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99화 (399/1,329)

제11화 우리는 모두 동료들이다 (1)

잠시 후, 결론이 났다.

“선생님 실력이 대단하다는 말씀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에 믿음이 갑니다. 게다가 대구로 가면 환자 간병하기도 만만치가 않네요. 가능하다면 여기서 수술을 받았으면 합니다.”

내심 짐작은 했지만 뜻밖의 말이기도 했다.

“전 전공의 3년찹니다. 환자는 위궤양 천공으로 복막염이 발생한 환자고요.”

“알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도진은 입술을 내민 채 눈만 말똥거리고 있었다.

아뻬와는 차원이 다른 수술이었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해도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죄송한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송동화 과장에게 연락을 했다.

(뭐? 얼서(Ulcer:궤양) 빤뻬리 환자가 수술을 받겠다고 한다고? 너 설마 환자에게 엉뚱한 소리를 한 건 아니지?)

“아닙니다. 저도 대구로 가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가능하다면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싶답니다.”

(거참! 희한한 일이네. 박경일 선생님 때도 그렇고,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환자 온 지는 얼마나 됐어?)

김지훈이 급히 차트를 가리키며 손짓을 했다. 갑작스러운 환자 때문에 시간을 체크할 경황이 없었다.

“두 시간 정도 됐습니다.”

(근데 왜 이제 연락을 해?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송동화 과장으로서도 갑갑한 일이었다.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궤양 환자 수술을 한다는 것은 솔직히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든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당직을 맡겼고, 김지훈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전공의였다.

(환자하고 보호자가 확실히 동의했어?)

“예. 동의했습니다.”

(알았어. 설명 충분히 하고 수술 시작해. 절대 서두르지 마. 만일 감당하지 못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일단 임시로 마무리만 하고 대구로 보내.)

허락이 떨어졌다.

김지훈이 불현듯 강하게 몰려오는 긴장감을 느꼈다. 송동화 과장이 없는 상태에서 서도진과 함께 복막염 수술을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긴다면 도움을 청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수술 준비가 시작됐다.

김지훈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설명을 했다. 심지어 위를 절제할 수도 있다는 말에도 보호자와 환자는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해 본 수술이고, 도진이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지나친 긴장도 실수를 유발한다. 긴장 풀자.’

김지훈이 수술 과정을 상기하며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저 선생님만 믿으면 돼. 걱정 꽉 붙들어 매.”

최명철의 말이 뒤통수에 달라붙었다.

코 줄과 소변 줄을 낀 환자가 수술대에 누웠다. 배 속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긴장까지 겹친 탓인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은근한 불안을 감추지 못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긋거렸다.

수술을 앞둔 환자는 가뜩이나 예민하다. 집도할 의사의 조그만 불안감도 환자의 긴장을 더욱 심하게 만들 것이다. 김지훈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환자분, 시간이 지체돼서 더 힘드셨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마음 편하게 가지시고, 한잠 주무시고 나면 수술은 잘 끝나 있을 겁니다. 우릴 믿으세요.”

상당히 이례적인 일에 이용철 과장이 직접 마취를 했다.

“환자분, 수술 잘하는 선생님이 집도를 하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럼 마취 시작합니다. 열까지 세어 보세요.”

정맥으로 마취제가 들어가자 불과 넷도 못 세고 환자의 눈이 감겼다.

마스크를 통해 약간은 역겨운 마취제 냄새가 살짝 풍겼다. 이내 의식을 잃은 환자가 기계 장치에 생명을 맡겼다.

“지훈아, 송 과장이 없으니까 침착하게 하자.”

이젠 되돌릴 수 없다. 최선을 다해 수술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은 대단했다. 서도진도 부담감을 떨치기 쉽지 않은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후우! 과장님만 안 계실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 배운 대로 수술하면 아무 문제도 안 생긴다.’

인턴보다 경험이 많다고 해도 화이트 가운은 의사가 아니다. 만일을 대비해 일반 외과 인턴은 물론 이혁원까지 불렀다. 어쨌든 의사만 4명이 참가한다. 약간은 마음이 놓였다.

김지훈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과장님, 수술 시작해도 됩니까?”

“예. 수술 시작해도 됩니다.”

메스를 받아 든 김지훈이 환자의 복부 정중앙을 따라 길게 절개 창을 냈다. 빨간 피가 스르륵 배어 나왔다.

서도진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재빨리 피를 닦았다. 복막을 열 때까지 척척 어시스트를 섰다.

그 순간 희한하게도 머릿속을 감돌던 불안이 사라졌다. 서도진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후배였다. 김지훈이 두려움과 긴장을 잊고 오직 수술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문(위와 십이지장의 경계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다. 호흡이 이루어질 때마다 노란 위액이 흘러나왔다.

김지훈이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서도진을 보았다.

‘도진이가 자신감만 갖는다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도진아, 일차 봉합은 안 되겠다. 유문 성형술을 해야 돼. 따라올 수 있겠지. 자신 있게만 하면 돼.”

서도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유문 성형술은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가는 주행 방향을 따라 세로로 길게 절개한 후, 중간 부분부터 가로로 봉합을 해야 한다. 일차 봉합 때처럼 몇 번의 타이만으로 끝나는 과정이 아니었다.

송동화 과장과 소장 파열 환자를 수술할 때 경험을 해 본 적은 있지만 자신할 수는 없었다.

김지훈도 이를 빤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불안은 없었다.

믿음이었다.

살짝 어깨를 흔든 서도진이 눈빛을 굳혔다.

‘나도 이젠 2년차다. 게다가 김지훈 선생님이 집도의다. 선생님만 믿고 가면 충분히 할 수 있어.’

“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수술용 가위를 잡았다. 구멍을 중심으로 세로로 길게 절개를 했다. 흘러나오는 위 내용물을 제거한 후 가로로 봉합을 시작했다. 세심하게 점막을 뜨고 나면 서도진이 적절한 힘으로 타이를 했다.

띠! 띠! 띠! 띠!

모니터 소리만 나직하게 들렸다.

김지훈의 손에 점점 자신감이 실리며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서도진 역시 애초의 부담감을 떨쳤는지 머뭇거리지 않았다.

호흡이 맞아 갔다. 마치 과장과 전공의가 수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유문 성형술이 끝났다. 수술 부위를 만지며 확실하게 봉합이 됐는지, 그리고 적절하게 통로를 확보했는지 확인했다. 깔끔했다.

힐끗 서도진을 본 김지훈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다.

“잘됐다. 배 속 씻고, 드레인 박고 끝내자. 인턴 선생, 혁원아, 다른 장기 확인할 거니까 잘 끌어.”

이제부터는 일사천리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았지만 고민할 구석도 없었다. 배 속에 넣은 드레인(Drain:심지) 두 개를 옆구리 쪽으로 빼낸 후 피부 봉합을 시작했다.

“과장님, 배 닫습니다.”

“야! 잘하네.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었는데 괜히 마음을 졸였네. 그러면 수술 시간이 한 시간 삼십 분이 좀 넘나? 생각보다 늦게 끝났어.”

때 아닌 농담에 김지훈이 웃었다. 서도진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했는지 얼굴을 붉혔다.

마지막 피부 봉합만 남았다. 힐끗 이혁원을 본 김지훈이 뜻밖의 말을 했다.

“도진아, 스킨(Skin:피부)까지 타이로 하자.”

“예? 타이요?”

순간 반문했던 서도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정말 타이 연습을 열심히 했다. 나름 인턴 중에서는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고, 웬만한 전공의하고도 어깨를 견줄 만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서도진의 타이를 보자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슥슥슥!

손가락이 한두 번 움직일 때마다 매듭 하나가 예쁘게 만들어졌다. 김지훈의 표정을 보니 꽤나 만족하는 것 같았다.

통상 집도의가 니들 홀더(Needle Holder:봉합용 수술 기구)로 직접 타이를 하는 것이 빨랐지만, 서도진 앞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후우! 우물 안 개구리.’

언젠가 김지훈이 했던 생각을 이혁원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어느새 피부 봉합이 다 끝났다. 멍한 눈으로 서도진을 보던 이혁원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타이를 보고 놀란 놈이 막상 김지훈의 수술을 보고는 놀라지도 않았다. 이유는 빤했다. 수술을 잘하는 건지, 어떤 건지 판단할 눈도 없다는 말이었다.

선배는 하느님과 동기 동창이다.

때론 반감이 든 말이었지만 오늘은 정말 실감하고 말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를 회복실로 옮겼다.

그때 다른 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동맥 손상을 받은 환자의 수술이 벌어진 방이었다. 수술은 거의 끝난 모양인데 정형외과 3년차가 무시무시하게 1년차를 태우고 있었다.

이유는 거의 항상 똑같았다.

“너 정말 죽고 싶어? 이 환자를 일반 외과에서 봤다는 게 말이 돼? 응급실 환자만큼은 제때 내려가라고 도대체 몇 번을 얘기해야 돼? 그러고도 잠이 와? 수술 중에는 왜 조는 거야? 아후! 이 새끼 때문에 정말 성격 완전히 버리겠네. 이걸 확!”

막말까지 터졌다. 얼마 후, 누군가 얻어터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지만 이제는 김지훈도 참견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피곤하다. 정말 피곤해. 혁원아, 넌 절대 저러지 마라. 환자를 어떻게 믿고 맡기겠어?”

김지훈의 푸념 섞인 목소리에 피곤이 실려 있었다.

수술이 모두 끝나고 보호자에게도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 보호자들은 김지훈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병실에 올라온 환자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김지훈을 보고는 웃었다. 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던 피곤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간만에 숙소로 향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놈의 피곤은 기분 따라 오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어느새 창문 밖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6시가 훌쩍 넘었다.

김지훈이 크게 기지개를 펴며 중얼거렸다.

“어후! 웬일로 환자가 없지? 도진이는 뭐 하나? 박순용 선생님은 왔나?”

따르르릉! 따르르릉!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박순용이었다. 입국식 잘 갔다 왔는지 묻기도 전에 응급실에 환자가 몇 명 있다는 말이 들렸다. 입맛을 쩝쩝 다신 김지훈이 눈곱을 떼고는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송동화 과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응급실 스테이션에 서 있었다. 아뻬에 이어 빤뻬리 환자를 수술한 것도 모자라 끊어진 동맥까지 이었다는 소리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자식, 정말 제대로 일 한번 낼 놈이네. 신기동 선생님에게 배웠다고 해도 그렇지,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한 거야? 그래도 그렇지. 열심히 한다고 그게 되나?’

그때 막 응급실로 내려온 김지훈이 후다닥 달려왔다.

“과장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응. 덕분에 잘 갔다 왔어. 걱정거리만 빼고 말이야. 환자들은 괜찮아?”

송동화 과장이 말하는 걱정거리가 무엇인지는 빤했다. 김지훈이 얼굴을 붉혔다.

“예, 괜찮습니다. 보시겠습니까?”

“그래. 가 보자. 근데 빤뻬리 환자는 어떻게 수술했어?”

“유문 성형술을 했습니다.”

송동화 과장이 자신도 모르게 김지훈을 빤히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일차 봉합도 아닌 유문 성형술이라니, 점점 점입가경이었다.

환자를 보던 서도진과 박순용이 따라오려 하자 송동화 과장이 손을 휘휘 저었다.

“응급실 환자부터 봐.”

환자들은 별 탈 없이 회복되고 있었다. 아이 엄마의 수다와 복막염 수술을 한 환자의 병실에 있던 최명철 환자의 칭찬에 낯만 빨개졌다. 겸사겸사 정형외과 환자까지 보았다. 마침 회진을 돌던 정형외과 과장이 김지훈을 보고는 희한한 표정을 지었다.

“김지훈, 니가 동맥을 잡았어? 혈관 수술까지 배운 거야? 대단하다. 대단해. 니들은 도대체 뭐야? 우리 과도 응급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돼. 만날 찢어지고 뼈 부러진 환자만 보고 살래?”

발단은 1년찬데 애먼 3년차만 신 나게 탔다. 김지훈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주먹이 먼저 나가서 그렇지, 일은 열심히 하는 3년차였기 때문이다.

회진을 돌고 난 송동화 과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여튼 잘했다. 응급 의학과 개설 문제로 점점 더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네 덕분에 한시름 놨어. 지금처럼만 하자! 자식!”

송동화 과장이 등을 툭툭 두드리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함께 응급실로 내려가며 잠깐 동안 이러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김지훈의 입가가 점점 찢어졌다.

‘말씀대로라면 최소한 스승님과 함께 근무를 하시는 것이 확실하네. 좋았어. 어쨌든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

퇴근을 하는 송동화 과장에게 힘차게 인사를 한 김지훈이 응급실로 들어갔다. 분주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도진아, 환자 처리 다 끝났어?”

“아니요. 우리가 봐야 할 특별한 환자는 없는데, 얼굴하고 가슴 쪽에 열상이 있는 환자가 둘 있습니다. 환자들에게는 회진 중이라고 잠시 양해를 구했습니다.”

서도진은 물론 인턴들 모두 피곤한 얼굴이었다.

별생각 없이 차트를 확인하고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코를 매만졌다. 아무리 봐도 너무들 피곤해했다. 더구나 그 탓인지 김지훈도 피곤을 느끼고 있었다.

‘짧게라도 잠을 잤는데 왜 이러지?’

그 순간 불현듯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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