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제자리를 찾을 뿐이다 (2)
‘고맙습니다, 환자분. 환자분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수술을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만큼 회복도 훨씬 빨라질 겁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김지훈이 박평자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환자분, 수술 잘됐습니다. 가족분들 보고 싶으시죠?”
박평자가 온몸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늦은 시간이었고, 안정을 취해야 할 중환자들이 많았지만 빠른 안정을 위해서는 가족을 보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면회를 허락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으며 애써 미소를 짓는 박평자를 보던 김지훈이 슬며시 뒤로 물러섰다. 이럴 때는 빡빡한 중환자실 규정을 따르는 것보다 조금은 더 시간을 주는 편이 좋을 것이다.
김지훈이 손가락을 튕기며 간호사에게 잠시만 더 면회 시간을 연장해 주자는 눈짓을 보냈다.
몇 시간을 준들 짧기만 할 것이다. 이만 면회를 끝내야 한다는 말에도 가족들이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쉬우시겠지만 이젠 환자분이 주무셔야 할 시간이네요. 그래야 순조롭게 회복이 됩니다. 환자분, 많이 아프시죠? 진통제 하나 놔 드릴 거니까 이젠 안심하고 푹 주무세요. 간호사, 데메롤 하나 주세요.”
췌장이나 담도 쪽에서 기인한 통증은 일반적인 진통제로 거의 듣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쓰면 데메롤(마약성 진통제)의 중독성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참기 힘든 수술 후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자 박평자의 얼굴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12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박평자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제야 보호자들도 발걸음을 뗐다.
그렇게 치열했던 하루가 지나갔다.
오래간만에 하는 킵(Keep)이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순조로운 회복을 보이는 박평자 환자 때문인지 마음은 즐겁기만 했다.
홀로 남은 김지훈이 데메롤을 맞고 막 잠이 든 박평자를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잘했다. 수고했다. 분명히 칭찬이었지만, 그 말들이 거칠지 않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준영 과장이 아무리 무뚝뚝하다고 해도 12시간이나 수술을 함께한 제자에게 모진 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수술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모든 과정을 떠올렸다. 스승의 손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 내려 애썼다. 똑같은 수술은 없다고 할지라도 모든 수술을 관통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뭘까? 내가 만일 수술을 했다면 어떻게 진행했을까? 똑같이 했겠지? 그럼 과정은 아니야. 결국 수술을 하는 손의 차이라면 결과를 봐야 하나?’
아름답고 완벽하게 보였던 수술 부위가 생각났다. 지금도 감탄이 나왔지만 냉정해져야 했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 가며 다시 수술을 진행했다. 몇 번을 되새겨 보아도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 중요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깨끗하고 깔끔하다는 말이 무엇일까?
스스로는 그렇게 수술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분명 아니라고 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온 수술과 스승이 한 수술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뇌리를 스쳤다.
같은 아뻬, 같은 빤뻬리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달랐다. 핵심적인 부분은 같다고 해도, 그 외의 부분들을 처리한 결과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거칠다는 말일까? 손을 대는 모든 부위를 세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말일까?’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지금까지 어떤 수술을 하든 가장 중요한 과정에만 몰두했다. 배를 열 때도, 심지어 배 속에 장기들을 만질 때도 문제가 되는 부분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장성기 과장이 생각났다. 인턴 때 의사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수처를 두고도 무지막지하게 탔다. 김지훈 역시 수처만이 아니라 타이를 두고도 후배들을 심하게 태웠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기본적인 술기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 과정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소한 술기라 할지라도 환자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늘이 낸 작은 구멍 하나가 장에 큰 구멍을 만들 수 있었다. 타이 하나가 풀어지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는 생각이 이어졌다. 마침내 신기동 교수의 말까지 생각났다.
‘김지훈, 혈관만 잘 이으면 끝이 아니야. 주변 부위까지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야 돼. 왜 그런 줄 알아?’
다음 말을 기억해 내던 김지훈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거칠게 수술을 하면 이 혈관 얼마 못 써먹어. 투석을 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그보다 더한 타격은 없어. 손을 대야 하는 모든 부분에 신경을 쓰면 몇 년이고 쓸 수 있지만, 거칠게 처리하면 일 년도 쓰지 못해. 그게 수술의 원칙 중 하나다.’
들었던 말이었다. 거칠게라는 말을 연이어 했다. 혈관 수술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무의식 속에 담아 놓기만 했던 말이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그렇다면 스승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 수없이 들었다. 새카맣게 탈 때마다 들었다.
휘플이 다시 떠올랐다. 스승의 손과 자신의 이 손이 지나간 자리가 달라 보였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알 것 같았다.
김지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눈빛을 굳혔다.
‘그래. 칼과 손이 닿는 모든 부위를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처리해야 돼. 그게 핵심이었어. 병변은 과감히 제거하고, 정상 조직에는 최소한의 손상만을 준다.’
수술 중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너무 기본적인 사실이라서 짐작조차 하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도리어 수술 실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지키기 어려운 원칙이었다. 당장 병변도 처리하기도 어려운 실력으로는 주변의 정상 부위까지 눈을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내가 그 정도 실력은 된단 말이지?’
순간 우쭐한 기분도 들었지만 이내 답답한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생각만으로 정답을 알 수 있다면 벌써 깨달았을 것이다.
‘후우! 그런데 이게 아니면 또 어떻게 하지?’
김지훈이 갑갑한 표정을 짓다 말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답이 아니라고 해도 나쁠 것은 없었다. 평생 동안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원칙을 가슴속에 확실히 새겼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도 내 생각이 맞았으면 좋겠다.’
확신과 의문이 밤새도록 교차했다.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박평자의 평온한 얼굴이 그나마 마음을 편하게 했다. 췌장 수술을 한 환자의 통증을 유일하게 경감시킬 수 있는 데메롤(마약성 진통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또한 환자에게 달린 일이었다.
***
모두들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그 시간, 금경태 과장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독한 양주를 반병이나 비웠지만 술기운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애초에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냈어야 했다.
자책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산산이 부숴 버리고 싶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술잔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흐릿한 달빛이 유리창을 비추는 순간 희끗한 그림자가 보였다. 단 1초도 마주하기 싫은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었다.
“으으으! 이준영! 네놈이!”
술잔을 집어 던지고 말았다. 와장창!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가족들조차 살벌한 표정에 슬며시 문을 닫아야 했다.
“제길!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생각하면 할수록 치솟는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다.
예정대로 수술을 진행하는 모습에 비웃음을 흘렸다. 이혁민 교수나 신기동 교수라면 모르지만 김지훈이 퍼스트라니 턱도 없는 일이었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수술실을 나오며 곤혹스러워하는 이준영 교수의 얼굴을 기대했다. 그런데 3시간이 지나도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에 슬며시 수술 방을 찾았을 때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지금 담낭까지 제거했어요. 정말 어려운 수술인데 잘되고 있는 모양이에요. 이준영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생글생글 웃는 간호사를 보는 순간 얼마나 화가 나던지 자신도 모르게 뺨을 때릴 뻔했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간신히 화를 참았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암이 퍼진 후복막!
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남아 있었다. 자신은 물론 경쟁 관계에 있는 의사마저 손을 들게 만든 이유였다. 심지어 허경발 명예 교수가 전성기 때도 힘들다는 말까지 했다. 전적으로 동의했고, 반드시 그래야 했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후복막을 건드려라. 혈관 하나라도 터지면 의사로서의 네 인생은 끝이야. 신경을 건드리면 평생 환자에게 시달릴 거다.’
참을 수 없는 질시와 무의식 속에 내재된 열등감 때문일까?
금경태 과장은 의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생각까지 하고 말았다.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점점 길어지는 수술 시간에 불안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6시경 암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다는 말에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예 환자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어떻게 후복막을 제거했지? 이준영의 실력이 그 정도였다니. 이건 아니야. 운에 불과해. 내가 환자 상태를 착각했는지도 몰라.’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독한 양주를 병째로 들고 마셨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만 갔다. 술기운 대신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준영 교수는 위험하기만 한 수술을 여러 차례 성공했다. 가뜩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판국이었다. 입단속을 하고 환자를 막지 않았다면 자신의 명성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전이가 된 췌장암 수술마저 성공시켰다.
여기에 진료 부장까지 역임했던 양승철 교수가 예정보다 훨씬 빨리 돌아왔다. 아버지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준영 교수를 신뢰하고, 인정하는 의사였다.
게다가 원관식 교수의 레벨로는 막을 수 없었다. 과가 다른 자신 역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를 궁지에 빠트리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이 구석으로 몰렸다.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었다. 아무리 고민을 하고 머릿속을 쥐어짜도 답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짓밟으려 애를 썼던 이준영 교수가 자신의 앞에 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과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두려웠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자신이 아닌 이준영 교수에게 쏠린다는 사실이 너무도 두려웠다.
와장창!
무언가 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해 바락바락 악을 썼다.
“제길! 제길! 난 너 따위에게 지지 않아. 절대 지지 않아.”
숨을 헐떡거리며 머리를 감싼 금경태 과장의 온몸이 떨렸다. 필사적으로 두려움과 맞서야 했다.
한 병의 양주가 더 사라지고, 거실이 온통 난장판이 되고 나서야 두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
헉! 헉! 헉!
금경태 과장의 눈이 시뻘게졌다.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판 함정에 스스로 빠졌다. 자칫 그동안 쌓아 온 명성과 권위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판이었다.
‘네놈 따위가 감히! 감히 날 이렇게 만들어?’
이준영 교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냉정을 되찾고, 머릿속을 정리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기를 썼지만 두려움이 섞인 분노는 가시질 않았다.
새벽이 되도록 금경태 과장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와 간간이 떨리는 몸이 깨어 있다는 것을 알릴 뿐이었다.
나직한 괘종시계 소리가 들렸다.
금경태 과장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머릿속이 정리가 됐다.
수술 하나 때문에 의사로서 가진 힘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준영 교수가 가지지 못한 힘까지 등에 업고 있었다.
정상을 향해 달리는 놈의 뒷덜미를 낚아채 천 길 낭떠러지로 밀어 버리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아니, 그것만큼 희열을 가져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후후후! 이준영,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제 시작이야.”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잠깐 고개를 숙이는 것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췌장암 환자도 순조롭게 회복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세상이다.
‘끝까지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라고? 아니야. 강하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는 거야. 이준영, 이혁민, 송재덕, 신기동. 네놈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날 어쩌진 못해. 김지훈, 네놈은 항상 거치적거리지만 이번에는 쓸모가 있겠어. 신동석, 설마 신현수가 김지훈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걸 보고만 있진 않겠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강한 힘.
진평호과 정한득을 떠올린 금경태 과장의 눈이 번쩍였다.
과연 본연의 일에 충실한 것보다 더 강한 힘이 있을까?
금경태 과장에게 의사라는 직업과 환자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
다음 날 아침, 병동이 시끌벅적했다.
“후복막이 탁 떨어지면서 암까지 한 덩어리로 쭉 빠져나오는데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형도 후복막을 떼어 내는 걸 봤어야 하는데 안타깝네.”
“약속만 아니었으면 나도 봤을 텐데 정말 아쉽다. 야! 열두 시간을 싸워서 암을 제거했단 말이지. 대단해. 송재덕 선생님도 그냥 열고 닫을까 봐 엄청 걱정을 하셨거든. 일을 산더미처럼 주시고는 오프 가기 직전까지 수술 어떻게 됐냐고 계속 닦달을 하시더라.”
“송재덕 선생님뿐이에요? 이혁민 선생님하고 신기동 선생님도 수술 끝날 때까지 퇴근도 안 하셨잖아요. 아무튼 이준영 선생님 수술 실력은 신기동 선생님과 함께 정말 투 탑이 아닐까요?”
“너 말 똑바로 안 할래? 송재덕 선생님까지 쓰리 탑이지, 인마. 그중에 최고는 당연히 우리 대장이고. 근데 지훈이도 정말 대단하지 않아?”
손일석이 눈가를 찡그렸다.
이번 수술이 아니더라도 이준영 교수의 실력은 이미 최고라고 검증됐다. 하지만 김지훈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전공의였다. 내심 중간에 다른 교수가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기라고 해도 그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김지훈의 손은 또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커진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 지경이었다. 질투를 안 하는 게 스스로 용할 정도였다.
“제일 친한 놈이지만 이럴 때 보면 솔직히 화가 난다니까요. 똑같은 손에 노력도 똑같이 하는데 왜 차이가 나죠? 형도 솔직히 그렇죠?”
이경석이 피식 웃었다.
“똑같다고? 그런 소리 마, 인마. 너도 알잖아? 낮에 하루 종일 참관하는 것도 모자라서 밤에는 응급 수술까지 거의 다 들어오는 놈이야. 난 저 자식 실력보다 눈을 뜨고 있는 게 더 신기하다.”
“지훈이가 체력 하나는 끝내주죠. 우리도 헬스장이나 끊을까요? 체력은 국력! 형, 어때요?”
이경석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쯧! 정신력은 어떻게 하고? 열두 시간이 넘게 수술하고 밤새 킵한 놈이야. 그게 체력만 좋다고 되는 일이야?”
“그럼 극기 훈련까지 해야 할까요?”
구시렁거리며 고개를 흔들던 손일석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2년차 이상은 모두 스테이션에 대기 중인데, 김지훈은 이제야 드레싱을 모두 끝내고 돌아온 것이다. 눈이 시뻘건 채 말이다.
“지훈아, 내가 졌다, 졌어. 독한 놈.”
난데없는 말에 회진을 준비하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한참 대화가 오가며 시끌시끌했던 병동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교수들이 올라온 것이다.
이준영 교수 앞에 서던 김지훈의 눈이 자연스럽게 금경태 과장에게 쏠렸다.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