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03화 (403/1,329)

제1화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3)

이제는 어엿한 의사들이 된 인턴들까지 가세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바이탈을 잡았다.

강기웅 과장이 도착하자마자 수술 방으로 환자를 옮겼다. 그 짧은 순간에도 환자 처리가 미흡하다며 서도진과 박순용을 태웠다. 그리고 마지막 타깃은 오늘도 김지훈이었다.

“김지훈, 니가 제대로 안 하니까 밑에 년차들이 이 모양인 거야. 정신 좀 차려. 어떻게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을 수가 있어?”

이것도 타는 걸까?

아니었다. 신뢰와 애정이 없다면 짜증과 신경질에 불과했다. 실수는커녕 확실하게 환자를 보고 수술 준비까지 완벽하게 했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욱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금경태 과장 이후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오늘로 마지막이다. 제길! 구미는 다시 오지도 않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수술 중에는 분위기가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나빠졌다. 부임한 후 처음으로 벌어진 혈복막 수술이기 때문인지 강기웅 과장의 짜증과 신경질이 극에 달했다.

“똑바로 좀 당겨요. 김지훈, 여기서는 니가 들어와야지.”

“과장님, 동맥부터 처리하셔야죠.”

“뭐? 니가 집도의야? 수술은 내가 하는 거야. 건방지게.”

강기웅 과장만의 수술법인지는 몰라도 원칙이 아니었다. 일부러 순서를 바꾸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환자가 걱정될 정도였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출혈은 막았다는 점이었다.

어지럽기만 한 강기웅 과장의 손에 식은땀까지 흘린 후에야 수술이 끝났다. 그렇게도 즐겁고 보람으로 가득 찼던 수술이 마치 악몽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사고를 낼 것 같은 불안감까지 들었다.

집도의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수술을 할 줄 안다고 해서 집도의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이런 식이면 잘될 수술도 실패할 수 있겠어.’

어쨌든 마지막 날이고, 수술은 끝났다. 인사는 해야 할 일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말도 끝나기 전에 강기웅 과장이 눈가를 찌푸렸다.

“김지훈, 너 서울 올라가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라. 너도 장래를 생각하면 과장님이 누군지 똑바로 봐. 응급 수술에만 매달리면 아무 소용 없어.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할 이유가 없지만, 과장님이 일부러 부탁을 하셔서 해 주는 말이니까 명심해.”

김지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금경태 과장이 부탁을 했다? 응급 수술에 목을 매지 말고 과장이 누군지 똑바로 알라고?

말속에 담긴 의미는 빤했다. 스승을 따르지 말고 금경태 과장을 따르라는 말이었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왜 송동화 과장의 얼굴이 좋지 않았는지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과장으로서 자격이 한참 부족해 보이는 강기웅이 어떻게 구미 병원으로 왔는지도 짐작이 갔다. 이런 말을 들을 이유도 없었다.

김지훈이 치미는 화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과장님, 출발 시간이 많이 지체됐습니다. 그럼 저희는 환자 회복되는 대로 출발하겠습니다.”

“넌 고맙다는 말도 안 해? 그리고 니들 가면 환자나 응급실은 나 혼자 보라는 거야? 누구든 한 명은 남았다가 다음 텀 오면 출발해. 에이! 신현수가 오면 나아지려나?”

정말 희한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떠나고 싶었지만 치프는 아랫년차를 챙겨야 한다. 자신이 남겠다는 서도진과 박순용을 떠밀다시피 먼저 보냈다.

혼자 남은 김지훈이 짐을 싸다 말고 히죽 웃었다.

‘그래도 나쁜 일만 벌어지는 건 아니네.’

정말 우습지도 않은 이유로 시간이 났다.

병동부터 시작해 응급실까지 들렀다. 과장으로 오지 않는 한 다시 올 일이 없다는 사실에 간호사들이 너무도 아쉬워했다. 고마웠다. 여러모로 구미 병원 근무를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신현수에게 강기웅 과장에 대한 정보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째깍! 째깍!

시계 초침은 쉬지 않고 돌아갔지만, 6시가 다 되도록 신현수는 오지 않았다. 길이 밀리는 주말이기 때문이겠지만 갑갑했다.

그때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깜빡 잠이 들었던 김지훈이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간이침대 바퀴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응급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3도 화상 환잡니다. 빨리 기도 확보를 해야 합니다.”

응급 상황이다. 이제 막 구미에 새로 도착한 인턴들만이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다. 서울과 천안에서 근무했다면 기관 내 삽관도 어려워할 것이다. 김지훈이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건장한 성인이었다. 얼굴과 상반신을 온통 붕대로 칭칭 동여맨 채 숨을 쉴 때마다 피리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붕대 사이로 보이는 검댕이가 묻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가고 있었다.

김지훈을 본 인턴들이 재빨리 비켰다. 청진상 호흡 소리가 상당히 거칠었다. 가슴을 크게 부풀리고 있었지만 숨을 제대로 들이마시질 못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는지 심하게 몸을 비틀었다.

“어떻게 된 거죠?”

“화상 환잡니다. 대구로 이송 중에 갑자기 호흡이 나빠져서 일단 들어왔습니다.”

김지훈이 환자의 콧구멍을 살폈다. 까만 재와 함께 불에 탄 코털이 보였다. 흡입 화상이 분명했다. 이 상황에서 호흡이 나빠졌다면 숨을 따라 들어온 열기가 성대와 기관지에 화상을 입혀 퉁퉁 붓게 만들었을 것이다. 부종이 더 심해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기관 내 삽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후두경.”

기관 내 삽관을 시도했다. 입을 벌리고 성대를 확인한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성대가 심하게 부어 겨우 볼펜 심 정도의 통로만 남아 있었다. 아무리 가는 튜브라고 해도 통과할 공간이 없었다. 무리하게 시도했다가는 삽관은커녕 성대까지 다 망가뜨릴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시간은 너무 촉박했다. 환자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5분 이내에는 무조건 기도를 확보해야 했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인턴 선생, 산소마스크로 호흡 유지해. 간호사, 기관 절개 준비해요.”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응급실에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기관 절개 세트가 열렸다. 목 전체를 소독한 김지훈이 재빨리 목젖에서 2센티미터 하방을 열었다. 왼손으로는 기관을 만지며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고, 오른손으로는 목 중심선을 따라 켈리를 집어넣었다.

피하지방과 근육을 벌렸다. 혈관이 없는 부분을 정확하게 따라갔다. 출혈은 심하지 않았다. 기관을 찾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절개 창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연골조직인 기관이 딱딱하면서도 탄력 있게 만져졌다. 마지막으로 기관 위를 덮고 있는 막을 제거했다. 하얀색에 약간은 노란빛이 감도는 기관이 보였다.

확보한 기관의 가운데를 U 자 형태로 열었다. 그 순간 환자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부족했던 공기를 한껏 빨아들였다.

L 자 모양으로 생긴 튜브를 삽입했다. 숨이 차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던 환자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성대 쪽으로는 공기가 유입되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지만, 그 대신 목숨을 구했다.

김지훈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간호사, 튜브 확실하게 고정시키고 항생제 투여해요. 보호자분은 어디 계시죠?”

고개를 돌리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들었다. 신현수와 안호석이 도착해 있었다.

“현수야, 보호자 만나고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꼭 할 얘기가 있어.”

금방 온다던 김지훈이 꽤 많은 시간이 지나도록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환자는 상반신과 얼굴 일부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게다가 흡입 화상까지 동반됐다. 이런 경우 사망률이 50퍼센트에 육박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전공의들이 매일처럼 달라붙어 화상 부위를 치료하고 감염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3도 화상 부위는 모조리 피부 이식까지 해야 한다.

신현수를 믿었지만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구미 병원에서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강기웅 과장까지 마음에 걸렸다. 만일 지금처럼 전공의들을 힘들게 한다면 자칫 환자에게 소홀해질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환자의 사망을 초래할지도 몰랐다.

“보호자분, 일단 숨을 쉴 수는 있게 했지만 저희 병원에서 치료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인력과 장비가 풍부한 대구로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보호자가 환자와 함께 대구로 출발했다.

‘치료하기 정말 힘든 환잔데 무사히 회복됐으면 좋겠네.’

안도하면서도 착잡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당직실에서 신현수와 마주했다. 환자에 관한 문제는 기록으로 인계를 할 수 있지만 강기웅 과장은 말로 전해야 했다. 가감 없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했다. 약간의 사심과 감정이 섞였지만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현수가 입가에 주름을 만들었다.

“대충 얘기는 들었는데 생각보다 더 심하네. 특별히 더 신경을 써야 할 문제가 또 있어?”

좋아졌다지만 얼마 전까지 해도 차가웠던 신현수의 목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표정도 좋아졌다.

‘자식! 볼 때마다 달라지네. 좋은 일이 있었나?’

“그 외에는 별거 없어. 어쨌든 강기웅 과장님을 대할 때 신중하게 대처해. 넌 나하고 다르니까 잘 헤쳐 나갈 거야. 그럼 수고해. 난 간다. 아 참! 현수야! 내가 길 확실하게 뚫어 놨다. 넓히는 건 네 몫이야.”

김지훈의 말에 피식 웃음을 보인 신현수가 급히 손을 흔들었다.

“지훈아, 잠깐만. 서울에 도착하면 외래부터 가 봐. 기분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외래부터? 무슨 일인데?”

“가 보면 알아. 그리고 너도 상황을 알면 주의하겠지만 금경태 과장님 특히 조심해.”

김지훈이 궁금해 죽으려고 했지만 신현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안호석도 신현수의 눈치를 보며 웃기만 할 뿐 마찬가지였다.

‘지훈아, 네가 이준영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어. 내 입으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게 훨씬 기쁠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출발을 하는 김지훈을 보던 신현수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치프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고생도 많이 했겠지만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말이었다.

신현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호석아, 기관 절개하는데 몇 분이나 걸렸지?”

“오 분도 안 걸렸죠. 하여간 손은 되게 빠르세요.”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일반 외과에서는 거의 할 일이 없는 기관 절개까지 능숙하게 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역시 김지훈답네. 내 최고의 라이벌이 이 정도로 달려왔단 말이지. 최소한 지훈이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자. 아니, 그 이상이라는 말을 반드시 들어야 해.’

신현수의 눈에 단단한 각오가 실렸다.

과연 강기웅 과장과는 어떻게 생활해 갈까?

금경태 과장의 입김이 유리할지, 아니면 불리할지 두고 볼 일이었다. 최근의 상황은 신현수에게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서울로 향하던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구미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는 수술.

동료들, 특히 후배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

집도의가 가져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

스승의 아들인 이혁원과 더욱 특별해진 관계.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한 서도진과 선배인 박순용.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평생 동안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지켜 가야 할 기억이었다. 그것은 곧 미래를 위한 자산이자 힘이었다.

‘휴우! 삼 개월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네. 강기웅 과장님만 아니었으면 완벽했는데.’

마치 커다란 똥 덩어리 하나를 냅다 던지고 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또 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고개를 흔들며 운전에 집중하던 김지훈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기분 좋은 일이 무엇일까?

12시가 넘어 서울 병원에 도착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1층 복도에 선 김지훈이 잠시 고민을 했다.

‘송동화 선생님이 오자마자 근무를 하시지는 않을 거야. 스승님께 먼저 인사를 할까? 아니면 외래부터?’

인사를 하고 나면 단 한 층 위인 외래에 갈 힘도 없을 것 같았다. 어기적어기적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오른 김지훈이 인상을 썼다. 컴컴한 복도를 따라 걸으며 외래 진료실을 하나하나 다 살폈지만 특별할 것이 없었다.

‘현수, 그 자식도 장난을 칠 줄 아나?’

투덜거리며 다시 아래층으로 가려던 김지훈이 갑자기 멈춰 섰다. 어스름한 불빛에 외래 진료 일정표가 보였다. 갑자기 숨이 턱턱 막히며 말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 감정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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