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우리는 왜 발전해야 하는가 Ⅱ (3)
스테이플러의 원리는 간단하다.
대장 문합용 스테이플러는 머리와 몸체, 즉 계란을 반으로 자른 것처럼 생긴 머리 부분과 나머지 반을 굵은 막대의 끝에 붙인 것 같은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둥근 단면에는 스테이플로 이루어진 두 개의 원과 그 안에 칼날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원이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마치 소켓처럼 서로 끼울 수 있는 가늘고 긴 막대가 삐죽이 나와 있다.
이 두 개의 스테이플러를 각각 대장으로 완벽하게 감싼 후 가는 막대를 결합시킨다. 그리고 몸체 끝의 레버를 당기면 두 개의 스테이플러가 꽉 맞붙게 된다.
이때 가장 바깥쪽의 스테이플이 대장을 이중으로 찍어 연결하고, 그 안쪽의 칼날은 막대를 감싼 대장을 둥글게 잘라 통로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몸체를 빼내면 끝이다.
문제는 원리는 간단하다고 해도 실제로는 쉽게 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환하게 노출된 에스 결장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암을 제거하고 나면 3~4센티미터 정도만 남는 직장으로 스테이플러를 감싸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구를 사용한다고 해서 시야가 나빠도 된다는 말도 아니었다. 손의 감각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어려운 과정일 수도 있었다. 더구나 모든 과정에서 주어지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송재덕 과장이 가장 두꺼운 실인 나일론 일 번으로 절단된 에스 결장의 벽을 뜨기 시작했다. 대장이든 소장이든 가장 중요한 점은 이때 점막이 빠지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에스 결장 벽을 따라 연속 수처를 한 후, 점막이 빠지지 않았는지 철저하게 확인했다.
“스테이플러.”
스테이플러 머리 부분을 에스 결장 안으로 집어넣었다.
“타이.”
백무용 교수가 가장 굵은 나일론임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신중하게 타이를 했다. 삐죽이 나온 막대를 중심으로 에스 결장을 단단하게 조였다.
“백 교수, 잘됐지? 직장 자르자.”
백무용 교수가 에스 결장과 암 덩어리를 모두 잡고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탄력이 있는 직장이 조금씩 늘어났다. 송재덕 과장이 장 겸자로 암 하부 4센티미터 부분을 잡았다.
“현수야, 초점 맞춰라.”
재빨리 발판 위에 올라선 신현수가 골반 내로 무영등의 초점을 맞췄다. 송재덕 과장이 눈가를 잔뜩 찡그린 채 한참을 이리저리 재고 나서야 암 하부 3센티미터 부분에서 직장의 전면을 잘랐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여기서 한꺼번에 잘랐다가 겸자가 풀리기라도 하면 직장이 항문 쪽으로 끌려들어 가겠지? 그렇게 되면 스테이플러고 뭐고 직장을 다시 확보할 수조차 없을 거야.’
송재덕 과장이 하나의 과정을 끝낼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집중했다. 어떤 부위든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었다. 수술실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하지만, 항상 집도의 입장에서도 바라봐야 하는 이유였다.
“백 교수, 이제 내려가자.”
송재덕 과장의 말에 김지훈이 갑자기 깊은 숨을 훅훅 내쉬며 긴장을 풀기 위해 애를 썼다. 힐끗 시선을 준 백무용 교수가 자리에서 물러나 환자의 다리 사이에 앉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항문 속으로 손을 넣어 항문과 직장을 잡고 있는 겸자 사이의 길이를 쟀다.
“스테이플러가 들어갈 공간은 확보됐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과정이 남았다. 백무용 교수는 스테이플러의 몸체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퍼스트를 설 수 없었다. 송재덕 과장이 눈가를 좁히며 김지훈을 보았다.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만 퍼스트를 세울 수 있었다.
송재덕 과장이 짧은 고민 후에 결정을 내렸다.
“김지훈, 퍼스트 자리로 가.”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막연하게 퍼스트를 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송재덕 과장의 말이 들리자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환히 노출된 에스 결장을 타이하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반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데다 한 손을 넣기도 힘든 좁은 골반 내에서 손가락만을 이용해 타이를 한다는 것은 자신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타이가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수술은 실패한다. 더 이상 스테이플러를 감쌀 직장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후우! 과장님이 날 믿는 이상 반드시 해내야 한다. 아니, 난 할 수 있다. 이제 타이라면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다.’
눈빛을 굳힌 채 송재덕 과장의 맞은편으로 가던 김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손일석이 강한 시선을 주며 자신감을 전했다. 여전히 차고 냉정한 눈빛이었지만 신현수마저 등을 슬쩍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다! 넌 잘할 수 있다!
동기들의 확고한 믿음이 느껴졌다. 별다른 말도 없이 수술을 진행하는 송재덕 과장의 모습에서 신뢰가 보였다.
‘후우! 난 할 수 있다.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극도의 긴장에 사로잡혔던 김지훈의 눈가에 자신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송재덕 과장이 남은 직장에 첫 바늘을 찔렀다. 김지훈이 바늘에 딸린 실을 잡았다. 실을 통해 전해지는 직장의 압력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굵은 나일론 일 번이 팽팽해지며, 겸자에 이어 직장을 지지할 방법이 또 하나 확보됐다.
송재덕 과장이 백무용 교수를 보았다.
“백 교수, 겸자 살짝 풀 테니까 스테이플러 밀어 봐. 그렇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오케이! 어때? 여기서 보기에는 괜찮은데 어때?”
“아래쪽도 괜찮습니다. 여유가 좀 있으니까 그대로 진행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좋았어. 진행한다.”
반쯤 잘린 직장을 연속 수처했다. 김지훈이 눈을 부릅뜨고 점막이 빠졌는지 확인하며 실을 당겼다. 빡빡하게 전해지는 압력만큼 긴장감도 더욱 팽팽해졌다.
“지훈아, 잘됐니?”
“예. 점막이 빠진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나머지 직장 자르자. 일석아, 겸자 잘 잡아. 놓치면 안 된다. 그럼 망하는 거야.”
직장의 나머지 반을 모두 잘랐다. 암 덩어리와 에스 결장이 완전히 제거됐다. 이제 직장은 겸자 하나에 잡혀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앞면도 아닌 뒷면의 벽을 수처해야 한다.
시야는 더욱 나빠졌고, 수술 기구를 조작하기에 가장 어려운 부위였다. 바로 이 부분이 손으로는 절대 장을 연결할 수 없는 부위였다. 그 말은 곧 스테이플러를 이용하는 수술의 핵심 부위라는 의미기도 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실수하면 곧바로 실패와 직결되는 상황이었다. 손일석의 긴장된 숨소리가 들렸다. 김지훈도 슬쩍 고개를 돌려 가며 뭉쳐 가는 근육을 풀어야 했다.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송재덕 과장조차도 극도의 신중함을 보였다.
슥! 슥! 슥!
한 바늘 한 바늘 직장을 떠 갈 때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갔다. 김지훈이 신현수에게 눈짓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을 계속 알려 주었다. 겸자의 위치가 흔들릴 때마다 손일석에게도 신호를 보냈다.
극도의 긴장 속에 수술이 진행됐다. 집도의인 송재덕 과장조차 수술 시야를 완벽하게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퍼스트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었다.
절반쯤 지났을까? 김지훈이 급히 소리를 질렀다.
“과장님, 잠깐만요. 점막이 빠졌습니다.”
“뭐? 점막이 빠졌어?”
김지훈이 신현수에게 손짓을 하며 초점을 더욱 정확하게 맞췄다. 점막이 빠진 부분이 보였다. 바로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지나쳤으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뻔했다.
송재덕 과장이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네, 여기. 잘 봤다. 다시 수처하자.”
조심스럽게 바늘구멍을 통해 거꾸로 실과 바늘을 빼냈다. 나직한 한숨을 내쉰 송재덕 과장이 다시 수처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수처까지 끝났다. 송재덕 과장의 모자가 흠뻑 젖어 있었다.
송재덕 과장이 고개를 돌리자 간호사가 재빨리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잠시 수술이 중단된 동안 송재덕 과장이 다시 한 번 고민을 했다.
‘타이를 내가 직접 해야 하나? 백 교수에게 다시 손을 씻고 들어오라고 하는 게 나을까? 만일 지훈이가 타이를 끊어 먹으면 심리적인 타격을 크게 받을 수도 있을 텐데 고민이군.’
일반적으로 장을 이어 줄 때는 실수를 한다고 해도 여러 번의 기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과정에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었다. 어디에서든 실수가 나오면 인공 항문을 만들어야 한다.
만일 김지훈이 실수를 한다면?
상당한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사람이 죽어야만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김지훈은 스테이플러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흐음! 이만한 경험도 없는데. 이런 일 하나가 얼마나 크게 발전시킬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야. 그래. 지훈이 너를 믿고 퍼스트를 세웠는데 이제 와 내가 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사실 타이는 이놈들이 훨씬 더 잘하잖아.’
송재덕 과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 교수, 타이 들어간다. 몸체 잘 고정해. 김지훈, 타이.”
결코 실수해서는 안 되는 타이였다.
한 사람의 삶이 걸린 타이였다.
‘실수하면 안 돼. 그렇다고 지나치게 긴장해서도 안 돼. 자신감을 갖고 평소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하자.’
가볍게 숨을 몰아쉰 김지훈이 손가락을 서서히 밀어 넣었다. 직장 벽을 빙 둘러 꿰맨 실이 조여지기 시작했다. 딱딱하고 단단한 저항이 느껴졌다. 스테이플러 중앙에 달린 막대였다. 끊어 먹지 않기 위해 느슨하게 타이를 하면 절대 안 된다.
거의 눈을 감다시피 한 김지훈이 조금씩 조금씩 힘을 주었다. 마침내 나일론 일 번이 몸체에 달린 막대를 강하게 묶었다. 손을 뺀 김지훈이 이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타이를 확인한 송재덕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마지막만 남았다. 모두 힘내자. 백 교수, 스테이플러 연결하자.”
송재덕 과장이 에스 결장을 감싼 스테이플러 머리 부분에 달린 막대를 몸체에 달린 막대에 끼웠다. 양쪽에서 지그시 힘을 주며 밀었다.
딸깍!
두 개의 막대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레버를 당겨 스테이플 두 개를 결합시켜야 한다.
“백 교수, 지금 일직선이지? 비뚤어지면 난리 난다. 지훈아, 일석아, 현수야, 이 상태면 되겠니? 치프야, 어떠니?”
평소 수술실에서는 거의 말이 없었던 송재덕 과장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간 들었던 말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게다가 수술 팀을 모두 찾았다.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다들 위아래를 번갈아 보며 스테이플러가 대장의 주행과 일직선이 됐는지 살폈다. 육안으로는 일직선이 분명했다. 하지만 확실해야 했다. 단단하게 타이를 했다지만 스테이플러는 딱딱하고, 장은 이리저리 늘어나기에 자칫 엉뚱한 부위가 잘릴 수도 있었다.
눈가를 찌푸리며 주행 방향을 살피던 김지훈이 살짝 눈을 치켜떴다. 고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과정은 아니지만 정확할수록 안전할 것이다.
문득 수술 테이프 중 하나에서 봤던 것이 생각났다. 수십 개에 달하는 테이프를 모두 꼼꼼하게 본 덕이었다.
“과장님, 수술용 자로 직선이 됐는지 보시면 어떨까요?”
“자로? 아! 그래. 그렇구나. 자로 대 보면 되겠다. 그렇게 간단한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수술용 자로 스테이플러와 대장의 주행 방향이 일직선인지 확인했다.
정확했다. 송재덕 과장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백 교수, 연결하자.”
끼기기긱!
레버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딸깍!
스테이플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무용 교수가 조심스럽게 항문에서 스테이플러를 빼냈다. 그 순간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아직은 정확하게 연결이 됐는지 누구도 모른다. 칼날에 잘린 대장을 확인해야만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다. 정확하게 잘렸다면 점막 조직이 빙 둘러 가며 빠짐없이 관찰되어야 한다.
스테이플러 몸체 중간에 도넛 모양으로 잘린 에스 결장과 직장이 걸려 있었다.
백무용 교수가 조심스럽게 빼낸 후 실을 끊고 도넛을 뒤적였다. 만일 점막이 없는 부분이 있다면 완벽한 실패였고, 다시 보강을 할 수도 없었다.
꿀꺽!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도 들렸다.
찬찬히 도넛을 살핀 백무용 교수가 송재덕 과장을 보았다.
“빠진 부분은 없습니다.”
사방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울렸다.
“그래? 다행이다, 다행. 현수야, 뭐 하니?”
송재덕 과장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직도 확인할 것이 남았다. 도넛 모양으로 잘린 대장 조직에 암 세포가 남아 있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신현수가 도넛을 들고 부리나케 임상 병리실로 향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흘렀다.
모든 암 수술이 이런 과정을 거쳐 수술을 마무리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초조했다.
모두들 입을 꾹 다문 채 결과를 기다렸다. 송재덕 과장은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3센티미터 아래까지 정확하게 자르셨으니까 암 세포가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이건 확신이야.’
김지훈이 주먹을 꽉 쥐며 스스로 강한 확신을 가졌다.
째깍! 째깍! 째깍!
드디어 신현수가 돌아왔다.
“과장님, 프리(Free)입니다.”
이렇게 반가운 소리가 또 있을까?
드디어 모든 고비를 넘었다. 항문에서 불과 7센티미터 상방에 위치한 직장암을 제거하고 항문을 살렸다. 천안 병원에서 시행한 첫 번째 스테이플러를 이용한 직장암 환자의 수술을 성공한 것이다. 계열 병원에서는 처음이었고, 국내에서도 몇 케이스 되지 않는 수술을 성공했다.
정말 멀고도 긴 과정이었다.
모두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해냈다. 엄상훈은 이제 인공 항문을 달고 살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뿌듯하고 기쁜 일이었다.
불끈 쥔 주먹을 부르르 떨던 김지훈이 터져 나오는 흥분과 희열을 간신히 참았다. 엄상훈과 그의 가족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