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겁나는 수술 Ⅰ (1)
조금도 다르지 않는 상황이 목요일 저녁까지 이어졌다.
전종훈 교수는 여전히 짜증을 부리며 손일석을 극도로 힘들게 했다. 아무리 배경이 좋고 보이는 게 없다고 해도 분위기를 봐 가며 성질을 부릴 일이었다.
급기야 참다못한 신기동 교수가 폭발하고 말았다. 수술 방에서 직격탄을 날리는 바람에 의국에 바로 소식이 전해질 정도로 큰 난리가 났다.
“전종훈, 똑바로 해. 넌 교수야. 전공의를 가르쳐야지, 어떻게 니 성질만 부려? 전에 있던 병원에서 그렇게 배웠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전공의를 똑바로 가르쳤으면 혼낼 일도 없습니다.”
“뭐? 수술이나 잘하고 나서 그런 소리를 해. 니 실력이 어떤지 솔직하게 얘기해 줄까? 전공의 3년차 수준도 안 돼. 아니면 성격이라도 좋든지. 넌 교수로서 자격이 없어. 처음부터 다시 배워.”
가뜩이나 날카로운 사람인데 화가 나니 정말 살벌했다.
“다른 병원에서 왔다고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뭐가 너무해?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반도 안 했어. 너 교수 타이틀 달고 있어서 이 정도로 끝나는 줄 알아. 앞으로 한 번만 더 전공의들에게 애먼 소리 하면 이렇게 안 끝난다. 간호사들한테도 똑바로 행동해. 예의는 지키라고 있는 거야.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을 해. 그게 세상이야.”
개망신이 따로 없었다. 전종훈 교수가 시뻘게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아무도 전종훈 교수를 비호할 생각은 없었지만, 하필이면 수술 방에 딸린 휴게실이었다. 함께 있던 교수들은 물론 간호사들까지 나서서 신기동 교수를 말려야 했다. 그래도 신기동 교수는 화를 풀지 않았다. 결국 이혁민 교수까지 오고 나서야 진정을 했다.
“신 교수, 이쯤 해라. 이런 문제를 너무 키우면 좋을 일이 없다. 아닌 말로 니랑 전종훈을 맞바꿀 수는 없어. 아니, 금경태 과장하고도 못 바꾼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이혁민 교수가 조용히 전종훈 교수를 불렀다.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전종훈 교수의 얼굴이 화로처럼 달아올랐다.
그런 난리가 났는데도 금경태 과장은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수술실에 있었고, 자신이 추천한 전종훈 교수가 궁지에 몰렸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더욱 의아한 일은 분위기를 수습하기는커녕 어느 틈엔가 조용히 수술 방을 나갔단 사실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지나갈 사람이 아닌데. 뭘까? 이런 식으로 가면 신 교수도 문제지만 전종훈이 제 발로 병원을 나갈 수도 있는데, 왜 상관을 안 할까?’
문득 송재덕 과장의 말을 떠올린 이혁민 교수가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고단수! 그것은 다른 말로 금경태 과장은 상식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 시간, 금경태 과장이 전에 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원관식 교수와 만나고 있었다.
‘이제야 뜻대로 일이 굴러가는군. 전종훈, 잘하고 있어. 신기동을 건드리면 이혁민까지 끌려나오게 돼 있거든. 그럼 난 이준영만 처리하면 되는 건가?’
금경태 과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게다가 아직도 열이 안 떨어다는 것은 수술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야. 여기서 큰 거 한 방만 더 먹이면 찍소리도 못하겠지. 마침 딱 좋은 케이스가 있다니 운까지 따르는 건가? 잘하면 이준영을 먼저 보낼 수도 있겠어. 이혁민이 아니라 그놈이 핵심이었어. 그걸 놓치고 있었으니 일이 이 모양으로 굴러갔지. 더 이상 네놈들에게 유리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원 교수, 좋은 케이스라니 무슨 환자야?”
“췌장암 환잡니다. 과장님께 정말 좋은 케이스 아닙니까?”
원관식 교수의 말에 금경태 과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환자 차트와 검사 결과를 확인한 금경태 과장이 눈가를 잔뜩 찌푸린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자칫하면 이준영 교수가 아니라 자신이 궁지에 빠질 수 있는 케이스였다.
“수술하기가 쉽지 않은 케이스로는 보입니다만, 과장님의 실력을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요? 수술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예후 차이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성공만 하면 이준영 교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놈이 미쳤나? 이건 날 잡을 수도 있어.’
침묵을 지키는 금경태 과장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이 수술을 했으면 하는 원관식 교수의 말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어렵다는 말과는 달리 속으로는 췌장암 수술을 너무 쉽게 보는지도 몰랐다.
‘성공만 한다면야 이준영의 실력을 운운하던 놈들의 입을 싹 다물게 할 수 있지만, 내가 과연 이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해. 후복막을 침범한 것이 맞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한 선택을 해야 할 때였다.
진평호 편에 선 때문도 있었지만, 의사로서의 절대적인 힘이나 명성이 없다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하나, 오직 대가라는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일단 대가의 반열에 오르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사회가 바로 의사 사회였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였다.
‘돈과 더불어 대가라는 소리만 얻으면 누구도 날 무시하지 못해. 내 명성을 듣고 줄을 설 환자가 부지기수일 텐데 누가 감히 날 쫓아내겠어?’
금경태 과장이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을까?
의사들이 다른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의 수술을 볼 기회는 거의 없다. 그 탓에 대개 얼마나 많은 수술을 했는지, 그리고 그중 몇 건을 성공했는지를 두고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학회 논문까지 더해지면 객관성까지 담보할 수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진료와 치료에만 전념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도 실력이 뛰어난 의사를 판별하는 데는 큰 무리는 없었다. 물론 의사로서의 양심은 기본이었다.
금경태 과장은 그런 허점을 철저히 이용했다. 지금까지 성공을 장담할 수 있는 수술만 해 오며 완벽하게 경력을 관리해 왔다. 상당한 명성도 얻었다. 조금만 더 경력을 관리하면 미래를 완벽하게 보장받을 수도 있는 기회가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얼마 안 가 대가라는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 최고의 난이도를 갖는 수술 성공 경력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췌장암 수술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다.
금경태 과장이 다시 한 번 복부 CT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역시 췌장 머리 부분에만 국한된 암이 아니었다. 췌장암 수술은 그 자체로 일반 외과에 가장 어렵고 위험한 수술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제거하기 힘든 경우가 바로 후복막까지 침범한 케이스였다.
머릿속으로 후복막을 침범한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과정을 그렸다. 자신이 없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예 수술을 시도할 자신조차 없었다. 생각만 해도 손발이 떨리고, 가슴까지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일단 손을 대면 후복막까지 침범한 암을 완벽하게 제거해야 해. 만일 암 덩어리를 남기면 그 부분에서 발생하는 출혈만으로도 환자가 죽을 수 있어.’
이 정도면 고민할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수술 불가 판정을 내리고 내과에 환자를 맡기면 그만이었다. 다른 병원에 간다고 해도 판단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본능처럼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어쩌면 최고의 기회일 수도 있었다. 만일 무리하게 수술을 시도하다가 환자가 사망한다면 이미 같은 경험이 있는 이준영 교수는 스스로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단 한 방으로 눈엣가시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였다. 솔직히 자신의 실패보다 이준영 교수의 성공이 더 두려웠다. 만에 하나 성공할 확률이 있다는 전제하에 생각도 안 하는 것이 속 편할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절대 성급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제길! 어떻게 해야 하지? 만일 이준영이 성공을 한다면 날개를 달아 주는 건데 절대 그럴 수는 없지. 불가 판정을 내리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나? 하지만 이 수술을 성공할 가능성이 없잖아?’
어떤 결정이 유리한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서로의 속을 안다지만 원관식 교수 앞에서 이런 생각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금경태 과장이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일단 오늘 밤 신중하게 검토를 해 봐야겠어. 그리고 이 환자에 한해서는 이준영은 신경 쓰지 마. 이건 누가 와도 하기 힘든 수술이야. 내가 할 수 없다면 당연히 이준영도 못해. 물론 주제도 모르고 나설지 모르지만 말이야.”
검사 결과를 챙긴 금경태 과장이 외래로 돌아와 급히 전화기를 잡았다.
얼마 후, 구영선 교수와 임동완 교수에 전종훈 교수까지 왔다. 간담도 전공은 아니지만 당장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의사들이었다.
“수술이 가능하겠어?”
모두들 손사래까지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금경태 과장은 확신을 못했는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다른 대학 병원 간담도 주임 교수까지 찾았다.
(진행 정도로 보아서 암 덩어리만 제거한다면 예후 차이가 확 날 환자네. 하지만 위치가 너무 안 좋고, 후복막을 먹어서 각오하고 해야 할 거야. 사실 허경발 선생님이 전성기 때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아. 설마 자네, 이 환자 수술할 생각이야?)
“자네라면 하겠어?”
(무슨 소리야? 난 솔직히 겁나서 못 건드려. 이게 보통 실력으로 가능한 수술이 아니잖아. 하여튼 내 생각에 제거는 100퍼센트 불가능해. 그래도 수술하고 싶으면 보호자에게 얘기 잘하고 T-tube나 박고 끝내. 절대 욕심 내지 마. 그동안 쌓은 경력 한 방에 갈 수도 있어.)
금경태 과장의 입가가 말렸다.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신과 경쟁하는 처지지만, 어쨌든 간담도에서는 누구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의사의 말이었다. 세부 전공이 다르다고 해도 일반 외과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수술을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나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이준영도 실패할 수밖에 없어. 너도 분명히 그렇게 판단하겠지만, 환자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알량한 신념이 발목을 잡겠지?’
어느 정도 결론은 내렸다. 그러나 지금도 섣불리 결정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 100퍼센트는 없다. 만에 하나라도 이준영 교수가 성공한다면 도리어 크게 키워 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었다.
밤늦도록 고민이 이어졌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끽해야 암 덩어리에는 손도 못 대고 보존적인 수술만 하고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손해 볼 일이 하나도 없었다.
반면, 만일 무리한 시도를 하다 환자가 사망이라도 하게 되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이 환자를 내가 먼저 보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돼. 입단속부터 하고 이준영한테 넘기자. 내가 아는 이준영이라면 무리수를 둘 게 분명해.’
금경태 과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슴을 짓누르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을 무서워한 것이 아니라, 경쟁자의 능력이 뛰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를 위해 수술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지하지도 못했다. 환자가 얼마나 힘들어할지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스스로의 실력으로 우뚝 서는 것만이 최고의 써전이 되는 길이다.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는 의사를 무너뜨리며 명성을 얻는 것은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설령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말이다.
***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3년차들은 웃기 바빴다.
“지훈아, 속이 정말 시원하지 않아? 아이고! 하도 웃었더니 배가 다 아프네. 그런데 그 인간이 변할까? 수술 들어가기 싫어 죽겠다. 이건 태우는 게 아니라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거야. 자기 손이 거칠어서 수술이 안 되는 게 내 탓이야? 꼭 하수들이 남 탓만 해요. 소리만 지르면 고수가 되는 줄 아나.”
“나도 시원하긴 한데 신기동 선생님이 걱정이다. 이러다 말썽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일석아, 솔직히 전종훈 교수 때문에 신기동 선생님이 불이익을 당할 수는 없잖아? 그냥 니가 좀 고생하고 개무시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금경태 과장은 왜 가만히 있을까?”
“그러게 말이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그 속을 누가 알까?
가만히 있을 금경태 과장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벌어진 주중 집담회 때 슬쩍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김지훈, 그 환자 아직도 고열이 난다고? 그렇다면 수술 부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야. 담석이 확실하게 제거가 안 됐든지, 아니면 T-tube를 심은 자리에서 담즙이 샐 수도 있어. 수술은 빨리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야. 정확하게 해야지.”
“수술 부위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열이 뭐 때문에 나겠어? 간담도 수술을 많이 해 보면 감이라는 게 있어. 경험이 부족하면 항상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곤 하지. 김지훈, 네 판단만 믿지 말고 이준영 교수와 잘 상의해. 경험은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어.”
교묘한 말로 이준영 교수를 정조준했다.
“지훈아, 열나는 원인은 워낙 많아. 열날 수 있다. 있어. 아뻬하고도 일주일이 넘게 열나는 환자가 있잖아? 염증 다 빠지면 떨어진다. 분명히 떨어져. 그리고 이 환자의 경우에는 빨리하는 게 능사지. 그치? 지훈아, 내 말이 맞지? 수술 시간이 길었으면 열이 아니라 더 큰 문제가 생겼을 거야. 아암! 그렇고말고. 빨리했어야 돼, 빨리.”
송재덕 과장이 대놓고 반박을 한 덕에 기분이 좀 풀어지긴 했다. 그런데 평소라면 살살 비웃는 것처럼 긁어 댔을 금경태 과장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준영 교수도 얼굴만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환자는 아직도 고열에 시달리고, 그 책임은 집도의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난데없이 전종훈 교수가 나섰다. 신기동 교수가 인상을 확 구겼지만 그새 모든 일을 잊었는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멘탈이 강한 것인지,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집담회가 끝났다.
김지훈은 아예 속이 터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