게 매스(Mass) 같지 않습니까?”
눈가에 잔뜩 주름을 만든 이준영 교수가 혀를 찼다.
“재발하기에는 너무 빠르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김지훈, 니는 어떻게 보이나?”
“장이 유착된 부위와 밴드들이 겹치면 저렇게 보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파선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재발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판단됩니다.”
“그래? 5개월 전에는 깨끗했으니까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겠지. 하지만 이런 경우 재발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보다 수술이 무난하게 될지 모르겠네. 선생님, 어떻겠습니까?”
“재발을 떠나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정말 쉽지 않아 보이네요. 미룰 수만 있다면 장의 부종이라도 가라앉은 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럴 시간은 없어 보이고 여러모로 힘들겠습니다. 지금까지 별문제가 없어서 안심을 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니까 당황스럽네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혁민 교수가 결정을 내렸다.
“김지훈, 스케줄 내자. 서도진이하고 같이 들어와.”
통상 삼사 년차 중 한 명이 수술에 들어오면 2년차는 들어오지 않는다. 세컨의 역할이 대부분 끌개에 국한되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수술이 무척 힘들거나 어렵다고 예상되면 세컨도 능력이 있는 전공의가 서야 한다. 결국 이번 수술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씀과는 달리 재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는 건가? 그렇다면 모르지만, 장 폐쇄 수술 자체를 힘들다고 하시는 건 또 뭐지? 제일 큰 문제는 수술이 아니라 수술 후의 회복과 치룐데, 알 수가 없네.’
의아한 일이었다. 장 폐쇄의 원인이 되는 유착 부위나, 혹은 밴드만 제거하면 끝나는 수술이었다. 경험상 서도진까지 들어와야 할 정도로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준영 교수까지 고개를 끄덕이다니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혁민 교수의 결정이었다. 서도진이 수술에 들어오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의아함이 떠나질 않았다. 스승과 이혁민 교수의 얼굴에서 췌장암 수술을 하기 전에 보았던 불안까지 보았기 때문이다.
‘정말 재발 가능성을 높게 보시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부 CT를 다시 찬찬히 살피던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보아도 재발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솔직히 방사선과가 아닌 이상, CT는 교수들보다 전공의들이 더 정확하게 판독하는 경우가 많았다.
곧 박순용이 스케줄을 들고 수술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동안 윤재철 환자를 다시 찾은 이혁민 교수가 현재 상태를 설명했다. 윤서연이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분, 일단 지금 바로 막힌 장을 풀어 주어야 하는 상탭니다. 첫 번째 수술을 워낙 크고 복잡하게 해서 단순한 장 폐쇄라고 해도 수술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응급실에 온 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갈수록 심해지는 통증에 이마까지 흠뻑 젖은 윤재철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수술이 쉽지 않다는 말에 불안을 느낀 것이다.
“혹시 다른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재발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윤서연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윤재철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미 첫 번째 수술부터 강한 의지를 보인 사람이었다.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5개월 만에 재발을 할 수도 있습니까?”
“극히 드무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우리는 만에 하나를 대비하고, 환자분도 본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아셔야 하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뒤에 서 있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이혁민 교수의 목소리에 감정이 거의 실려 있지 않았다.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무척이나 냉정했다. 문득 이준영 교수도 박평자 환자를 앞에 두고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환자에게 본인의 상태를 알려야 할 때 의사의 감정이 실리면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겠지? 더구나 개인적인 친분까지 있다면 더 그럴 거야.’
그대로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분명히 배울 점이 있었다. 의사는 환자를 대할 때 상황에 따라 이성과 감정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만사가 그렇듯 한쪽으로 치우치면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충분히 자신의 상태를 인지한 윤재철이 윤서연과 함께 수술 동의서를 작성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무려 4시간 가까이 지난 후였다.
사실 의사에겐 이런 일이 드물지 않았지만,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무척 화가 날 일이었다. 더구나 경증 질환도 아닌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윤재철도 딸인 윤서연이 의사이기 때문에 참고 있을지도 몰랐다.
수술 방 앞에서 환자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찬찬히 수술 과정을 머릿속에 그렸다. 첫 번째 수술에 들어갔었던 덕에 배 속이 어떤지 확실하게 안다는 것은 큰 도움이었다. 나름의 계획을 세우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복막을 열 때 장이 들러붙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부종이 심하니까 장을 만질 때 더욱 조심해야겠지? 소장과 대장이 정상 위치가 아닌 것만 기억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겠네.’
지금도 수술하기 어렵다는 이혁민 교수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으레 하는 말로 치부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장 폐쇄 수술이 메이저 수술보다 어려울 리가 없었다.
곧 윤재철을 실은 간이침대가 도착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윤서연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서도진과 박순용이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이며 수술실로 환자를 옮겼다.
윤서연이 그제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지훈아, 우리 아빠 괜찮겠지?”
“서연아, 너무 걱정하지 마. 재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그리고 이런 수술은 너도 많이 봤잖아. 금방 끝날 거야. 이혁민 선생님이 집도를 하시는데 걱정할 일이 있겠어?”
“지훈아, 나 정말 불안해. 나도 들어갈까?”
김지훈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알지만 의사라고 해도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족을 수술할 때는 안 보는 것이 좋다는 거 알잖아. 니가 들어오면 우리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 좋은 생각이 아니야. 걱정하지 말고, 친척분들과 같이 기다리고 있어.”
윤서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김지훈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윤서연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먹였다. 연락을 받고 온 친척들과 함께 있기보다는, 단 한 발짝이라도 아버지와 가까운 곳에 있고 싶은지 수술 방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취가 시작되자 윤재철의 의식이 빠르게 사라졌다. 환자복을 벗기고 복부를 소독하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살짝 마른 얼굴과는 달리 상당히 말라 있었다. 위를 모두 절제한 탓이었다.
‘수술 후에 회복이 잘될까? 의지는 누구보다도 강한 분이지만, 체력이 받쳐 줄지 모르겠네.’
눈앞에 닥친 수술보다 그 이후가 더 걱정이 됐다.
소독이 끝나고 곧 수술이 시작됐다.
이혁민 교수가 신중하게 기존의 수술 자국을 따라 배를 열었다. 피하지방층 역시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그 덕에 어렵지 않게 복막 직전까지 열었다.
이혁민 교수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복막을 살짝 열었다. 김지훈도 바짝 긴장했다. 복부 수술을 받았던 환자를 다시 수술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었다.
사람의 몸은 상처를 회복시킬 때 흉을 만든다. 배 속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상처가 난 부분에 장이 들러붙는다는 것이다. 또한 멀쩡한 장들도 외기에 노출되면 염증 반응을 일으키며 서로 달라붙게 된다.
따라서 복막을 열 때 기존의 절개 창을 따라 붙어 있는 장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함부로 칼을 댔다가는 복막을 여는 것과 동시에 장까지 함께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 폐쇄 환자의 장은 부어 있어 손상 부위를 봉합해도 제대로 아물지 않는다.
‘조심하자, 조심.’
김지훈이 조그만 절개 창에 집게를 걸어 복벽을 들어 올렸다. 이혁민 교수가 그 사이로 무영등의 초점을 맞추며 장이 붙어 있는지 확인했다. 예상대로 기존의 상처를 따라 길게 장이 붙어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심했다.
“위부터 아래까지 다 붙어 있네.”
이혁민 교수가 수술용 가위로 장이 없는 곳을 따라 복막을 열기 시작했다.
김지훈도 눈을 부릅뜨고 장의 위치를 확인했다.
한참 동안 씨름을 한 끝에야 복막을 모두 열 수 있었다. 걸린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장에 손상을 주지 않는 것이다.
‘휴우! 역시 섬세하시네. 이젠 좀 수월해지겠지?’
조심스럽게 리트랙터를 걸어 양쪽으로 당겼다. 서서히 복벽이 벌어지며 배 속이 드러났다.
그 순간, 김지훈은 물론 이혁민 교수까지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