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21화 (421/1,329)

제10화 겁나는 수술 Ⅱ (1)

묘한 확신이 실린 목소리였다. 남은 일은 환자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결정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는 결코 무모한 결정을 내릴 사람이 아니었지만 불안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박평자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외래로 내려왔다. 지금도 암 환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이 밝았다.

통상은 병실로 올라갔어야 하지만 지금은 사진을 함께 보아야 했기에 불가피했다. 환자와 기본적인 대화를 주고받은 이준영 과장이 복부 CT를 가리키며 병변과 진행 정도 및 수술 방법을 설명했다.

휘플(Whipple)!

췌장 두부에 발생한 암을 수술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이 부위의 해부학적 구조상 췌장 머리 부분만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암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췌장 두부와 하부 담도 및 이와 연결된 담낭까지 제거할 수밖에 없다.

하부 담도가 제거되면 십이지장에 인위적인 천공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천공 부위를 단순 봉합하면 그 자체로 대단히 위험한 데다, 남은 췌장과 담도를 연결할 방법이 없어 십이지장 전체를 들어내야 한다.

각 장기를 다 제거하고 나면 남은 담도와 췌장을 소장과 연결해야 한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십이지장을 들어냈기 때문에 위의 일부분을 잘라야만 소장과 연결할 수 있다.

결국 암이 발생한 췌장 머리 부분 이외에도 하부 담도와 담낭, 그리고 십이지장 전체와 위의 일부분까지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이후 소장을 끌어와 위와 담도 및 췌장에 연결하는 수술이 바로 휘플이다.

노련한 써전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기 힘든 수술이었다. 노련하다고 해도 수술 시간만 통상 6시간 이상 걸렸다. 게다가 박평자 환자는 후복막까지 제거해야 한다. 암이 퍼진 부분이라 더욱 힘들고,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설명을 듣던 박평자가 입도 다물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을 번갈아 보며 멍한 표정만 지었다.

한참 만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가 그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정말 유일한 방법인가요?”

이준영 교수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전 그냥 암만 제거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너무 큰 수술이네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수술 시간만 열 시간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침 9시에 시작해도 저녁 7시는 돼야 끝난다는 말에 박평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얼마나 어려운 수술인지 이제야 확실하게 실감한 것이다.

“그런 수술을 제가 견딜 수 있을까요? 위험하지는 않나요? 정말 다른 방법은 없나요?”

박평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환자분의 경우 후복막에도 암이 퍼졌기 때문에 다른 췌장암 환자보다 더 위험합니다. 수술 중에는 물론 수술 후에도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박평자는 물론 보호자까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그, 그렇게 위험한데 왜 수술을 권하시는 거죠?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잖아요.”

이준영 교수가 얼굴을 굳힌 채 예후를 설명했다.

멍한 표정을 짓던 박평자 환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내과에서도 어느 정도 설명을 들었겠지만 집도를 할 의사에게 들으니 도리어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술을 안 하면 6개월밖에 못 살고, 수술을 하더라도 5년을 살 확률이 40퍼센트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이네요. 최악의 경우 퇴원을 못할 수도 있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통계는 통계일 뿐입니다. 이 상태로 6개월 이상 사실 수도 있습니다. 단, 굉장히 고통스러우실 겁니다. 췌장암이 원래 그런 암입니다. 반면 5년 후에 다시 절 만난다면 40퍼센트가 아니라 환자분에게는 100퍼센트입니다.”

“확신할 수 없는 100퍼센트겠죠. 한 가지만 더 물을게요. 위험하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절 수술하실 자신이 있으신가요?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신 건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확신을 갖고 수술에 임할 겁니다.”

이준영 교수는 냉정하기만 했다. 지금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었다. 환자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것은 수술 후에나 허락되는 일이었다.

박평자 환자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확신이 있다는 거예요? 아니면 없다는 거예요?”

이런 질문 앞에서는 이준영 교수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직한 한숨이 터졌다.

“제 가족이라면 수술을 하자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때론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항상 환자가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습니다. 환자분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평자 환자가 고개를 저었다. 살고자 하는 희망이 없는 환자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의사에게 듣고자 하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환자분, 제가 확신을 갖는 이유는 제 자신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김지훈 선생과 수술 팀의 실력, 그리고 환자분의 의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의지는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집도의가 다른 의사를 거론하다니 의아한 말이었다. 게다가 김지훈이 전공의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김지훈 역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혁민 선생님과 하실 줄 알았는데, 설마 날 퍼스트로 세우실 생각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술은 선생님이 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이 선생님은 전공의잖아요?”

“맞습니다. 제가 합니다. 하지만 수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간의 완벽한 호흡이 필요하기에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의사와 함께해야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 의사가 전문의인지, 전공의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김지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다.

순간 가슴이 턱 막힌 김지훈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 스승의 믿음에 가슴이 벅차면서도 박평자 환자를 생각하면 기뻐할 일만도 아니었다. 솔직히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정말 퍼스트를 설 수 있을까?’

눈빛을 굳힌 채 묵묵히 서 있는 김지훈을 본 박평자가 물끄러미 남편을 보았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이후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워한 사람이었다. 마음이 약하고 여려 지금도 눈가만 붉힌 채 한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남편 대신 가장 노릇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숱한 고생을 한 끝에 이제야 살 만해졌다. 아니, 제법 큰 성공까지 거뒀다. 대신 돈부터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조차 챙기지 못했다. 지금에야 알콩달콩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가며 가족이 주는 행복에 푹 빠져 있었다.

췌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가족을 보며 절망과 두려움 대신 희망을 가졌다. 뜬눈으로 밤을 새워도 아침이면 웃음을 보였다. 수술만 받으면 살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 그런데 집도의 말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6개월이라도 내 새끼들과 행복하게 살까? 정말 가족들이 보기 힘들 정도로 아플까?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 아빠와 내 새끼들은 어떻게 살지?’

한 방울의 눈물이 똑 떨어졌다.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이준영 교수의 말대로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가족들과 영영 이별을 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날을 살다 갑자기 이별을 고할 수는 없었다.

박평자가 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집도의의 솔직한 말이 두려우면서도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환자의 죽음과 삶을 앞에 두고 결코 허언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수술을 하게 되면 언제 할 수 있죠?”

“수술에 동의하신다면 다음 주 화요일로 잡겠습니다. 결정이 되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럼 김지훈 선생이 먼저 찾아뵐 겁니다.”

또 김지훈이라는 전공의를 찾았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의사일까?

박평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실로 올라갔다.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던 박평자가 그날 밤 밤새 숨죽여 울었다.

김지훈이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박평자 환자의 눈빛이 너무도 슬퍼 보였다. 의사도 환자도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자신을 확고하게 믿는다는 말에는 가슴이 벅찼지만 두려웠다. 그 때문인지 환자를 대할 때 보인 이준영 교수의 냉정함도 왠지 낯설기만 했다.

제자의 마음을 모를 스승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수술에 욕심이 많은 김지훈이었다. 그런데 휘플이라는 큰 수술에서 퍼스트를 선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다는 답답함을 보이고 있었다. 환자의 불안과 의사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게 의사가 가져야 할 마음이야. 그래서 널 믿을 수밖에 없어. 너만큼 정성을 다해 환자를 볼 의사는 없을 거다. 그리고 환자를 대하는 내 태도도 이상했겠지.’

“김지훈, 환자와 감정을 공유해야 할 때가 있고, 냉정해야만 할 때가 있어. 지금은 어느 쪽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까? 난 후자라고 본다. 환자 역시 냉정해야 하니까 말이야.”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말이었다.

“그럼 염성일 환자는요?”

“둘 다겠지. 올라가 봐.”

돌아서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처럼 수술이 두려운 적은 없었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환자는 물론 이준영 교수까지 모두 문제가 될 것이다.

“스승님, 제가 정말 퍼스트를 설 실력이 있습니까?”

사석이 아닌 이상 절대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김지훈이었다.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두려움이라는 것을 모를 이준영 교수가 아니었다.

“지훈아, 난 널 믿는다.”

‘지훈아’라고 불렀다. 믿는다는 말보다 더 큰 의미가 담겨 있었다. 김지훈이 순간 알지 못할 힘을 얻었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느껴진 것이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병동으로 올라가던 김지훈의 눈에 문득 푸른 하늘이 들어왔다. 스승의 말을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하고 안타까웠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희망을 말하면서도 환자에게는 냉정한 것이 도움이 된다? 후우!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네. 일단 염성일 환자가 좋아져야 스승님도 나도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의사에게 감정은 충분조건일 수도, 필요조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환자가 최우선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날 저녁, 김지훈이 수술 책을 펴고는 끙끙댔다.

퍼스트를 서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휘플이라는 수술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따로따로 떼어 놓고 보면 다 경험한 수술이었다.

위절제술과 담낭 절제술은 숱하게 봤다. 췌장을 자르는 수술과 담도에 T-tube를 심는 수술도 들어가 봤다. 단지 십이지장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만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걸 모두 한꺼번에 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말로는 설명을 할 수조차 없었다.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김지훈을 본 손일석이 의자에 몸을 내던지듯 털썩 앉으며 말했다.

“어이! 김지훈, 넌 또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고민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형한테 상의해. 그리고 소개팅 건은 아직 해결 안 됐어? 나 나이트 끊은 지 오래다. 오해하지 마라.”

“지금 소개팅이 문제가 아니야, 인마.”

고개도 돌리지 않는 모습에 손일석이 쓰윽 고개를 들이밀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휘플 할 환자 있어? 췌장이야, 담도야?”

“그게 그거지, 뭐. 췌장암인데 후복막까지 먹었어.”

“뭐? 아이고! 환자가 누군지 정말 갑갑하겠다. 어? 그런데 수술이 가능해? 이준영 선생님이 정말 하신대?”

“그래. 환자가 동의하면 다음 주 화요일에 하신단다. 걱정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손일석이 심각한 표정을 짓다 말고 피식 웃었다.

“니가 고민할 게 뭐가 있어? 너 전공의야, 인마. 자신 있으니까 하시겠지. 그리고 어차피 퍼스트는 신기동 선생님이나 이혁민 선생님이 서시는 거 아냐? 우리는 끌개나 열심히 하고, 수술 잘 봤습니다 하면 끝이야.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회복 잘되기만을 빌어.”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나보고 퍼스트 서라고 하신다. 수술이라도 본 적이 있어야 하는데 큰일이야. 도대체 어떤 식으로 어시스트를 서야 할지 감도 못 잡겠어. 너도 본 적 없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일석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하긴 퍼스트를 서리라곤 김지훈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니 말도 안 나올 것이다.

“저, 정말이야? 니가 진짜 퍼스트를 서? 농담이지?”

“내가 지금 농담이나 할 상황이겠어? 다음 주 화요일이야. 며칠 남지도 않았어. 죽겠다. 조용히 좀 해라.”

김지훈이 답답한 표정으로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 이게 무슨 일이야. 니가 정말 그 정도였어? 만일 신기동 선생님이었다면 나한테 퍼스트를 서라고 하셨을까? 지훈아, 넌 어떻게 생각해? 말 좀 해 봐, 인마.”

대답이 없자 더 안달이 나는 모양이었다.

“지훈아,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혹시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거야? 퍼스트를 세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집중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방해를 하고 앉았다.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김지훈도 제 코가 석 자였다.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난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에이! 자식이 정말!”

의국에서 나온 김지훈의 발길이 저절로 염성일 환자에게 향했다.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습관적인 것처럼 T-tube를 잡았다. 열심히 줄을 당겨 튜브가 납작해지도록 음압을 걸었다.

“선생님, 신경을 많이 써 주셔서 고마운데 우리 남편 열이 왜 안 떨어지죠? 혹시 다른 병이 있는 건 아닐까요?”

“글쎄요.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는데 이상 소견이 없어서 저도 참 답답합니다. 이렇게 해서 담즙이라도 더 잘 나오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도리어 김지훈이 묻고 있었다. 아마도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할지도 몰랐다.

쭈우욱! 쭈우욱!

음압이 걸리자 담즙이 T-tube를 통해 주르륵 끌려나왔다. 항상 보았던 일이었다.

문득 휘플이 다시 생각난 김지훈의 눈에서 T-tube가 스르륵 사라졌다.

그때 갑자기 보호자가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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