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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442화 (442/1,329)

제9화 진정한 라이벌

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신동석이 전화기를 들었다.

“김 비서, 내가 일전에 말했던 자료들 내일 아침에 볼 수 있도록 준비해. 진평호 회장과 금경태 과장 것도 잊지 말고.”

‘금경태,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자식은 이용하는 게 아니야. 게다가 현수는 어려서부터 봐 왔고, 지금은 제자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짓을 해?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선만 지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이걸로 우리의 인연도 끝인 것 같군.’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신동석이 신현수를 보며 웃었다.

이런 일로 자식에게 굳은 얼굴을 보일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들 하나 참 잘 뒀구나. 우리 현수 덕분에 큰 실수를 막을 수 있겠어. 금경태 과장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네 말대로 지금은 최고의 외과 의사가 되는 일에만 매진했으면 좋겠구나.”

“예, 아버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이번 일로 인해 교수님들이나 의국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지훈이에게는 조금도 피해가 없도록 신경을 써 주세요.”

자식의 속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김지훈을 언급하는 순간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알았다.

“공론화하지 말아 달란 말이냐?”

“예.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 일이 알려지면 금경태 과장은 홍재순 선생님은 물론 지훈이까지 의심할 거예요. 그러면 제게도 도움이 안 되거든요.”

“음!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김지훈한테 왜 그렇게 신경을 써? 도움이 안 된다니,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냐?”

김지훈에 대한 생각은 단 한 번도 다른 사람 앞에서 꺼내 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있는 아버지에게만은 말해야 했다. 왜 일반 외과 의사로 살고자 하는지를 말이다.

신현수의 눈에 강인한 각오가 실렸다.

“아버지, 반드시 이기고 싶은 라이벌입니다. 지훈이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최고의 써전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투까지 변했다.

“지금 이기고 싶다고 했어? 김지훈이 그 정도로 뛰어나?”

신동석이 깜짝 놀라 물었다.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한 신현수가 이 정도로 인정하는 전공의는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현수가 콧등을 찡그렸다.

“제 자존심을 처음으로 뭉갠 놈이에요. 예전에는 얼굴도 보기도 싫었는데, 지금은 지훈이가 친구라는 게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안 그랬으면 지금도 제가 정말 잘난 줄만 알고 살았을 것 같아요.”

“친구? 지금 친구라고 한 거냐?”

“그 자식이 절 친구라고 하네요.”

신동석이 크게 웃고 말았다. 자존심을 뭉갠 김지훈을 친구라고 여긴다니, 자식을 잘못 보아도 한참 잘못 보았다. 어느 틈엔가 훌쩍 커 이제는 부모의 손이 필요 없을 정도까지 성장한 것이다.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신동석이 흐뭇한 표정으로 신현수를 보았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잘 컸다. 고맙다. 이제는 가정을 꾸려도 아무 걱정거리가 없겠어.’

“현수야, 서연이하고는 잘 지내지? 사돈 될 양반이 상견례 날짜를 잡자고 성화신데, 인사를 하는 게 어떻겠니?”

신현수가 눈가를 좁혔다. 윤서연과의 문제도 다시 생각해야 했다.

“아버지, 서연이 아버님 건강 문제도 있지만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요. 갑자기 서연이에게도 제가 아니라 이사장님 아들로 행세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지금이라도 진짜 제 모습과 마음을 보이고 싶어요. 그래야 서연이도 절 진심으로 사랑할 것 같아요.”

정말 놀라운 말의 연속이었다. 금경태 과장의 일만 아니면 오늘처럼 즐겁고 행복한 날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병원 확장 건으로 쌓였던 몸과 마음의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진 신동석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알았다. 사돈 양반께는 내 잘 말하마. 현수야, 오래간만에 아비랑 외식이나 하자. 갑자기 훌쩍 커서 그런지 도리어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우리 짜장면 먹을까?”

“좋죠, 아버지. 아! 빨리 나가야겠는데요. 기차 놓치면 시간 내에 구미 못 가거든요. 병원에도 잠깐 들러야 하고요.”

“병원에는 왜?”

“아버지와 나눈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버지와 아들이 허둥지둥 중국집으로 향했다.

아득한 기억 속처럼 아버지는 양파를, 아들은 단무지를 먹었다. 입가를 까맣게 물들인 채 말이다.

“현수야, 김지훈, 그놈 확실히 이겨야 한다.”

“예, 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 아버지 아들입니다.”

신현수의 목소리가 무척 밝았다.

***

일요일 점심 무렵, 박평자 환자를 치료하던 김지훈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수술 후 열흘이 조금 더 지난 오늘로 상처 치료가 다 끝났다. 주요 소화기관을 모두 건드렸기 때문에 가장 문제가 되는 식사마저도 별문제가 없었다. 곧 정상 식사를 해도 좋을 정도였다.

정말 췌장암 수술을 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경이적인 회복 속도였다. 많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회복을 향한 박평자의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와! 회복이 너무 빠르네요. 다른 환자분들도 이렇게만 좋아지시면 걱정이 없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박평자의 눈가에 잔주름이 잔뜩 생겼다.

“다 선생님 덕분이네요. 그러면 곧 퇴원하게 되나요?”

“우리 과 치료가 다 끝나면 내과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한 사이클에 일주일 정도 걸릴 테니까, 아무리 빨라도 이삼 주는 더 병원에 계셔야 할 겁니다.”

박평자가 살짝 콧등을 찡그렸다.

“항암 치료도 쉽지는 않겠죠?”

당연한 말이었다. 수술이 단기간에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이라면 항암 치료는 장기적인 압력이었다. 환자마다 다양한 부작용을 보여 단순한 구토나 오심부터 시작해, 심한 경우 며칠 만에 머리가 빠지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췌장암은 수술 후 예후가 나쁜 암에 속하기 때문에 항암제도 강력하게 투여했다. 한 달에 일주일씩 열두 번을 반복 치료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힘들었다.

하지만 박평자 같은 환자는 다를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를 종종 경험하곤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환자분처럼 의지가 강하신 분들은 거의 고생을 안 하세요. 똑같이 힘든 상황에 처해도 훨씬 잘 이겨 내시거든요.”

“내과에서 항암 치료를 해야 한다면서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약제나 방법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위암 환자는 우리 과에서 직접 항암 치료를 합니다. 그때 보면 환자분들의 의지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 실제로도 힘들고, 좋다는 말을 달고 살면 빨리 퇴원하시더라고요.”

“그럼 전 빨리 퇴원하겠네요.”

박평자의 눈가에 다시 웃음이 걸렸다. 정말 의지가 강하고, 긍정적인 환자였다.

“그럼요. 당연하죠.”

병실을 나온 김지훈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반 외과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했고, 환자는 놀랄 정도로 빠른 회복까지 보였다. 비록 항암 치료가 남아 있지만, 그 과정도 잘 이겨 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 과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치료를 다 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기분은 정말 좋네. 직장암 환자하고 혈관 수술한 환자는 괜찮은가?’

마침 손일석과 이경석도 환자를 보고 막 의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직장암 환자? 회복은 정말 잘되고 있지. 그것보다 송재덕 선생님 전화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오늘도 벌써 환자 어떠냐고 세 번이나 전화를 하셨네.”

천안 병원의 기억이 떠오른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중환자실에 환자가 있거나, 큰 수술을 한 환자가 있으면 한밤에도 툭하면 전화를 했던 송재덕 과장이었다. 서울에 올라왔다고 달라질 리가 없었다. 어젯밤 과음으로 아직도 눈이 벌건 이경석의 눈가에 졸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

“원래 그런 분인데 어떻게 하겠어요. 일석아, 내가 수술 들어갔던 환자는 어때?”

“괜찮아. 혈관이 벌써 벌떡벌떡 뛴다. 다음 주 후반이면 바로 투석에 이용할 수 있겠어. 그건 그렇고, 현수가 이사장님께 얘기를 했을까?”

손일석의 말에 김지훈이 눈가를 비볐다.

“그러게. 만일 얘기를 했다면 논문 문제까지 있는데 조용히 지나가지는 않겠지?”

“지훈아, 일석아, 일단 신경 끊어. 아무리 이사장님이라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당장 인사 조치를 할 수는 없을 거야. 책임을 물으려고 해도 거쳐야 할 곳이 많지 않겠어? 게다가 논문 빼고는 다른 일을 몰랐을 리도 없잖아.”

“그럼 그냥 묻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시끄럽게 일을 키운다고 잘 해결될까? 그리고 금경태 과장이 가만히 있겠어? 당장 홍재순 선생님이 타깃이 될 테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훈이 너나 교수님들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어.”

손일석이 쩝쩝 입맛을 다셨다.

“하긴 그러네요. 혼자 죽을 금경태 과장이 아니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임을 면하려 하겠죠. 그래도 지금처럼 행동하는 것은 막아야 하잖아요?”

“그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금경태 과장의 잘못을 빤히 알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최소한 교수들이 먼저 움직여야 전공의들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 잘못한 게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것도 쉽지 않다니 세상 참 희한해.’

답답한 가슴에 벌컥벌컥 냉수 한 잔을 비우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구미로 가고 있어야 할 신현수가 의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어? 너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구미 안 가?”

“응. 할 말이 있어서. 경석이 형, 유석재 선생님하고 홍재순 선생님은 어디 계세요?”

“현수야, 잠깐만 기다려. 연락하는 중이다.”

역시 손일석이다. 어느새 눈을 반짝이며 이미 전화기를 집은 상태였다. 신현수가 할 말이 있다며 치프들까지 찾는다면 빤한 일이었다. 이내 눈치를 챈 김지훈도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곧 유석재와 홍재순까지 모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신현수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오늘 아침에 아버님께 금경태 과장 문제를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하실 겁니다. 홍재순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지훈이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반드시 금경태의 책임을 묻는다는 확신만 있으면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지. 현수야, 확실한 거야? 혹시 그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어?”

“홍재순 선생님, 아버님을 대신해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저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었으니까 대충 넘어가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자칫하면 선생님은 물론 지훈이까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금경태 과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신현수까지 문제가 될 뻔한 것이 무엇일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쨌든 금경태 과장에게 총애를 받았던 신현수가 직접 찾아와 한 말이었다.

사실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지나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사장에게 말을 했다는 것 자체로 고마운 일이었다. 지금 하는 말 역시 모두들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기도 했다.

조용히 앉아 신현수를 보던 유석재가 씨익 웃었다.

“현수야, 너 많이 변했다.”

“제가요?”

“그래. 말투는 여전히 빡빡하지만 좋다. 자식! 고맙다. 재순이 형, 그냥 믿으시면 될 것 같은데요. 설마 이사장님이 이대로 넘어가시겠어요?”

홍재순도 잠시 눈길을 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경석을 총치프로 정할 때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심 신현수가 반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믿자. 지훈이 너는?”

“저요? 저야 당연히 믿죠.”

김지훈이 밝은 미소를 보였다.

치프들과 동기들을 보던 신현수가 입술을 모았다. 모두들 자신을 믿고 있었다. 입이 아니라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무엇인가 꽉 찬 느낌이었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기분에 숨도 쉬기 힘들어진 신현수가 연신 숨을 몰아쉬었다.

이경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수야, 늦겠다. 빨리 가.”

시계를 본 신현수가 서둘러 의국을 나왔다.

김지훈이 슬며시 따라나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현수야, 고맙다.”

“친구라며.”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어제 보니까 너도 소주 잘 마시던데, 내가 술 한잔 살게. 진하게 한번 마셔 보자.”

“이왕이면 양주로 사.”

김지훈이 눈을 찢었다.

“돈 없어, 인마. 그리고 술은 소주야. 양주는 무슨.”

“안주는 골뱅이고?”

어라? 지금 농담까지 한 건가?

“그렇지. 근데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어제 너랑 일석이하고 경석이 형이 골뱅이에 소주 한잔 더 하자고 난리친 거 기억 안 나?”

“우리가 그랬나? 너무 당연한 말이라 그런지 기억이 잘 안 나네. 그래도 즐거웠잖아, 인마.”

그때 직장암 환자가 보행기에 의지한 채 조심조심 운동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힐끗 눈길을 준 김지훈이 손을 흔들었다.

“현수야, 잘 가. 다음 텀에는 같이 돌았으면 좋겠다.”

“왜?”

“너 확실하게 눌러 주려고. 그래야 4년차 때 총치프를 내가 할 거 아냐?”

“지금 욕심내는 거야?”

“당연하지. 너한테 질까 봐 요샌 잠도 잘 안 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환자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기 파트 환자도 아닌데 설명 참 열심히 하네. 후우! 저런 모습은 정말 배워야 해.’

따르륵! 따가각!

그 와중에도 그놈의 소리가 또 들렸다. 인턴 때부터 지금까지 4년째 듣는 소리였다. 신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김지훈, 4년차 때는 총치프를 하겠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나도 양보 못하지. 누가 되는지 두고 보자.’

김지훈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올랐다. 절로 주먹이 쥐어질 정도로 각오를 다지는데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모를 일이었다. 우습게도 이제야 일반 외과 의국원 중 한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다가오고 있었다.

‘현수야, 우리 정말 멋지게 붙어 보자. 최고의 써전이 돼서 최고의 수술 팀을 만들어 보자.’

김지훈도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드디어 모든 것을 함께하면서도 끊임없이 경쟁할 수 있는 진정한 라이벌이 생긴 것이다. 동시에 손일석과 이경석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마웠다.

“지훈아, 너 논문 다 수정했어?”

손일석의 말에 한껏 들떴던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빨간 줄이 가득한 논문 3개가 펼쳐졌다. 3년차들의 한숨 소리가 깊고도 길게 울렸다.

이혁민 교수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니들 똑바로 안 하나.’

누군가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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