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실력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다 (1)
누군가의 얼굴이 유리창 너머에서 어른거렸다. 수술실 문이 살짝 밀리며 나직한 소리를 냈다. 힐끗 시선을 돌린 김지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멈칫한 것 같았던 이준영 교수도 이내 수술에 집중했다. 배꼽 아랫부분을 1센티미터 정도 절개한 후, 가느다란 관을 찔러 넣었다. 툭 소리와 함께 배를 뚫고 들어간 관에 공기 주입기가 연결됐다.
처컥! 처컥!
규칙적인 기계음을 따라 주입된 공기에 환자의 배가 부풀어 올랐다. 카메라를 삽입해 배 속을 확인하고 3개의 구멍을 더 뚫었다. 라파로 기구들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김지훈과 시선을 마주친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인 수술의 시작이다. 카메라 각도를 조절해 최적의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양손에 기구를 쥔 이준영 교수가 돌로 가득 찬 담낭을 잡았다.
장난감처럼 작은 전기 소작기가 담낭 벽을 지질 때마다 하얀 연기가 퍼졌다. 이준영 교수는 마치 수없이 수술을 해 본 것처럼 자연스럽게 담낭을 간에서 분리해 냈다.
정확하게 수술 부위를 확보하고 있는 김지훈.
말이 없어도 적절한 시기에 수술 기구를 건네는 고경아.
안정적으로 환자 상태를 유지해 주는 김진호.
이준영 교수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어느새 담낭이 간에서 분리되며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과정이 이어졌다.
백무용 교수와의 수술이 기억난 김지훈이 바짝 긴장했다. 적재적소를 비추는 카메라를 따라 라파로 수술 기구가 쉼 없이 움직였다.
마침내 담낭 동맥과 담낭 관이 깔끔하게 드러났다.
철컥! 철컥!
클립 물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작은 가위가 은색으로 번쩍이는 클립 사이를 잘랐다. 완전히 분리된 담낭이 콘돔에 싸여 배 밖으로 끌려나왔다.
어느 틈엔가 마무리를 앞두고 있었다.
첫 라파로가 무사히 끝났다.
누구도 처음 하는 수술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고 정확한 수술이었다. 이준영 교수의 손은 다른 수술 때와 다름없이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김지훈이 멍하니 입만 벌렸다.
‘와! 정말 처음 하시는 거 맞아? 시간만 조금 더 걸렸지, 금경태 과장의 수술과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없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신 걸까?’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누가 보아도 라파로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써전의 손이었다. 단지 이마에 맺힌 땀만이 이준영 교수도 긴장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줄 뿐이었다.
아무리 무뚝뚝하다고 해도 뿌듯함까지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눈가에 주름이라도 생길 것이다.
그런데 결코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던 이준영 교수의 눈가가 붉어진 것 같았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진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고 말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이준영 교수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12년 만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수없이 섰던 수술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마치 처음 집도를 했을 때처럼 떨리는 가슴을 막기 어려웠다.
단 한 사람과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끊어졌던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정까지 다시 찾았다. 스승의 자리를 김지훈이라는 제자가 대신하고 있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지훈아, 너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거다. 고맙다. 못난 날 스승으로 여기며 열심히 해 줘서 더 고맙다. 혁원아, 아버지의 첫 정규 수술을 지켜봐 줘 너무 고맙다.’
더 이상 있다가는 눈물이라도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준영 교수가 서둘러 수술실을 나갔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힘차기만 해야 할 목소리에 왠지 모를 불안과 걱정이 서려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의 미묘한 변화를 모를 수는 없었다. 이대로 또 감정을 숨긴다면 내내 마음을 쓸 것이다.
이준영 교수가 걸음을 멈췄다.
“지훈아, 고맙다.”
나직한 목소리가 똑똑하게 전해졌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고경아까지도 그랬다.
단 한 사람, 김지훈만이 고맙다는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았다. 이 자리와 이 수술이 스승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이다.
‘후우! 혁원이가 온 것을 보고도 어떻게 수술하실지에만 관심을 쏟다니, 왜 이렇게 생각이 짧았을까? 이 자리가 스승님께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자리인지를 잊었어. 죄송합니다, 스승님.’
먹먹해진 가슴을 꽉 누른 김지훈이 힘차게 외쳤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제자였다. 잠시 걸음을 떼지 못했던 이준영 교수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교수 휴게실로 향했다.
수술실을 정리하는 부산함 속에 묘한 적막이 흘렀다. 김진호의 감탄이 고요함을 깨트렸다.
‘음성에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감회가 남다르시겠지. 그래도 기쁜 날에는 즐거워야지.’
“야! 지훈아! 처음 하시는 수술 맞지? 역시 실력은 못 속인다니까. 지훈이 너도 퍼스트 참 잘 선다. 고 간호사까지 아주 손발이 척척 맞네. 고 간호사, 라파로 많이 봤잖아요. 내 말이 틀려요?”
“아니요. 두 분 다 정말 잘하시네요.”
가슴이 뿌듯하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회복실에 나가서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오더를 내며 한동안 숨을 고르고 나서야 머릿속이 정리됐다.
스승의 손이 눈에 선했다. 라파로 기구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수술을 하는 것만 같았다. 수없이 많은 준비를 하고 연습을 했을 것이다. 스승처럼 대단한 실력을 가진 써전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니 교수들 모두 자만하지 않고 최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난 이제 써전의 길에 들어섰을 뿐이다. 기술과 지식도 중요하지만, 스승님과 선생님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술과 환자를 대하시는지를 잊지 말아야 해.’
김지훈이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보았다.
‘스승님과의 차이가 무얼까? 그게 거칠다는 물음에 대한 답일 거야. 만일 내가 수술을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직도 온통 안개 속이었다.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김지훈이 환자가 무사히 깨어났는지 확인했다. 코 줄과 소변 줄이 무척이나 불편하겠지만, 그 고생도 몇 시간 후면 끝이다. 라파로가 갖는 최대 이점이었다.
“환자분, 수술 잘 끝났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곧 빼 드릴 겁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의사 말에 명확하게 반응하는 환자는 보람이자 기쁨이었다.
“이 교수, 참 수술 잘해. 어떻게 처음 하는 수술을 이렇게 잘할 수가 있어? 난 호치키스 하느라고 정말 힘들었는데 말이야. 화난다. 화나. 후배가 너무 잘나서 화난다. 지훈이는 어때? 그놈 정말 예사롭지 않지? 백무용이랑 무지하게 열심히 했다. 티가 팍팍 났을 거야. 팍팍. 그치? 내 말이 맞지?”
“이제 간단한 수술을 맡길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래? 마음에 안 드는구나? 잘됐다. 그럼 지훈이 대장 시키자, 대장. 난 마음에 쏙 들거든. 어때? 좋지? 그럼 우리 이 교수는 누구랑 하면 좋을까? 이 교수, 누가 있지?”
“전 김지훈만 있으면 됩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송재덕 교수의 목소리에 김지훈이 두리번거렸다. 한동안 잊었던 대장과 지훈이라는 소리가 다시 귀에 박히기 시작했다.
그 시간, 금경태 과장이 원관식 교수를 만나고 있었다.
“상태가 이렇게 안 좋은데, 왜 이제야 연락을 해?”
“어제 입원했는데 갑자기 나빠져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트를 뒤적이며 눈살을 찌푸리던 금경태 과장이 갑자기 눈을 번뜩였다. 이준영 교수의 수술이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끝났다. 비교 자체가 힘들 정도로 많이 해 온 라파로마저 비등하다는 생각에 끝없는 짜증이 솟구쳤다. 진료마저 귀찮아질 지경이었다.
여기에 원관식 교수마저 수술 전후를 장담할 수 없는 환자를 의뢰했다. 모든 상황을 떠나 까딱하면 이준영 교수와 극명한 차이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
‘그래. 이 환자를 이준영에게 넘기는 거야. 수술이 잘된다고 해도 쉽게 살리지는 못해. 간당간당한 환자가 있으면 다른 일에도 제대로 집중을 못하겠지?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네.’
금경태 과장이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황달과 열이 이 정도로 급격하게 심해지면 수술을 최대한 빨리해야 돼. 그런데 지금은 외래 진료가 밀려 있어서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일단 이준영한테 컨설트 내.”
이미 금경태 과장과 말을 맞춘 원관식 교수였다.
“환자를 넘기시려고요? 수술이 잘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도리어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어차피 수술이 잘된다고 해도 본전인 환자야. 고맙다는 말밖에 더 들어? 그리고 의사도 사람이야. 이번 수술은 어떻게 넘어간다고 해도 문제 한번 안 생기겠어? 그때 확실하게 책임을 물으면 돼. 하여튼 이렇게만 해. 지금처럼 나랑 긴밀하게 상의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그러면 과장님, 아니 원장님만 믿겠습니다. 진 회장님께도 잘 말씀해 주십시오.”
“여부가 있나. 조금만 기다리면 내과 과장 자리는 자네 것이 될 거야. 어디 그뿐이야? 돈방석 위에 앉는 것도 시간문제야.”
원관식 교수의 눈에도 탐욕이 넘쳤다.
환자와 일에만 충실해도 저절로 따라올 것들을 두고, 왜 이런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의사 역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술 방을 막 나가던 김지훈이 급히 달려오는 공정식과 마주쳤다. 언제 보아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먹먹했지만 슬슬 기분이 뜨고 있는 상태였다.
“어! 공 치프! 3년차가 뭘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시나? 수술 방에 볼일이라도 있으신가?”
“넌 오프도 없다면서. 그건 그렇고, 잘됐다. 간 내 담석 환잔데, 갑자기 황달이 심해지면서 열까지 나. 아무래도 돌이 담도를 꽉 막은 것 같아. 응급으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준영 선생님이 외래에 안 계시네. 어디 계셔?”
응급 수술이 필요한 간 내 담석 환자?
연이어 간담도 수술을 하라는 신의 계시였다.
“야! 제대로 찾아왔네. 오늘 이준영 선생님이 수술하는 날인데 마침 수술이 다 끝났어. 컨설트 용지 이리 줘. 바로 보러 갈게.”
컨설트 용지를 내미는 공정식이 반색을 하면서도 묘한 표정을 지었다. 소화기 주임 교수인 원관식 교수가 한 말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모든 환자를 금경태 과장에게 의뢰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준영 교수에게 환자를 의뢰하라는 오더가 떨어진 것이다.
하긴 응급 환자라 특별히 교수를 지정하고 볼 수 있는 컨설트도 아니었다. 일단 환자부터 살리고 볼 일이었다.
더구나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김지훈이었다. 가장 빠르게 해결해 줄 것이다.
“고맙다. 환자 상태가 좋지 못하니까 빨리 좀 봐줘.”
김지훈이 나는 듯이 수술 방으로 들어갔다. 이준영 교수가 막 휴게실에서 송재덕 과장과 함께 나오고 있었다. 너무 서두른 탓에 숨이 차 잠시 숨을 진정시켜야 했다.
“선생님, 컨설트 하나 있습니다. 간 내 담석 환자로 황달과 고열을 동반한 상태랍니다. 전신 상태가 불량해 빨리 봐달라고 합니다.”
이준영 과장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간 내 담석은 결코 만만하게 볼 질환이 아니었다. 이런 환자에게 황달과 고열은 극히 좋지 못한 징후였다.
“상태가 안 좋다고? 가 보자.”
“이 교수, 빨리 봐야겠다. 빨리. 황달에 고열이면 안 좋다. 안 좋아. 지훈아, 빨리 봐라. 빨리.”
송재덕 교수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수술을 또 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흥분했던 김지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책을 했다. 언제나 환자가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어후! 난 아직 멀었어. 정신 차리자, 김지훈. 넌 기술자가 아니라 환자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의사야.’
내과 병동에 도착해 환자를 보는 순간 말이 나오질 않았다.
40세에 불과한 환자의 피부가 새까맸다. 흰자위는 노랗다 못해 누럴 지경이었고, 온몸에서 황달기가 관찰됐다. 고열로 인한 오한으로 몸을 벌벌 떨었고, 의식마저 흐릿한 것 같았다. 왜 이제 컨설트를 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심각했다.
“외과에서 왔습니다. 환자분이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죠?”
“평소 건강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 선생님. 내과 선생님들은 내시경으로 돌만 빼면 된다고 하셨는데, 수술을 해야 하나요?”
보호자가 안절부절못했다. 뒤늦게 달려온 원관식 교수가 상황을 설명했다.
“어제 입원한 환잔데, 전신 상태가 좋지 못해서 일단 내시경을 이용해 돌을 빼려고 했습니다. 돌 사이즈가 너무 큰지 십이지장으로 빠져나오질 않네요.”
“언제부터 황달하고 열이 발생했습니까?”
“내원 때 이미 황달과 미열은 있었습니다만,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의 표정이 심각하기만 했다.
환자 상태는 물론 혈액 검사 결과까지 정상적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수술을 미룰 수는 없었다. 간 내 담석이 원인이었고, 담석을 제거할 방법은 오직 수술뿐이기 때문이었다.
“김지훈, 김진호 선생 좀 불러.”
통상 마취과 교수들까지 환자 상태를 파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환자는 전신 마취를 견딜 수 없는 상태라는 판단까지 들었다.
김진호 교수까지 와 마취가 가능한지 확인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야 입을 열었다.
“선생님, 수술밖에 방법이 없습니까?”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호자에게 확실하게 경고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진호 교수의 말에 원관식 교수가 슬쩍 눈치를 보았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 병동에서 최악의 상황이라도 벌어진다면 책임을 져야 할 판이었다.
‘역시 금경태 과장이야. 잘도 빠져나가는군. 제길! 나도 빨리 전과를 시키고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야.’
“이 교수님, 더 이상 우리 과에서 할 처치는 없습니다. 바로 전과시킬 테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원관식 교수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공정식만이 남아 김지훈과 함께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수술과 마취 자체가 위험하다는 설명을 들은 보호자가 이준영 과장에게 매달렸다.
“선생님, 제발 살려 주세요. 정말 건강했던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지훈이 수술과 마취 동의서를 들고 다시 한 번 보호자에게 설명을 했다. 죽음이란 단어는 의사나 환자에게 가장 힘든 말이었다. 이준영 과장의 실력과 인간이 갖는 본연의 회복력을 믿을 뿐이었다.
빠르게 수술 준비를 끝낸 환자가 수술 방으로 옮겨졌다. 김지훈의 안색이 어둡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