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실력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다 (2)
간 내 담석으로 인한 황달은 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이 배출되는 통로인 담도가 막혀 발생하는 폐쇄성 황달이다.
담즙이 정체되면 빌리루빈이라는 성분이 혈액과 조직 속으로 퍼지게 된다. 담도와 소장 내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지만,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더불어 폐쇄성 황달의 경우 담도염을 동반하는 경우가 흔하다. 만일 간을 포함한 주변의 주요 장기에 염증이 퍼지게 되면 간독성과 패혈증까지 유발해 치명적인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수술을 앞둔 환자는 극히 불량한 전신 상태에 고열까지 동반됐다. 간 기능도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불과 며칠 만에 급속도로 나빠진 것이 의아했지만, 같은 질환이라도 사람마다 다른 경과를 보이는 경우는 흔했다. 지금은 원인을 제거하는 일에 집중할 때였다.
김지훈이 수술복을 입으며 수술 과정을 고민했다. 간 내 담석 수술에 대해 살펴볼 시간조차 없었다. 담낭에 발생한 담석증과는 달리, 간 내 담석은 흔한 질환이 아니었기에 수술 경험도 없었다.
‘정확한 수술법을 모른다면 원칙을 따르는 게 기본이야. 어쨌든 담석이니까 담낭은 기본적으로 제거를 해야 하겠지. 황달이 동반됐으니까 당연히 담도에 T-tube를 넣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간 내 담석만 제거하면 끝인가? 스승님 손을 제대로 따라갈지 모르겠네.’
정확한 수술법을 알고, 모르고는 매우 큰 차이였다. 책을 참고하지 못한 것도 처음이었다.
나름의 수술 계획을 세우고, 수술 과정을 그리던 김지훈이 애써 불안감을 감췄다.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잠시 후, 환자가 도착했다. 수술실로 환자를 옮기던 김지훈이 머리를 톡톡 쳤다. 까만 얼굴과 힘없이 늘어진 팔다리를 보는 순간 가장 중요한 원칙을 망각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어후! 바보! 시간, 시간을 잊었네. 혈복강처럼 최대한 빨리 수술을 끝내는 것이 가장 중요해.’
곧바로 마취가 시작됐다.
띠! 띠! 띠! 띠! 띠!
환자의 심장이 헐떡였다.
김진호 교수가 고심 끝에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마취제를 선택했다. 정맥에 마취제가 투여되자 환자의 의식이 빠르게 사라졌다.
원칙은 과를 불문했다. 김진호 교수가 인투베이션과 동시에 수술 사인을 주었다.
“수술 시작하십시오.”
환부 소독을 하고 환자의 전신을 깨끗한 천으로 덮었다.
메스를 받아 든 이준영 교수가 그대로 복부 정중앙을 열었다. 잘린 정맥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패혈증으로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창백한 배 속의 장기들이 황달로 인해 노랗게 보였다.
“생각보다 황달이 너무 심해. 담도 전체가 거의 다 막혔다는 소리야.”
이준영 교수가 눈가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중얼거렸다. 김지훈의 귀에는 수술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힐끗 시계를 보는 이준영 교수의 눈빛 역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두 개의 손이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무엇이 가장 급할까? 막힌 곳부터 뚫어 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린 김지훈이 주변 장기들을 젖히고 담도부터 확보했다. 이준영 교수와 손이 척척 맞았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간에서 내려오는 담도와 담낭에서 내려오는 담도가 합쳐진 곳이 총수담관이다. 통상 1센티미터 내외의 굵기를 보이지만 거의 1.5센티미터가 훌쩍 넘을 정도로 크게 확장돼 있었다. 십이지장으로 연결되는 하부까지 담석으로 막혔다는 의미였다.
“메스.”
총수담관을 열었다. 밝은 밤색이어야 할 담즙이 염증으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정체됐는지 상당히 끈적끈적해 담관 밖으로 흘러나오지도 않았다.
“석션. 이리게이션(Irrigation:세척).”
담즙을 빨아내고 담관에 낸 구멍에 커다란 스포이드를 넣었다. 고무주머니를 꽉꽉 짤 때마다 밀려 들어간 물이 넘치며 담즙과 담석을 끌고 나왔다.
10여 개의 조그만 담석에 이어 거의 1센티미터 크기의 담석이 딸려 나왔다. 길이가 5~6센티미터에 불과한 총수담관 내에 이렇게 크고 많은 돌이 박혀 있었으니 황달이 급격하게 발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총수담관을 막았던 돌은 제거했지만 더 큰 문제는 간 내 담석이었다. 최대한 제거하지 않으면 남은 돌이 담도를 따라 내려오며 또다시 총수담관을 막을 것이다.
“겸자.”
비눗방울을 만드는 장난감처럼 끝이 동그란 원으로 이루어진 겸자를 받아 든 이준영 교수가 과감하게 간 내 담도에 찔러 넣었다.
겸자 끝에 간 내 담석이 잡혔다. 점점 가늘어지는 담도에 맞게 만들어진 겸자들이 모두 동원됐다.
일일이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담석이 제거됐지만 이준영 교수는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담석이 잡히지 않자 이번에는 스포이드를 이용해 강하게 물을 쏘았다.
왈칼왈칵 물이 흘러넘칠 때마다 마치 진흙처럼 미세한 가루들이 딸려 나왔다. 이것이 바로 황달이 급격하게 진행된 원인이었다. 간 내의 담도가 미세한 가루들로 거의 다 막힌 것이다.
이준영 교수가 스포이드를 잡은 채 물었다.
“간 내 담석 수술의 원칙이 뭐야?”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간 내 담석은 재발을 잘합니다. 따라서 수술을 할 때 미세한 가루까지 최대한 제거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거의 모든 환자에서 재수술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재순과 이론 공부를 한 덕을 톡톡히 보았다.
곧 미세한 가루들이 사라지며 맑은 물만 나왔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였다.
김지훈이 재빨리 담낭을 제거할 준비를 했다. 상당히 많은 경험을 쌓은 수술이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의 손이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불과 15분 만에 담낭이 제거됐다.
곧바로 T 자 모양으로 생긴 투명한 플라스틱 관을 총수담관에 심었다. 한동안은 이 튜브를 통해 썩은 담즙이 배출될 것이다.
위치를 잘 잡아야 하고, 수술 부위가 좁아 제법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도 손이 빠른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의 수술이다. 송재덕 과장이라고 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끝났다.
이준영 교수가 담도에 심은 T-tube를 배 밖으로 빼내며 마무리만 남았음을 알렸다.
“마취과, 배 닫습니다.”
“예? 벌써요?”
마취 차트를 기록하던 김진호 교수가 흠칫 놀라며 시계를 보았다. 무조건 3시간 정도는 걸릴 수술이 불과 1시간 반 만에 마무리만 남았다. 그새 복막을 닫고 근육 층을 봉합하고 있었다. 김진호 교수가 부랴부랴 환자를 깨우기 시작했다.
이준영 과장이 장갑을 벗으며 김지훈을 보았다.
‘간 내 담석 수술을 들어가 본 적이 있었나? 쉽게 볼 수 있는 수술이 아닌데 정말 잘 따라와 줬어. 이번 수술의 목적과 원칙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일까? 구미에서 수술을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손도 상당히 빨라졌고 말이야. 흐음! 제자 하나는 잘 뒀네.’
처음 하는 수술이라면 집도의만이 아니라 퍼스트도 어려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수술이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머뭇거릴 줄은 알았다. 그런데 김지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숨 가쁘게 움직인 자신의 손을 바짝 따라왔다.
잊을 만하면 스승인 자신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진 김지훈이었다.
김지훈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오늘 수술은 시간이 생명이었고, 스승님 손도 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는데 받는 느낌은 똑같네. 이럴 때는 거칠게 보여야 정상 아닌가? 한결같은 손으로 수술을 할 수 있는 핵심이 뭘까? 스승님만 아는 비결이라도 있는 걸까?’
그런 비결이 있었다면 재가 되도록 태우며 알려 줄 스승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던 김지훈이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끄으응!”
눈을 뜬 환자의 신음 소리가 힘찬 것 같았다. 벌써 회복될 리는 없었지만 무사히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쩐지 환자의 까만 얼굴에도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였다.
회복실로 옮겨진 환자가 의식을 거의 다 찾았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수술 방으로 들어온 금경태 과장이 난데없이 내일 잡힌 수술을 거론하며 준비 상황을 물었다.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에 간호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요새 라파로 준비를 예전만큼 확실하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고 간호사한테 내 말 확실하게 전해. 그리고 우리 과 수술은 별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지? 아! 이 교수 수술도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잘되고 있나?”
“간 내 담석 환자요? 아까 끝났어요.”
“뭐? 벌써 끝났어?”
금경태 과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준영 교수의 손이 빠르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단축된 시간만큼 환자의 회복도 빨라질 것이다.
‘어떻게 벌써 수술을 끝냈지? 혹시 달랑 T-tube만 박은 거 아냐? 이준영이 그렇게 수술을 끝낼 놈이 아니잖아.’
당장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슬며시 마취 기록지를 찾은 금경태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간단하게 적힌 수술명과 수술 및 마취 시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담낭 절제술 및 T-tube 삽입술.
간 내 담석 제거.
불과 한 시간 반 만에 해야 할 수술은 다 했다. 마취 시간까지 포함해도 두 시간이었다.
처음 하는 라파로를 자신만큼 빠르고 확실하게 끝냈다.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간 내 담석 수술에 걸린 시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금경태 과장이 바짝 말라 오는 입술에 침을 축이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보았다. 치미는 분노와 불안감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응급실 근무 자체를 막았어야 했어. 아니, 이건 다 허경발 교수 때문이야. 겉으로는 똑같이 대하는 것처럼 행동했어도 결국 이준영에게만 모든 걸 준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
그때 김진호 교수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준영 선생님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손만 빠른 게 아니라 수술 자체가 깔끔하고 확실합니다. 음성에서부터 느꼈던 건데, 써전 중의 써전이라는 생각만 드네요. 그리고 김지훈 그놈도 정말 만만치 않네요. 그렇게 빠른 손에 손을 그냥 척척 맞추는데 감탄만 나오더라고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문의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걸 이제 알았어? 실력으로만 보면 이준영 선생님은 벌써 외래 진료를 하셨어야 하는 분이야. 환자도 굉장히 열심히 보시잖아. 김지훈, 그놈이야 옛날부터 소문이 자자하고. 그런 사람 둘이 함께 수술을 하는데 한 시간 반이 뭐가 놀라워?”
금경태 과장이 이를 악물었다. 가슴속에서 치솟는 불길을 참을 수가 없었다. 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을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멀리 내쫓고 싶었다.
‘그래. 내게 필요한 것은 힘이야. 그래야 이 꼴 저 꼴 안 보고 살 수 있어. 어떻게는 진평호가 신동석을 밀어내게 해야 돼. 그전에 병원을 장악한 후에도 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부터 심어야겠지. 그러려면 정한득부터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잡아야 해. 돈! 역시 돈이 문제군.’
신동석은 경영을 하는 사람답게 상당히 치밀한 사람이었다. 병원 확장 건에 대한 이사회의 결정이 나자마자 백제 병원과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는 계획했던 모든 건물을 사들였다. 그만큼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는 말이었다.
반면 진평호의 결정은 다소 의아했다. 이사들이 더 이상 돈을 낼 수 없다는 결정까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아무리 재력가라고 해도 신동석은 심각한 자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정 지분의 포기까지 감수했다는 사실이었다.
‘지분을 포기하면 돈은 아끼겠지만 병원을 장악할 수가 없잖아. 도대체 무슨 꿍꿍일까? 신동석을 잡을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 걸까? 제길!’
잠시 답답한 고민에 잠겼던 금경태 과장이 수술 방을 나왔다. 김지훈이 환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에 까닭 모를 화만 치솟은 금경태 과장이 얼굴만 잔뜩 찌푸렸다.
외래로 향하는 금경태 과장의 뒷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이준영 교수를 견제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에게 오늘 있었던 두 건의 수술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화가 많이 날 거야. 아무리 견제를 해도 실력 앞에서는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 사실을 모르나? 조금 있으면 당신보다 스승님 수술이 훨씬 많아질 겁니다. 환자한테도 정성을 다하시는데 당연하지.’
나이도 많고 과장이기까지 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만 고소하기만 했다. 가슴이 뻥 뚫리며 통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환자만 잘 회복되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배 밖으로 빠져나와 있는 T-tube를 통해 담즙이 줄줄 흘러나왔다. 아직은 색깔과 점도가 비정상이었지만 원인이었던 담석이 거의 다 제거됐다.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불안에 떨던 보호자의 얼굴에 핀 웃음에 김지훈의 마음이 더욱 편안해졌다. 스승과 함께 수술을 한 덕인지 요즘 들어 써전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