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겁나는 수술 Ⅰ (2)
금경태 과장이나 전종훈 교수는 원래 그런 사람으로 치부하면 끝이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이번 주도 끝인데, 이준영 교수는 정규 수술을 단 한 건도 잡지 못했다.
‘후우! 외래 진료를 벌써 이 주나 하셨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지? 환자는 그렇다고 쳐도, 그동안 내과 컨설트까지 모조리 금경태에게 의뢰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네.’
하도 답답해서 공정식에게 컨설트 좀 가져오라고 노래를 불렀다. 전공의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소화기 내과에서 나오는 컨설트는 모두 금경태 과장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덕분에 금경태 과장의 수술은 2주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밀려 있었다.
‘에이! 이럴 땐 세상이 정말 불공평하다니까. 인간성이 바닥인데 실력이 있으면 뭐해? 그래. 그러니까 스승님을 어떻게든 쫓아내려고 했겠지. 가만? 혹시 컨설트도?’
뭔가 야료를 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과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두 명이라면 모르지만 내과 교수가 몇 명인데 그런 일은 벌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믿었다.
“에이! 별생각이 다 드네.”
집담회가 끝난 후 병동으로 올라간 김지훈이 곧 T-tube와 씨름을 했다. 땀만 날 뿐 별다른 성과가 없었지만 이마저도 안 하면 환자를 볼 낯이 없었다.
그때 공정식이 불쑥 얼굴을 디밀었다. 언제 보아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어? 정식아, 너 여기 웬일이야?”
“너 보러 왔지. 안녕하세요? 아직도 열이 많이 나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도 함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내과에 있었을 때 공정식의 환자였기도 했지만 끝까지 신경을 써 줘서 고마웠다.
공정식이 병실을 나가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지훈에게 손짓을 했다.
“지훈아, 드디어 이준영 선생님께 컨설트 하나 나왔다. 근데 케이스가 좋지 않네.”
컨설트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 김지훈이 컨설트 용지를 받자마자 내과 병동으로 달려갔다.
다음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들었어야 했다. 차트와 복부 CT를 보던 김지훈이 눈만 껌뻑거렸다.
“췌장암 환자네.”
췌장은 간담도에 바짝 붙어 있기 때문에 수술 역시 간담도 파트에서 한다. 해부학적 구조와 위치상 어떤 질환이든 수술하기가 상당히 어려웠고, 그만큼 위험도도 높은 장기였다.
더구나 단백질을 녹이는 소화액이 분비되는 장기다. 수술이 잘못돼 연결 부분이 새기라도 한다면 주변 장기까지 모조리 녹일 수 있었다. 그런 장기에 암이 발생했다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췌장의 몸통이나 꼬리 부분에 발생한 암이라면 췌장만 제거하면 끝난다. 하지만 의뢰된 환자는 췌장의 머리 부분에 암이 발생했다.
이 경우에는 수술 방법이 완전히 달랐다. 일반 외과의 영역에서 가장 큰 수술이라고 할 수 있는 휘플(Whipple)이라는 수술을 해야 한다. 속된 말로 잘돼도 본전을 찾기 어렵다는 수술이었다.
더구나 드물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예후가 불량한 암이었다. 조금만 암이 진행된 상태여도 수술이 불가능해, 환자는 말 그대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수술 자체가 극히 드물어 김지훈 역시 3년차가 되도록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염성일 환자도 아직 해결이 안 됐는데 하필이면 췌장암 환자냐. 휘플은 간 내 담석 수술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수술인데 난리 났네.’
무거운 마음으로 환자를 찾았다.
40세 여자 환자로 이름은 박평자였다.
다행히 전신 상태는 나쁘지 않았고, 집안에 여유가 있는지 1인실을 쓰고 있었다. 보통 암을 진단받은 직후의 환자들이 절망하고 두려워하는 것과는 달리 의외로 얼굴이 밝았다. 치료에 대한 의지가 상당히 강한 덕분이었다.
“선생님, 수술해 주실 선생님을 빨리 만났으면 좋겠네요.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거든요. 해마다 검진을 받은 덕에 빨리 발견된 거죠?”
“그럼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몇 가지만 여쭙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자신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걸 아는데도 이 정도면 의지가 정말 강한 사람이네. 하긴 췌장암이 가장 치료하기 힘든 암이라는 걸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
환자 앞에서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담담한 얼굴로 병력을 청취했다.
아주 드물게 보는 케이스였다. 불과 1년 전에 시행한 복부 CT에서는 전혀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간혹 이런 환자가 있었다.
CT는 1센티미터 간격으로 촬영하기 때문에 암이 발견되려면 보통 1센티미터까지는 자라야 확실하게 찾아낼 수 있다. 장기마다 다르지만 그 정도 크려면 통상 3년 정도는 걸린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래서 정기 검진을 2년마다 할 것을 권유하지만 불행하게도 박평자 환자는 예외였다.
병실에서 나온 김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어휴! 일 년도 안 돼서 2센티미터 정도면 너무 빨리 자랐네.’
“근데 넌 어째 어려운 환자들만 컨설트를 들고 오냐? 이왕이면 라파로 할 환자들도 의뢰하면 안 될까?”
“그게 내 마음대로 돼? 이번에도 금경태 과장님 수술이 많이 밀렸다고 해서 이준영 선생님한테 낸 거야.”
입이 소태 씹은 것처럼 썼다. 수술 스케줄을 보면 이번 환자와는 정말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쉬운 환자들만 수술을 하는 금경태 과장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네.”
“지훈아, 그건 우리가 상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이 환자 수술은 가능한 거야?”
“글쎄. 이준영 선생님이 보시고 결정을 하시겠지. 내가 보기에는 사이즈하고 임파선 전이로 볼 때 지금이 마지노선인 것 같아. 뒤로 미루면 하고 싶어도 못할 수가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은 그나마 조기 쪽에 가깝고, 따라서 예후도 그만큼 좋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관여할 수 없는 운이 따라 주고, 환자의 의지가 강하다면 깜짝 놀랄 정도로 오래 생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 김지훈의 판단이 맞는다면 말이다.
“아이고! 그나저나 간만에 정규 수술인데 퍼스트 서기는 글렀네. 하긴 서라고 해도 문제긴 하다.”
“왜? 휘플이 큰 수술이긴 하지만, 너 정도면 설 수 있지 않아? 어차피 자르고 이어 주는 거는 똑같잖아.”
“정식아, 내가 내과 환자는 대충 약 쓰면 낫는다고 말하면 좋겠어? 휘플을 아주 아뻬처럼 말하네.”
같은 의사도 휘플이 막연하게 큰 수술이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득 환자가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생각 이상으로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지훈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어쨌든 수술 의뢰를 받은 것 자체는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작 두 번의 컨설트를 받았을 뿐인데 모두 각오를 하고 수술을 해야 할 케이스라는 사실이 뭔가 이상했다.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이준영 교수에게 환자를 보고하는 김지훈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이준영 교수의 표정이 상당히 심각했기 때문이다.
“환자 상태는 어때?”
“전신 상태는 양호하고, 환자의 의지도 매우 강합니다.”
이준영 교수가 CT를 가리키며 물었다.
“김지훈, 니가 보기에는 어때?”
“췌장 머리 부분에 발생했고, 사이즈도 2센티미터 정도 되지만 다행히 임파선 전이와 원격 전이가 없어서 수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휘플을 할 수 있다는 말이지?”
고개를 저은 이준영 교수가 이혁민 교수를 찾았다.
웬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조언을 구할 이준영 과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놓친 것이 있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바짝 긴장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혁민 교수 역시 눈가를 좁히며 한참 동안 CT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교수, 이 환자 수술 가능하겠어?”
“지금이 수술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인 것 같은데 후복막을 침범했네요. 저 부분을 제거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남은 부분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김지훈이 깜짝 놀라 CT를 다시 보았다.
‘이런! 저게 전이 소견이라는 걸 놓쳤네. 어떻게 저걸 못 봤지? 그럼 수술이 불가능한 건가?’
암이라는 놈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세포다. 또한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혈관이 분포한다. 하기에 암 덩어리를 잘못 남기면 심각한 출혈이나 감염 등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위치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상황이 유발될 수 있었다. 췌장은 특히 그런 위험이 높았다.
“이 교수, 위험한 거야? 불가능한 거야?”
이혁민 교수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내가 말을 잘못하면 분명히 수술을 시도하실 텐데 어떻게 하지? 잘못하면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는 케이스지만, 예후에 큰 차이가 있으니까 절대 환자를 포기할 분도 아니고 말이야. 정말 고민스럽네.’
한참이 지나서야 의견을 말했다.
“솔직히 이런 케이스는 스승님도 하기 힘들어하셨을 수술입니다. 정말 신중하셔야 합니다.”
“신중해라. 맞는 말이긴 한데. 김지훈, 예후가 어떻게 돼?”
예후를 묻는 이준영 교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수술 자체가 갖는 치명적인 위험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혁민 교수는 대가 중의 대가였던 허경발 명예 교수까지 거론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었다.
불안감을 느낀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후복막을 침범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지 못하면 길게 잡아도 6개월 정도입니다. 반대로 제거를 한다면 5년 생존률이 40퍼센트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개월과 40퍼센트라. 김지훈,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의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일까?
수술 성공 여부에 따라 예후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러나 다른 암도 아닌 췌장암이 후복막까지 퍼져 들어갔다. 사소한 실수도 수술 중이나 후에까지 사망을 야기할 수 있었다.
더구나 휘플은 수술 과정상 일단 진행하면 되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위험했다. 극과 극을 달리는 결과를 두고 김지훈이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가 물끄러미 시선을 주며 말했다.
“의사가 아니라 네 가족이라고 생각해 봐.”
가족!
만일 박평자 환자가 가족 중의 한 명이라면!
만일 아버지나 어머니였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은 가족과 죽음을 함께 기다릴 수 있을까?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암인데 어떻게 지켜보지? 수술만이 답이야. 하지만 만일 수술 중이나 수술 후에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한다면 누구한테 원망을 할까?’
이미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김지훈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때 수술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문제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의사가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이미 극한의 고통을 겪은 스승이었다.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를 보며 물었다.
“만일 수술이 잘못된다면 책임은 누가 집니까?”
이준영 교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연히 집도의가 책임을 져야지. 누가 대신해?”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집도의였다. 보호자들이 결과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평생 멍에처럼 온몸에 고통과 아픔을 달고 살 것이다.
김지훈 역시 아직도 1년차 때 대장암으로 잃은 어린 소녀의 얼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집도의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의사가 겁부터 낸다면 수술을 하기도 전에 실패한 것과 다름이 없어. 만일 하게 된다면 자신과 동료들을 믿고 성공을 확신해야 해. 다시 생각해 보자. 내 가족이었다면 난 수술하는 것으로 결정했을까?’
김지훈이 긴 숨을 내쉬었다.
“집도의가 확신을 보인다면 수술에 동의하겠습니다.”
“이유는?”
“수술도 못해 보고 가족의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살 수 있다는 희망마저 없다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따를 겁니다. 의사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희망까지 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준영 교수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래.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이 바로 그거야. 그런 전제가 없다면 조금만 두려워도 도망가기 마련이다. 난 10년을 그렇게 살았지만, 넌 절대 그러면 안 돼.’
침묵만이 흘렀다. 이준영 교수가 박평자 환자의 복부 CT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환자에게 희망을 주려면 어떤 수술이라도 확신을 갖고 권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물론 적당히 도망갈 방법은 있었다. 이혁민 교수가 스승인 허경발 명예 교수까지 거론할 만큼 어려운 수술이다. 보존적 수술만 한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김지훈, 보존 수술에 의미가 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신중하게 대답할 일이었다.
“이 환자의 경우 나중에 담도까지 막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담도에 T-tube를 심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췌장암으로 인한 통증에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암이 너무 빨리 자란 환자라 담도가 막히기 전에 암으로 사망할 것 같습니다.”
의미가 없다는 말이었다. 결국 수술을 애초에 포기하든지, 아니면 암을 확실하게 제거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과장이 복부 CT를 보며 수술을 그렸다. 췌장 머리 부분을 자르고 후복막으로 들어가는 순간 손이 턱 막혔다. 도저히 혼자만의 힘으로는 진행을 할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보였다. 아주 익숙한 손이 자신의 손과 척척 호흡을 맞추며 암이 퍼진 후복막을 제거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의 손이었다.
이준영 과장의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수술은 내 자신의 실력만이 아니라 가장 완벽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손이 필요해. 저놈만큼 내 손을 잘 아는 놈도 없고, 나만큼 저놈의 손을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저놈과 함께하면 제거할 수 있어.’
불현듯 다가온 확신이었다.
이제 전공의 3년차였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전문의 못지않은 실력까지 가졌다. 그동안 수없이 손을 맞춰 왔다. 완벽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제자 김지훈이었다.
이준영 교수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환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