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수술 (2)
길게 숨을 내쉬며 최대한 긴장을 푼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고경아의 손에서 집도의와 퍼스트의 손으로 수술 기구가 전해졌다.
휘플은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위절제부터 시작해 점점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장기들을 차례로 제거해야 한다. 만일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후복막이나 췌장부터 제거하면 어려움이 훨씬 더 가중되고, 그만큼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위동맥을 박리했다. 심장박동을 따라 벌떡벌떡 뛰는 동맥을 자르고 묶었다. 핏기를 잃은 위의 하부가 검붉게 변했다.
그 순간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위를 자른 이상 이젠 되돌릴 수 없다. 헛된 수술만 하고 중간에 끝낸다면 환자의 삶만 단축시킬 것이다. 무조건 암을 제거해야 한다.
‘집중하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오로지 수술에만 집중하자. 스승님께서 집도를 하시는 이상 반드시 성공한다.’
잘린 위를 수술용 헝겊으로 감쌌다.
유문 부위를 지나 십이지장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수술용 가위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우측 후복막에 반쯤 묻혀 있는 십이지장이 서서히 드러났다.
어차피 제거해야 할 장기라고 거칠게 다룰 수는 없다. 담도와 췌장, 소화관이 합쳐진 총수담관과 연결된 장기다. 십이지장에 분포하는 혈관들도 무수하게 많았다. 만일 제거 도중 손상을 준다면 주변에도 손상을 주게 된다.
째깍! 째깍!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두 개의 손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김지훈은 자신의 손이 들어가고 나가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마침내 공장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도달했다. 하나의 장기를 완전히 들어낸 것이다.
“장 겸자.”
십이지장이 공장으로 이행되는 부분을 잘랐다. 잘려진 위와 아직도 연결돼 있는 십이지장을 하나의 수술용 헝겊으로 다시 감쌌다.
이것이 앙블락(En Bloc) 수술법이다.
각 장기들을 따로따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된 채 한꺼번에 들어내는 방법을 말한다.
암 수술의 기본이다. 이렇게 해야 장기 사이사이에 위치해 암의 전파 경로가 되는 임파선을 남김없이 모두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일부와 십이지장을 모두 들어냈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췌장과 담낭, 그리고 담도와 후복막까지 제거해야 한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눈을 마주쳤다.
“담낭부터.”
전기 소작기가 삑삑 소리를 낼 때마다 담낭 벽이 간에서 분리됐다. 하얀 연기와 함께 또다시 살타는 냄새가 퍼졌다.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는 일부 의사들도 역겨워하지만 외과의들에게는 익숙한 냄새일 뿐이었다.
담낭 동맥을 묶었다. 방금 전까지 핏기를 잃지 않았던 담낭이 까맣게 변했다. 세 번째 장기가 제거된 것이다.
분리된 담낭과 연결된 담낭 관을 박리해 갔다. 간에서 내려오는 굵은 총수담관과 만나는 부분이 노출됐다. 간으로 이어지는 혈관까지 환하게 드러났다. 휘플이 아니고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구조들이었다.
따르륵! 따가각!
총수담관을 자르고 겸자로 잡아 담즙 유출을 방지했다.
이미 12시가 훌쩍 넘었다. 거의 4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준영 교수의 빠른 손과 김지훈의 확실한 어시스트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진행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과정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들만이 남았다.
후복막과 암 덩어리가 들어 있는 췌장이다. 그 어떤 수술보다 오랜 시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위험도는 말로 설명할 수조차 없다. 단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수술에 관여한 모든 의료진들의 긴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하기에 적절한 휴식 또한 절실했다. 4시간에 가까운 수술로 수술 팀의 피로가 눈에 보였다.
이준영 교수가 수술 부위를 젖은 천으로 덮으며 말했다.
“5분간 쉬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긴 이준영 교수를 보던 김지훈이 서도진과 박순용에게 쉬라는 눈짓을 했다. 수술 중에 휴식을 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남은 과정을 생각하면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
고경아가 보조 간호사를 보며 고갯짓을 했다. 곧 빨대를 꽂은 작은 우유 4개가 수술 팀의 입에 물려졌다. 탈수를 예방하기 위한 방편이자, 허기를 달랠 점심이다. 모두들 마스크 사이로 빨대를 물고 간호사의 손에 들린 우유를 마셨다.
김지훈도 눈을 감고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과도한 긴장은 손을 굼뜨게 만들고,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것이다.
후우! 후우!
마스크가 불룩해지도록 숨을 길게 내뱉었다.
째깍! 째깍!
어느새 5분이 지났다. 이준영 교수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시작하자. 켈리(가위처럼 생긴 수술용 집게).”
함께 켈리를 받아 든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이자, 이 수술의 성패가 달린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후복막과 췌장을 제거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도리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제거해야 한다. 박평자라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확신이 필요했다.
‘할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성공한다.’
이준영 교수가 아직 암이 퍼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부분을 가리키며 후복막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손이 바짝 따라붙었다.
부드럽다. 후복막을 구성하는 조직과 그 속을 통과하는 혈관이나 신경들 모두 깔끔하게 박리됐다. 암이 퍼지지 않은 부분에만 국한된 상황이었다.
딱딱했다. 수술 기구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주변 조직과 들러붙어 있었다. 조금만 과도하게 힘을 주어도 조직들이 찢어지며 뻘건 피가 흥건하게 퍼져 나왔다. 암이 퍼진 조직은 지혈조차 쉽지 않았다.
“석션, 보비(전기 소작 겸 지혈이 가능한 수술 기구).”
“도진아, 피 닦고 빨리 빠져.”
따르륵! 따가각!
“타이! 타이!”
이준영 교수의 손도 암이 퍼진 조직 앞에서는 무력하게만 보였다. 딱딱해진 후복막은 탄력을 모두 상실했다. 최대한 신중하게 타이를 해도 조직이 끊어지기 일쑤였다.
“김지훈, 타이 더 부드럽게 하고 반대쪽 빨리 잡아. 고 간호사, 타이는 더 가는 실로 주고, 보비 파워 좀 높여요.”
“도진아, 최대한 살살 닦아. 박순용 선생님, 최대한 당겨요. 시야가 나빠지면 안 됩니다.”
김지훈은 물론 이준영 교수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마취과 간호사가 계속 이마를 닦아 주어야 할 정도였다. 등이 땀으로 푹 젖은 지는 이미 오래였다.
수술이 이 정도로 어렵고 힘들 줄 몰랐다.
필요한 기구가 모두 동원됐다. 어느 누구도 수술 부위에서 눈을 뗄 여유가 없었다. 김진호도 출혈 상황을 살피며 환자 바이탈을 유지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박리한 부분의 출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불과 1센티미터 정도를 박리할 때마다 거즈 수십 장이 벌겋게 피로 물들었다.
혈관과 신경이 인접한 부분에서는 엄청난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자칫 손상을 가한다면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수술이 끝난 후에 새로운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사투였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무조건 모든 암을 제거해야 한다. 의료진들의 이마에서 한 방울의 땀이 흐를 때마다 암이 퍼져 들어간 후복막이 조금씩 박리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아래쪽에서 시작한 박리가 췌장까지 진행됐다.
“도진아, 췌장에 붙은 부분이야. 들어오지 마.”
김지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준영 교수가 손을 들어 수술을 잠시 중단시켰다.
오후 3시였다. 아직 췌장은 자르지도 못했고, 췌장 위쪽의 후복막도 제거해야 한다. 노련하기만 한 의사도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후복막을 제거하는 과정이 이 정도로 문제가 될 줄은 이준영 교수도 예측하지 못했다.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5분간 쉬자.”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눈가를 좁혔다.
‘후우! 상당히 힘드네. 스승님도 이렇게 힘들어하실 정돈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절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준비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렵고 힘들었다. 이혁민 교수가 왜 후복막 부분을 거론하며 불안해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잠깐 숨을 돌린 후 췌장을 자르기 시작됐다. 어떤 장기보다 조심해야 했지만 도리어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암 덩어리가 침범하지 못한 정상 조직을 자르기 때문이었다.
두부처럼 말랑말랑하고 부서지기 쉬운 조직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르고 묶었다. 조직 속에 숨어 있는 혈관과 소화관을 처리할 때는 긴장으로 손이 떨릴 정도였다.
마침내 췌장의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의 경계가 잘렸다. 노란빛을 띠는 췌장의 남은 단면이 부드러웠다. 암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였다. 젖은 거즈로 단면을 단단히 덮고, 지금까지 제거한 장기들을 한쪽으로 밀었다.
이제야 칠부능선을 넘었다. 남은 후복막을 제거하고, 장기들을 모두 소장과 연결해야 수술은 끝난다.
같은 과정이 다시 시작됐다. 어려움이 더욱 가중됐다.
상부로 올라가면 갈수록 중요 혈관들과 신경들이 더욱 많아졌다. 게다가 암이 퍼진 부위도 주로 상부 쪽이었다. 이미 제거한 부위보다 훨씬 더 딱딱했고, 주변 조직과 거의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들러붙어 있었다.
“김지훈, 혈관하고 신경이야. 타이는 내가 할 테니까 그쪽에서 잡아. 신중하게 잡아. 신중하게.”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지금까지 수술을 하며 신중해야 한다고 한 적도 없었다. 그것도 몇 번이나 반복하며 강조를 했다. 이준영 교수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도진아, 피 닦는다고 손 넣지 말고 시야만 확보해.”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고개도 들지 않았다. 오직 수술 부위에만 집중하고, 서로의 손을 믿는 것 이외에는 아무 방법도 없었다. 필사적이라고 할 정도로 무섭게 집중했다.
자르고 지혈하고, 또 자르고 지혈했다.
도저히 제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후복막이 조금씩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거해야 할 후복막이 이제 3센티미터 정도 남았다. 몇 번만 타이를 하면 암이 퍼진 1센티미터 폭의 후복막은 제거된다. 암이 퍼지지 않은 부분까지 제거하고 나면 모든 장기가 한 덩어리가 되어 배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그 1센티미터는 최악이었다. 환자의 목숨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처럼 더욱 단단히, 딱딱한 조직이 혈관에 붙어 있었다.
이준영 교수가 가장 작은 수술 기구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박리했다. 김지훈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공간을 확보했다.
조그만 혈관 분지가 보였다. 이제 이것만 잘라 내면 암이 퍼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모두 제거된다.
이준영 교수의 손이 더욱 신중해졌다. 그러나 좀처럼 혈관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손이 저려 올 정도로 반복해 가며 혈관 박리를 시도했다.
툭!
뭔가 불길한 감이 오는 순간, 피가 확 솟구치며 주변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가는 혈관 끝에서 피가 팡팡 솟구쳤다.
동맥이다.
비상 상황이다.
잘린 혈관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결국 더 큰 동맥을 잡아야 한다. 어느 부분이 됐든 추가 손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평자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본능처럼 두 개의 손이 혈관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혈관이 끊어진 이상 신속하고 과감해야 했다.
따르륵! 따가각!
톱니 물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김지훈이 빠르게 타이를 했다. 마치 이준영 교수가 어디를 잡을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출혈 부위의 시야를 확보했다. 고경아도 정신없이 움직였다.
마침내 작은 분수처럼 솟구치던 피가 사라졌다. 이준영 교수가 출혈 부위를 꽉 누른 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조심스럽게 손을 뗀 이준영 교수가 출혈이 발생했던 부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째깍! 째깍! 째깍!
김지훈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선생님, 잡은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교수가 보조 간호사에게 이마를 내밀었다. 모자를 흥건하게 적신 땀이 이마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김지훈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넋을 놓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다시 수술이 진행됐고, 마침내 암이 퍼지지 않은 부분까지 제거했다. 드디어 위의 일부와 십이지장, 그리고 담낭과 담도 및 암 덩어리가 들어 있는 췌장과 후복막이 한 덩어리가 돼 배 밖으로 나왔다.
오후 6시였다. 예정보다 두세 시간 이상 늦었다. 암이 퍼진 후복막을 제거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소모한 탓이었다. 이제 암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할 차례였다.
이준영 교수가 췌장의 일부분과 담도 및 후복막의 조직을 여러 곳에서 떼어 냈다.
‘후우!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제발 암 세포만 남아 있지 마라. 환자와 우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모두 제거됐어야 해.’
이제야 손일석이 수술실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표본을 받아 든 손일석이 부리나케 사라졌다.
이런 때가 운명과 마주하는 때일까?
다른 수술과는 달리 암이 남아 있다고 해도 더 이상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무려 9시간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몰랐다.
극심하게 다가온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김지훈이 연거푸 숨을 내쉬었다. 이준영 교수도 눈을 감은 채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모든 조직에서 암 세포가 보이지 않는답니다.”
들려온 말에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탄성이 들려왔다. 냉정함을 유지하는 사람은 이준영 교수 한 명뿐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눈가를 김지훈은 분명히 보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바로 진행하자.”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장기를 이어 주는 과정이 시작됐다. 잠시 수술 과정을 지켜보던 손일석이 슬그머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