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85화 (385/1,329)

제5화 의사가 된 이유 Ⅱ (1)

누군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다행히 흉강 내 출혈은 멈춘 모양이다. 환자는 어때?”

변상훈 과장이었다.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횡경막을 열고 심장을 압박할 생각은 어떻게 했어? 본 적이 있어?”

“없습니다. 책에서만 봤습니다.”

나직한 한숨 소리가 터졌다.

‘본 적도 없는데 생각해 낸 거야? 누구보다도 절박했던 탓이겠지. 네게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환자를 봐 왔구나. 자식! 안쓰럽지만 점점 더 믿음직스러워지네.’

“음! 이 환자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너 때문이라도 말이야.”

변상훈 과장의 말에도 희망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다쳤다. 심장을 직접 압박했기 때문에 추가 손상까지 받았을 것이다.

김지훈이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찡그렸다.

우측 간 손상 및 비장 손상.

혈흉을 동반한 다발성 늑골 골절.

횡경막을 열고 시행한 직접 심장 압박.

어느 하나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 손상은 없었다.

구미는 아뻬 밭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당연히 아뻬 환자가 왔고, 서도진이 집도를 했다. 그것도 연이어서 말이다.

첫 번째는 송동화 과장이 퍼스트를 섰고, 두 번째는 김지훈에게 퍼스트를 맡기고 참관을 했다.

“열심히 한 티가 팍팍 난다. 막 2년차 된 것치고는 정말 잘하네.”

“감사합니다, 과장님.”

김지훈이 입술을 모으며 서도진을 보았다.

같은 년차라도 수술 실력은 천차만별이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얼마나 열심히 보고 배웠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서도진은 그만큼 열심히 했고, 그만큼 믿을 만한 후배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등이라도 한 대 치며 활짝 웃었겠지만 지금은 마냥 즐거워할 때가 아니었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김지훈이 바로 중환자실로 내려왔다.

최명철은 하다못해 상처에 감염만 발생해도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환자였다. 번갈아 가며 중환자실 킵을 했지만 불안하기만 했다.

김지훈이 최소한의 수면만 유지하며 주말 내내 중환자실을 떠나지 않았다.

내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및 정형외과까지 다녀갔다. 모든 과가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환자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온갖 기계 장치와 약물에 의존해 힘겹게 생명을 유지하는 최명철을 보는 김지훈의 표정이 어둡기만 했다.

어쩐지 보호자들의 표정이 묘하게 느껴졌다. 면회 때마다 우르르 몰려 들어왔지만 눈가를 붉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뒤늦게 얼굴을 보인 환자의 동생만이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지병이 있는지 몹시 힘들어 보였고,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환자의 아들인 17살 고등학생, 최선호가 더욱 눈에 밟혔다. 누구보다도 최선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그 때문에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일요일 오후 마지막 면회 시간이 다 지나도록 최선호가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지금까지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최선호가 이를 악문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이제야 실감을 한 것이다.

최선호를 보고 있던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어깨를 잡아 주었다.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아 더욱 애처로웠다.

면회 시간이 끝났다. 함께 있던 보호자들이 힐끗 눈길을 주고는 혀를 차며 중환자실을 나갔다.

최선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마 면회가 끝났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최선호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선생님, 아버지는 괜찮으실까요?”

너무도 힘들고 아프게 들렸지만 말문을 열어 다행이었다.

“네 이름이 선호지? 앞으로 선호라고 부를게. 아버진 반드시 좋아지신다. 난 절대 포기하지 않아.”

“확신하세요?”

“그래. 난 확신해.”

최선호가 아버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나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요?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엄마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요?”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사랑한다는 말을 했던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후회할 일이었지만, 그 나이대의 자식들은 으레 그런 모양이었다.

“나도 그런 것 같네.”

“아버지 수술하기 전에 들었어요. 선생님은 부모님이 다 안 계신가요?”

“응. 오래전에 두 분 다 돌아가셨어.”

“보고 싶으세요?”

“가끔은. 선호야, 걱정하지 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사람은 없어. 널 보면 네 아버지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거든.”

최선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선생님 부모님은 왜 떠나셨어요?”

김지훈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게 내가 의사가 된 이유야. 적어도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어이없게 떠나보내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 그때 누군가가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이라도 시도했다면 지금처럼 아프진 않았을지도 몰라.’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최선호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최명철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최명철이 훌훌 털고 일어났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선호야, 아버지가 네 말을 못 듣는 것 같지? 그렇지 않아. 그러니까 슬픈 얘기는 그만하고 즐거운 말만 하자. 그게 힘들면 아버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말을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시간이 너무 지났네. 아버지는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어.”

물끄러미 김지훈을 보던 최선호가 최명철의 귀에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고는 중환자실에서 나갔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것 같았다.

김지훈이 나직한 신음을 터트렸다.

최선호는 십 몇 년 전의 자신이었다. 수술을 받았다고 해도 결국 아버지를 잃는다면 충격과 슬픔이 작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아픔을 줄 수는 없었다.

오후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회진을 돈 후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켰다. 지금은 소변 한 방울이라도 적게 나오면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였다.

사실 환자 앞에서 자리를 지킨다고 매시간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콜이 왔을 때 빨리 내려와 필요한 조치를 취해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킵을 한 것과 안 한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는 다름 아닌 환자의 삶과 죽음이었다.

하기에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

‘환자분,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당신 곁을 지킬 겁니다. 힘내세요. 선호가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꽤 늦은 시간에 서도진과 교대를 했다. 최선호가 중환자실 앞 의자에 홀로 앉아 있었다. 물끄러미 최선호를 보던 김지훈이 옆에 앉았다. 한동안 나직한 대화가 오고 갔다.

“선호야, 아버지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치료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네가 힘들어하면 아버지도 힘들어한다.”

마치 형이 동생에게 하는 말 같았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숙소로 돌아온 김지훈이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라도 빠트린 처치가 있는지 불안하기만 했다. 밤새 최선호의 눈물과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약속한 2주간의 풀 당직이 끝났다. 연이은 당직과 중환자실 킵에 서도진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박순용은 가장 긴장해야 할 때인 수술 중에도 툭하면 졸았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체력적인 한계를 상당히 빨리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1년차다.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도진아, 주중에는 화목 이틀간 오프 가고, 주말 오프는 다다음 주에 가. 그동안 고생했다.”

서도진이 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가를 찌푸렸다.

“선생님, 중환자실 환자 계속 킵하실 거예요?”

“그건 왜?”

“선생님이 계속 킵을 하면 저도 못 쉽니다. 오프 때는 우리에게 맡기고 쉬세요. 눈 똑바로 뜨고 환자 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곰곰이 서도진의 말을 생각하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환자를 위해서는 킵을 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치프인 자신이 쉬지 않으면 아랫년차는 당연히 쉬지 못한다. 오프를 간다고 한들 오프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을 빤히 알고 있었지만 최명철만큼은 온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도진아, 이번만 이해해 줘. 최선호 알지? 환자분 아들 말이야. 나랑 처지가 똑같네. 십 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난 그 일 때문에 의사가 됐는지도 몰라.”

김지훈이 담담하게 지난 일을 말했다. 서도진이 답답한 한숨만 내쉬었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한 사정을 듣자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가 없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 부모님도 그때 수술을 받으셨으면 살아 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휴우! 이건 내 사정이니까 신경 쓰지 마. 그건 그렇고, 네 얼굴 보면 풀 당직 서자는 말을 괜히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인마, 쉴 때 제대로 쉬지 못하면 환자 보기도 힘들잖아.”

“어휴!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오프를 갈 생각을 접은 것 같았다. 서도진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문득 피곤에 찌든 박순용과 인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들 제 갈 길이 있다. 의사인 이상 기본을 익히는 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해도, 그 이상의 일까지 무작정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도진아, 너만큼 믿는 사람도 없어. 난 오프가 아니더라도 쉴 시간이 충분하니까 마음 놓고 오프 가. 이건 치프가 내리는 오더야.”

“이게 무슨 오더예요?”

“이 자식이 2년차라고 개기네. 잔말 말고 가. 오프 날 병원에 있다가 내 눈에 걸리면 그날로 오프 없앤다.”

서도진이 입맛만 다셨다.

환자에 대한 김지훈의 열정과 노력은 배워야 했지만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체력인지, 아니면 정신력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상이 치열해졌다. 정규 일과에 충실해야 했고, 어떤 환자도 등한시할 수 없었다. 또한 최명철은 지금까지 본 환자 중 가장 중한 환자였다. 횡경막을 열어 심장 압박을 한 것만으로도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남는 시간을 모두 쏟아부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이상 소견이 보이면 피가 말랐다.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최선호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

‘환자분, 당신은 아버집니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힘을 내세요. 절대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김지훈의 눈이 전보다 더 시뻘겋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억지로 오프를 보낸 서도진의 꼴이 조금은 나았다. 1년차 본연의 일에 중환자실 킵까지 하게 된 박순용은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100일 당직 기간 중이라 누가 당직이든 박순용도 중환자실을 지켜야 했다. 중환자실 환자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최명철은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지훈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최선호였다.

심리적 충격이 대단할 것이다. 게다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보호자들은 많은데 유독 홀로 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자칫 어린 가슴에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남을 수도 있었다.

“선호야, 밥 먹었니? 어제 잠은 좀 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마치 친형처럼 살뜰하게 챙겼다.

“선호야, 가서 목욕이라도 하고 와. 아버지 깨시면 니 얼굴 보고 놀라시겠다. 빨리 갔다 와. 돈 없으면 내가 줄게.”

최선호가 마침내 웃음을 보였다. 보일 듯 말 듯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상황에 따라서는 보호자까지 보듬고 치료해야 하는 것 역시 의사의 책임인지도 몰랐다.

목요일 밤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보호자가 자신의 이름이 최필근이라며 면담을 신청했다.

최명철과의 관계가 대단히 가깝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먼 친척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미심쩍은 얼굴로 진단명부터 수술까지 꼬치꼬치 물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정식 면회 시간에 설명하지만 김지훈에게 최명철은 특별한 환자였다. 열심히 설명하는 사이 병원에 남아 있던 몇몇 보호자들이 모여들었다.

“수술 중에 심장마비까지 왔다는데 수술은 제대로 한 겁니까? 혹시 우리에게 숨기는 일은 없습니까?”

김지훈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보호자가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수술한 지 벌써 오 일이나 지났는데, 환자 상태가 저렇게 나쁘면 큰 병원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요? 환자를 회복시킬 자신은 있는 겁니까?”

병원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고 의사까지 무시하는 티가 역력했다. 의사 입장에서는 가장 듣기 힘든 말이었다. 특히나 환자와 별다른 관계도 아닌 사람이 유난히 관계를 강조하며 이런 식으로 나올 때는 더 힘들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원에 대한 결정은 직계가족과 상의해야 할 일입니다.”

“그 말이 맞기는 한데, 내가 워낙 환자하고 친한 사람입니다. 환자가 가진 재산이 많아서 지금 문제가 생기면 아주 골치 아파집니다. 마침 내가 잘 아는 분들이 계시니까 상의해서 잘 결정하겠습니다.”

환자를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최선호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재산 문제를 꺼냈다.

문득 보호자들 중 일부는 그리 슬퍼하지도 않으면서 면회 때마다 얼굴을 내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집 집안일에 끼어들 처지는 아니지만, 환자와 최선호에 대한 걱정을 감출 수 없었다. 경험상 이럴 때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이송에 따른 책임을 지실 수 있습니까?”

뭔가 기대하는 눈치를 보이던 보호자들의 얼굴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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