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껍질을 깰 수 있을까? Ⅱ (1)
해마다 3년차들은 치프가 되기 직전에 과장과의 면담 자리를 가져왔다. 전공의들에게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자리였지만, 금경태 과장에게는 요식적이자 관행적인 일에 불과했다.
격려의 말 몇 마디 전하고, 누가 3년차 총치프로 정해졌는지 통보하면 끝이었다.
물론 그전에 교수들과 논의 과정을 거쳤지만, 그야말로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한 형식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전공의들에게까지 신경을 쓸 여유나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신동석에게서 등을 돌리기로 한 이상 누가 총치프를 하든 상관도 없었다. 굳이 신현수를 지목해야 할 이유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이혁민 교수가 총치프를 3년차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당연히 3명의 교수가 그 의견을 지지했고, 나머지 교수들은 자신의 얼굴만 보았다.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다고 해도 과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한 번 양보하면 끝도 없는 요구가 이어질 것이다. 강하게 질책하려는 순간 신동석 이사장과의 면담이 잡혀 있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동시에 신현수가 발목을 잡았다. 면담을 한 이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 신현수를 버려도 될지, 아니면 최소한 겉으로는 웃어야 할지 판단을 내려야 했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 말이다.
‘신현수, 아직은 쓸모가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내게 아주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도 있겠지. 외과 센터 문제와 잘 엮으면 신동석의 방심을 유도할 수도 있을 거야.’
금경태 과장이 이제야 눈을 떴다. 입을 쭈욱 내밀며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다 온 거야?”
“예. 다 모였습니다.”
순간 금경태 과장의 표정이 묘해졌다.
나이가 가장 많은 이경석도,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은 신현수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마치 3년차를 대표하는 것처럼 김지훈이 맨 앞에 서서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자신의 앞에서는 주눅이 든 것처럼 보여야 할 김지훈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있었다.
반면 신현수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살짝 고개까지 숙이고 있었다.
‘김지훈, 설마 니가 신현수를 밀어내고 앞에 선 거야? 이거 엉뚱한 데서 재밌는 일이 벌어지네. 어쨌든 이것도 유리한 일이야. 이렇게 되면 순환 근무 폐지 건도 잘 결정한 것 같군.’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금경태 과장의 입가가 말렸다.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이었으면 눈살을 찌푸리고 남을 상황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헛기침을 하며 소파에 몸을 묻은 금경태 과장이 3년차들을 보았다. 신현수에게 눈길이 닿자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래. 신동석의 아들이면 당연히 그래야지. 너나 네 아비나 자존심 하나는 나 못지않잖아. 당연히 밑에 있어야 할 놈이 나보다 앞서 있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는 일도 없지. 신현수, 너도 그렇지? 좋았어. 그대로 가자.’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금경태 과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왜 모이라고 했는지 다들 알 거야. 이제 곧 치프가 되니까 준비할 게 많아. 구체적인 건 이혁민 교수에게 듣고, 난 간단하게 두 가지만 말해 주지. 빠르면 구월이고, 늦어도 연말부터는 순환 근무가 폐지될 거야.”
난데없는 말이었다. 다들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웅성거렸다.
“다들 조용히 해. 원래는 한 병원에서 근무를 계속해야 하지만, 우리 병원 특성상 순환 근무를 해 온 것뿐이야. 원칙대로 돌아가는 일이고, 전공의 중에 불만을 제기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결정된 일이니까 왈가왈부하지 마.”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순환 근무는 장점만큼이나 많은 단점을 가진 방식이기도 했다. 또한 트레이닝 내내 3개월마다 근무지를 옮긴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불편한 일이었다. 더욱이 근무 방식에 관한 문제는 어떤 결정이 나든 따르는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거의 대부분 서울 병원에 근무하기를 희망했고, 누군가는 천안과 구미에서 남은 1년 동안 내내 근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일반 외과 전공의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었다.
3년차들의 눈길이 한 사람에게 몰렸다. 마치 대표로 물어보라는 것 같았다.
껄끄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거부할 수가 없었다. 김지훈이 내심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과장님, 그럼 누가 서울에서 근무하게 됩니까?”
금경태 과장이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김지훈,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어? 내 마음 같아서는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남기고 싶지만, 교수 회의에서 정한 원칙대로 정해지겠지. 물론 너희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고려할 거야.”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단순히 근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했다. 서울과 천안 병원의 위상 차이는 전공의들에게도 분명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얼굴 구길 것 없어. 현실이 그런 걸 어떻게 하나. 애초에 서울 병원에 남을 정도로 열심히 했든지, 아니면 남은 기간이라도 그렇게 하든지 해. 어쨌든 최종 결정은 내가 내리게 되니까 두고 보겠어.”
원칙을 말하다 말고 두고 본다니 묘한 말이었다. 단순히 열심히 하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설마 순환 근무 폐지까지도 줄을 세우는 데 이용하겠다는 소린가? 교수 회의에서 원칙을 정한다면서 무시하겠단 거야? 그나저나 구미에서 계속 근무하는 건 문제가 있는데.’
손일석이나 이경석도 마찬가지 생각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음과 생각이 복잡해지면 힘 있는 사람의 말이 더 잘 통하는 법이다. 자기 나름대로 전공의들의 반응을 판단한 금경태 과장이 입가에 진한 미소를 걸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각자 노력들 하고, 오늘 모인 김에 총치프까지 뽑아. 작년까지는 내가 정했지만, 올해부터는 교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너희들이 직접 정하기로 했다.”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순환 근무를 폐지하고 한 병원에 근무하는 상황에서 총치프를 뽑다니, 현실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물었다.
“병원이 다른데 총치프를 뽑아야 합니까? 각 병원마다 한 명씩 자체적으로 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금경태 과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자식이 자꾸 내 말에 토를 다네. 요새 점점 건방져진다 싶더니, 이젠 내 눈치를 아예 보지도 않는단 말이지? 건방진 놈! 넌 내가 병원에 있는 한 원하는 걸 이룰 수 없어.’
자신의 위치와 처한 상황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 줘야 할 때였다. 한마디 하려던 금경태 과장이 갑자기 멈칫거렸다.
생각해 보니 김지훈의 기를 살려 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신현수의 자존심을 더욱 짓밟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근무 형태가 달라져도 의국은 하나야. 결국 위상은 똑같단 말이야. 총치프의 능력은 외과 의사로서의 실력과 함께 여러 가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게 좋을 거야. 예를 들어 리더십이 없으면 곤란하겠지. 그러니까 신중하게들 생각하고, 다들 나가 봐.”
금경태 과장이 의도적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런데 김지훈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신현수를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은연중에 자신의 의도를 전하는 것 같은데 누구를 뽑아야 한다는 소린지 아리송했다.
3년차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의외였다.
‘둘 중 한 명이 총치프가 되겠지. 누가 되든 잘만 이용하면 신동석이 신현수에게 바짝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 어떻게 해서든 외과 센터를 추진하게 해야 해. 최악의 경우 돈이라도 건져야 할 거 아냐.’
다들 복잡한 심사를 보이며 줄줄이 빠져나왔다.
손일석이 김지훈을 붙잡으며 슬쩍 맨 뒤로 빠졌다.
“지훈아, 이거 뭐냐? 근무 병원을 고정해야 한다면 내년에 새로 들어오는 1년차부터 시작하는 게 맞지 않아? 구미는 또 누가 가? 분위기만 이상해지잖아.”
“그것만 문제가 아니다. 총치프를 우리가 직접 정하는 것도 생각은 좋지만 난감할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민망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어. 국회의원 선거도 아닌데 투표를 하는 것도 좀 이상하고 말이야. 그렇다고 그냥 분위기를 몰아서 얼렁뚱땅 정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
어쨌든 병원의 결정이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혁민 교수를 찾았다. 무슨 일인지 커피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다들 앉자. 더울 텐데 마시면서 들어.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끝낼 건 먼저 끝내자. 과장님께 이미 들었겠지만 순환 근무가 곧 폐지된다. 교육부와 보사부에서 지적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또 김지훈을 보았다.
‘왜 아까부터 다들 날 보는 거야?’
금경태 과장을 만날 때 앞에 나선 것이 잘못이었다. 그래도 한결 마음은 편했다.
“선생님, 지적이라니요?”
“원래는 1년차 때부터 각자 정해진 병원이 있어서 4년 동안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이 맞다. 다만, 우리 같은 경우 병원마다 환자 특성이 상당히 달라서 순환 근무가 트레이닝에 아주 좋지만 일종의 편법이었지. 그동안 별말이 없었는데, 이번 감사에서 즉각 시정하라는 말이 나온 모양이야.”
“과장님께서는 전공의들 불만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그게 아니었습니까?”
신현수에 천안 병원에서 근무하던 3년차들까지 모두 있는 마당이었다. 어디까지 말이 오고 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일단 금경태 과장의 입장을 어느 정도 옹호해 주는 것이 맞았다.
“아! 당연히 그런 면이 있다. 감사를 하면서 각 과 전공의들의 의견을 취합한 모양이야. 하여튼 두 부서에서 모두 지적을 했으니까 따르는 수밖에 더 있겠나. 혹시 천안 병원에 배정된다고 해도 서운해하지 마라. 지역이 의사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럼 어떤 원칙으로 근무할 병원을 정합니까?”
“전체 교수 회의에서 정할 거다. 어떤 원칙을 정해도 모두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손일석이 김지훈을 툭툭 치며 고갯짓을 했다.
‘지훈아, 구미, 구미는 누가 가는지 물어봐.’
‘에이! 다른 때는 말만 잘하는 놈이 오늘따라 왜 이래?’
“선생님, 그러면 구미도 한 명이 계속 근무해야 합니까?”
“구미? 글쎄다. 지금 생각으로는 서울에서 번갈아 파견을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것도 교수 회의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겠지. 문제긴 문제다.”
한동안 적막만이 흘렀다. 이런 문제는 교수 개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3년차들을 지켜보던 이혁민 교수가 한숨을 쉬었다. 병원 확대 문제로 가뜩이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감사까지 겹치며, 뜻하지 않은 일까지 벌어져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외과 센터를 만들 자리도 확보하지 못했는데, 전공의들 근무 배치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까 힘드네. 한두 명도 아니고 인턴까지 근 5백 명인데 어떤 기준을 만든단 말이고.’
진료 이외의 업무에 발을 들이민 게 죄라면 죄였다. 어쨌든 지금은 3년차들의 일부터 해결해야 할 때였다.
이혁민 교수가 입맛을 다시며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종이 박스를 열었다.
“일단 근무 배치는 잊고 니들 일부터 챙기자.”
전공의 수술 수첩.
백지 위에 적힌 논문 제목.
“치프를 시작할 때부터 전문의 시험 보기 전까지 수술 수첩에 자신이 한 수술 오십 개 이상을 채워 넣어야 한다. 올해부터 규정이 빡빡해져서 의무 수술 건수가 늘은 데다, 메이저 수술도 열 개 이상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수술을 막 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모두들 최선을 다해야 할 거야. 그리고 내년 팔월까지는 무조건 전문의 시험을 위한 논문 하나씩 통과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시험 볼 자격도 없다는 거 알제?”
손일석이 슬쩍 눈치를 보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논문이라는 소리에 꽤나 다급한 모양이었다.
“선생님, 그럼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은 어떻게 합니까?”
“왜? 안 쓸려고? 지금까지 고생한 게 아깝지도 않나. 내한테 논문 받은 사람은 완성하는 대로 제출해라. 앞으로 어느 병원에 근무하는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써야 할 기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졌다.
가만히 보니 예외가 없었다. 다들 빨간 볼펜의 공포를 체험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과장님께 3년차 총치프를 직접 뽑아야 한다는 소리 들었나?”
“예. 들었습니다.”
“교수들이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너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에 맞는 사람을 뽑으면 될 기다. 만일 제대로 못하면 4년차 총치프를 정할 때 갈면 된다고 하지만 신중해라. 궁금한 거 또 있나?”
몇몇 질문이 나오자 이혁민 교수가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다. 귀를 기울이던 김지훈이 문득 가슴속에 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공의 수술 수첩은 이제 전문의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앞으로 1년만 근무하면 전문의 시험을 준비해야 하네. 벌써 2년 반이 지났으니까 정말 빠르게 지나가겠지?’
이혁민 교수의 목소리가 김지훈의 상념을 깼다.
“니들이 1년차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치프가 된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우리 악수나 한번 하자.”
일일이 손을 잡은 이혁민 교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등을 두드렸다. 지금까지 모두들 잘해 왔단 얼굴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모였구나. 퇴근하기 전에 들르길 잘했다. 잘했어. 기분이 어때? 수술 수첩 받으니까 정말 치프 된 것 같지? 그럴 거다. 나도 그땐 그랬다. 좋은 때다. 좋은 때야.”
송재덕 교수가 연거푸 웃음을 터트렸다. 신기동 교수가 손을 내밀며 으르렁거렸다.
“열심히 해. 치프 됐다고 농땡이 부리면 알지?”
맨 뒤에 섰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거구의 의사, 이준영 교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보이는 모습은 달라도 마음은 같을 것이다.
“준영아, 이럴 때는 말 좀 해라. 말 좀. 그렇게 무뚝뚝한데 무서워서 누가 간담도를 하겠니. 경석아, 내 말이 맞지? 지훈아, 그치? 어이쿠! 그러고 보니까 말 없는 건 똑같은 놈이 하나 있네. 김경수, 넌 오늘도 한마디도 안 했지? 그치? 맞지?”
김경수가 머리를 긁적이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니? 너 왜 웃어? 내 말이 틀렸어?”
“아닙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전히 말이 없고 내성적인 김경수의 눈가가 발개졌다. 일반 외과 전공의의 성격으로는 적당하지 않아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송재덕 교수가 그만큼 많이 보듬어 준 모양이었다.
“경수야, 너도 말 길게 할 줄 아는구나. 그래. 얼마나 좋니. 말 많이 해라. 많이. 신 교수, 좋지? 경수가 말을 길게 하니까 좋지? 난 좋다. 좋아.”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김지훈도 따라 웃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치프가 되기 직전이다.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 내고 여기까지 왔다. 다들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기에 동기들은 먹먹한 가슴을 보이고, 교수들은 퇴근까지 미루며 이 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김지훈의 눈길이 한 사람에게 향했다.
스승과 제자의 눈이 마주쳤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지훈아, 수고했다.’
한마디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두들 걱정과 근심을 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겼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은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