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의사가 된 이유 Ⅱ (2)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다.
“아! 그게 말입니다. 직계라고는 환자 동생과 아들뿐인데 선호는 아직 어리고, 동생도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결정할 처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우리 결정에 따라 주시면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최소한 동생 되시는 분의 동의가 있어야 이송할 수 있습니다.”
“친척들이 환자를 옮기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알았으니까 준비나 해 주세요.”
얼굴을 잔뜩 구긴 최필근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호자들과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저하던 보호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몇몇 소리는 분명하게 들렸다.
죽음, 재산, 관리, 어린아이, 집안싸움, 좋은 게 좋다.
아직 의식도 찾지 못한 최명철을 두고 할 말이 아니었다. 누가 들어도 불같이 화를 낼 말들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결코 서로를 위하는 집안은 아니었다.
간혹 들려오는 말에 김지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느 틈에 대기실에서 나왔는지 최선호가 보였다.
힐끗 눈길을 준 최필근이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았다.
최명철이 이미 죽기라도 한 것처럼 대부분 재산에 관한 말들만 오고 갔다. 심난하고 어지럽기만 했다.
김지훈이 그런데 최선호는 오죽할까?
‘내가 참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건 아니야. 선호가 충격을 받을 수도 있어.’
어리다지만 알 건 다 아는 나이였다. 잔뜩 걱정이 된 김지훈이 최선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거의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대구에는 안 갑니다. 삼촌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아버지하고 싸운 사람이 왜 끼어들어요!”
최필근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선호야, 넌 아직 어려서 모른다. 내하고 아버지는 서로 미워서 싸운 게 아니라…….”
“돈 때문이잖아요. 나도 다 압니다.”
돈이라는 소리에 최필근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말투까지 변했다.
“어린 노무 자슥이 지금 뭐라카노. 다 니를 위해서 이런 거 아니가. 어른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따르기만 하면 된다.”
“절대 안 돼요.”
“뭐라고? 왜 안 되는데. 니 그러다 아버지 죽는다. 그때 가서 후회할래? 대구 병원이 여기보다 훨씬 크다. 이 중에 니 아버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최선호가 불신의 빛을 강하게 드러내며 최필근을 노려보았다. 최명철의 아들이지만 미성년자다. 하나뿐인 삼촌도 몸이 아파 운신조차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 친척들이라는 사람들이 결정을 하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법이었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미안하다. 아버지의 의식만 찾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미안하다.’
그때 정말 뜻밖의 말이 들렸다.
“왜 안 되냐고요? 난 저기 서 있는 김지훈 선생님을 믿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반드시 살려 주실 거라고 믿는단 말입니다. 대구 가면 누가 저 선생님처럼 우리 아버지 옆을 지켜 준단 말입니까?”
최선호가 달려와 김지훈 앞에 섰다.
“선생님, 우리 아버진 아무 데도 안 갑니다.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 살려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저 사람들 말을 따르시면 안 돼요. 다 돈 때문에 저러는 거예요.”
울고 있었다. 최명철과 최선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이 단 한마디라도 나왔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척들이라는 사람들이 어린 조카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었다. 그것도 돈 때문에 말이다.
김지훈이 아무 말도 못하고 최선호의 어깨만 잡았다.
‘그래. 내가 지켜 줄게, 선호야. 날 믿어 줘서 고맙다. 아버지가 널 보며 웃는 모습을 꼭 보게 될 거야.’
최선호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아픈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가슴이 너무 아파 터질 것 같았다.
김지훈이 밤새 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했다.
초조하기만 했다. 풍부한 인력과 더 좋은 장비를 가진 대구로 이송을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누군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확신만 있어도 당장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술한 지 이미 6일이나 지났다.
온갖 검사를 다시 하게 될 것이다. 치료 중간에 온 환자를 파악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고의 노력과 열성을 기대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장비가 없거나 규모가 작아서 치료를 못하는 병원이 아니다. 있을 건 다 있어. 지금 필요한 것은 의사의 노력뿐이야.’
아들의 마음 때문일까? 죽은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던 최명철이 뒤척였다. 잠깐 졸았지만 분명 그렇게 보였다.
순간 가슴이 뛰며 잠이 확 달아났다. 전에 없던 희망을 느꼈다.
어느새 금요일 아침이 밝았다.
“지훈아, 오늘 아침 검사 결과는 어때?”
“아침 흉부 사진은 괜찮았고, 혈액 검사도 나쁘진 않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약간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송동화 과장이 깜짝 놀랐다.
“그래? 의식이 돌아온 것 같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난밤에 손가락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신경외과 과장님도 혼수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다행이네. 의식만 돌아오면 확 좋아질 것 같은데. 심장은 문제없겠지?”
“변상훈 과장님께서 계속 봐주고 계십니다. 지금처럼만 유지되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기능도 문제였지만 심장을 직접 압박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감염이 문제였다. 패혈증이라도 발생하면 심장에 염증을 일으킬 것이다. 이는 곧 사망이었다. 미열에도 온갖 검사를 하며 극도로 긴장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환자에 대해 논의를 하던 중 아침 면회가 시작됐다. 송동화 과장이 보호자들에게 설명을 했고, 최선호는 아버지의 손만 잡고 있었다. 어젯밤 일 때문인지 오늘따라 더 힘들어 보였다.
옆에 놓인 가방이 애처로웠다. 매일 아침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도 병원을 떠나질 못했다. 지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에 학교에 가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 아버지가 언제 눈을 뜨실까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급한 판단을 입 밖으로 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수술 후 6일이 지나도록 심각한 문제가 없었다. 비록 한 번뿐이지만 손가락을 움직였다. 실낱같을지라도 희망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김지훈이 걱정 말라는 듯 눈가에 힘을 주며 최선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면회 시간이 끝났다. 정규 수술을 들어가야 했다. 서도진에게 최명철을 맡기고 수술 방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실력이 없으면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겠지? 어렵고 심각한 환자가 있을수록 도리어 더 열심히 내가 할 일을 해야 돼. 수술실에서는 수술에만 집중하자.’
지난밤 내내 킵을 한 탓에 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환자를 보거나 수술에 들어갔을 때만큼은 절대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된다. 김지훈이 찬물에 샤워를 하고 수술을 들어갔다.
이때는 최선호도 잊어야 한다.
첫 번째 수술이 끝났다. 재빨리 박순용과 함께 오더를 낸 후 다시 샤워를 했다.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한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번째 수술 중이었다.
서도진이 발소리를 죽이며 다급하게 들어왔다. 한참 수술을 하던 송동화 과장이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도진아, 무슨 일 있어?”
“과장님, 최명철 환자가 눈을 떴습니다.”
서도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뭐? 그게 정말이야?”
“예. 의식도 갑자기 좋아져서 말까지 알아듣습니다.”
순간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모든 동작이 멈췄다. 의식이 돌아왔다면 이제 회복을 향한 첫발을 확실하게 내디뎠다는 말이었다. 누구보다도 기뻐해야 할 수밖에 없는 김지훈이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최선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가빠 오는 숨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최명철에게 달려가고 싶은 생각에 온몸이 움찔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술 중이었다. 지나친 흥분과 감정적 동요는 실수를 유발할 수 있었다.
‘침착하자. 수술에 집중할 때야.’
나직한 숨소리와 함께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장님, 수술 진행하시죠.”
송동화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자식 봐라. 누구보다도 기뻐해야 할 놈이 침착하기만 하네. 어이구! 내가 너한테 배우는구나.’
“그래. 계속하자.”
가슴을 들뜨게 하는 흥분이 가라앉았다. 모두들 냉철하고 신중한 눈빛으로 수술에 집중했다.
나직한 기계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두 번째 수술이 끝났다. 박순용과 오더를 내던 김지훈이 연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환자가 눈을 떴다니 정말 기쁘네요. 밤새 킵을 하며 쌓인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경험이 많겠지만 이번에는 더 특별하시겠어요.”
박순용도 서도진에게 이 환자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김지훈이 묘하게 웃었다. 지금이라도 중환자실로 달려가 최명철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최선호가 웃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 그리운 이들 생각에 아직도 가슴이 아려 왔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환자는 없었다. 하물며 수술을 앞둔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도진이가 있으니까 지금은 수술 환자에게 집중하죠. 모두 다 아픈 사람들이잖아요.”
마지막 수술까지 끝났다.
오더를 확인하고 부리나케 수술 방을 나가는 김지훈을 본 박순용이 고개를 흔들었다. 누구보다도 최명철의 상태를 궁금해할 사람이 김지훈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물론 밀려오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느라 자세히 못 보긴 했지만 말이다.
띠! 띠! 띠! 띠!
슈우욱! 슈우욱!
규칙적인 심장박동 소리와 인공호흡음.
두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최명철.
분명 의식을 찾았다고 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박순용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김지훈을 보았다.
“도진아, 혹시 일부러 재운 거야?”
“예, 선생님. 파이팅까지 해서 깜짝 놀랐어요. 늑골 골절도 있고 심장에 무리가 올까 봐 일단 재웠습니다. 약을 조금만 썼으니까 곧 깨어날 것 같습니다.”
파이팅까지 했다?
자발 호흡이 강력하고 의식이 돌아오면 돌아올수록 인공호흡기를 통한 강제 호흡이 환자에겐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 고통이 강하면 환자는 기계가 불어넣은 호흡과 싸우며 충돌하게 된다. 그것이 파이팅이다.
파이팅이 심해 재워야 할 정도였다면 급격하게 호전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모두들 초조한 마음으로 환자가 깨기를 기다렸다. 송동화 과장까지 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했다.
째깍! 째깍! 째깍!
중환자실을 가득 메운 기계음 사이로 초침 소리가 들렸다. 한없이 길기만 한 시간이 흘렀다.
딸깍!
시계 침이 정확하게 수직으로 섰다.
그 순간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삐이익! 삐이익!
최명철의 가슴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고통을 못 이겨 침대에 묶인 손발을 뒤틀었다.
파이팅이었다.
벌떡 일어난 김지훈이 인공호흡기를 뗐다.
후우욱! 후우욱!
거칠지만 힘찬 호흡 소리가 들렸다. 최명철이 눈을 뜨고 묶인 손을 마구 흔들며 기관에 삽입된 튜브가 주는 고통을 호소했다.
김지훈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아시면 두 번만 눈 깜빡여 보세요.”
최명철이 정신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갑작스러운 의식 회복에 따르는 혼란이었다. 한참 동안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야 진정이 됐다.
“여기가 병원인 건 아시겠어요?”
두 번 깜빡였다.
“아드님 이름이 최선호예요?”
고개를 위아래로 마구 흔들었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돌아왔다. 최명철의 거친 반응에 도리어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송동화 과장도 가슴이 뛰는지 연신 숨을 내쉬었다.
“지훈아, 환자 반응이 너무 격해. 아직은 재우는 게 좋지 않겠어? 어느 쪽이 좋을지 애매모호하네.”
고민스러운 문제였다. 하지만 환자 곁을 지키며 정신적 안정을 찾게 한다면 더 빠른 회복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과장님, 일단 검사를 해 보고 괜찮다면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떨까요?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바로 재우고 인공호흡 유지하겠습니다.”
“밤에는 어떻게 하려고?”
“제가 오늘 도진이하고 킵을 하겠습니다.”
송동화 과장이 눈가를 좁혔다. 이번 주 내내 오프도 안 가고 킵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존 업무에 충실해 말은 안 했지만 몸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나 김지훈에겐 특별할 수밖에 없는 환자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 그러면 네 말대로 하자. 단, 너무 무리하지 마. 니가 쓰러지면 우리 과 안 굴러간다.”
“알겠습니다, 과장님. 감사합니다.”
수술 창을 치료하고 비지에이와 흉부 촬영을 시행했다.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면회가 시작됐다. 김지훈이 최선호를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이른 판단이었지만 눈을 떴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의미를 가진 변화였다.
최선호가 들어왔다. 항상 보아 왔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선생님! 아버지는요? 뭐가 잘못됐나요?”
“선호야, 아버지 눈 뜨셨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김지훈의 말이 믿겨지지가 않는지 최선호가 눈만 껌뻑거렸다.
“뭐해? 아버지 불러 보고 손잡아 드려. 널 알아보실 거야.”
아버지의 손을 잡는 아들의 손이 떨렸다.
“아버지!”
후우욱! 후우욱!
튜브를 통해 거친 호흡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들의 손을 꽉 잡은 최명철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최선호가 아버지의 손을 맞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끄으윽! 끄으윽!
꾹꾹 억누른 울음이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김지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