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37화 (437/1,329)

제7화 껍질을 깰 수 있을까? Ⅰ (1)

구미에 있어야 할 신현수였다.

피곤이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매무새는 그런대로 말끔했지만, 눈이 시뻘건 것이 꽤 여러 날 잠을 못 잔 것처럼 보였다.

“과장님이 고생했다고 오프를 하루 더 주셨어요. 형은 혼자 뭐하세요? 일석이하고 지훈이는 오프예요?”

“오프? 둘 다 방금 전에 수술 들어갔어. 일석이는 당직이라 송동화 선생님 응급 수술 들어갔고, 지훈이는 지금쯤 신기동 선생님한테 한창 타고 있을 거야.”

“신기동 선생님 수술이요?”

“내과에서 갑자기 환자를 보냈어. 혈관이 막혔다나 뭐래나. 내일 직장암 환자 케이스 발표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슬쩍 부탁을 했거든. 오프인 놈이 마침 약속이 취소됐다면서 입을 귀에 걸더라. 일석이가 응급 수술을 들어가서 다행이라고 좋아하는데, 하여튼 지훈이 그놈도 못 말려. 근데 넌 무슨 볼일 있어서 집에 안 가고 병원으로 온 거야? 금요일인데 빨리 왔다.”

김지훈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이제는 신현수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별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기차 타고 왔어요. 요샌 피곤해서 차 안 갖고 다녀요. 그건 그렇고, 송재덕 선생님이 6센티미터짜리 직장암 수술을 성공했다면서요? 정말이에요?”

이경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웬만해서는 택시도 안 타는 신현수였는데 자기 차를 두고 기차를 타고 왔다니 정말 많이 변했다. 게다가 수술이 궁금해 이 밤에 바로 병원으로 오다니 다시 보일 지경이었다.

‘너도 참 열심히 한다.’

“자식! 그럼 거짓말이겠어? 나랑 지훈이랑 같이 들어갔다.”

“그 수술에 지훈이도 들어갔어요? 이준영 선생님 파트잖아요?”

조금은 의아한 모양이었다.

“경험자잖아. 그 덕에 수술 성공했다.”

이경석이 수술을 실감나게 설명했다.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던 신현수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김지훈이 타이를 하는 과정을 들은 직후였다. 천안 병원에서 함께 준비를 했었기 때문에 단 1센티미터 차이가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부담감을 이긴 게 난 더 신기해. 보기보다 깡이 대단한 놈이야. 난 스테이플 연결하는 것도 떨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는데 말이야.”

‘그 상황에서 지훈이가 타이를 했다고?’

신현수가 눈가를 찡그리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구미에서 근무를 하며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는 정말 김지훈과 확실하게 경쟁할 수 있다고 여겼다. 강기웅 과장은 김지훈이 구미를 떠나며 한 말과는 완전히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까칠하기는커녕 자신을 치프로 대하며, 근무 첫날부터 바로 수술을 주었다. 거의 모든 수술을 다 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칼바람을 휘날렸다. 그런데 그 시간 김지훈은 상상도 못한 일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수술을 받기조차 힘든 서울 병원에서 말이다.

‘후복막을 침범한 췌장암 환자도 이준영 선생님과 둘이 성공시켰다고 들었는데, 직장암에서 가장 하기 힘든 타이까지 했어? 그동안 거의 퍼스트만 섰을 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혹시 6센티미터가 아니라 7센티미터 아니었을까?

슬며시 케이스 리포트에 눈을 주던 신현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천안 병원 병원장 자리까지 버린 송재덕 교수는 개인적인 명성에 연연할 사람이 아니었다. 수술을 본 눈이 몇 갠데 속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할 수 있을까?’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불가능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가슴속 가득했던 자신감에 툭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에 가슴이 답답해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고생하셨네요. 그럼 전 가 볼게요.”

“벌써 가려고? 조금 있으면 애들 올라올 텐데 보고 가.”

“어차피 내일 1시에 다 모이기로 했잖아요.”

어딘지 모르게 무거우면서도 차가운 말투에 이경석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신현수가 김지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를 이경석이 아니었다.

“그래. 네가 라이벌로 생각할 만한 사람은 지훈이밖에 없고, 자존심도 누구보다 강하니까 충격일 수 있겠지. 하지만 현수야, 입장이 바뀌었으면 지훈이는 최소한 박수를 치는 시늉이라도 했을 거야.”

이경석의 나직한 목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터벅터벅 계단을 따라 1층으로 향하는 신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수술 방 앞을 환하게 밝힌 불빛 속에서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보호자들이 보였다. 지금 한창 김지훈과 신기동 교수가 수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는지 볼까? 아니야. 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어. 아니야. 봐야 해. 아니야. 쓸데없는 짓일지도 몰라.’

답답한 마음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 문득 김지훈이었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울 수 있다면 자존심이나 창피함을 모두 버렸을 것이다. 김지훈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반드시 보아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두 개의 수술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첫 번째 수술실 앞에 선 신현수가 눈가를 좁혔다. 퍼스트 자리에 선 손일석이 송동화 과장과 함께 한참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혈복강이었다.

얼마나 빠를까? 얼마나 정확할까?

손일석 역시 엄청난 노력을 해 왔다. 지금도 눈에서 빛이 나올 정도로 수술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확하고 빠른 손에 환자의 바이탈이 순식간에 잡히는 것을 본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석이 너도 여전히 날 긴장하게 하는구나. 그래. 3년차가 됐다고 놀고 있을 놈이 아니지.’

예상했던 일이다. 솔직히 퍼스트를 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놓이기도 했다. 지금처럼만 하면 손일석보다는 훨씬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잠시 수술을 지켜보던 신현수가 걸음을 옮겼다.

은근한 긴장감이 다가왔다. 신기동 교수의 날카롭고 예리한 성격 때문에 전공의 대부분 수술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오죽하면 칼로 가슴을 후벼 판다는 말까지 할까?

신현수도 내심 그래 왔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김지훈은 스스로 자청을 했다. 그만큼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겠지만 어쩌면 자신감일지도 몰랐다.

수술이 끝나면 여느 때처럼 살벌하게 탈까? 아니면 정말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될까?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다음 수술실 앞에 선 신현수가 귀를 기울이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장 투석을 위한 동정맥 연결은 대부분 국소 마취하에 시행한다. 따라서 수술 중에도 환자가 깨어 있기 때문에 신기동 교수는 언제나 수술 후에 살벌하게 태웠다. 그런데 조용해야 할 신기동 교수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김지훈, 너 좀 나아졌다는 소리는 도대체 어떻게 들은 거야? 오래간만에 들어왔다고 그렇게 강조한 말을 홀라당 잊어 먹은 거야?”

“죄송합니다, 선생님.”

“뭘 알고 죄송하다는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알면 이렇게 하겠어? 타이 하고 매듭 만들 때 남은 실도 이물이야. 이물이 많이 남으면 조직들이 서로 잘 들러붙는다는 건 상식 아니냐? 그런데 이렇게 실을 잘라? 이 환자 1년 후에 또 수술하게 되면 니가 책임질래?”

타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문밖에서는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들리지 않았다.

슬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손목이 아니라 어깨와 상박 부분의 동정맥을 연결하는 수술이었다. 부위가 커 전신 마취를 해야 했고, 그 탓에 수술 중에 바로 지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사이 얼마나 살벌하게 탔는지 김지훈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있었다.

신현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에 도리어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잘한다는 칭찬도 사람을 발전하게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가슴 아플 정도로 지적을 받는 것은 그 이상의 발전을 가져온다. 특히 환자의 아픔과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에게는 그런 면이 더욱 강했다.

‘도대체 손이 어떻기에 아직도 저렇게 탈까? 직장암 수술을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잖아. 그리고 매듭에 남은 실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 그건 또 뭐야?’

무엇 때문인지 보아야 했다. 김지훈이 탈 정도면 자신 역시 반드시 배워야 할 부분이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잠시 주저하던 신현수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신기동 교수가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기 위해 수처를 하고, 김지훈은 타이를 했다. 매듭을 짓고 난 실을 잘라야 할 신기동 교수가 김지훈에게 가위를 건넸다.

“타이는 그래도 봐줄 만하네. 잘라 봐.”

싹둑!

매듭을 짓고 난 실이 잘렸다. 쓱 눈길을 준 신기동 교수가 아무 말 없이 다음 과정을 진행했다.

신현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눈만 말똥거렸다.

지금까지 신 나게 탄 이유가 고작 가위질 때문이었나?

이상한 일이었다. 집도의가 수처를 하면 퍼스트는 타이를 하고, 남은 실은 집도의가 자른다. 그건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처럼 가위를 주고받으면 쓸데없이 시간만 더 걸릴 뿐이었다.

하지만 진지했다. 더구나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지도 않았다. 손일석의 손과는 확연하게 다를 정도로 김지훈의 손은 빠르고 정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맥과 정맥의 연결이 끝났다. 그제야 신기동 교수가 고개를 돌렸다. 김지훈도 의아한 눈이었다.

“신현수, 너 웬일이야?”

“내일 모임도 있고, 마침 일이 있어 의국에 들렀다가 수술이 있다고 해서 잠시 들어왔습니다.”

“그래? 수술 많이 보면 좋지. 좋은 태도야. 들어온 김에 나가지 말고 끝까지 봐. 너는 지훈이 이 자식처럼 대충 하면 안 된다. 아주 사소한 문제도 환자에게는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 3년차나 됐는데 기본이 왜 중요한지를 아직도 몰라요.”

절개 창을 닫기 시작했다. 신기동 교수의 눈이 점점 살벌해졌다.

“김지훈, 아직도 거칠어. 그것도 많이 거칠어. 난 송재덕 선생님도 아니고, 이준영 선생님도 아냐. 그리고 혈관 수술은 세밀하기 때문에 더 완벽해야 돼. 니가 투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봐. 이렇게 마무리가 되면 좋겠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신현수는 점점 더 의아할 뿐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칠다는 말도 처음 들었지만 피부 봉합을 할 때도 태울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쩔쩔매고 있는 김지훈을 보니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좀 낫네. 김지훈, 더 열심히 해.”

“감사합니다,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현수, 서울 올라오면 내 수술 꼭 들어와. 너도 십중팔구 거칠겠지만, 기본을 얼마나 잘 다졌는지 보자.”

“예, 선생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던 수술이 모두 끝났다. 신현수가 어색한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다 결국 회복실까지 따라왔다.

“지훈아, 도대체 왜 저러시는 거야? 거칠다는 말은 또 뭐야?”

“얘기가 길어. 근데 정말 너 이 시간에 웬일이야?”

두런두런 대화가 이어졌다.

김지훈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둘러 말했지만 결국 직장암 수술 때문에 들렀고, 그 와중에 응급 수술까지 참관을 한 것이다. 물론 강기웅 과장에 대한 말을 슬쩍 비쳤을 때는 쓴 입맛을 다셔야 했다.

‘정말 최선을 다하네. 그나저나 강기웅 과장님도 사람 차별하나? 그러면 안 되는데. 금경태 과장 라인은 다 그런가?’

신현수는 더욱 놀라고 있었다.

타는 거야 항상 보는 일이었지만, 거칠다는 말의 의미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단순히 기본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 관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후우! 지훈이가 가장 먼저 들었다는 말은 제일 뛰어나기 때문이겠지? 내가 정말 그렇게 뒤처졌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서로 손이 다르기 때문일 거야.’

애써 위안을 삼았지만 신현수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지훈을 볼 때마다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긴다는 사실에 답답하기만 했다. 만에 하나 뒤처진 것이라면 반드시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때 손일석까지 회복실로 와 더 이상 대화를 이을 수가 없었다. 왠지 속을 보이는 것 같아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내일 모이기 전이나 후에 다시 한 번 기회를 갖는 것이 나았다.

“현수야, 니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설마 오프를 하루 더 받은 거야? 야! 강기웅 과장님이 널 엄청 잘 본 모양이다. 지훈이 말과는 완전히 다르네. 비법이라도 있어?”

이런 면에서는 김지훈과는 딴판인 손일석이었다. 속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신현수 역시 강기웅 과장의 태도가 마음에 걸리긴 했다. 자신을 특별하게 대하는 것이 예전에는 익숙했지만 지금은 솔직히 남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였다. 더더욱 오늘은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보자. 간다.”

“어? 아직 12시도 안 됐는데 뭐가 급하다고 보자마자 가? 커피나 한잔하자.”

“아니야. 가야겠어.”

그때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말했다. 문득 모두 같은 생각을 갖지는 않을 것이란 유석재의 말이 생각난 것이다.

‘현수를 믿어야 해. 솔직히 현수까지 한둘만 더 우리하고 생각이 다르다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차라리 미리 말하고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는 게 나아.’

“현수야, 할 얘기가 있어.”

“무슨 얘기?”

“금경태 과장님에 관한 얘기야. 우리가 다 모이기 전에 넌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 간단한 일이 아니라서 더욱 그래야 할 것 같다.”

“금경태 과장님?”

신현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경석과 통화를 하며 의국과 관련된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경태 과장에 대한 일일 줄은 몰랐다.

문득 최근 병원 일로 정신이 없는 신동석이 물었던 말이 생각났다.

‘현수야, 금경태 과장을 어떻게 생각하니?’

딱히 좋다, 나쁘다 답을 하지 못했다. 이준영 과장과의 갈등이 마음에 걸렸지만 솔직히 금경태 과장은 자신에게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뭔가 복잡한 일이 생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무슨 일인데?”

“의국에서 우리끼리 조용히 얘기 좀 하자.”

3년차 4명이 모였다.

신동석 이사장의 아들이자, 금경태 과장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신현수가 있기에 다른 때와는 의미가 달랐다.

입을 꽉 다문 채 한참 동안 신현수를 보던 김지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