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뭔가 이상하다 (2)
김지훈이 툭하면 내려와 환자를 살피고는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때마다 이혁원의 고개가 뚝뚝 떨어졌다.
“이혁원, 환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지, 눈만 뜨고 있으면 그게 킵이야? 그건 의사가 아니어도 돼. 매 시간마다 누구든 알아볼 수 있도록 환자 상태 정확하게 기록해. 흉부외과 병동 환자는 파악했어?”
이혁원이 화들짝 놀랐다.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아직 못했습니다.”
“뭐? 너 긴장 완전히 풀고 사는구나. 아침에 회진 어떻게 돌려고 그래? 중환자실에 환자 한 명 있으면 병동 환자는 신경 안 써도 돼? 그 사람들은 환자 아니야?”
신 나게 태우고는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홀로 남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이혁원이 밤새 병동과 중환자실을 오갔다. 응급실 근무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정식 근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눈이 벌겋게 변했다.
응급실에 환자가 있을 때마다 중환자실에 들른 서도진이 이혁원을 보고는 웃기만 했다. 박순용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러다 우리 과 안 하는 거 아닙니까?”
“킵하는 게 힘들다고 안 한다고 하면 애초에 기대를 안 하는 게 낫죠. 그래도 밤을 꼴딱 새우는 것 보니까 싹수는 있네요. 환자는 잘 보고 있는 건가?”
그때 중환자실로 들어온 김지훈이 힐끗 쳐다보고는 이혁원이 작성한 환자 기록을 살폈다. 그러고는 빨간 볼펜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나직한 한숨 소리가 터졌다.
생각한 것보다 더 무서운 전공의들이었다. 성격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무서웠다. 그래서 가장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박순용의 가슴에 이혁원보다 더 눈이 벌건 김지훈과 서도진의 모습이 박혀 들었다.
***
월요일 정규 수술이 무난히 끝났다. 박순용도 이제는 일반 외과 전공의다웠다. 어젯밤 역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수술 중 졸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나이가 많다는 티를 단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뿐인가? 서도진 역시 2년차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일이 과중하다고 불평하지도 않았다. 하기에 최명철처럼 중한 환자를 살려 냈을 것이다.
구미 의국이 이처럼 열정적으로 돌아간 적은 없었다. 이 모든 일에는 또 한 사람의 노력과 땀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무리를 하는 김지훈을 보던 송동화 과장이 입술을 모았다.
‘치프로서도 손색이 없고, 수술이든 환자든 확실하게 믿고 맡길 만해. 내가 없어도 훌륭하게 대처하겠지.’
송동화 과장이 김지훈을 휴게실로 불렀다.
“지훈아, 오늘 오프지? 이따 저녁 같이 먹자. 변상훈 과장님하고 장성기 과장님도 나오시니까, 여덟 시까지 진달래 식당으로 나와.”
“예? 저만요?”
“응. 상의할 일이 있으니까 늦지 마라.”
김지훈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늘 아침에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예전이었다면 변상훈 과장이 최명철 환자를 전과해 달라고 해도 응할 송동화 과장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흉부외과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마디 나누지도 않고 전과 결정을 내렸다.
김지훈으로서는 성급한 결정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과장들의 결정이었다. 물론 이혁원이 혼자 환자를 보기는 어려웠기에 한동안 함께 환자를 볼 생각이긴 했다. 결과적으로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래도 불안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무언가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재빨리 병동 일을 모두 끝냈다.
“도진아, 나 잠깐 과장님 만나고 올 거니까 알아서들 밥 먹어. 아! 혁원이도 챙겨. 킵한다고 밥도 제때 못 먹는 것 같더라. 혹시 환자 있으면 진달래 식당으로 연락해.”
“무슨 일 있으세요?”
“나도 몰라. 단순히 밥 같이 먹자는 건 아닌 것 같다. 들어와서 얘기해 줄게.”
나가기 전에 이혁원과 함께 최명철과 최선호를 만났다. 앞으로는 흉부외과에서 본다는 소리에 최선호가 안절부절못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점점 더 절절해지는 모양이었다.
“선호야, 지금 아버지는 심장하고 가슴이 문제야. 그래서 우리보다 더 전문적인 과에서 봐야 돼. 나도 계속 아버지가 어떠신지 볼 거야. 과가 다르다고 신경 안 쓰는 일은 없다.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져.”
“선생님, 안 오시면 안 돼요.”
“자식! 퇴원할 때까지 지겹도록 얼굴 볼 거다. 이혁원 선생, 환자분 잘 봐.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나나 도진이에게 바로 연락해.”
최선호의 등을 툭툭 두드린 김지훈이 진달래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전과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이혁원이 킵을 한다고 해도 인턴에 불과했다. 변상훈 과장 혼자 감당하기에는 확실히 힘든 환자였다.
과장들의 의중이 무엇인지 모를 일이었다.
‘휴우! 도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리셨을까?’
식당으로 들어서기 직전 변상훈 과장과 마주쳤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훈아, 너 최명철 환자 때문에 신경 쓰이지?”
“예. 안 그래도 불안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이상한 보호자들 때문에 송 과장이 곤욕을 치렀어. 면회 제한 때문에 그러던데, 아무튼 그건 확실히 네가 잘 결정했다. 하는 꼴을 보니까 너한테도 난리를 칠 것 같더라. 그런 보호자들은 확실하게 컨트롤하지 않으면 환자한테도 악영향을 끼치잖아. 그런 문제는 우리한테 맡기고, 아직은 신경 바짝 써야 할 상태니까 환자나 잘 봐줘.”
김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태프가 가져야 할 마음과 태도를 보았다. 송동화 과장도 그런 면 때문에 동의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비바람을 막아 줄 우산이었다.
식사가 시작됐지만 싱숭생숭한 탓인지 식욕이 좀처럼 발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맛있다는 남의 살, 삼겹살이다. 사람도 4명이었다. 7인분이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 물론 누구 입에 가장 많이 들어갔는지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변상훈 과장이 피식 웃었다.
“아이구! 잘 먹네. 너처럼 일하려면 이 정도로도 부족하긴 하겠다. 송 과장, 대충 배는 채웠으니까 얘기 시작하지.”
“제가 먼저 말할까요?”
“그게 좋지 않겠어? 우리는 꼽사리 끼는 게 미안해서 말이야. 조금만 해 주면 된다지만, 지금도 1년차처럼 일을 해 대서 말하기가 곤란하네.”
송동화 과장이 김지훈을 보며 뜸을 들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김지훈이 마지막 고기를 얼른 삼켰다.
“과장님,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지훈아,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내가 유월에 서울 응급실로 갈지도 모르겠다.”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바싹 당겨 앉았다.
“예? 서울 응급실이요?”
“응. 응급 의학과를 새로 만들 모양이야. 그래서 준비할 게 꽤 많아. 일단 대구에 있는 병원 응급 의학과 과장님들을 만나서 어떻게 과를 꾸려 나가야 될지도 들어야 하고, 겸사겸사 연수를 받아서 자격도 얻어야 하고 말이야.”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번뜩 스승이 떠올랐다. 응급실 일이 훨씬 줄 것이다. 나이나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가뜩이나 걱정이 많았는데 환영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반색을 하던 김지훈이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무작정 좋아할 일만이 아니었다. 좋은 방향으로 풀린다면 모르지만, 금경태 과장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 병원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송동화 과장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그럼 이준영 과장님은 어떻게 되시는 거죠?”
“뭘 그렇게 놀래? 일단 이준영 과장님과 같이 근무를 한다고는 들었어. 나이가 있으셔서 혼자 계속 근무하시는 것도 힘들고, 원래 근무 안 하시는 날이 있잖아. 응급 의학과까지 만드는데 최소한 둘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후우! 정말 다행이다. 과장님과 함께 근무하시면 스승님도 한결 편해지시겠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린 김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과장님, 그런데 제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해야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응. 방금 전에 얘기한 것처럼 응급 의학과 개설을 준비하려면 대구로 가야 하는데, 재수 없으면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리잖아. 시간이 없네. 그래서 말이야, 유월까지 니가 야간에는 응급실을 철저히 커버했으면 좋겠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너 혼자 수술을 결정하고, 시작해야 할 일이 꽤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야.”
“예? 그럼 과장님은 안 오시나요?”
김지훈의 눈이 동그래지자 송동화 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콜 받으면 바로 와야지. 근데 대구에서 와야 하잖아. 지금처럼 노티를 받으면 시간을 못 맞출 수도 있어. 그렇다고 환자를 막 보낼 수는 없잖니. 결국 어떻게 해야 되겠어?”
“제가 더 빨리 봐야 되겠네요.”
“그래. 문제 안 생기게 하려면 박순용 선생님하고 거의 똑같이 봐야 내가 지금하고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지 않겠어? 치프한테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일이었다. 자칫 자신은 물론 서도진까지 주중 오프를 완전히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1년차 트레이닝에도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았다. 환자를 볼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매일 가셔야 하나요?”
“응급 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얻으려면 두 달 내내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래도 내가 일반 외과 전문의라고 응급 의학과 학회에서 봐주는 거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서도진의 오프는 챙겨 주면 된다. 몸이 훨씬 피곤해지더라도 김지훈 입장에서는 송동화 과장이 무조건 서울 응급실로 올라가야 했다. 도리어 엉뚱한 걱정이 들었다.
“과장님, 그런 일이라면 제가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피곤하지 않으실까요?”
“지금 내 걱정을 하는 거야? 난 중간에 쉴 수라도 있지만, 넌 그럴 시간조차 없을 수 있는데 괜찮겠어?”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스승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김지훈이 애써 표정을 감추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송동화 과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김지훈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전공의였다. 과장으로서 오더를 내리면 군말 없이 따를 것이라 믿었다. 행여나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마음이 상할지 몰라 상의하는 형식을 취했을 뿐이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불만스러운 기색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 탓인지, 아니면 하기 힘든 말이 더 있는지 송동화 과장이 더욱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좋게 생각해 줘서 정말 고맙다. 내일부터 그렇게 하자. 그리고 부탁할 일이 한 가지가 더 있어. 니가 흉부외과하고 성형외과 환자도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말일까?
김지훈의 의아한 시선을 받은 변상훈 과장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지훈아, 아직 정식 발령은 안 났지만 우리 유월에 서울로 올라간다.”
경사가 쌍으로 겹쳤다. 열악하기만 한 구미 병원에서 묵묵히 일한 덕일 것이다.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와! 축하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운 미소를 짓던 변상훈 과장이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구미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수술이 많잖아. 그래서 우리도 두 달 동안 대구 병원에 큰 수술이 있으면 참관을 부탁했어. 그렇게 되면 응급실이 문제가 되지 않겠어? 니가 지금도 전체 의국장으로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건 아는데 부탁 좀 해야겠다.”
부탁이랄 것도 없었다.
어차피 응급실에 내려갈 때마다 겸사겸사 흉부외과와 성형외과 환자를 봤다. 하던 대로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지금처럼 하면 되는 일 아닌가요?”
“우리는 수술을 보러 가잖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겠지만 낮에 오는 환자가 문제지.”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머리만 벅벅 긁었다.
주간에 3개 과 환자를 커버해야 한다면 정말 쉴 틈이 없을지도 몰랐다. 시간을 다투는 응급 환자는 없지만 얼굴이 밤에만 찢어지지는 않는다. 장성기 과장도 미안한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수가 없네. 서울 병원으로 올라가시는 것 때문에 부탁을 하시는 건데 못한다고 할 수도 없잖아. 에휴! 어쩔 수 없네. 웃자. 운다고 일이 없어지나. 일석이 말대로 내가 일을 몰고 다니는 모양이다.’
고개를 푹 숙였던 김지훈이 마음의 준비를 한 듯 발딱 고개를 들며 환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 힘들다고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얻을 것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과장님. 그런데 혹시 흉부 도관 같은 걸 제 임의대로 주어도 됩니까?”
김지훈만 단단히 믿고 있던 변상훈 과장이 깜짝 놀랐다.
“누구 주려고?”
“도진이나 박순용 선생님에게 주려고요. 가능하다면 이혁원도 포함시켰으면 합니다. 저희도 흉부외과 처치를 할 줄 알아야 바이탈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주기 전에 과장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대로 철저하게 준비시키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변상훈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만큼 환자를 우선시 하는 전공의는 없었다. 그런 김지훈이 믿고 준다면 자신 역시 믿을 수밖에 없는 후배이자 의사일 것이다. 서도진과 박순용은 실제로도 믿음직한 전공의들이었다.
“좋아. 그렇게 해. 단, 노티는 해야 한다.”
노티? 아! 그 생각을 못했다. 대구에 있는 과장들에게 무슨 수로 노티를 한단 말인가?
수술실에 함부로 전화하기도 그렇고, 응급실은 구미와는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아수라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꽤 전화를 해야 할 텐데, 어쨌든 미안한 일이었다. 김지훈의 생각을 알아챘는지 과장들이 동시에 씨익 웃으며 뭔가를 흔들었다.
김지훈의 눈이 살짝 커졌다.
휴대폰!
벽돌에서 진화해 손안에 쥘 수 있는 크기로 변한 휴대폰.
SCH-100과 스타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