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28화 (428/1,329)

제2화 첫인상이 중요하다 (2)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이 애매모호했다.

송동화 과장의 주말 근무는 오후 1시부터 시작이기 때문에 토요일 오전은 이준영 교수가 응급 수술을 담당해야 한다.

지금부터 최대한 서둘러 준비하고, 마취과와 시간까지 맞아야 1시쯤에 수술이 끝날 것이다. 더구나 아직 회진도 못 돌은 데다 오더도 내야 한다.

‘환자 회복까지 확인하려면 정말 시간이 빡빡하네. 수술하고 나서 회진 돌고 오더 내는 시간까지 하면 두 시에 출발할 수 있을까? 으아아아! 급하다.’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정말 촉박했다.

오늘은 일생일대의 대사가 있는 날이다. 단 1초라도 늦으면 앞날이 어찌 될지 몰랐다. 마음이 더없이 급했다.

총알처럼 응급실로 튀어 내려가 환자를 보았다. 노티 받은 대로 위궤양 천공에 의한 빤뻬리였다.

박순용에게 수술 스케줄을 챙기라고 하고는 다시 부랴부랴 이준영 교수에게 노티를 했다. 응급실로 내려와 환자를 본 이준영 교수가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수술하자.”

절대 수술을 미루거나 떠넘기지 않는 이준영 교수였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힐끗 시계를 보며 잠시 무언가 생각을 하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시간이 애매모호하네. 회진부터 돌자.”

‘스승님도 일이 있으신가? 어쨌든 정말 잘됐다. 만세!’

김지훈이 반색을 했다.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회진을 돈다면 그만큼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12시도 되기 전에 이준영 교수와 토요일 오후 회진을 돌았다. 평소보다 한 시간은 빨랐다.

박평자 환자 이외에는 특별한 환자가 없어서인지 회진도 빨리 끝났다. 덕분에 병동 환자들 오더까지 낼 수 있었고, 다시 응급실로 왔을 때는 이미 수술에 필요한 준비가 모두 끝나 있었다.

어느새 12시가 넘었지만 다행히 마취과에서 바로 환자를 올리라고 했다. 정말 온 세상이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도와주는 것 같았다.

‘좋았어. 두 시 안에 다 끝날 수 있겠어.’

정말 아슬아슬했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예정대로 2시 언저리에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약속 시간이 오후 6시라 약간의 여유까지 있었다.

수술 방에서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 고경아를 만났다. 다소 불안한 표정이었다.

“두 시까지 끝날까요?”

“조금은 빡빡하지만, 늦어야 일이십 분 정도일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게 서둘렀는데도 12시 30분에야 환자가 수술대 위에 누웠다. 김지훈이 급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했다.

‘급할수록 조심해야 돼. 내가 서두른다고 일찍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은 일단 최대한 수술에 집중하고, 거칠다는 의미가 맞는지도 확인할 때다.’

수술이 시작됐다. 오늘따라 이준영 교수의 손에 들린 메스가 더욱 날카롭게 보였다.

배를 열기 시작할 때부터 정상 조직에 가해지는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타이는 물론 전기 소작을 할 때도 신중을 기했다.

배가 모두 열리기 직전 이준영 교수가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혔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복막까지 모두 열었다. 배 속을 확인하는 순간 김지훈이 멍한 표정으로 구멍이 난 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크게 뚫려도 너무 크게 뚫렸다.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큰 구멍이었다.

“김지훈,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어?”

단순 봉합은 100퍼센트 재발이었다. 아니, 제대로 아물지도 않을 것이다. 유문 부위라면 성형술이라도 시도하겠지만 이건 위치까지도 나빴다.

김지훈이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자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수술 방법이 결정됐다.

집도의의 판단이지만 막바로 수술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기하던 보호자가 들어오고, 이준영 교수가 위를 자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동안에도 시간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보호자의 동의 아래 위절제가 시작됐다.

양성 질환이기에 광범위한 절제는 필요 없지만 단축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며 초조함을 날리기 위해 애를 썼다.

‘집중하자, 집중. 이러다 문제 생긴다.’

이준영 교수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잘라야 할 위에 분포하는 동맥을 차례차례 묶고 자른 후 주변을 정리했다. 모두 정상 조직들이다.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해야 했다. 배를 열 때와는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신중의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인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이준영 교수의 손이 엄청나게 빨라 보였다. 손을 따라가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든지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당연히 수술이 느려졌다. 더구나 토요일 오후다.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준영 교수는 채근할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찾아낸 거야? 그래. 빠른 손도 중요하지만 이젠 환자의 몸을 어떻게 대하고, 병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해. 잠깐은 손이 갑갑하고 느리게 느껴지겠지만, 이때가 지나고 나면 더욱 훌륭한 손을 갖게 될 거다.’

드디어 위의 일부를 제거했다.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이 거쳐 간 부위를 보았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렸고, 스승의 손과 비교하기도 힘들었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깔끔하게 보였다.

‘훨씬 보기 좋네. 보이는 모습만 신경 써서는 안 되겠지만, 수술 부위와 주변 조직이 모두 깔끔하게 처리된다면 환자의 회복도 훨씬 빠르고, 합병증도 적어지겠지?’

소장과 위의 연결이 시작됐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고, 이미 익숙하게 해 왔던 과정이었다. 그런데 뭔가 감이 달랐다. 마치 모든 과정을 처음 하는 것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그런 느낌이 쭈욱 이어졌다. 배 속을 씻고, 드레인(심지)을 박은 후 박순용과 배를 닫을 때까지도 그랬다. 심지어 봉합을 하는 자신의 손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까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왜 전보다 더 엉성해 보이지?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거야?’

무엇이 잘못됐는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지만 확실히 달랐다. 박순용의 타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지훈이 마치 인턴 때로 돌아간 것처럼 한 바늘 한 바늘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피부 봉합을 마치고 나서는 눈가를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후! 정말 마음에 안 드네. 내가 성형외과도 아닌데 왜 이러지? 혹시 위와 소장을 연결할 때도 이런 거 아냐?’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고 오더를 내자마자 이준영 교수를 찾았다. 때마침 이준영 교수가 환자를 보기 위해 회복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상당히 급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지훈이었다. 그런데 이준영 교수가 손가락을 들어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오프 아니야?”

헉! 이럴 수가!

3시가 넘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주차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고경아의 모습 뒤로 얼굴도 모르는 장인 될 양반의 시뻘건 얼굴이 보였다.

당황한 김지훈이 허둥대자 이준영 교수가 무뚝뚝하게 말하며 돌아섰다.

“환자는 괜찮지? 빨리 가라.”

이런 말을 할 이준영 교수가 아니었다. 잠깐 의아해했던 김지훈이 박순용에게 환자를 맡긴 후 부리나케 병동으로 올라갔다. 당직인 이경석을 붙잡고 박평자 환자와 조금이라도 주의해야 할 환자들을 부탁했다.

“알았어, 인마. 걱정하지 말고 빨리 오프 가. 너 오늘이 인사드린다고 한 날 아냐?”

“예, 형. 감사합니다. 오늘 수술한 환자도 부탁해요.”

그대로 내달렸다. 다행히 옷은 트렁크에 실어 놨다. 가쁜 숨을 헉헉 내쉬며 주차장에 도착했다. 고경아의 예쁜 얼굴이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지훈 씨, 이제 오면 어떻게 해요? 빨리 출발해요.”

“어이구! 위를 자를 줄 누가 알았겠어요. 환자도 제대로 못 보고 왔는데 벌써 3시 반이네. 아버님께 응급 수술 때문에 늦는다고 전화하면 안 될까요? 이해해 주실 것 같은데 어때요?”

“벌써 했죠. 알았다고 하시긴 했는데, 첫인사를 하는 날부터 몇 시간씩 늦을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김지훈도 할 만큼은 다 했다. 거칠다는 말의 의미가 맞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라고 해도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니었다.

부아아앙!

액셀을 최대한 밟았다. 그러나 바쁠 때면 언제나 그렇듯 신호등이 막 빨간 불로 바뀌고 있었다. 간신히 혼잡한 오거리를 통과해 한남대교에 들어섰다. 쌩쌩 달렸다. 딱 다리 끝까지만 말이다.

휴가는 김지훈만 가는 것이 아니다. 고속도로는 이미 진입로부터 차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라디오를 트니 그나마 오전보다 혼잡이 덜하단다.

“어후! 이게 덜한 거라고?”

“지훈 씨, 어떻게 해요? 벌써 4시가 넘었어요.”

답이 없었다. 최소한 양지나 덕평까지는 가야 국도라도 탈 수 있었다. 그것도 판단 잘해야지, 자칫 길을 잘못 타면 고속도로보다 훨씬 늦을 것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 속은 초조함과 불안만이 감돌았다. 결국 조수석에 앉아 있던 고경아가 포기를 한 모양이었다.

“아후! 지훈 씨, 그냥 천천히 가요. 다른 짓을 하다가 늦은 것도 아니고, 응급 수술 때문인데 아빠도 이해하시겠죠. 어머! 근데 머리가 그게 뭐예요?”

“길이 뚫려야 빨리 가든지 하지. 내 머리는 왜요?”

무심코 룸미러에 머리를 비춰 본 김지훈이 사색이 됐다.

서두른다고 머리도 못 감았다. 완전히 떡이 진 머리가 가관이었다. 가뜩이나 땀까지 많이 흘렸다.

고경아가 코를 킁킁거리다 말고 또 울상을 지었다.

“아후! 땀 냄새. 샤워도 안 했어요? 하긴 머리가 그 모양인데 샤워를 했을 리가 없지. 머리 좀 어떻게 해 봐요.”

운전을 하면서 머리를 빗었다. 가관을 넘어 꼴불견으로 바뀌었다. 반곱슬이 곱슬머리처럼 더욱 꾸불꾸불해지며 딱 달라붙었다. 포기다.

“이왕 늦은 거 휴게실에서 머리라도 감고 갑시다.”

이런 제길!

용인 휴게소는 진입하기도 힘들었다. 일단 다음 휴게소인 문막에서 기회를 보거나, 최대한 빨리 원주에 도착해 해결할 일이었다.

양지와 덕평을 지나며 고민을 하던 김지훈이 직진을 고수했다. 움직이는 한 고속도로가 국도보다 빠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느릿느릿하지만 차는 꾸준히 움직였고, 원주는 차츰차츰 가까워지고 있었다.

문막을 막 지나쳤다. 이제 곧 원주 톨게이트다. 하지만 이내 잔인한 선택을 강요당했다.

문막 휴게소 근처에 도착하자 길이 뻥뻥 뚫렸다. 그 많은 차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문제는 어느새 7시에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어쨌든 단 1분이라도 빨리 도착할 건지, 아니면 외모라도 단정하게 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경아 씨, 휴게소 들러요, 말아요?”

“너무 늦긴 했는데, 그 모양으로 어떻게 가족들을 봐요? 이왕 늦은 건데 휴게실에 들러서 머리라도 감고 가요. 휴게실에서 샴푸는 팔겠죠?”

말이 너무 길었다. 고경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게소 진입로가 휙 시야에서 사라지며 순식간에 멀어졌다. 김지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민하지 말아요. 지나쳤어요.”

고경아의 고개까지 푹 떨어졌다.

결국 7시가 훌쩍 넘어 원주에 도착했다.

공중전화 박스를 본 고경아가 급히 차를 세웠다. 한참 동안 통화를 한 후 차를 탄 고경아가 눈가를 잔뜩 찡그렸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훈 씨, 아빠가 병원으로 오래요.”

“병원으로요?”

“오늘 일반 외과 과장님이 응급실 당직이신데, 급한 일이 있어서 9시나 돼야 오신대요. 그래서 아빠가 응급실 환자를 보고 있나 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천천히 와도 되는 건데 괜히 마음만 졸였네요. 아이! 짜증 나. 근데 왜 응급실로 오라고 하시지?”

김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급실까지 있는 병원이라니 생각보다 병원이 큰 모양이었다.

고경아가 알려 주는 대로 병원을 찾아가던 김지훈이 물었다.

“그럼 어머님은 언제 봐요?”

“아빠가 퇴근을 하셔야죠. 늦게까지 하는 식당도 없는데 어디서 식사를 하지? 첫날부터 이게 뭐야.”

식사할 자리까지 산 넘어 산이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늦지 않은 상황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눈만 껌뻑거리던 김지훈이 조용히 머리를 가리켰다.

“일단 이거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지금 목욕탕에 갈 수도 없고 병원 화장실에서 감을까요?”

“그렇게라도 해야죠. 병원 앞에 가게가 있으니까 샴푸는 살 수 있을 거예요. 빨리 감고 들어가서 인사해요. 미안해요. 첫인사를 하는 날인데 일이 너무 꼬이네요. 엄마하고 언니하고 경철이는 걱정하지 말고요.”

절대 고경아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지만, 긴장이 배가 된 김지훈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드디어 병원 앞에 도착했다. 김지훈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생각보다 병원이 너무 컸다. 적어도 백오십 베드는 돼 보였다. 이 정도 규모면 여러 과가 있을 테고, 수술하기에도 충분한 규모였다.

‘경아 씨네 되게 부자였네. 후우! 더 부담된다.’

샴푸를 사고 있는 고경아를 보던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그동안 부잣집 딸이라는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반면 자신은 가진 것 하나 없는 처지였다. 만일 반대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에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당당하게 인사드리자. 부모님 안 계시고, 가진 돈 없어도 여기까지 훌륭하게 살아왔잖아. 파이팅!”

혼자 중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는 김지훈을 본 고경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 뭐해요? 갈아입을 옷 들고 나 따라와요. 화장실 알려 줄 테니까 빨리 머리부터 감고 옷 갈아입어요.”

조심스럽게 병원으로 들어갔다. 복도 끝이 응급실 불빛으로 환했다. 하필이면 그 앞에 화장실이 있었다.

고경아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살금살금 앞서갔다. 막 화장실 앞에 도착해 눈짓, 손짓을 주고받았다.

그때 고경아 뒤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인기척을 느낀 고경아가 뒤를 돌아보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

“응. 아빠다. 자네가 김지훈이야?”

가운 윗주머니에 적힌 이름이 또렷하게 보였다.

원장 고성문.

그 순간 김지훈의 허리가 그대로 접혔다. 이건 의지가 아니라 가히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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