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80화 (380/1,329)

제2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Ⅱ (2)

마취가 끝났다. 수술 준비도 모두 끝났다. 송동화 과장이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서도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첫날부터 수술을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김지훈도 막상 수술실에 서자 쉽게 메스를 들 수가 없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주저하는 김지훈을 본 마취과 2년차가 재촉을 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선생님, 시작 안 하세요?”

“응? 알았어. 근데 혹시 과장님께 연락받았어?”

“예. 준비되는 대로 시작하라는 연락받았습니다. 치프 되시자마자 대단하세요.”

“대단하긴. 오케이! 마취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예.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지훈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스태프도 없이 시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는 아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아뻬 수술이었지만 상당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퍼스트 자리에 선 서도진의 눈에도 놀라움이 가득 섞여 있었다.

“도진아, 시작하자. 메스!”

치프로서 집도하는 첫 수술이 시작됐다.

17살에 불과한 환자였다. 그것도 여자다. 흉에 아주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사전 계획을 다 세웠다. 터졌다면 모를까, 최대한 적게 여는 것이 여러모로 좋았다.

우하복부를 가로로 열었다. 2센티미터가 조금 넘을 것 같은 절개 창에 서도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선생님, 뱃살도 꽤 있는데 이 정도로 될까요?”

“당기면 좀 늘어나잖아. 그리고 여자라는 것도 생각해야지. 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집중합시다. 박순용 선생님, 졸지 말고 수술 잘 보세요.”

말랐다고 해도 가임기 여성들은 저절로 아랫배에 지방이 축적된다. 그 탓에 수술 창이 작으면 삐져나오는 지방 때문에 시야가 나빠진다. 당연히 배를 여는 과정부터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지훈은 어렵지 않게 복막까지 열었다. 양손을 적절하게 쓴 덕이었다.

오른손으로는 배를 열었다. 왼손으로는 박순용이 복벽에 걸고 있는 작은 리트랙터를 이리저리 움직여 가며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상당히 자연스러운 손놀림에 서도진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지훈이 형이야.’

문제는 배 속이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터지지 않았다. 하지만 절개한 부위가 너무 작아 아뻬를 찾는 과정부터 만만치 않았다. 아뻬는 맹장의 아래쪽 후면에 위치하기 때문에 수술 시야가 좋아도 저절로 보이는 장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서도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로는 아뻬를 찾아서 끄집어낼 수가 없을 텐데, 어쩌려고 요만큼만 여실까? 일단 최대한 시야를 확보하는 데 신경을 써야겠네.’

서도진의 걱정과는 달리 김지훈은 태연하기만 했다.

“롱포셉, 홀더.”

김지훈이 양손에 기구를 들고는 맹장을 찾았다. 서도진이 리트랙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야 확보에 주력했다. 김지훈의 눈가에 즐거움이 걸렸다.

‘역시 도진이야. 나보다 낫네.’

김지훈의 손이 이리저리 움직이는가 싶더니, 곧 ‘따가각’ 소리가 울렸다. 아뻬의 입구를 찾아 잡은 것이다. 홀더를 천천히 빼내자 빨갛게 익은 아뻬가 슬슬 끌려 나왔다.

쥐꼬리처럼 생긴 아뻬의 끝이 배 밖으로 나오자 배 속이 보이질 않았다. 얼마나 작게 열었는지 더욱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단 아뻬만 잡으면 이후의 수술 과정은 똑같다.

우려와는 달리 순조롭게 수술이 진행됐다. 김지훈은 빠르게 손을 놀리면서도 서도진의 손을 고려했고, 서도진은 정확하게 퍼스트를 섰다.

“켈리.”

따가각! 따가각!

동맥을 잡아 자르고 묶었다.

따가각! 따가각!

아뻬를 시작 부위에서 잡고 잘랐다. 아주 익숙하고 정확한 손놀림이었다. 잘 익은 아뻬를 받아 든 간호사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김지훈이 수술을 잘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수술이 진행된 것이다.

“마취과 초점 맞춰 주세요.”

마취과 간호사가 발판 위로 올라가 무영등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작은 절개 창 사이로 맹장과 주변 장기들이 보였다. 여전히 양손에 기구를 든 김지훈이 장기들을 헤치며 동반 질환이 있는지 확인했다. 서도진도 눈가를 좁히며 열심히 배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작게 열어도 보일 건 다 보이네. 장을 어떻게 제치신 거야?’

“도진아, 괜찮지?”

“예, 괜찮습니다.”

“그럼 닫자. 마취과, 배 닫습니다.”

한참 마취과 차트를 작성하던 2년차가 깜짝 놀랐다.

“어? 벌써 끝났어요? 간호사, 깨울 준비 합시다.”

그때 송동화 과장이 들어왔다. 간호사 앞에 있는 보조 테이블에 제거된 아뻬가 떡하니 보였다. 수술이 다 끝났다는 소리였다. 마취를 시작한 지 불과 2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지훈아, 벌써 아뻬 제거한 거야? 다른 장기는 괜찮아?”

“예. 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배 닫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배를 닫는 것을 지켜보던 송동화 과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복막을 닫고 근육을 봉합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피부를 꿰매고 있었다.

서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절개 창이 작으니 닫는 속도도 그만큼 빠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기본적으로 손이 상당히 빠른 김지훈이었다.

“박순용 선생님, 타이하세요.”

단 세 바늘이었다. 송동화 과장까지 빤히 보고 있는 탓인지 박순용의 손이 살짝 꼬였다. 김지훈의 눈빛이 매서워졌고, 박순용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어쨌든 피부 봉합까지 끝났다. 다들 조금은 놀란 눈으로 상처를 보고 있었다.

3센티미터!

국소 마취로 피부에 생긴 종물을 제거해도 이보다는 상처가 크게 남을 것이다. 더구나 단순히 작게 열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정확하고도 빠른 속도로 수술을 끝냈다.

“으으응!”

마취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환자가 신음 소리를 냈다. 수술 시간이 아니라 마취 시작부터 끝까지 딱 30분 걸렸다.

회복실로 옮겨지는 환자를 보던 송동화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큰 수술을 어떻게 하는지 봐야겠지만, 이혁민 선생님도 잘못 판단하셨네. 이 자식을 누가 이제 막 3년차 된 놈이라고 보겠어? 믿고 맡길 수 있는 놈이라고 하셨나!’

송동화 과장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금경태 과장의 제안을 따르면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면 된다. 물론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는 약속이었다. 여기에 김지훈이 금경태 과장을 따르도록 해야 하는 조건까지 붙어 있었다.

사실 이혁민 교수의 제안은 더 난감했다. 대부분 일반 외과 전문의들이 모여 응급 의학과를 만들었다지만, 어쨌든 과를 바꿔야 하는 일이었다. 역시 성사 가능성을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는 데다 빠른 시간 내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만일 응급 의학과를 택하게 된다면 시간이 별로 없을 수도 있었다. 늦어도 유월 전에 개설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전에 미리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해야 했다.

그 경우 심각한 제약 조건이 따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송동화 과장은 구미 병원 일반 외과를 책임지고 있다. 응급 의학과에 대한 준비를 하려면 최소한 대구의 대학 병원까지 가야 했다. 그것도 밤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수술이 문제였다. 만일 부재중에 문제라도 생기면 서울이고 뭐고 다 공염불이 될 처지였다. 김지훈을 믿고 맡기라는 말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김지훈이 수술하는 모습을 보니, 수술 걱정은 덜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김지훈이 옷을 갈아입고 수술 방을 나가고 있었다. 송동화 과장이 눈가를 좁혔다.

‘일단 이번 주는 정말 확실하게 믿어도 좋은지 지켜보자.’

그 시간, 서도진이 말을 잃고 있었다. 수술 후 오더에 대해 묻는 박순용의 말에도 건성으로 대답할 정도였다.

“선생님, 근데 3년차 정도 되면 다 저 정도 수술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아니면 김지훈 선생님이 수술을 정말 잘하시는 겁니까?”

“지금 4년차 선생님들 중에서도 저 정도 수술하는 선생님은 못 봤어요. 정말 잘하시네요. 그동안 뭘 어떻게 하신 걸까요?”

도리어 묻고 있었다.

써전들에게 수술은 자존심과 다름이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수술인 아뻬를 보면서 생각도 못한 격차를 느낄 줄은 몰랐다. 가히 충격에 가까웠다. 더구나 3년차가 되자마자 스태프도 없이 수술을 한 경우는 없었다.

서도진이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년차의 차이라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김지훈을 쫓아가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우! 정말 비상이네요. 선생님, 응급실에서 연락 오면 바로 나한테 노티하는 거 잊지 마세요. 아니구나. 인턴 선생한테 동시 노티 받으라고 하셨지?”

서도진의 눈에 비상한 각오가 서렸다.

잠시 후, 환자가 병동으로 올라갔다. 의국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지훈이 찬찬히 환자를 살폈다. 보호자와도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모습에 박순용이 입을 모았다. 정말 열심히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이경석도 아뻬 환자에게까지 이토록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김지훈의 마음일 테지만, 마치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문득 김지훈의 말이 생각났다.

‘여러 번 찌르면 환자가 많이 아파한다.’

아주 오래전 수업 시간에 의사가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는 환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그 말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의사가 있었다. 오늘도 일을 못한 것 때문이 아니라 환자부터 강조하며 자신을 태웠다.

‘지금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네. 좋은 후배가 아니라 날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란 것을 잊지 말자. 난 정말 운이 좋네.’

어쩌면 일반 외과를 택하게 된 이유에 김지훈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후배가 왜 일반 외과를 해야 하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일요일 하루 동안에만 응급 수술 4개가 떴다. 아뻬 2개는 김지훈이 집도를 했고, 나머지는 퍼스트를 섰다. 예상 밖으로 빨리 끝나는 수술에 마취과 당직 전공의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마취과 간호사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송동화 과장님이 김지훈 선생님을 믿고 빠르게 하시는 건가? 아니지. 아뻬 하는 거 보면 김지훈 선생님 손이 더 빠른 것 같기도 해. 근데 그게 말이 되나?”

송동화 과장 역시 수술이 거듭될수록 김지훈에 대한 시각이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단 이틀 만에 말이다. 도대체 지난 3개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도 내심 얼떨떨하기만 했다.

‘침착하게만 하자고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빨리 끝나네. 이상하게 손이 잘 돌아가.’

수술만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지나간 자리마다 뚜렷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응급실은 아예 입이 찢어졌다. 김지훈이 노티를 받고 내려올 때마다 환자를 등한시하는 기색을 보이는 인턴들을 살벌하게 태운 것이다.

“인턴 선생, 흉부외과지? 바이탈을 다루는 과를 돌면서 환자를 방치해? 늑골 골절이 우습게 보여? 만일 기흉이라도 오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환자 병실에 올라갈 때까지 절대 방심하지 마. 흉부외과는 인턴 선생이 주치의야.”

“성형외과 인턴 선생, 잠시 나 좀 보자. 애들이 다쳐서 오면 잘 달랠 생각을 해야지. 환자가 무슨 물건도 아닌데, 애는 힘들어하든 말든 수처만 하면 끝나? 그리고 수처가 그게 뭐야? 니 자식이면 그렇게 꿰맬래?”

바짝 긴장을 한 인턴들의 몸놀림이 무척이나 빨라졌다. 김지훈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안하거나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환자 곁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혁원은 언제나 깍두기였다.

“이혁원, 이 차트들 다시 작성해. 환자하고 대화를 많이 해야 정확하게 기록을 할 수 있어. 에휴! 이러다 볼펜이 모자라겠다. 박스로 준비해야 하나.”

당연히 일의 강도가 훨씬 강해졌다. 여기저기서 조용한 불평이 터졌다.

하지만 김지훈은 말로 끝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환자를 보았다. 더구나 김지훈을 본 변상훈 과장과 장성기 과장의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어야 했다.

“지훈아, 앞으로도 이렇게 하자. 말 안 들으면 몽둥이를 들어도 좋아. 책임은 우리가 질게. 인턴 선생들, 김지훈 선생이 전체 의국장이니까 확실하게 오더 받아라. 김지훈, 오래간만에 봤는데 커피 한잔해야지.”

과장들과 친하기까지 했다. 제일 무섭다는 소문이 자자한 장성기 과장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인턴들은 죽었다고 복창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면, 김지훈은 입이 점점 찢어지고 있었다.

“지훈아, 시간 나면 언제 저녁이나 같이 먹자. 역시 우리가 기대했던 치프가 됐어. 아주 잘하고 있어.”

커피를 마신 후 숙소에 올라간 김지훈이 냅다 침대에 몸을 던졌다.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팔베개를 하고서는 30분 정도 누웠다. 눈치를 볼 일도,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제 밤 10시였다. 한껏 기지개를 펴고서는 책을 펼쳤다.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다음 날 있을 수술 준비를 이렇듯 여유롭게 준비한 적은 없었다.

‘하부 위암이니까 삼분의 이 정도 자르시겠지? 뭘 주의해야 할까? 두 번째는 탈장 수술이니까 역시 근육 보강이 가장 핵심이겠지.’

열심히 책을 본 것 같은데 11시였다.

내친김에 논문까지 꺼냈다. 자료들을 뒤적이며 초안을 수정하던 김지훈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눈을 떴다. 6시 반이었다. 지난밤 내내 단 한 번도 방해받지 않고 내리 잤다. 과장들에 이어 구미까지 치프 대접을 하는 모양이었다.

숙면을 취한 덕에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언제 이렇게 잠을 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우아아아! 이게 치프였어.”

소리를 지를 정도로 행복했다.

병동으로 가는 걸음에 힘이 넘쳤다.

월요일 아침 7시, 구미 치프로서의 첫 번째 주 근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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