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수술 (1)
잠깐 시간을 내 일주일간 야간 당직 근무를 끝낸 고경아와 식사를 했다. 무척 피곤할 텐데도 김지훈보다 더 흥분되고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 주에 늦으면 절대 안 돼요. 우리 아빠는 시간 약속 안 지키는 걸 제일 싫어하시거든요. 토요일 근무 끝나자마자 바로 준비하고, 늦어도 2시 전에는 출발해야 돼요. 절대 잊지 말아요. 알았죠?”
당연히 첫 인사를 하는 자리부터 늦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전공의 근무라는 게 칼처럼 끝나는 날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장인 될 분이 시간을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도 조금은 유두리가 필요했다.
“근무가 어디 그렇게 딱딱 끝나나. 잘 알면서 그래요. 아버님께 잘 말씀드려서 약속 시간을 여유 있게 잡아요.”
“약속한 시간이 6시긴 한데, 길이라도 밀리면 어떻게 해요? 늦는 것보다는 일찍 도착하는 게 훨씬 나아요.”
맞는 말이다. 어쨌든 길이 아무리 밀려도 서울에서 원주까지 4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대충 시간 계산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김지훈이 고경아의 말에 귀를 쫑긋거렸다.
“지훈 씨, 그런데 아빠 눈치가 이상해요.”
“뭐가요?”
“통화하던 중에 갑자기 지훈 씨가 어느 파트를 도냐고 물으셔서 아무 생각 없이 이준영 선생님 파트라고 대답을 했거든요. 바로 그러냐 하셨는데, 목소리가 꼭 이준영 선생님을 전부터 알고 계셨다는 것처럼 들렸어요. 서로 아는 사이일까요?”
“스승님하고요?”
여자의 촉은 예리하다. 더구나 딸이다. 깜짝 놀랄 일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었다. 외과 전문의 자체가 적은 연배인 데다 학회에서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뭔가 묘하게 불안했다.
‘만일 스승님과 장인어른이 아시는 사이면 다른 선생님들도 다 아실 수 있다는 말이잖아. 분명히 나쁜 일은 아닌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꼭 빨가벗은 느낌이네. 에휴! 일단 인사를 드리고 나면 알겠지.’
이리저리 인연이 얽혀 있다면 나쁜 면보다는 좋은 면이 더 많을 것이다. 아마도 장인이 될 분이라는 게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고경아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김지훈을 톡 쳤다.
“지훈 씨, 이준영 선생님을 아시든 모르시든, 먼저 아빠에게 잘 보이는 게 먼저겠죠? 저번에 산 옷 좀 싹 입어 봐요. 잘 어울려야 하는데, 안 어울리면 어떻게 하지. 뭐 해요? 빨리 입어 봐요.”
이미 입어 봤다. 수선까지 다 했으니 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걱정을 하며 성화다.
결국 식사가 끝나자마자 새로 산 와이셔츠와 양복을 걸치고, 새 구두까지 신어 보았다.
고경아는 사람이 달라 보인다며 좋아했지만, 김지훈은 웃지도 못했다.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 불과 한 주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이 와락 가슴에 와 닿은 것이다.
‘인사를 드리기도 전에 이렇게 긴장하면 곤란한데.’
걱정이 앞섰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장인, 장모 될 분들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
긴장된 가슴으로 아쉬운 만남을 끝내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당연히 거쳐야 할 코스를 거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온몸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걱정과 흥분도 잠시, 연이어지는 응급 수술에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이준영 교수는 한결같았다. 볼 때마다 감탄밖에 안 나오는 손으로 집도를 하고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김지훈, 거칠어. 그것도 많이 거칠어.”
휘플까지 앞두고 있는 마당이었다. 더 이상 머릿속으로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반드시 거칠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선생님, 혹시 손이 건방지다는 말과 같은 말씀이십니까?”
“신 교수 말이지? 비슷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안 됩니까?”
이준영 교수가 슬쩍 김지훈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말로 가르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거칠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네 스스로 알아야 해. 어쩌면 스승님께서도 지금 내 손을 보시면 똑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어.”
혹 하나 떼려다 도리어 하나 더 붙였다. 자신은 쳐다보지도 못할 스승인데 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니, 거칠다는 말속에 담긴 뜻을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점점 더 어려워지네. 도대체 무엇을 보아야 하지?’
마지막 수술은 빤뻬리였다. 마치 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처럼 이준영 교수가 아무 말도 없이 퍼스트 자리에 섰다. 정말 최선을 다해 수술을 했다.
불과 1시간 반 만에 만족스러운 정도로 깔끔하게 끝냈다. 마취과는 물론 간호사들도 이젠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준영 교수의 평가는 더욱 나빠졌다.
“퍼스트보다 집도를 할 때가 더 거칠어. 수술을 잘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 손이 빠르고 깔끔하게 보인다고 해서 모든 걸 잘한다는 소리는 아니야. 누구나 놓치는 면이 있기 마련이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김지훈으로서는 정말 답답한 일이었다. 휘플에서 퍼스트를 서도 되는지 걱정이 됐다.
“선생님, 그런데 제가 이런 수준으로 휘플에서 퍼스트를 서도 됩니까?”
“왜? 불안해?”
“예. 솔직히 불안합니다.”
“거칠다는 말이 퍼스트를 서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야. 이번 수술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서로의 손을 맞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혼자 남아 이준영 교수의 말을 곱씹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당장 고쳐야 하거나 잘못된 것이 있었다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분명 조언으로 들렸다.
왜 그렇게 들렸을까?
생각해 보면 습관처럼 탄다고만 느꼈는지도 몰랐다. 구미에서 올라온 이후 예전처럼 탄 적도 없었다.
문득 세세한 문제가 아니라 포괄적인 면을 말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를 열고, 수술을 하고, 다시 닫는 과정에 모두 필요한 것이 무얼까? 그 모든 과정 속에 숨은 공통점이 뭐지? 스승님의 손과 내 손의 차이점은 또 무엇일까?’
무언가 잡힐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시간이 꽤 지났다. 자신의 문제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극심한 불안에 빠져 있을 박평자 환자를 찾았다.
“환자분, 많이 떨리시죠? 의사들도 수술을 앞두고 정말 많이 긴장합니다. 하지만 일단 수술이 시작되면 모든 것을 다 잊고 수술에만 집중합니다. 환자분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나면 다들 아파하면서도 웃으시거든요.”
“수술이 잘될까요?”
“수술은 무조건 잘됩니다. 그렇게 믿으셔야 합니다. 이준영 선생님은 다른 어떤 것보다 환자분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그동안 굉장히 어려운 수술들을 많이 하셨지만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선생님은 불안하지 않으세요?”
“저요? 환자분이 절 믿어 주시면 안 불안할 것 같은데요.”
김지훈이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눈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던 박평자가 미소를 머금었다.
외과로 전과된 이후 모든 준비를 김지훈이 했다. 수시로 찾아와 대화도 많이 나누었다. 그 덕에 불안감 대신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젠 전공의가 아니라 주치의로 보였다.
무뚝뚝하기만 한 이준영 교수에게도 한없는 믿음이 갔다. 김지훈 같은 전공의를 길러 냈다면 겉은 몰라도 속은 정말 다정다감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평자가 슬며시 김지훈의 손을 잡았다. 따스한 온기와 함께 신뢰가 전해졌다.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며 눈빛을 굳혔다.
‘환자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릴 믿고 편히 주무세요.’
수술이 성공할 것이란 강한 확신이 다가왔다.
다음 날 아침, 박평자 환자가 수술 방으로 옮겨졌다. 남편과 두 아이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코 줄과 소변 줄에 수액까지 주렁주렁 매단 박평자가 가족들에게 애써 미소를 지었다. 강한 여인이자 엄마였다.
“엄마, 잘될 거예요. 엄마, 힘내요.”
“여보, 수술 잘 받아.”
울먹이는 아이들과 남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배정된 수술실로 들어갔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다른 수술실들과는 달리 무거운 공기 속에 낮은 목소리만 오갔다.
박평자 환자가 수술대 위에 누웠다. 김지훈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수술을 앞둔 환자의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환자분, 우릴 믿으시고 힘내세요.’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김지훈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수술이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이번 수술은 유독 특별하고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준영 교수와 자신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술이었다. 모든 의사가 성공보다는 실패 쪽에 손을 드는 수술을 성공한다면 간담도 부분에서는 확고한 위상을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김지훈은 물론 이준영 교수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명예나 명성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손으로 더욱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살릴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것이 의사에게 주어진 사명이었고, 평생 동안 추구해야 할 목표였다.
여기에 양승철 교수까지 복귀했다. 금경태 과장의 견제와 질시를 걷어 낼 기회일 수도 있었다. 최소한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수술이 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을 일순간에 전환시킬 기점이 되는 수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결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목표가 남았다.
박평자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수술이다. 환자의 생명과 삶보다 고귀하고 중요한 것은 없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 꼽으라면 단지 그것뿐이다.
김지훈이 박평자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았다. 이혁민 교수조차 실패를 거론할 만큼 어렵기에 가슴속을 꽉 메운 압박감으로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환자의 의지만큼 의사의 의지 역시 중요했다.
‘환자분,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김진호 교수가 마취를 시작했다. 고경아가 야무진 눈빛으로 수술을 준비했다. 간만에 이준영 교수의 수술에 들어온 서도진과 박순용도 긴장된 표정으로 수술 준비를 했다.
박평자 환자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띠! 띠! 띠! 띠!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의 눈이 마주쳤다.
‘김지훈, 시작하자.’
‘예, 스승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직하고 강한 목소리가 수술실을 울렸다.
“메스!”
이준영 교수의 손에 들린 메스가 무영등 불빛에 반짝였다.
명치부터 배꼽 아래까지 길게 배를 열었다. 환하게 드러난 장기들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복부 CT에서 발견되지 않은 원격 전이가 있다면 수술은 진행할 수 없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첫 번째 관문을 넘었음을 알렸다.
위와 대장 사이에 이어진 얇은 막인 대망을 절개했다. 지방조직으로 덮인 췌장과 담도가 보였다.
이준영 교수가 췌장의 머리 부분을 촉진해 딱딱한 암 덩어리와 주변부를 확인했다. 퍼스트 역시 정확한 병변의 위치와 상태를 알아야 한다.
“김지훈, 확인해.”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어 암 덩어리를 촉진한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생각보다 훨씬 딱딱했고, 겉에서 만져지는 후복막은 본래의 탄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암이 퍼졌다는 증거였다.
“후복막 상태부터 확인하자.”
췌장 주변을 덮고 있는 막을 제거했다. 전기 소작기가 이질적인 기계음을 낼 때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매캐한 냄새를 퍼트렸다.
잠시 후 후복막이 드러났다. 이준영 교수가 전에 없이 신중한 표정으로 후복막의 상태를 살폈다. 수술 기구로 조직을 살짝 벌려 가며 제거가 가능한지 확인했다. 예상보다 훨씬 안 좋은 상탠지 이준영 교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두 번째 관문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단계였다. 만일 후복막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수술은 이대로 끝난다. 환자에게는 절망만이 남을 것이다. 아니, 가족 전체의 삶까지 한동안은 무너진다. 박평자 환자가 생을 다하고 나서도 한참 후까지 말이다.
이준영 교수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군. 가능할까? 무리하게 진행하다 문제가 생기면?’
확실한 판단이 서질 않는지 이준영 교수가 한참을 망설였다. 이미 십 수 년이 지난 일까지 떠올랐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 수술에서도 환자가 사망하면 의사에게도 치명적인 후유증이 남는다. 더구나 지금은 최대한 안전을 담보하고 진행하는 정규 수술이다.
만일 환자가 사망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이준영 교수의 호흡이 가빠졌다. 후복막을 확인하는 손에서 확신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김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들어 김지훈을 보았다. 단 한마디였지만 강렬한 의지와 확신이 실려 있었다.
‘스승님, 단 1퍼센트의 확률만 있더라도 시도해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환자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제가 살리고 말 겁니다.’
집도의에게 퍼스트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조언자다. 그 퍼스트가 바로 자신의 유일한 제자인 김지훈이다.
서도진과 박순용은 물론 고경아까지 모두 다 간절한 눈빛으로 기원하고 있었다. 수술 팀 전체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만큼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야. 우린 할 수 있어. 지훈아, 고맙다. 이 환자 살려 보자. 웃는 모습 꼭 보자. 다 같이 함께해 보자.’
희미해져 가던 확신이 다시 가슴을 가득 채웠다. 불안했던 이준영 교수의 호흡이 평온해졌다. 수술 팀을 보는 눈에 믿음이 실렸다.
마침내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김지훈, 예정대로 진행한다.”
팽팽하기만 했던 긴장감이 터질 것처럼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