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겁나는 수술 Ⅱ (2)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선생님, 줄에 뭐가 있어요. 이게 뭐죠?”
깜짝 놀란 김지훈이 허리를 굽히고는 줄을 살폈다. T-tube와 담즙을 담는 주머니가 연결된 부분에 뭔가 걸려 있었다. 공간이 좁아지는 부분이긴 했지만 최소 5밀리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까만 물체였다.
‘설마 돌인가? 이 정도 크기면 검사에서 100퍼센트 걸렸어야 하는데 도대체 뭐야?’
김지훈이 의아한 눈으로 눈가에 주름까지 만들며 줄에 음압을 걸었다. 좁은 틈에 끼어 있던 까만 물체가 쑥 빠지며 주머니 쪽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 순간 김지훈이 화들짝 놀랐다. 함께 고개를 들이밀고 있던 보호자는 아예 비명을 질렀다.
“어머! 움직였어. 움직였어. 이게 뭐야?”
후다닥 스테이션으로 가 드레싱 카를 끌고 온 김지훈이 T-tube와 주머니가 연결된 부분을 분리했다.
의문의 물체를 빼내고는 이리저리 보던 김지훈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길이는 5밀리미터 정도였지만 두께는 종잇장처럼 얇아 마치 나뭇잎처럼 보였다. 결정적으로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소름이 쫙 돋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기생충! 그럼 간디스토마?’
“보호자분, 혹시 환자분이 민물 회를 드신 적이 있나요?”
“민물 회요? 아휴! 이이가 젊었을 때는 민물 회를 굉장히 많이 먹었죠. 기생충 때문에 먹지 말라고 그렇게 말리는데도 소용이 없었어요. 근데 왜 그러세요? 설마 이게 민물고기에 있다는 그 기생충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즉시 대변 검사를 시행했다. 환자가 변을 못 봐 여러 개의 면봉을 항문에 찔러 넣어야 했지만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야간이다. 검사실에 사정사정을 해 대변을 확인했다.
간디스토마의 충란이 발견됐다.
확진이었다.
치료는 간단했다. 프라지콴텔이라는 알약을 세 번만 먹으면 깨끗하게 떨어진다. 열이 나서 그렇지, 다행히 죽 정도는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즉시 경구 투여했다.
“선생님, 혹시 이게 원인이었을까요?”
보호자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기다려 봐야죠. 약의 효과가 굉장히 빠르니까 내일 아침이면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의국으로 돌아온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뭇잎 모양으로 생긴 간흡충, 즉 간디스토마는 1센티미터 정도 크기로 담관 내에 기생한다. 간 조직이 아니라 담관에 기생하기 때문에 담석과 담도염은 물론 담도암까지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변 검사가 가장 간편하면서 확실한 진단법이지만, 초음파나 CT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전혀 관찰되지 않은 것이다.
‘수술할 때 그렇게 씻어 냈는데 어떻게 한 마리도 안 걸렸지? 담도에 딱 달라붙어 있고, 크기가 작아서 그런가? 근데 저게 열이 나는 원인일까? 간 내 담석과 담도염이 겹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도 황당해서 그런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어쨌든 기다려 볼 일이었다.
밤새 간 속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벌레들이 아른거려 잠까지 설쳤다.
아침이 되자마자 차트를 확인한 김지훈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오르던 체온이 정상적이었다. 환자 역시 상당히 편안한 얼굴로 잠에 빠져 있었다.
‘야! 이게 정말 원인이었나 보네.’
이준영 교수에게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살짝 놀라면서도 다소 의아한 얼굴이었다.
“간디스토마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네. 확신하기에는 이르니까 일단 지켜보자.”
차례차례 회진을 돌고는 염성일 환자의 병실로 들어선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말을 잃었다.
튜브 끝에 연결된 주머니에 족히 수십 마리는 될 간디스토마가 들어 있었다. 대부분은 죽어 있었지만 일부는 아직도 살아서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T-tube와 연결된 줄에 맑은 담즙 대신 마치 하수처리장 침전물처럼 끈적끈적하고 짙은 암갈색의 담즙이 걸려 있었다. 그동안 간흡충이 막고 있던 담관에서 빠져나온 염증성 담즙이었다.
마침 식사 시간이 겹쳤다. 고열에서 해방된 덕인지 염성일 환자가 수술 후 처음으로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자신의 간에서 기생충이 나왔다는 사실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더 이상 열이 나지 않자 환자의 혈색까지 급격하게 좋아졌다. 정말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환자를 보던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에게 시선을 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의미가 거의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지금까지 T-tube를 짜며 매달렸던 거야? 그래. 원인을 모르면 무엇이든 해 봐야지. 녀석, 이젠 이런 식으로 날 놀라게 하는구나.’
김지훈 역시 만세를 부를 정도로 기뻤다.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묘하게 의사의 한계를 느꼈다. 그동안 왜 발견을 못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간흡충의 크기가 작거나 판독 과정의 실수로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간디스토마가 열의 원인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간 내 담석의 원인 중 하나가 간디스토마니까 생각을 했어야 하나?’
지금도 간디스토마가 열의 원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의사도 기생충을 의심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분명 연관은 있었을 것이다.
새삼 교과서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큰 짐을 하나 덜었다.
그러나 곧 더 큰 짐을 짊어져야 했다. 박평자 환자가 찾는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선생님, 수술 받겠습니다. 우리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박평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내 펑펑 눈물을 쏟아 냈다.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눈물을 참아 냈던 환자였다. 얼마나 두려웠던 걸까?
그 순간 김지훈의 얼굴이 벌게졌다. 환자는 아프고 힘든 사람이고, 의사는 그런 환자를 치료해야 할 사람이었다. 아주 잠깐이나마 짐이라는 생각을 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환자분, 잘 결정하셨습니다. 내일부터 바로 수술 준비에 들어갈 겁니다. 마음 편히 가지시고 우리를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수술을 해낼 겁니다.”
이준영 교수의 나직한 목소리에 환자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후! 환자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눈가를 찡그리며 뒤를 따르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공정식과 함께 아주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예전 대장 동맥 혈전증으로 동맥 우회술을 받은 환자의 아들인 양승철 교수였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을 본 양승철 교수가 무척이나 반갑게 인사를 하며 웃었다.
“어이구! 이 교수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예, 양 교수님. 연수 날짜가 아직 남은 걸로 아는데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아 참! 아버님은 건강하시죠?”
“예. 덕분에 아주 건강하십니다. 저도 봐야 할 것을 다 봤고, 아버님 나이도 많으셔서 겸사겸사 예정보다 빨리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신세 많이 져야 할 것 같습니다. 컨설트 너무 보낸다고 뭐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김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그동안 양승철 교수를 한 번도 못 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연수를 갔던 모양이었다. 진료 부장까지 했던 의사가 지금도 배우기 위해 타국까지 다녀온 것이다.
평생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다가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머릿속을 강하게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제대로 컨설트를 받는다면 이준영 교수의 수술은 엄청나게 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금경태 과장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더욱더 깊고 넓게 간담도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은연중 느껴지는 기대와 희망에 가슴이 벅찼다.
‘야! 이렇게 되면 상황이 완전히 돌변하네. 스승님도 표정이 상당히 좋으셔서 나도 좋다. 다행이다. 신 난다.’
공정식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마치 앞으로 컨설트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 같았다. 염성일 환자에 이어 정말 기분 좋은 신호였다.
이제 남은 일은 박평자 환자의 수술을 무사히 마치는 것뿐이었다. 췌장암 환자를 완벽하게 수술한다면 이준영 교수의 이름이 또 한 번 병원을 떠들썩하게 할 것이다.
김지훈이 바짝 긴장을 했다. 수술에 대한 부담이 가중됐다. 더구나 박평자는 10시간 이상 걸리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다른 어떤 수술보다도 준비할 게 많았다. 그나마 염성일 환자가 좋아진 덕에 집중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외과 병동으로 옮겨 오자마자 중심 정맥부터 잡았다. 긴 수술에 대비한 첫 번째 준비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환자의 손에 불안과 긴장이 확연하게 실려 있었다.
***
2명의 환자로 인해 주말 집담회 분위기가 돌변했다.
“이준영 선생님, 이제 한시름 놓았습니다. 간디스토마가 원인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김지훈, 니 정말 수고했다. 니들도 끝까지 환자 포기하지 마라. 단순히 기생충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목숨을 구한 일이다.”
“맞다. 그 말이 맞다. 환자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돼. 교과서에만 답이 있는 게 아니다. 정성이 중요하지, 정성이. 암! 그게 제일 중요하지. 근데 지훈아, 그놈들 어떻게 했니? 그 희한한 놈들 말이야.”
“예? 그놈들이라니요?”
“벌레 말이야, 벌레. 다 잡았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벌레는 다 잡아야 돼. 괜히 기생충이라고 부르겠어? 확실하게 잡아라. 어디 벌레만 그렇겠어? 사람은 사람을 위해야 돼. 그래야 인간이지. 지훈아, 내 말이 맞지? 그치?”
뜬금없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에겐 노골적인 말이었다. 김지훈이 얼굴을 붉히며 머리만 긁었다. 금경태 과장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대놓고 대답을 하기에는 민망했다.
송재덕 과장이 힐끗 금경태 과장을 보며 말했다.
“아 참! 다음 주 화요일에 휘플 한다며? 휘플. 어렵다. 어려워. 그거 아무나 못하는 건데, 후복막까지 먹었다고? 수술 힘들겠다. 열심히 준비해라, 열심히. 그거 아무나 못한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금경태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길! 환자가 좋아졌어? 원인도 희한하지만 그걸 어떻게 잡아냈지?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야? 아니야. 불안해할 이유가 없어. 이준영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이번 수술은 불가능해. 절대 제거할 수 없는 암이야.’
그때 신기동 교수가 입을 열었다.
“김지훈, 휘플 준비 제대로 하고 있지? 내가 항상 강조한 거 잊지 마. 해부학을 모르면 아뻬도 힘들어. 명심해라.”
“예, 선생님.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랜드마크다. 랜드마크. 지훈아, 설마 그걸 잊은 건 아니겠지? 랜드마크를 잘 찾아야 수술이 쉬워진다. 신 교수, 지훈이 정도면 퍼스트 제대로 설 수 있어. 우리보다 더 잘할 거야. 암! 더 잘하지. 퍼스트는 얘들이 전공이잖아. 얘들이. 나쁜 놈아, 내 말이 맞지? 그치? 너 퍼스트 되게 잘 서잖아.”
손일석이 엉겁결에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예, 선생님. 퍼스트가 우리 전공입니다.”
“신 교수, 거봐. 나쁜 놈도 내 말이 맞대잖아. 잘하자. 우리부터 잘하자. 우리만 잘하면 수술은 저절로 잘된다.”
묘한 말이었다. 전종훈 교수가 그 속에 숨은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여기서 발끈해 대꾸를 하면 자인만 하는 꼴이었다. 얼굴만 벌게진 채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모습에 눈가를 찌푸리던 금경태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종훈, 치고 나가. 진평호 조카사위다운 모습을 보여야지. 못난 놈. 그건 그렇고, 김지훈을 퍼스트로 세우다니 말이 안 되잖아. 혹시 휘플을 하는 척하고는 보존 수술만 하고 나오려는 속셈인가?’
말도 섞기 싫은 이준영 교수였지만 슬며시 떠볼 수밖에 없었다. 화요일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길었다. 이참에 은근슬쩍 자신을 변호할 필요도 있었다.
“이 교수, 정말 김지훈을 퍼스트로 세울 생각이야?”
“왜? 무슨 문제 있어?”
확실했다.
“흐음! 사실 수술이 안 밀려 있었으면 내가 수술을 했을 거야. 이삼 주나 뒤로 미룰 수 있는 환자가 아니잖아? 어쨌든 나라면 교수 중 한 명과 들어가겠어. 휘플을 반드시 성공시킬 생각이면 말이야. 물론 결정이야 집도의가 하는 거니까 내 말은 참고만 해.”
금경태 과장의 입가가 말렸다. 김지훈이 퍼스트라면 최소한 자신이 의도했던 바가 어그러질 일은 없다고 확신했다. 이준영 교수가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두려움마저 사라졌다. 휘플은 제아무리 잘난 전공의라도 감당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퍼스트라고 해도 말이다.
그 순간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콧등까지 찡그렸다.
‘휘플 할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더구나 수술을 했을 거라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결국 내과를 통해 알았다는 말이잖아. 그런데 컨설트가 왜 스승님께 왔지? 혹시 원관식 교수와 짜고 위험한 수술만?’
엉뚱한 생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혁민 교수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마치 똑같은 의심을 하는 것 같았다. 김지훈이 입가를 매만지며 지금 생각을 머릿속에 단단히 박았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오늘도 뭔가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집담회가 끝났다. 질병과 치료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을 해야 할 자리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외래로 향하던 금경태 과장이 갑자기 인상을 썼다.
‘가만! 김지훈이 퍼스트를 서면 보존적 수술만 한다는 말이 확실하잖아. 음성과 응급실에서 고생 좀 하더니 너도 몸을 사리는구나. 그래. 너도 입으로는 환자가 최우선이라고 하지만 결국 똑같은 놈에 불과해. 이렇게 되면 어떻게 이준영을 잡지? 결국 말려 죽이는 수밖에 없나? 에이! 이런 판국에 양승철은 또 왜 일찍 들어온 거야? 쯧!’
이준영 교수가 위험한 수술을 피한다면 환자를 없애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압력을 가하다가는 너무 티가 날 것이다. 더욱 은근하고 교묘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금경태 과장이 또 다른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주말이 지나고 어느새 월요일 밤이 찾아왔다. 이 밤만 지나면 박평자 환자의 수술이 시작된다.
김지훈이 가장 조용한 곳을 찾았다. 휘플의 수술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모든 과정이 눈앞에 펼쳐졌다. 상상과 실제는 전혀 다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다.
‘으아아! 잘해야 하는데 큰일이네.’
크게 기지개를 펴던 김지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문득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