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의사가 된 이유 Ⅰ (2)
자신도 어린 아들처럼 멍했었다. 그저 두려울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은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야 다가올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안타깝기만 했다.
보호자들이 흠칫 놀라며 눈가를 찡그렸다.
그때 서도진이 급히 다가왔다.
“선생님, 환자 혈압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얼마야?”
“지금 간신히 80 정도 잡힙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서도진의 가운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 있었다. 김지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송동화 과장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김지훈이 부리나케 처치실로 들어갔다. 극도의 긴장이 실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호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환자 때문에 눈물을 보이는 의사는 없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달라붙어 지금까지 아무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나같이 가운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환자를 이토록 생각한다면 믿어야 할 것이다. 길거리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보호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불과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답답했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선생님, 지금 빨리,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 주세요. 저 어린놈을 봐서라도 꼭 살려 주셔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송동화 과장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은 구미 병원에 심각한 불신을 보이는 환자들이 있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때문에 대구로 이송을 하다 길에서 환자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 빤히 결과를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타깝지만 구미 병원과 의사가 가진 한계였다. 그런데 김지훈과 전공의들의 열정과 눈물, 그것이 보호자들의 믿음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 속에 담긴 무수한 의미가 송동화 과장에게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 우리가 의사가 된 이유는 바로 이거였어. 최선을 다해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일반 외과나 응급 의학과나 다 마찬가지야.’
수술실로 옮길 준비를 하는 동안 김지훈이 다시 한 번 환자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테이블 데쓰(Table Death)!
죽기보다 싫은 말을 또 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를 실은 스트레치 카가 거칠게 움직였다. 창백하기만 한 환자의 팔이 힘없이 흔들렸다. 가쁜 숨을 내뱉을 때마다 입술 사이로 삐죽이 나온 튜브에서 피가 튀었다.
김지훈이 먼저 달려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그 순간에도 피를 짜야 했다. 보호자들이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수술 방 앞까지 따라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환자를 살려 달라는 것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급박한 상황이었다.
띠띠띠띠띠!
환자의 심장이 헐떡였다. 이미 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마취와 동시에 복부를 절개했다.
수술 시야를 확실하게 확보할 틈조차 없었다. 배 속을 가득 채운 붉은 피를 어느 정도 제거하자마자 바로 탭을 우겨 넣었다. 하얀색 탭이 순식간에 뻘겋게 피로 물들었다.
마취과도 정신이 없었다. 이용철 과장까지 나와 환자의 바이탈을 유지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환자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송동화 과장이 소리쳤다.
“지훈아! 메인이 간이야, 비장이야?”
선택의 기로였다. 가장 출혈이 심한 부위를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환자는 수술대 위에서 사망할 것이다. 순간 간이라고 대답하려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출혈량을 최대한 빨리 줄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간 손상을 해결하는 것보다 비장을 제거하는 것이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송동화 과장도 분명 같은 생각이었지만 확신을 갖기 위해 물었을 것이다.
“선생님, 비장부터 떼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동화 과장이 간 주변에 탭을 마구 우겨 넣었다. 압박만이 출혈을 지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도진아, 계속 석션해. 박순용 선생님, 확실하게 끌어요.”
송동화 과장이 기구도 없이 장갑을 낀 손으로 거칠게 비장 주변 조직을 잡았다. 기구를 이용하면 안전하지만 손보다 빠를 수는 없다. 그만큼 급박했다. 김지훈이 제대로 따라올 수 있다는 믿음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양손에 켈리를 잡았다.
따가각! 따가각!
톱니 물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주변 조직이 잡혔다. 김지훈이 손을 내밀면 간호사가 곧바로 켈리를 건넸다. 순식간에 10여 개의 켈리로 비장 주변 조직을 모두 잡았다.
“가위.”
송동화 과장이 단숨에 주변 조직을 자르고 비장을 들어냈다. 동맥이 잡혔는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석션으로 주변에 고인 피를 제거하고 출혈을 확인했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피가 흘러나왔다.
“이쪽에서 더 이상 큰 출혈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탭으로 압박하겠습니다.”
“좋아. 빨리 압박해.”
김지훈이 무식할 정도로 거칠게 비장이 제거된 부위에 탭을 우겨 넣었다. 송동화 과장이 바로 간을 압박했던 탭을 빼냈다.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박순용 선생님, 간을 볼 겁니다. 세게 끌어요.”
박순용이 갈비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리트랙터를 당겼다. 우측 간이 깨져 있었다. 깊게 패인 손상 부위를 따라 줄줄 피가 흘러나왔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간 수처용 바늘 주세요.”
바늘을 받아 든 송동화 과장이 손상된 간을 봉합했다. 지름이 7~8센티미터에 달하는 바늘이 간 깊은 곳을 통과했다.
김지훈의 손이 배 속으로 쑥 들어갔다.
간 조직 타이는 정확성이 생명이었다. 조금이라도 강하면 실이 파고들어 도리어 간에 손상을 입히고, 반대로 약하면 출혈을 막을 수 없었다.
김지훈이 눈을 거의 감다시피 했다. 오직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의존해 타이를 했다. 묵직하면서도 약한 조직의 저항성을 느끼며 빠르게 타이를 했다.
송동화 과장이 확인도 하지 않고 다음 바늘을 떴다. 확고한 믿음이었다.
커다란 바늘에 달린 실이 빠르게 소모됐다.
무려 10여 바늘이나 뜨고서야 손상된 부위를 봉합할 수 있었다. 그제야 송동화 과장과 김지훈이 눈을 부릅뜨고 출혈을 확인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심각한 출혈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마취과, 출혈 잡았습니다. 바이탈은 어때요?”
“아직도 70에서 80 사이에서 잡혀. 빨리 수술 끝내.”
비장이 제거된 부위를 확실하게 지혈시켰다. 간 손상 부위의 출혈도 잡힌 것이 확실했다. 혹시나 몰라 흉부 도관까지 확인했다. 생명을 위협할 만한 출혈은 더 이상 없었다.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손상 부위가 너무 많고 심했다. 과다한 수혈과 수액 공급도 장기에 큰 부담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빨리 마취까지 끝내야 안정을 찾을 것이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두 개의 손이 움직였다.
복막을 닫기 시작했다.
“마취과, 배 닫습니다.”
“송 과장, 빨리 닫아. 환자 상태가 아직 너무 안 좋아.”
이용철 과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순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절대 울리지 말아야 할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빨라진 심장박동 소리가 돌연 길게 울렸다.
띠띠띠띠띠! 띠이이이이!
“어레스트(Arrest)! 간호사, 빨리 전기 충격기 준비해요.”
이용철 과장의 고함이 수술실을 울렸다. 송동화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지훈이 그대로 환자의 가슴을 압박했다. 이용철 과장이 인공호흡기를 떼고 공기 주머니를 잡았다.
“하나, 둘, 셋, 넷……. 앰부.”
우두둑! 우두둑!
이미 부러진 갈비뼈가 마구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환자의 목숨과 갈비뼈를 바꿔야 한다면 얼마든지 그래야 했다.
“도진아, 빨리 마취과 도와. 하나, 둘, 셋……. 앰부.”
환자의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앰부를 할 때마다 가슴이 오르내렸다.
띠! 띠! 띠! 띠! 띠이이이!
심장을 압박할 때마다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모니터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손을 떼면 심장은 여전히 멈춰 있는 상태였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환자분,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잘 버텨 놓고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제발!’
필사적으로 심장을 압박했다.
여전히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은 불과 5분도 남지 않았다.
전기 충격기가 도착했다. 김지훈이 거칠게 드랩에 사용된 천을 걷어 냈다.
“250으로 시작합니다.”
삐이이이이!
충전과 동시에 위험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슛 합니다. 모두 물러나세요. 슛!”
환자의 가슴이 요동쳤다. 흉부 압박이 한 차례 이어졌다.
모두들 초조한 눈으로 모니터를 보았다.
띠이이이이!
길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심전도는 일직선이었다.
“300으로 올려요. 슛 합니다. 슛!”
극심한 자극에 환자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하나, 둘, 셋, 넷……. 앰부.”
반응이 없었다.
“다시 300으로 슛합니다. 슛!”
전기 충격을 주자마자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는 김지훈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서도진이 비본과 아트로핀을 연거푸 혈관에 직접 주사했다.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여전히 뛰지 않았다.
5분이라는 시간이 헛되이 지나가고 있었다.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300으로 다시 슛합니다. 슛!”
우두둑! 우두둑!
이미 부러진 갈비뼈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띠! 띠! 띠! 띠! 띠이이이!
모니터는 같은 소리만 반복했다.
송동화 과장과 이용철 과장이 눈가를 찡그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결국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서도진도 망연자실한 표정만 지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식의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볼 수는 없었다.
흉부 압박을 하고 있던 김지훈이 소리쳤다.
“서도진, 뭐 해? 아직 안 끝났어. 비지에이 확인하고 필요한 건 다 투여해. 과장님, 심장을 직접 압박하겠습니다. 박순용 선생님, 리트랙터 잡아요.”
최후의 방법이었다. 김지훈도 책에서만 봤을 뿐,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반드시 살려야 했다. 이 순간에도 환자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눈가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대답도 들리기 전에 김지훈이 복막을 봉합했던 실을 잘라 냈다. 심장 하부에 위치한 왼쪽 횡경막을 길게 절개했다. 심장을 싸고 있는 막과 폐가 보였다.
과감하게 손을 집어넣은 김지훈이 심장을 움켜잡았다. 이미 차가워진 심장을 직접 압박했다.
‘환자분, 당신의 심장은 아직도 강하고 단단합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손이 저릴 정도로 강하게 압박했다.
이용철 과장도 숨을 죽인 채 인공호흡에 집중했다. 연이어 주입되는 약물이 혈관을 따라 조금씩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필사적인 노력이 이어졌다.
마침내 그 모든 것이 심장에 도달했다.
띠! 띠! 띠! 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느리고 미약한 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김지훈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을 헐떡였다. 최소한 환자의 육신은 살린 것이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횡경막을 봉합하고 빠르게 배를 닫았다.
기관 내 삽관을 유지한 채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겼다. 영문을 모르는 보호자들이 우르르 뒤를 따랐다.
온갖 기계 장치가 연결됐다. 환자의 심장이 지금도 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김지훈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송동화 과장이 툭툭 어깨를 쳤다.
“지훈아, 수고했다. 이 환자 꼭 살리자.”
“예, 선생님.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죠? 뇌 손상을 받았을까 봐 두렵습니다.”
5분이 훌쩍 넘었다. 아니, 족히 10분은 넘었을 것이다. 그동안 뇌에 혈류가 공급되지 않았다면 뇌 손상을 받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
심장은 뛰지만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환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지켜보자.”
한동안 환자를 지켜보던 송동화 과장이 보호자를 만나기 위해 나갔다. 이제 남은 일은 아주 얇은 유리병처럼 깨지기 쉬운 환자의 곁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일뿐이었다.
서도진과 박순용까지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도진아, 박순용 선생님, 이 환자는 내가 볼 테니까 올라가서 병동 환자 보세요. 혹시 회진 때 내가 안 보이면 킵한다고 말씀드려.”
“선생님, 제가 킵하겠습니다. 좀 쉬세요.”
“아니야. 이 환자는 내가 꼭 봐야 할 이유가 있어. 그러니까 괜한 부담 갖지 말고 병동 환자들에게 신경 써.”
김지훈의 얼굴이 심각하기만 했다. 서도진이 머뭇거리는 박순용과 함께 병동으로 올라갔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노력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 환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상태를 살폈다.
심장박동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혈압은 100에 80이었다. 느리지만 분명한 동공반사가 관찰됐다.
소변 줄을 따라 소변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강인한 환자였다. 자식을 홀로 남겨 두고 떠날 수 없다는 의지일지도 몰랐다. 합병증만 막는다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남은 것은 의사의 절실한 손길이었다.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환자가 이 상태까지 빠진 이유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어린 아들을 위해서라도 환자를 살려야 했다.
김지훈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환자분, 자식을 위해서라도 꼭 일어나셔야 합니다.”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자신과 똑같은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었다.
48세 남자 환자, 최명철.
환자의 이름과 나이가 유난히도 눈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