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제자리를 찾을 뿐이다 (1)
그 시간, 하루 일과를 끝낸 교수들이 송재덕 교수 방에 모였다. 신기동 교수가 힐끗 시계를 보며 눈가를 찡그렸다.
“일석이 이 자식은 뭐 하는 거야. 수술이 잘되고 있는지 보고 오란 지가 언젠데 아예 함흥차사네. 이 교수, 이거 수술이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후복막이 문제일 기다. CT에서 보이는 만큼만 암이 퍼졌어도 제거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였거든. 지금까지 수술을 한다는 건 예정대로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긴 한데, 나도 불안하네. 가 볼까?”
수술의 성패 여부는 시간만 봐도 알 수 있다. 애초에 불가 판정을 내렸으면 한두 시간, 만일 보존 수술만 시행했다면 3시간 내에 끝났을 것이다.
9시간이 지나도록 수술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암을 제거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시간이 너무 걸려 혹시 다른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뿐이었다.
“가 보긴 뭘 가 봐. 지금 얼굴 디밀어야 부담만 된다. 부담만 돼. 잘되니까 연락이 없는 거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몰라. 불안해하지 마라. 준영이 손이 어디 보통 손이야? 그냥 마음 푹 놓고 기다려. 암! 기다리면 돼. 불안해하지 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신기동 교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
“선생님,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왔다 갔다 하셔서 제가 더 불안합니다. 선생님도 사실 불안하시죠?”
송재덕 과장이 헛기침을 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뭘 불안해해? 나 지금 편하다. 편해. 신 교수, 너도 나이 먹어 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허리고 다리고 다 아파요. 다 아파. 그래서 걷는 거야. 나 운동하는 거다. 불안한 거 아냐. 어휴! 근데 나쁜 놈은 왜 안 오니? 확실히 나쁜 놈이야. 나쁜 놈. 사람 속을…….”
말꼬리를 흐린 송재덕 과장이 딴청을 피웠다. 여전히 좁은 방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창밖을 서성이다 말고 심지어 책까지 펴 들었다.
책장 유리는 또 왜 닦을까?
“이럴 시간에 공부나 하자. 공부나. 아! 그러지 말고 퇴근하자. 응? 우리 퇴근하자. 준영이가 알아서 다 잘하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배고프다. 배고파. 아니다. 이왕 기다린 건데 조금 더 기다려 볼까? 응? 어때?”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송재덕 과장의 마음이 어떤지 모를 수 없었다. 그만큼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이혁민 교수가 눈가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준영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는 한 수술 잘 끝날 겁니다.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지훈이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금경태 과장 때문이라도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합니다.”
“경석이가 있는데 내가 좋아하긴 뭘 좋아해? 나 안 좋아한다. 안 좋아해. 그냥 대장 파트를 두 명이 하면 외롭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야. 근데 경태는 왜? 뭐 있어? 그놈 또 무슨 수작 부린 거야?”
“이준영 선생님 외래 환자가 지나치게 적은 것도 그렇고, 내과에서 컨설트가 안 나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뭔가 일을 꾸민 것 같긴 한데 알 수가 없네요. 원무과나 총무과 직원들에게 슬쩍 물어봐도 입을 꾹 다물어서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여튼 이번 수술에 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겁니다. 자칫하면 이준영 선생님이 궁지에…….”
“에이! 난 또 뭐라고. 그런 말 하지도 마라. 재수 없다. 재수 없어. 문제가 왜 생겨? 후복막만 떼면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알면서 왜 그래? 우리 불안해하지 말자. 준영이가 지훈이하고 수술하잖아. 둘 다 잘난 놈인데 그깟 췌장암이 대수야?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송재덕 과장이 얼굴이 뻘게질 정도로 목소리를 높이고는 창밖만 바라보았다.
일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다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을 믿었지만 걱정과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답답한 한숨 소리만 들렸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손일석이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왔다.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송재덕 과장이 아직 숨도 못 돌린 손일석에게 채근을 했다.
“나쁜 놈 왔구나. 나쁜 놈. 어떻게 됐어? 수술 잘되고 있지? 그치? 내 말이 맞지?”
“예. 후우! 방금 전에 확실하게 다 제거하셨습니다. 지금 소장하고 위를 잇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맥이 빠졌는지 이혁민 교수와 신기동 교수가 털썩 의자에 기댔다. 송재덕 과장은 아예 입만 벙긋거리다 한참 만에야 동네 아저씨 웃음소리를 냈다.
“허허! 거 봐라. 허허! 내 말이 맞지? 왜들 불안해해? 수술 끝났네. 끝났어. 퇴근하자. 퇴근. 이제 집에 가자.”
가운을 벗은 송재덕 과장이 만면에 미소를 짓고는 외래를 나섰다. 그런데 1층이 아니라 수술 방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뒤따라가던 신기동 교수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선생님, 어디 가십니까?”
“신 교수, 수술하는 거 보고 퇴근하자. 얼마나 힘들겠어. 벌써 일곱 시야. 일곱 시. 지금까지 꼬박 열 시간을 수술했는데 얼마나 힘들겠니. 가 보자. 가 보자. 보고 퇴근하자.”
다들 원래 그러려고 했다. 송재덕 과장을 따라 모두 수술실로 향했다.
“이 교수, 지금쯤이면 위는 연결했을까?”
“시간상 그렇지 않겠나. 수술이 잘 진행돼서 정말 다행이지만, 아무리 빨라도 열 시는 돼야 끝날 텐데 문제다. 이준영 선생님이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환자가 잘 버텨 줘야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네.”
손이 가장 빠른 송재덕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맞아. 열세 시간이면 힘들어서 사람 죽는다. 죽어. 환자가 버텨야 돼. 환자가. 내가 했으면 오늘 밤 샜다. 샜어. 그나마 준영이가 해서 빨리 끝나는 거야. 암!”
사실 교수들 모두 하루 종일 수술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날이면 피곤이 온몸을 짓누르지만, 수술이 끝날 때마다 일이십 분이라도 쉴 수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경우가 달랐다. 10시간이 넘도록 단 하나의 수술에 집중했다. 의료진들 모두 극심한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술과 마취를 모두 견뎌야 하는 환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단 10분이라도 수술을 빨리 끝내는 것이 환자나 의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단 하나의 수술만이 진행되고 있는 수술 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수술실 유리창을 빠져나온 불빛과 함께 들려오는 심전도 소리가 유난스럽게도 크게 들렸다.
송재덕 과장을 필두로 모두들 조심스럽게 수술실로 들어갔다. 슬며시 고개를 빼며 수술을 본 송재덕 과장이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미 위는 연결했고, 담도와의 연결도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렇다고 수술이 깔끔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힐끗 눈길을 주었던 이준영 교수가 이내 수술에 집중했다. 김지훈은 아예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수술에만 집중하는 모습에 슬며시 미소를 짓던 송재덕 과장이 자신의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들 손이 이렇게 빨랐나? 준영이가 마음만 먹으면 나만큼 손이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빠르잖아? 뭘 어떻게 한 거야? 그래. 이건 호흡이야. 호흡. 손이 아주 척척 맞아 들어가는구나. 지훈이 이놈은 언제 이 정도까지 발전한 거야? 고 간호사도 그렇고, 다들 정말 잘하고 있네.’
어느새 췌장과 소장을 잇고 있는 모습에 다들 정신이 팔렸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집도의와 퍼스트, 그리고 수술 팀 전체가 척척 손을 맞추며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은 가슴을 벅차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길고 긴 췌장암 수술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마무리만 남았다.
배 속을 깨끗이 씻어 내고 심지를 박았다. 수술 부위를 보던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아름다웠다.
장기가 제거되고 새로운 길을 만들었지만 마치 원래 그렇게 생긴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였다.
완벽했다.
그렇게 제거하기 힘들었던 후복막이 사라진 자리는 깔끔하기만 했다. 소장은 위와 담도, 그리고 췌장과 단단히 연결된 채로 깨끗하게만 보였다.
어떤 의사가 이런 수술을 해낼 수 있을까?
무려 12시간이 넘게 걸린 수술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스승이 아니면 누구도 하지 못할 것이다.
복막을 닫는 스승의 손까지도 경이롭게만 보였다.
‘후우! 스승님의 손을 따라가려면 난 아직도 멀었어. 더 열심히 보고 배워야 해. 거칠다는 말을 빨리 깨닫고 고쳐야 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눈빛을 반짝이며 수술에 집중했다. 드디어 피부 봉합까지 모두 끝나며 휘플이라는 수술이 12시간 만에 끝났다.
오랜 시간의 수술과 마취에 큰 부담을 받았을 박평자 환자가 걱정이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 왔던 어떤 환자보다도 강인한 의지를 가진 환자였다.
환자를 깨우던 김진호 교수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준영 선생님, 이 환자 대단하네요. 인투베이션을 유지해야 할 줄 알았는데 파이팅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훈아, 지금 튜브 뺄 거니까 오늘 밤 잘 봐라.”
기관에 삽입했던 튜브를 빼자마자 박평자가 나직한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심지어 몸까지 비틀었다.
“끄으응!”
심장은 힘차게 뛰었고, 강한 호흡은 온몸에 산소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오늘 밤만 잘 버티면 회복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디딜 것이란 확신이 다가왔다.
김지훈은 물론 이준영 교수도 입술을 모은 채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12시간을 수술한 보람과 의미가 바로 이것이었다. 외과 의사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오늘은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
수술 방의 유리문이 열리자마자 보호자들이 달려왔다. 차마 환자의 손을 잡지도 못하고 눈가만 붉혔다.
“선생님, 수술은 잘됐습니까? 우리 와이프 잘 깨어났나요? 괜찮은 겁니까?”
“선생님, 우리 엄마 괜찮은 거죠?”
“생각보다 암이 심하게 퍼져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만, 암은 모두 제거했습니다. 오늘은 안전을 위해 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합니다.”
“그럼 언제 병실로 올라가나요? 면회는 할 수 있습니까?”
“빠르면 이삼 일 내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늘 면회는 김지훈 선생이 환자 상태를 보고 결정할 겁니다. 걱정이 많으셨겠지만, 수술은 잘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색이 됐던 보호자들이 확신에 찬 이준영 과장의 말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환자가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에도 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부산해졌다. 어느 파트보다 노련한 간호사들이었기에 오더가 나오기 전에 이미 바이탈을 체크하고 필요한 처치를 하고 있었다.
‘환자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의사들만 열심히 한다고 환자가 좋아질 수는 없겠지. 경아 씨,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의사들과는 달리 간호사들은 근무 시간이 끝나면 수술 중간에도 교대를 한다. 그런데 오늘 고경아는 끝까지 함께 수술에 참여했다. 누구보다도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다른 간호사들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무심코 지나친 일상과 당연하게만 여겼던 일 속에도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주면 이제까지 몰랐던 고마운 사람들을 수없이 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교수들과 함께 환자를 살핀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의 어깨를 툭 치고는 돌아섰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콧등을 찡그렸다.
젊디젊은 김지훈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지경이었다. 인사라도 힘차게 해야 피로가 풀릴 텐데 미처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런데 입을 열기도 전에 뜻밖의 말이 들렸다.
“김지훈, 수고했다. 잘했어.”
수고했다는 말도, 잘했다는 말도 처음이었다. 순간 당황한 것인지, 가슴이 벅찬 것인지 김지훈이 눈만 멀뚱거렸다.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수고했다.”
“김지훈, 오늘 고생 많았다. 수고했데이.”
“잘했다. 잘했어. 이제 환자만 잘 깨어나면 된다. 지훈아, 환자 잘 봐라. 너도 수술을 함께한 거야. 이 교수 혼자 한 게 아니다. 암! 그렇고말고. 잘했어. 대장 하자, 대장. 그 손이면 대장 정말 잘할 수 있다. 대장 하자.”
모든 교수들이 웃고 있었다. 함께 중환자실을 나가던 손일석이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얼굴이 벌게진 김지훈이 고개만 푹 숙였다.
‘수술은 스승님께서 다 하셨는데, 내가 왜 이런 칭찬을 받지?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 맞지?’
한동안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결국 환하게 웃고 말았다.
서도진과 박순용을 불러 함께 오더를 냈다. 휘플은 일반 외과에서 가장 큰 수술인 데다 이번 경우와 같은 수술은 평생 동안 다신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정말 귀중한 기회였다.
“도진아, 박순용 선생님, 오늘 수술 머리에 콱 박으세요. 이준영 선생님이 어떻게 수술을 하는지도 잊지 말고요. 근데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네.”
서도진이 묘하게 웃었다.
“너무 집중하셔서 그래요. 교수님들이 손일석 선생님하고 언제 들어오셨는지는 아세요? 그것도 기억이 안 나시죠?”
“그러게. 언제 들어오셨지?”
“어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하여튼 선생님도 참 대단하세요. 어떻게 이준영 선생님과 그렇게 손을 맞출 수가 있죠. 정말 부럽습니다. 전 언제 선생님을 따라갈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자식이, 애먼 소리 하고 있어.”
김지훈이 눈을 흘기자 박순용이 손을 저었다.
“제가 1년차긴 하지만 서도진 선생님 말씀에 백번 동의합니다. 선생님, 진짜 수술 잘하시네요.”
온통 칭찬과 부러움 일색이었다. 김지훈이 그런 소리 말라며 손을 저었다.
잠시 후, 서도진과 박순용이 의국으로 올라갔다. 홀로 남은 김지훈이 박평자 환자를 살피다 말고 피식 웃었다.
좋은 건 좋은 거다. 즐길 권리도 있었다.
피식피식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김지훈이 더욱 환하게 웃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박평자가 눈을 뜬 것이다. 그러고는 김지훈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더없이 힘겨워 보였지만 강인한 의지였다.
김지훈의 가슴이 벅차면서도 뭉클해졌다. 무수히 보아 온 일인데 정말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