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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414화 (414/1,329)

제7화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다 Ⅰ (1)

다음 날, 간 내 담석 수술을 한 염성일 환자를 보던 이준영 교수가 입술을 모았다.

전체적인 상태로 보아 급한 고비는 분명히 넘겼다. 그런데 열이 너무 심하게 나고 있었다. 수술 후 미열은 흔히 보지만 고열은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39도가 넘어? 담즙은 밤새 얼마나 나왔어?”

“150cc 정도 나왔습니다.”

다행히 담즙은 T-tube를 따라 잘 배출되고 있어 간과 관련된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젊다고 해도 워낙 전신 상태가 안 좋은 환자였다. 다른 문제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알아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한데. 다른 검사는?”

“검사상 고열이 날 만한 이유는 없습니다. 흉부 사진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패혈증 기운이 남아 있는 게 원인일 것 같습니다.”

만일 수술 후 주요 합병증 중의 하나인 폐렴이라도 동반된다면 패혈증과 겹쳐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수술을 아무리 잘해 놨어도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 괜찮은 건가요? 열이 왜 안 내리는 거죠?”

“간의 염증이 워낙 심했던 탓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부위에 문제가 없어 다행이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김지훈, 병실에서 봐도 괜찮겠어?”

“아직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자주 환자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은근히 걱정이 됐다. 고열로 인한 오한과 수술 부위 통증으로 끙끙대는 환자와 불안해하는 보호자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회진을 돌고 난 후에도 한동안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염성일 환자에 대해 상의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하고 있기에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소 찜찜한 얼굴을 한 김지훈이 수술 방으로 내려갔다. 전종훈 교수의 유방암 수술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은 분위기가 괜찮을까? 전처럼 또 그러면 안 되는데.’

수술 방에서도 걱정거리가 생겼다. 내심 분위기가 좋기를 바랐지만 사람 성격이 하루아침에 변할 리는 없었다. 수술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어휴! 죽겠네. 손일석, 우리 지금 암 수술하고 있어. 똑바로 좀 해. 불안해서 수술을 못하겠다. 고 간호사도 정신 똑바로 차려. 저 간호사는 도대체 왜 데리고 들어오는 거야?”

손일석은 입을 꾹 다문 채 퍼스트를 섰고, 고경아와 초짜 간호사 역시 표정이 좋지 못했다. 짜증 섞인 목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있는 대로 신경질을 부리던 전종훈 교수가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혀를 찼다. 이혁민 교수가 들어온 것이다. 얼마 전까지 유방 파트를 맡았던 데다 암 수술이라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김지훈과 고경아의 인사를 받는 이혁민 교수의 눈가에 의아함이 스쳤다.

‘뭔 일 있나? 얼굴들이 왜 이래?’

슬며시 수술을 지켜보던 이혁민 교수가 나직한 한숨을 내뱉었다. 좋게 말하면 거침이 없고, 나쁘게 말하면 거칠기 짝이 없었다. 사실 후자 쪽에 가까웠지만 같은 교수이자 집도의에게 함부로 지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 교수, 수술 잘하네.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뭐 잘못된 일 있나?”

“제가 있던 그동안 수술한 케이스가 꽤 됩니다. 전 걱정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애들이네요. 전공의고 간호사고 제대로 트레이닝이 안 됐습니다. 그동안 누가 맡았는지 모르지만, 제대로 가르치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혁민 교수의 안색이 돌변했다.

예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말이었다. 아니,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게다가 퍼스트는 다들 실력을 인정하는 손일석이고, 간호사는 그동안 일반 외과를 전담하며 훌륭하게 일을 해 온 고경아다. 모두들 어디에 내놓아도 칭찬을 받을 만한 능력을 갖췄다.

그들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이혁민 교수다. 다른 대학 병원에서 근무했다지만, 병원이 돌아가는 형태는 비슷하기 때문에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입이 빠른 성격인지, 아니면 명백한 선 긋기인지 모를 일이었다.

‘뭐야?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이혁민 선생님이 트레이닝을 주관하시는 걸 몰랐다고 해도 교수님들 중에 한 분이라는 건 당연하잖아.’

김지훈마저 화가 날 지경이었다. 한마디 정도는 했으면 했지만, 이혁민 교수는 아무 말 없이 전종훈 교수에게 눈길만 주고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역시 마찬가지군. 금경태 과장이 자기랑 똑같은 사람을 데려왔어. 다루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무슨 생각으로 추천까지 했지? 어쨌든 말을 함부로 하는 것까지는 참고 넘어갈 수 있지만, 만일 진심으로 외과를 위하지 않는다면 내 두고 보지만은 않는다.’

“그렇게 보이나? 알았다. 부족한 게 있으면 잘 좀 가르쳐라. 손일석, 정신 바짝 차리래이.”

사투리가 진해졌다. 기분이 아주 좋거나, 그 반대라는 말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잠시 수술을 지켜보다 어색하게 웃으며 수술실을 나갔다.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전종훈 교수가 힐끗 고개를 돌리며 또 혀를 찼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분위기 속에 유방에서 겨드랑이에 걸친 임파선 절제가 시작됐다. 매우 중요하면서도 팔로 가는 신경과 혈관의 손상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었다.

까칠함을 넘어선 짜증이 극에 달했다. 그럴수록 손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보는 김지훈까지 불안해질 지경이었다.

‘정말 수술도 더럽게 못하면서 왜 남 탓을 저렇게 하지? 손은 또 왜 저렇게 거칠어? 응? 설마 내 손이 저렇다는 말씀은 아니겠지?’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3살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더니, 그 소리가 정말 딱 맞는 경우였다. 절대 그럴 리 없었다.

전문의 면허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수술을 잘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마침내 폭탄이 터졌다.

“에이! 수술 못해 먹겠네. 손일석, 너 정말 이것밖에 안 돼? 3년차라는 놈이 어떻게 퍼스트도 제대로 못 서. 야, 김지훈! 너도 신경 쓰인다. 나가.”

“예? 저요?”

“나가라고. 방해되니까 눈앞에서 얼쩡거리지 마.”

금경태 과장도 모자라 이제 근무를 시작한 전종훈 교수까지 나가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주저하던 김지훈이 된소리를 한마디 더 듣고서야 수술실 문을 열었다.

그때 금경태 과장이 나타났다.

“넌 일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쯧!”

짜증이 잔뜩 섞인 금경태 과장의 말에 김지훈도 짜증이 확 솟구쳤다. 교수라는 사람들이 전공의들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금니를 꽉 물고 꾸벅 인사만 하고는 구석으로 비켜섰다.

전종훈 교수를 본 금경태 과장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감돌았다. 이준영 교수의 일로 웃을 기분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김지훈의 얼굴까지 봤으니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할 것이다. 그래도 닳고 닳은 인생을 산 사람다웠다.

“야! 수술 잘하네. 내가 부르기를 잘했어.”

“감사합니다, 과장님. 저도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시스트들만 잘해 주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그래? 손일석, 고 간호사, 똑바로 좀 해. 트레이닝이 좀 부족해 보여도 자네가 잘 가르치면 좋아질 거야.”

“안 그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과장님이 신경 좀 써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술 중에는 필요한 말 이외에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다른 교수들과는 달리 전종훈 교수는 말이 많았다. 한동안 대화를 나누던 금경태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 돌아서자마자 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말았다.

‘진평호의 조카사위라고 아주 기고만장하군. 그래야 넌 내 밑이야. 수술도 그 정도만 하면 되고. 어쨌든 오자마자 트레이닝을 문제 삼는단 말이지. 그래, 그 기세로 이혁민만 잡아. 그게 널 데려온 목적이니까 말이야. 흐음! 남은 건 이준영과 송재덕인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수술실 구석에 서서 조용히 있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고경아와 손일석이 걱정돼 자리를 못 떴다. 그 덕에 순간순간 변하는 금경태 과장의 얼굴을 모두 보았다. 전종훈 교수와 긴밀한 관계인 것 같지만 서로들 뭔가 겉돌고 있었다. 일이 년차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이제는 똑똑하게 보였다.

‘전종훈 교수는 분명 금경태 라인으로 보이는데 과장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네. 상당히 거만해. 원래 성격이 저런 건가? 그래서 저렇게 행동을 하는 걸까? 에휴! 일석이도 문제지만 경아 씨는 더 문제네. 엄연히 수술 팀의 일원이지, 아랫사람은 아니잖아?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나?’

답답한 일이었다. 한동안 얼굴을 굳히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금경태 과장과 전종훈 교수는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스승은 물론 전공의들까지 모두를 힘들게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스승과 송재덕 교수, 이혁민 교수, 신기동 교수의 힘과 뜻이 더욱 강해지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개 같은 꼴을 보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돼. 저런 사람들을 이기려면 나부터 강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실력이 있어야 해. 기분 나쁘다고 피하거나 물러서면 그게 바로 지는 거야. 난 스승님과 큰 스승님의 말씀만 따르면 돼. 저런 사람들한테 주눅 들 이유가 없잖아.’

김지훈이 손일석과 고경아에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눈가에 힘을 꽉 주며 기운을 전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김지훈이 마치 먼지라도 터는 것처럼 툭툭 어깨를 털며 중얼거렸다.

“마음대로 해 봐라. 예전에 내가 아니다.”

‘내 손이 저랬으면 거칠다는 말로 끝낼 스승님이 아니시지. 이건 아니야. 뭘까? 내 손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걸까? 신기동 선생님 손에 힌트가 있을까?’

김지훈이 고민에 잠긴 채 다음 수술을 기다렸다. 가슴이 은근히 서늘해지긴 했지만, 신기동 교수의 멋진 수술을 보면 기분은 확 풀어질 것 같았다.

연거푸 5개.

기대와는 달리 왠지 등에서 찬바람이 느껴졌다.

전종훈 교수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수술실에서 나왔다.

붉게 물든 얼굴로 말을 잃은 손일석.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것 같은 초짜 간호사.

수술을 끝낸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의 눈가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일석아, 얼굴 펴. 종종 보는 일이잖아. 다음에는 좋아지겠지. 우리 병원 와서 처음 하는 수술이라서 그럴 거야. 고 간호사와 성 간호사도 힘내요. 우리는 확실하게 믿어요.”

금경태 과장에게 당할 만큼 당한 김지훈이었지만,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스스로 이겨 내지 않는 한 어떤 말로도 이 상황은 수습되지 않을 것이다.

수술실 상황 때문에 중요한 일을 깜빡했다. 부리나케 병동으로 올라가 염성일 환자를 본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내렸던 열이 또 치솟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환자를 위해서라도 빨리 원인을 알아내야 했다.

필요한 검사들을 추가로 내고, 보호자에게 설명을 한 후 다시 수술 방으로 내려갔다. 신기동 교수가 손일석을 보며 눈가를 찌푸리고 있었다.

“넌 수술도 시작하기 전에 얼굴이 왜 그래?”

김지훈도 답답하기만 한데 손일석은 오죽할까?

“아닙니다, 선생님.”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다 쓰여 있어. 무슨 일이야?”

손일석이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평소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답답한 표정을 짓던 신기동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손일석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어딘가 얼굴이 좋지 못했다.

‘두 놈 다 얼굴이 안 좋네. 아침까지 멀쩡했던 의국에 갑자기 일이 생겼을 리도 없는데, 이 자식들이 도대체 왜 이러지? 혹시 전종훈 때문에?’

전종훈 교수는 첫인상부터 안 좋았다. 무엇을 믿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거만했고, 말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었다. 선배 교수들 앞에서 그럴진대 전공의들을 어떻게 대했을지 짐작이 갔다. 유방 종물을 수술할 때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말도 얼핏 들은 터였다.

더구나 인사 발령 이후 노골적으로 자신들을 더욱 경원시하고 외면하는 금경태 과장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참이었다. 여기에 전종훈 교수까지 문제를 일으킨다면 외래는 물론 의국까지 반으로 갈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분명 수술 중에 무슨 일이 있었어.’

손일석이 퍼스트를 섰다. 얼굴만 봐도 무엇인가 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이럴 때는 옆에 있던 사람에게 듣는 것이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경우가 많은 법이다.

“손일석, 너 가서 세수 좀 하고 와. 정신 차려.”

“선생님, 전 괜찮습니다. 정말 아무 일 없었습니다.”

신기동 교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머뭇거리던 손일석이 마지못해 일어났다.

“김지훈, 수술 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봐.”

다소는 말하기 껄끄러운 문제였다. 전종훈 교수도 엄연히 일반 외과 교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혁민 교수를 대하는 태도와 금경태 과장의 묘한 표정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답답한 신음을 터트린 신기동 교수가 마침 수술실로 들어온 고경아에게도 확인을 했다. 표현에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동일했다.

“두고 보려고 했더니, 더 이상은 안 되겠네.”

신기동 교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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