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빛과 어둠 (3)
그때 송재덕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백 교수, 손 바꿔, 손. 지훈이한테 해 보라고 해. 하루 종일 라파로 기구 만진 놈이니까 운 좋으면 잡을지도 몰라. 막상 배 열고 보면 별거 아니잖아.”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다. 익숙한 수술에서도 뭐에 홀린 것처럼 헤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잠시 수술을 중단한 후 다시 진행하거나, 혹은 손을 바꾸면 쉽게 해결되곤 했다.
지금은 수술을 중단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김지훈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라파로라는 것이었다.
백무용 교수가 머뭇거렸다. 송재덕 과장이 채근을 했다.
“백 교수, 뭐 해? 어차피 개복을 할 거면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아. 급할 거 없어. 화면에만 크게 보이지, 출혈이 얼마나 되겠어? 시켜 봐. 잡으면 최상이고, 안 되면 그때 열어. 빨리 결정하자, 빨리.”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배를 열어야 한다면 몇 분 정도 늦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굴을 굳힌 채 김지훈을 보던 백무용 교수가 뒤로 물러났다.
“김지훈, 시도해 봐.”
당황스러운 정도가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죽어라고 라파로 기구를 연습했다고 해서 손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백무용 교수는 결정을 내렸다. 머뭇거려야 환자에게 손해만 될 뿐이었다.
극도로 긴장한 김지훈이 숨을 몰아쉬며 집도의 자리에 섰다. 머릿속에서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할 수 있을까?
환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결코 운에만 기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훈아,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해. 천천히. 안 되면 바로 배 열면 돼. 배 열자. 열어.”
송재덕 과장이 눈가를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최소한 시도는 해 봐야지. 지훈이, 저놈도 많이 노력했으니까 운이 좋으면 잡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큰 기대를 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출혈만 해결하면 수술이 끝나는 상황에서 개복을 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것도 주 동맥이 아닌 숨어 있는 동맥이었다. 환자에게도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입술을 꽉 문 김지훈이 수술 기구를 잡았다. 홀로 연습할 때처럼 익숙한 느낌이 다가왔다. 문제없이 기구를 조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제 정확한 판단과 결정이 필요했다.
동맥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되는 부분이 있었다. 백무용 교수가 이미 수차례 잡았던 부분이었다. 비록 동맥을 잡지는 못했지만 다른 부위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석션, 켈리. 선생님, 동맥 윗면으로 포커스 부탁드립니다.”
동맥을 잡지 못하면 가슴속을 채운 자신감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백무용 교수보다 더 당황할 것이 빤했다. 그 상태에서는 누구도 집도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최초로 출혈이 된 부위의 상방.
끊어진 동맥이 끌려 들어갔을 자리.
계속되는 출혈로 주변보다 더욱 시뻘게진 부분.
김지훈이 이미 백무용 교수가 박리한 조직 속으로 신중하게 켈리를 밀어 넣었다. 왼손에 잡힌 손잡이에 살짝 힘을 주어 조직을 잡은 후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오른손에도 켈리를 잡았다. 최대한 반대쪽으로 밀어붙였다. 염증으로 흐물흐물해진 조직의 감촉이 미세하게 전해졌다. 어느 쪽 손이든 조금만 힘을 과도하게 주면 주변 조직이 그대로 찢어질 것이다.
오로지 손끝의 감각과 화면에만 집중했다.
숨어 버린 동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보다 더 윗부분을 잡아야 했다. 불과 0.5센티미터도 안 되는 길이였다. 그 짧은 길이에 수술의 성패와 환자의 예후가 달려 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등이 축축하게 젖어 왔다.
마침내 0.5센티미터 윗부분에 도달했다.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내 판단이 정확할까? 여기에도 없으면 더 깊숙이 숨었다는 말이다. 그땐 정말 개복 말고는 방법이 없다. 제발! 환자를 위해서 있어라.’
손잡이를 꾹 조였다. 조그만 켈리가 약해진 조직을 꾹 물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석션해 이미 흘러나온 피를 제거했다.
침묵만이 흘렀다. 조직 속에서 흘러나오던 피의 양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 같았다. 최소한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벌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의 출혈이 보이지 않아야 동맥을 잡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모두들 긴장된 표정으로 화면만 응시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1분, 2분, 3분.
누군가가 안도의 한숨을 터트렸다.
백무용 교수였다.
“지훈아, 더 이상 출혈이 안 보이지? 잡은 것 같다.”
확신할 수 있을까?
“조금만 더 지켜봤으면 합니다.”
백무용 교수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준 채 화면만 응시했다.
만일 섣부른 판단이라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 개복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었다.
“됐다, 됐어. 안 난다, 안 나. 지훈아, 피 안 난다. 정말 운이 좋은 놈이네. 잘했다. 잘했어. 허허! 백 교수, 이래서 가끔은 수덕이 있는 놈이 필요하다니까. 다행이다, 다행.”
드디어 송재덕 과장까지 지혈이 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3명의 판단이 모두 일치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지훈아, 뭐 해? 클립까지는 해야지.”
백무용 교수의 말에 정신을 차린 김지훈이 클립 사이에 조직을 끼웠다. ‘ㄷ’ 모양의 클립이 조여지면서 조직과 함께 숨어 있던 동맥을 꽉 눌렀다.
생리식염수로 수술 부위를 깨끗이 씻어 냈다. 온통 피로 물들어 뻘게진 조직 사이에서 은색 클립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이제야 여유를 찾은 백무용 교수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술 기구를 다루는 김지훈의 손이 상당히 익숙해 보였다. 특히 양손을 쓰는 모습은 처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도대체 연습을 얼마나 했기에 이 정도로 기구를 다룰 수 있지? 타고난 손에 끊임없는 노력까지 더한 결과겠지.’
다시 자리를 바꿨다.
담낭 동맥을 클립으로 세 번에 걸쳐 단단히 잡은 후 잘랐다. 곧 콘돔에 담긴 담낭이 배 밖으로 나왔다. 깨끗한 물로 배 속을 씻어 내고 출혈이 있는지 신중하게 살폈다.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다.
1센티미터 남짓한 절개 창 네 곳을 봉합하는 것으로 수술이 모두 끝났다.
다들 홀가분한 심정으로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백무용 교수는 물론 지금까지 수술을 지켜본 송재덕 과장의 눈길이 김지훈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단 한 번의 조작으로 출혈 부위를 잡았다.
과연 전적으로 운에 좌우된 결과였을까?
고도의 집중력과 정확한 판단력, 끊임없는 노력을 동반한 자신감, 환자와 수술에 대한 이해 등 써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착실히 쌓아 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졌다. 김지훈이 바짝 붙어 환자 상태를 살폈다. 다음 수술을 기다리던 송재덕 과장이 슬며시 회복실로 들어왔다.
‘이놈 참, 운도 좋았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놈이었네. 백 교수가 몇 번이나 잡았던 자리라 다른 부분을 뒤질 줄 알았는데, 동맥이 있을 자리를 정확하게 잡았어. 그런 상황에서 당황하지도 않고 말이야. 게다가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양손을 그 정도로 써? 타고난 써전이 노력까지 한단 말이지. 정말 욕심이 나네.’
“어이구! 재수 좋은 놈. 그걸 어떻게 한 번에 잡았어. 이놈 아주 운이 대단해. 운이. 지훈아, 대장 하면 딱 좋다. 대장도 운이 필요하거든. 너도 좋지? 안 좋아?”
또 대장이다. 그런데 얼굴이 상기된 김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재덕 과장의 말을 아예 못 들은 것 같았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이제야 라파로 수술 기구를 이용해 출혈을 잡았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후우! 내가 어떻게 잡았지? 와! 그 감각 절대 잊지 말자.’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그러나 환자가 순조롭게 회복될 때만 누릴 수 있는 감정이 바로 감동이었다.
환자에게 눈을 돌렸다. 약간은 거친 호흡을 통해 다소 역겨운 마취제 냄새가 풍겼다. 아직은 정신이 혼미하고, 코에 낀 줄이 괴로운지 계속 신음 소리를 냈다. 아무리 절개 창이 작다고 해도 수술 직후였다. 지금은 수술 후 통증 역시 만만치 않게 느낄 것이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환자분,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환자가 눈을 떴다. 흐려진 초점을 맞추는지 연거푸 눈을 껌벅거리던 환자가 김지훈의 손을 잡았다. 앙상하고 차가웠던 손에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라파로 수술 기구를 이용해 출혈 부위를 잡았다는 감동보다 더욱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할아버지, 수술 잘 끝났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김지훈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힘들게 고개를 끄덕인 환자가 다시 잠에 빠졌다.
그때 백무용 교수가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고 돌아왔다.
“과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다음 환자 들어왔습니다.”
그제야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 과장님, 언제 오셨어요?”
“아까부터 있었어. 요놈 이상한데. 이상해. 에이! 수술이나 빨리 들어가야 되겠네. 백 교수, 하여튼 잘했다. 잘 했어. 김지훈, 너도 수고했다. 대장이다, 대장. 알지?”
그 와중에도 대장을 강조한 송재덕 과장이 고개를 흔들며 수술실로 향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슬쩍 눈길을 준 김지훈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넌 왜 갑자기 한숨이야?”
“아닙니다, 선생님.”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송재덕 과장의 공세를 피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사실 아무리 정신을 팔았다고 해도 송재덕 과장의 말이 안 들렸을 리는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못 들은 척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생각해 보니 송재덕 과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꽤나 서운했다.
피식 웃고 만 김지훈이 조용히 환자를 보았다.
고른 호흡과 발그스름한 뺨, 그리고 힘차게 떨어지는 소변까지 환자의 회복이 너무도 순조로워 보였다. 다시 체크한 바이탈도 아주 안정적이었다.
그 순간, 뿌듯한 마음과 함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가 발전해야 하는 이유야. 개복밖에 할 줄 몰랐다면 우리나 환자나 훨씬 더 힘들었을 거야. 할아버지, 잘 견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눈앞에 누워 있는 80세 환자가 조용히 알려 주고 있었다.
그날 수술실이 수군대는 소리로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그때마다 김지훈이란 말이 꼭 들렸다.
말이 전해지면 과장되기 마련이다. 마지막에는 마치 김지훈이 수술을 다 한 것처럼 말이 커지고 말았다.
“김지훈 저 자식, 수술 잘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정말 대단하네. 출혈 못 잡았으면 배 열어야 했잖아. 이제 3년차 되는데 4년차 되면 아주 날아다니겠어. 참! 세상에 저런 놈도 있었네.”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신현수에 손일석까지 이번 일반 외과 2년차들은 다 뛰어나지? 이경석 선생도 있고, 홍재순 선생까지 사람이 완전히 변했잖아. 하여튼 송 과장님 입이 찢어지겠어.”
덩달아 일반 외과 주가까지 뛰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송재덕 과장이 나쁜 놈을 연발하면서도 웃음을 달고 살았다.
말처럼 빠른 것도 없었다.
그날 오후 회진을 돌기도 전에 손일석과 신현수의 귀에도 수술 중에 있었던 일이 전해졌다. 묘한 감정이 뒤섞인 한숨 소리가 터졌다.
“현수야, 인정할 건 인정하자. 구미에 첫 번째로 갈 만하다. 제길! 백무용 선생님도 못 잡은 출혈을 어떻게 잡았을까?”
신현수가 눈가를 비비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지 수술 기구 한 번 조작했을 뿐이었다. 운이 작용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라파로다.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기구 조작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뻬가 익숙해지면 장을 자를 수 있고, 장을 자를 수 있으면 노력 여하에 따라 더 큰 수술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다들 그런 식으로 실력을 키워 간다.
그러나 스테이플러나 라파로는 기존의 수술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술이었다. 손이 됐든, 무엇이 됐든 간에 실력이 뛰어나야 가능한 일이었다.
“도대체 저 자식하고 우리하고 차이가 뭐지? 우리 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 분명히 옆에 있는 것 같은데 꼭 한발 앞에 있단 말이야. 어휴! 자존심 상해.”
‘차이? 그래. 분명히 이유가 있어. 모든 조건이 똑같았고, 나도 최선을 다해 왔어. 내게 없고, 지훈이에겐 있는 것이 뭘까?’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던 신현수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연한 차이 하나가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혹시 이준영 과장님?”
턱을 괸 채 벽만 바라보고 있던 손일석이 손가락을 튕겼다.
“오케이! 나도 지금 막 그 생각을 했어. 지훈이하고 우리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준영 선생님이야. 거의 도맡아서 수술을 들어갔고, 타기도 엄청 탔잖아. 그 결과가 바로 이거였어.”
의견이 일치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복잡했다. 손일석과 신현수가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서울 응급실! 현수야, 우리가 맡아야 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