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87화 (387/1,329)

제6화 아주 특별한 오프? (1)

송동화 과장이 나간 직후, 뒤늦게 보호자들과 함께 들어온 최필근의 입꼬리가 말렸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최선호의 어깨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인공호흡기에 가려 최명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숨소리가 확연할 정도로 거칠게 들렸다.

“최선호, 거 봐라. 이 병원에서는 아버지를 치료할 수 없다고 했지? 운다고 갑자기 눈을 뜨겠나? 니 삼촌도 오늘까지 의식이 없으면 대구로 가자고 동의를 했으니까, 다른 말 하지 말고 대구로 가자. 고집 부려야 아버지만 나빠진다. 의식도 없는 사람을 두고 고민할 게 뭐가 있나? 내만 믿으면 된다.”

최선호가 갑자기 덜덜 떨리는 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며 소리쳤다.

“대학 병원에는 자리도 없다면서요!”

“그래도 대구가 낫지. 내가 잘 아는 병원이 있다니까, 왜 자꾸 다른 소리를 해. 이런다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야.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해? 내가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일 생기면 누가 널 챙겨 주겠나?”

결국 돈 얘기다. 대학 병원에 자리를 알아본 것도 아니었다. 두 눈 속에는 탐욕만이 가득했다.

그 순간 최명철의 호흡이 더욱 거칠어졌다.

후우욱! 후우욱!

묶인 손을 풀어 달라는 듯 몸부림을 쳤다. 귀를 자극하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띠띠띠띠띠띠! 삐이익! 삐이익!

깜짝 놀란 김지훈이 모니터를 보았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혈압이 치솟았다.

최명철이 눈을 부릅뜨며 상체를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부러진 늑골에서 전해지는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슬쩍 입가를 말던 최필근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손을 움직인 것도 모자라 몸까지 흔들고 있었다. 인공호흡기조차 달고 있지 않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환자가 눈을 뜬 겁니까? 의식이 돌아온 겁니까?”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모두 나가 계세요. 선호야, 너도 나가 있어.”

최필근과 보호자들을 내보내고는 다급히 최명철의 상태를 살폈다. 최선호가 버티고 서 있었지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다른 문제는 없었고, 시간이 지나자 안정을 되찾았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의아해하던 순간 최선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저 사람 때문에 아버지가 이러시는 겁니다. 친척이라지만 평소에도 보고 싶어 하질 않으셨어요. 우리 집 돈만 밝히는 사람입니다. 대구로 가자는 것도 꿍꿍이가 있을 겁니다. 선생님! 제발 우리 아버지 여기서 치료받게 해 주세요.”

이 정도였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최명철을 보던 김지훈이 입을 열었다. 최선호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환자분, 선호의 말이 맞는다면 눈을 두 번 깜빡이세요.”

두 번 깜빡였다.

“그럼 선호 말고는 보고 싶은 사람이 없으십니까? 아! 동생 되시는 분은 제외하겠습니다.”

역시 두 번 깜빡였다.

심리적인 문제가 분명해 보였지만 안심할 일은 아니었다. 마침 검사 결과가 나왔다. 김지훈과 서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호야, 가슴 사진도 괜찮고 피 검사도 좋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아직은 튜브를 뺄 수는 없어. 아버지 상태가 지금보다 더 안심할 수 있어야 가능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난감한 일이었다. 대구로의 이송은 미성년자인 최선호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최명철의 반응이 꼭 최필근 때문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건 치료 외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사회생활 경험이 풍부한 박순용의 의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순용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생님, 세상에는 저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돈 앞에서는 가족도 몰라보죠. 차라리 안 보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할 겁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긴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박순용이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동화 과장에게 보고는 해야겠지만,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치프로서 먼저 결정을 내리고 움직여야 했다.

“도진아, 나 잠깐 보호자 만나고 올게. 선호야, 아버지는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까 니가 삼촌하고 상의해서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다른 걱정 하지 말고.”

입술을 꼭 깨문 최선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는데 어린 나이의 치기였다. 막상 이 상황이 되자 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김지훈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최필근과 보호자들을 만났다.

“환자분 의식이 어느 정도는 돌아오셨습니다. 다들 걱정이 많으셨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이젠 대구로 이송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단, 대학 병원이어야 합니다. 개인 종합 병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환잡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건 보호자들이 상의해서 결정할 일이고……. 근데 호스는 왜 끼고 있는 겁니까?”

“그게 문젭니다. 막 회복되기 시작할 때가 환자에게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말에 최필근의 눈이 반짝였다. 무엇을 기대하는지 빤히 보였다.

“이송은 직계보호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만일 환자분 본인이 확실하게 반대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신다면 이송을 할 수 없습니다.”

“환자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정신이 있다는 말입니까?”

진짜 할 말은 지금부터였다. 최필근의 얼굴을 보기도 싫었지만 최선호를 위해서라도 단호해야 했다.

“곧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것처럼 위험한 시기라 환자분의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당분간 보호자분들의 면회를 제한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면회를 제한한다니, 그러다 사고 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환자에 관한 문제는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말투가 험악해졌다. 최명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서는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최필근에게는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내심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김지훈이 태연하게 대답을 했다.

“법이 있는지는 알아보시면 됩니다. 만일 무단으로 중환자실에 들어온다면 즉시 경찰에 연락하겠습니다. 또한 우리의 지시를 어긴 상태에서 환자분이 나빠진다면 면회를 한 분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 최필근의 입에서 욕설이 터졌다. 어정쩡하게 서서 눈치를 보던 다른 보호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호자도 보호자 나름이었다.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선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면회를 제한할 수 있는 법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의사였다. 아버지와 아들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최선호가 아버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미 면회 시간이 끝난 지 꽤 오래였지만, 서도진과 박순용이 측은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눈길만 주고 있었다.

아무리 재산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슴을 짓눌렀던 바윗덩어리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더 큰 바윗덩어리가 가슴을 짓눌렀다.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던 자신에게는 고재현의 아버지가 있었다. 의외일 정도로 중환자실을 지켜 주는 보호자가 많았던 최선호에게는 실상 아무도 없었다.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삼촌 한 명뿐일 텐데, 그나마도 지병이 있어 곁을 지켜 주지 못했다.

가슴속이 쓰려 왔다.

“선호야, 아버지가 깨어나시니까 좋지? 힘내.”

최선호가 웃음을 보였다. 마주 보며 함께 웃어 주던 김지훈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중환자실을 나가는 최선호의 뒷모습이 시리도록 아팠다. 면회를 제한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너무 기뻐하는 모습 때문에 가슴이 더 아팠다.

‘후우! 저놈 주변에는 정말 아무도 없네. 나보다 더 힘들겠어. 최필근 그 사람은 다시 안 보였으면 좋겠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첫 고비를 넘긴 것뿐이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날 밤 최명철이 잘 버텨 주었다. 새벽에 다시 시행한 검사도 정상 소견을 보였고, 시간이 갈수록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지 못했지만 그것은 살아 있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진통제를 맞은 후 잠에 빠진 최명철을 보던 김지훈이 기지개를 폈다.

‘부모님 때문에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정말 잘 선택한 것 같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

막연하게 느껴졌던 희망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

아침 6시 반이었다.

이번 주는 구미에서의 첫 주말 오프였다. 1시면 출발할 수 있었지만 최명철이 마음에 걸렸다. 더구나 박순용이 쉴 수 있을 때는 그나마 주말뿐이었다. 서도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말 동안 킵을 하려면 부족한 잠부터 채울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대충 결정을 했지만,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잊을 만하면 이런 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만 했다. 고경아가 출근하기 전에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경아 씨, 오늘은 만나기 힘들 것 같아요. 전에 말했던 환자가 눈을 떴어요. 지금이 더 위험할 때라 조금 더 지켜봐야 해요. 빨라도 밤 열두 시는 다 돼야 서울에 도착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내일 아침에 만나면 안 될까요?”

막 잠에서 깨자마자 전화를 받은 고경아가 한참 동안 말이 없다 한숨을 쉬었다. 단 10분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지만 김지훈과 놀랄 정도로 같은 사연을 지닌 최선호였다. 투정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도리어 밤에 운전한다는 것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이번 주 내내 킵했는데 피곤하지 않아요? 운전 조심해서 해요. 졸리면 무리하지 말고 중간에 자고 올라와요. 그럼 우리 내일 아침 몇 시에 만나요?)

너무너무 마음씨가 좋은 고경아였다. 정말 보고 싶다는 마음을 보여야 한다.

“일곱 시 어때요?”

(일곱 시요? 화장도 해야 되는데 안 돼요. 아홉 시에 주차장에서 만나요.)

“정말 고마워요. 그럼 내일 아침에 봐요. 사랑해요.”

(흥! 만날 말로만 사랑하면 뭐해요?)

응? 김지훈의 얼굴이 발개졌다.

“경아 씨, 말로 부족하다면 뭘 해야 하죠? 혹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일 아침에 늦지나 말아요. 나 지금 출근 준비해야 하니까 끊어요.)

전화를 끊은 김지훈이 실실 웃었다. 화를 내는 고경아의 목소리가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왠지 뜨거운 것이 기대가 되는 데이트였다.

눈이 시뻘갰다. 킵을 한 탓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한 탓인지 모를 일이었다.

우어어어어!

이 와중에도 어디선가 늑대 울음소리가 울렸다.

토요일 정규 일과가 끝났다. 서도진을 부른 김지훈이 주말을 부탁했다.

“도진아, 알아서 잘하겠지만 수술 뜨면 퍼스트 잘 서고, 박순용 선생님 잘 챙겨.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으니까 끼니 거르게 하지 말고.”

“예, 선생님. 걱정하지 마시고 오프 다녀오세요. 설마 안 가시는 건 아니죠?”

“가야지. 그 전에 일단 여섯 시까지 자고 와. 그때까지 최명철 환자 보고 갈 거니까 다른 생각 말고 푹 쉬어.”

“어후! 이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빨리 오프나 가세요.”

“주말에 둘이 근무하려면 1년차 때보다 더 힘들다. 거의 잠 못 잘 수도 있는데 중환자실 환자는 언제 볼래? 잔말 말고 박순용 선생님하고 맛있는 거 시켜 먹고 한숨 자. 오더야.”

서도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김지훈의 의도를 알았다. 자신은 물론 100일 당직인 박순용이 쉴 시간을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럼 이번 환자까지만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 선생님 마음은 알지만, 사실 죄송하고 불편해요.”

“알았어, 인마. 나도 더 이상은 못해. 여섯 시까지 수술이나 뜨지 말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김지훈이 눈을 부라리며 억지로 떠밀고 나서야 서도진이 박순용과 식사를 하러 갔다.

과연 이런 일이 또 없을까?

두고 볼 일이지만 서도진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래야 하긴 했다. 윗년차가 기침을 하면 아랫년차는 폐렴에 걸리는 동네가 외과 의국이기 때문이다.

슬쩍 눈치를 보고는 구내식당에서 재빨리 점심을 먹은 김지훈이 중환자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혁원이 들어왔다. 머리가 부스스한 게 한잠 잔 것 같았지만, 아직도 눈가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선생님, 오프 안 가세요?”

“어? 내가 오픈지 어떻게 알았어? 여긴 웬일이야?”

“응급실에 아뻬 환자 한 명 왔는데, 선생님이 안 보이셔서 눈치로 때려잡았죠. 서울로 가시죠? 언제 가실 거예요?”

‘도진아! 너도 일복이 좀 있구나. 어쩌냐. 일단 수술은 열심히 해야지. 그나저나 체력이 심각하게 떨어진 것 같은데, 박순용 선생님이 정말 문제네.’

쩝쩝 입맛을 다시던 김지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건 왜 물어봐? 너도 오프야?”

“예, 선생님. 가는 길에 저 좀 태워 주세요.”

뭔가 뻔뻔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김지훈이 이혁원을 보다 말고 피식 웃었다.

“태워 달라고? 조금만 기다려, 인마. 새카맣게 태워 줄게.”

“어휴! 그 말이 아니잖아요. 근데 정말 이 환자 심장을 직접 압박하셨어요?”

“이 자식이 요새 신경을 안 써서 그런가,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 했다. 왜?”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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