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98화 (398/1,329)

제10화 신뢰는 힘이다 (3)

서도진의 가운에 뻘건 피가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선생님, 동맥이 나간 것 같습니다.”

약간은 느슨했던 응급실이 돌연 급박하게 돌아갔다. 양손에 수액을 든 간호사가 거의 뛰다시피 처치실로 들어갔다. 빨리 혈액을 확보하라는 서도진의 목소리에 긴장이 가득했다.

내원 당시의 환자 상태를 볼 때, 만일 동맥이 손상됐다면 초응급 상황이었다. 김지훈이 보호자에게 양해도 구하지 못하고 처치실로 달려 들어갔다.

“동맥이 나가다니, 무슨 소리야?”

“공사장에서 넘어지면서 예리한 철판에 찔렸다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깊습니다.”

모니터에 표시된 심장박동을 알리는 숫자가 깜빡거렸다. 경고음을 알리기 직전이었다. 드레싱 테이블 위의 거즈란 거즈는 모두 피에 젖어 있었다.

환자의 팔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이혁원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풀(Full)로 틀어진 수액이 빨려드는 것처럼 혈관 속으로 투입됐지만 혈압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동맥 손상은 극히 드물게 보는 경우였다. 모두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김지훈은 이미 같은 환자를 본 적이 있다. 단 한 번뿐이라고 해도 경험의 유무는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혈관, 특히 동맥은 그 어떤 장기보다 빠르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자칫 허둥거리다 추가 손상을 주면 어떤 결과가 초래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모두들 침착해. 바이탈은?”

“90에 60 정도 잡히고, 맥박 수는 120회 정도 됩니다. 의식 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습니다. 보호자 말로는 여기까지 오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김지훈이 침착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손상 부위를 확인했다. 손목에서 불과 10센티미터 상방에 발생한 열상이 보였다. 압박을 가하던 거즈를 제거하고 상처를 벌리자 시뻘건 피가 마치 조그만 분수처럼 치솟았다. 동맥이 확실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거즈를 잡고는 재빨리 상처를 압박했다.

한 시간이 넘었으면 이미 상당한 출혈을 했을 것이다. 새로 댄 거즈 수십 장이 벌써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떨어진 혈압이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때까지 동맥은 쉬지 않고 피를 내뿜을 것이다. 더구나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하고, 수술 준비까지 하려면 한 시간 정도는 걸린다.

“정형외과는 연락됐어?”

“아직 안 됐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출혈의 양상을 볼 때 동맥의 일부분이 손상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동맥이 완전히 끊어졌다면 시간상 이미 근육 속 깊숙이 끌려 들어갔을 것이다.

그때는 출혈이 주 증상이 아니라 팔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상처를 활짝 열어도 동맥을 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바이탈까지 흔들리고 있다. 자칫하면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지금은 무조건 동맥 출혈부터 잡아야 한다.’

냉철한 판단을 내린 김지훈이 가운을 벗으며 소리쳤다.

“도진아, 동맥 봉합하자. 간호사, 수처 세트 가장 큰 거 준비하고, 수술 방에서 혈관 겸자 가져와요. 헤파린 섞은 생리식염수도 준비하고. 이혁원, 가운 벗고 어시스트 서.”

누구도 응급실에서 동맥을 찾아 봉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다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지훈이 눈을 부릅뜨며 다시 소리를 지르고서야 깜짝 놀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단 김지훈의 결정을 따라야 할 때였다.

무모한 결정을 내릴 김지훈도 아니었다.

수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통과하는 혈류를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환자의 상박을 고무줄로 꽉 묶었다. 그 위에 혈압계 커프를 감아 최대한 조였다.

동맥이 손상됐다면 인대나 신경, 그리고 근육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감염 역시 큰 문제였다. 너풀거리는 가운의 소매가 상처에 닿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응급실이다. 수술 방처럼 완벽한 준비는 불가능했다. 와이셔츠 차림으로 장갑만 낀 채 동맥 봉합을 시도했다.

상처를 벌렸다. 선지처럼 찐득찐득하게 뭉쳐진 핏덩이를 제거하자 선홍색 피가 확 솟구쳤다. 와이셔츠에까지 피가 튀었다. 김지훈이 눈길도 주지 않고 동맥 출혈이 의심되는 부분을 과감하게 눌렀다. 상처를 따라 흐르던 피가 서서히 줄었다. 서도진이 곧바로 상처 주변에 들러붙은 핏덩이를 제거했다.

“이리게이션(Irrigation:세척).”

50cc 주사기로 헤파린이 섞인 생리식염수를 강하게 쏴 조그만 혈전을 제거했다. 잘린 조직 사이로 피가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부 지혈부터 해야 했다.

“이혁원, 내가 누르고 있는 부위 압박해.”

재빨리 손을 바꾼 김지훈의 양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타이.”

서도진이 타이를 하기가 무섭게 주변의 출혈 부위를 잡아냈다. 순식간에 주변 출혈을 제어했지만 동맥은 볼 수도 없었고, 확인하기 위한 어떤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손가락을 떼는 순간 다시 피를 내뿜으며 시야를 완전히 가릴 것이다.

수액과 피를 투여하고 있었지만 환자의 혈색은 아직도 창백하기만 했다. 더 이상의 여유는 없었다. 눈을 감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손상된 동맥을 잡아야 한다.

“혈관 겸자.”

김지훈이 출혈 부위를 누른 채 잔뜩 눈가를 좁혔다. 신기동 교수에게 죽어라고 타면서 배운 혈관 해부학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동맥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했다.

‘한 번에 잡아야 한다. 반복하게 되면 조직 손상 때문에 동맥을 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디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결정을 내렸다.

김지훈의 눈이 번쩍였다. 혈관 겸자를 잡은 오른손이 과감하게 움직였다.

따르륵!

무언가 감이 안 좋았다. 잘린 인대나 혹은 신경일 수도 있었다.

“하나 더.”

따르륵!

김지훈이 압박을 가하던 왼손을 천천히 들었다. 고여 있던 피를 제거했다.

모든 시선이 일제히 출혈 부위로 쏠렸다. 두 번째 잡은 혈관 겸자 끝에 하얗고 동그란 구조물이 보였다. 심장박동을 따라 쭉쭉 내뿜던 동맥 출혈이 보이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됐다. 이리게이션한 후 동맥 확인하고 봉합하자.”

동맥의 3분의 2 정도가 잘려 있었다. 다행히도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루뻬(야간 투시경처럼 생긴 확대경으로 이마에 쓸 수 있는 수술 기구)까지 가져왔다. 주변 조직을 깨끗이 정리하고, 생리식염수를 뿌려 가며 동맥 봉합을 시작했다. 세심하고도 정확하게 연속으로 혈관을 봉합했다.

바늘이 지나간 자리로도 피는 흘러나온다. 마지막 바늘을 뜬 김지훈이 입을 꾹 다문 채 조심스럽게 동맥을 압박했다.

환자의 혈색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눈을 뜨고는 멍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환자분, 병원입니다. 지금은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까 움직이지 마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서도진과 이혁원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지훈의 실력을 알고는 있었지만 동맥 출혈까지 잡을 줄은 몰랐다. 당황하기는커녕 침착하기만 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손놀림에 마치 피부를 봉합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보였을 정도였다.

‘후우! 도대체 어디까지 가 있으신 거야? 점점 더 양손을 자연스럽게 쓰시네. 이 와중에도 연습을 하고 계셨나?’

‘와! 우와! 어후!’

이혁원은 속으로 그저 감탄만 터트릴 뿐이었다.

“김지훈 선생님이 동맥 출혈을 잡았어요. 기구도 변변치 않은 응급실에서 이 정도면 수술은 도대체 얼마나 잘하시는 거예요? 어쩜 올 때마다 놀라게 하시네.”

약간은 호들갑스러운 간호사의 목소리가 응급실을 살짝 휘감았다.

완전히 지혈이 된 것을 확인했을 때가 돼서야 정형외과 1년차가 나타났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결같이 늦는 모습에 짜증이 솟구쳤다.

잠시 사라졌던 피로가 다시 느껴져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솔직히 이럴 때는 주먹이라도 휘두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만일 응급실에 인턴만 있었거나, 누구 한 사람이라도 늦게 내려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넌 만날 혼나면서 아직도 늦게 와? 나한테도 혼나고 싶어? 동맥 손상은 해결했으니까 인대하고 근육 손상만 처리하면 돼. 상황이 안 좋아서 제대로 소독도 못했다. 항생제 빵빵하게 쓰고 빨리 노티해. 바이탈까지 흔들렸던 환자니까 잘 봐.”

“죄송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마를 벅벅 긁은 1년차가 한숨을 푹푹 쉬며 노티를 했다. 혀를 차며 1년차를 노려보던 김지훈이 나직한 목소리로 한마디 더 했다.

“널 믿을 수 있게 행동해. 과가 다르다고 해도 너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일하기 무척 힘들어진다. 계속 이런 식이면 우리는 물론 환자 역시 널 믿지 못할 거야.”

어쩌면 이미 신뢰를 잃었을지도 몰랐다. 정형외과 문제가 겹친 환자를 볼 때마다 불안했고, 더 힘들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답답한 일이었다.

서도진과 함께 처치실을 나온 김지훈이 보호자를 찾았다. 환자의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눈물범벅이 된 채 달려왔다.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동맥이 삼분의 이 정도 잘렸습니다만, 다행히 봉합을 했습니다. 인대와 신경 손상이 동반됐을 겁니다. 그 부분은 정형외과에서 확인하고 적절하게 치료해 드릴 겁니다.”

“아이 아빠는 괜찮은가요?”

“아직은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때 응급실 인턴이 환자를 실은 스트레치 카를 끌고 나왔다. 폴(Pole)대에 수액과 혈액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팔의 상처를 치료하고 임시 부목을 댄 채였다.

환자의 아내가 차마 남편의 손도 잡지 못하며 소리를 질렀다.

“여보!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 여보. 난 괜찮아.”

아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남편의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함께 있던 다른 보호자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지훈을 본 환자가 손을 뻗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치료 잘 받으십시오.”

환자의 손을 꽉 잡은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김지훈이 보이자 복막염 환자의 보호자들이 다가왔다. 그 뒤로 휠체어를 탄 최명철이 보였다.

“응급실에는 웬일이세요?”

“내가 잘 아는 사람이 환자로 왔네요. 몇 달 전부터 사업이 안 된다고 속상해하더니 술만 퍼먹은 모양입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요?”

“예. 근데 과장님이 안 계셔서 대구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보호자분, 급한 환자 때문에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소견서 드릴 테니까 빨리 출발하시죠.”

보호자가 다소 망설이는 기색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문외한인 자신이 보기에도 위중해 보이는 환자였다. 동맥이 잘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고개까지 저었다. 웬만한 병원에서는 손도 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이 전공의라고 밝힌 김지훈이 그런 환자를 치료해 낸 것이다. 얼마나 급박했는지 머리는 땀에 푹 젖었고, 와이셔츠는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서도진이나 이혁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까 그 환자는 정말 괜찮습니까?”

“예. 다행히 출혈을 잡았습니다. 나머지는 정형외과에서 수술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혈관 수술이 복막염 수술보다 어렵고 위험하죠?”

왜 다른 환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걸까?

“그렇긴 합니다만, 모든 수술은 다 어렵고 위험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보호자들이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상의했다. 최명철도 그 사이에 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무슨 일인지 손짓까지 하고 있었다.

응급실이 조용해진 덕에 희미한 말소리가 들렸다.

“최 사장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금 눈앞에서 보고도 결정을 못하면 어떻게 해? 날 살리신 선생님이야. 결정은 자네들이 하는 거지만, 나 같으면 당장 수술 받겠어. 멈췄던 내 심장을 살리고, 끊어진 동맥을 잇는 분이 구멍 난 위 수술하는 게 어렵겠어?”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무엇이든 무리한 일은 분명히 문제를 만든다. 수술이 잘됐다고 해도 합병증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었다. 최명철이 원망을 들을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가장 안전하게 준비해야 할 일이 바로 수술이었다.

김지훈이 서둘러 보호자에게 다가갔다.

“선호 아버님,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보호자분, 어떤 수술도 서로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은 환자분과 충분히 상의하신 후 하셔야 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보호자가 심각한 얼굴로 환자와 최종 상의를 했다.

최명철 환자, 동맥, 피 묻은 와이셔츠, 열성, 실력.

그런 단어들이 오고 갔다. 그것은 결국 의사에 대한 믿음이었다. 믿음 앞에서는 전문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소한 김지훈이 있는 지금 이 순간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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