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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366화 (366/1,329)

제7화 우리는 왜 발전해야 하는가 Ⅱ (2)

세부 전공에 대한 생각이 어중간했을 때는 담담했고, 때론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앞이 환해지고 있었다.

스승인 이준영 과장의 세부 전공이 간담도라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라파로를 발표하면서 간담도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정말 깊은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스테이플러를 접하면서 대장 파트에 대한 흥미도 대단하긴 했다. 그러나 이 또한 간담도는 다른 파트에도 정통해야 한다는 이준영 과장의 말의 영향이 컸다.

어쨌든 솔직하게 말했다가는 고생길이 활짝 열리거나, 최소한 나쁜 놈이 3명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딱부러지게 말씀드리면 괜찮을까? 아니야. 지금은 대장에 대해서도 더 배워야 해. 아직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고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어. 그러면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백무용 교수가 한발 앞으로 나와 김지훈과 송재덕 과장 사이를 떡하니 막아섰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과장님, 환자에게 빨리 설명하셔야죠. 외래에서 보니까 인공 항문 때문에 상당히 겁을 먹은 것 같던데, 스테이플러에 대해 설명하면 그래도 좀 안심할 것 같습니다.”

송재덕 과장의 시선이 홱 돌아갔다.

“그런가? 그래그래. 빨리 가 봐야겠다.”

김지훈이 슬며시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백무용 교수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뭔가 묘했다. 마치 넌 ‘간담도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근데 말이야, 7센티미터라 걱정이다. 환자에게 말해 놓고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백 교수, 니가 할래? 그래그래. 니가 하자. 아! 나는 겁난다. 겁나.”

말은 그러면서도 어느새 엄상훈 환자의 병실을 열고 있었다. 송재덕 과장이 백무용 교수와 함께 한참 동안 설명을 했다. 여전히 두렵고 초조한 환자의 얼굴에 왠지 희망이 섞인 것 같았다. 송재덕 과장이 두 아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빠는 걱정하지 말고 니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공부만. 아버님, 어머님도 얼굴 펴세요. 잘될 겁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송재덕 과장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자신감일까? 아니면 불안함일까?

***

수술을 들어가기로 한 이상 엄상훈 환자를 자신의 환자처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회진을 돈 후에는 꼭 엄상훈 환자를 따로 찾았다. 대부분 안부 인사 정도만 오고 갔지만 이런 일이야말로 신뢰의 시작이었다.

“수술은 잘되겠죠?”

“기계를 쓰면 인공 항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엄상훈이 수술에 대해 물으며 조금씩 신뢰를 보였다.

이럴 때는 시간도 참 빠르게 흘렀다. 얼굴을 몇 번 본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주말이 지나 월요일 아침 해가 밝았다.

회진이 끝나자마자 김지훈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당장 해결해야 할 병동 일을 마무리하고 부리나케 수술 방으로 달려갔다. 엄상훈 환자가 막 수술 방 앞에 도착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차마 엄상훈의 손을 놓지 못했다.

김지훈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의사의 자신감은 환자에게 안심을 주기 마련이다.

“환자분, 긴장하지 마세요. 눈 감았다가 뜨시면 수술 잘 끝나 있을 겁니다. 가족분들도 걱정하지 마시고 병실에서 기다리세요. 수술 끝나는 대로 연락을 드릴 겁니다.”

환자의 아내가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술이 끝나 엄상훈 환자가 나올 때까지 수술 방 앞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게 수술을 앞둔 모든 가족들의 마음이었다.

“선생님, 잘되겠죠?”

코 줄을 낀 엄상훈의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졌다. 환자의 긴장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과장님은 우리 병원에서 가장 수술을 잘하시고, 경험도 풍부하신 분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급히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김지훈이 환자와 함께 수술실로 들어갔다. 김지훈의 손을 꽉 잡은 환자의 손이 떨렸다.

“환자분, 힘내세요.”

김지훈도 환자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항상 보아 온 대로 익숙한 수술실의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달랐다. 수술 팀원들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쪽에서 수술 준비를 하던 간호사가 길쭉하게 생긴 하얀색 기구 하나를 조심스럽게 준비대에 올렸다. 대장 문합용 스테이플러였다. 긴장이 더욱 고조됐다.

백무용 교수가 치프를 보며 말했다.

“치프, 넌 수술 들어오지 말고 스테이플러 관리해. 그거 문제 생기면 과장님 입에서 어떤 소리 나올지 잘 알지? 신경 바짝 써. 오늘 수술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야. 그리고 지훈이가 과장님 옆에 서고, 일석이 너는 내 옆이다.”

통상은 집도의 옆이 써드다. 그런데 김지훈이 오늘따라 더욱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직장암 수술은 환자의 다리 쪽을 바라보며 수술을 한다. 따라서 모든 수술 팀이 각자 대각선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위치는 써드라고 해도 김지훈의 역할은 세컨이 되는 것이다.

눈가에 힘을 주며 수술 과정을 되새기는 김지훈을 보던 손일석이 입술을 모았다.

‘역시 지훈이에게 세컨 역할을 맡기네. 솔직히 나도 지훈이 실력을 인정하지만 내일 일은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 열심히 하자. 최소한 지훈이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돼야 해.’

손일석이 각오를 다지는 동안 마지막으로 송재덕 과장이 들어왔다.

“환자분, 긴장 풀어요. 왜 긴장하고 그래요. 잘 끝날 겁니다. 오늘 들어온 선생들이 우리 병원 최고의 수술 팀이에요. 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한잠 푹 자고 일어나요.”

환자가 눈도 뜨지 못한 채 간신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송재덕 과장이 잠시 환자의 손을 잡아 주고는 마취과에게 눈짓을 했다.

“마취 시작하겠습니다.”

스테이플러만 빼면 모든 것이 통상의 수술 과정을 따랐다. 인투베이션을 하고 마취제를 투여한 후, 수술 팀이 수술 준비를 했다. 모든 신경이 환자와 수술에 집중되고 있었다.

김지훈이 슬며시 수술 팀에게 시선을 주었다.

송재덕 과장과 퍼스트 자리에 선 백무용 교수의 눈빛에 자신감이 넘쳤다. 반대편에 선 손일석은 최고의 2년차였다. 어느 틈엔가 수술실에 들어온 신현수가 대장 파트 치프와 스테이플러를 보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천안 일반 외과에 꾸릴 수 있는 최고의 수술 팀이 눈앞에 있었다. 불현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언젠가는 2년차들 모두 전문의가 돼 집도의 자리에 설 것이다. 그때 만일 혼자 하기에 벅찬 수술이 있다면 지금 송재덕 과장과 백무용 교수의 자리에 자신들이 서 있을 것이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하고 바라는 모습이야. 최고의 써전이 되지는 못한다고 해도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최고의 수술 팀이 될 수는 있어.’

가슴 한구석에 숨어 있던 불안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이것은 바람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후우! 각자 자신의 역할을 철저히 해낸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수술이다. 정신 바짝 차리자.’

“수술 시작합니다.”

송재덕 과장이 환자의 배꼽 아래 정중앙을 길게 절개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빠르게 배를 열었다.

장기들이 보였다.

암 환자의 수술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직접 전이와 원격 전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대장암은 주변의 임파선과 간에 가장 잘 전이가 된다. 만일 복부 CT에서 나타나지 않은 원격 전이가 있다면 수술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그땐 인공 항문이 문제가 아니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재빨리 환자의 배를 들어 올렸다. 촉각과 시각으로 간을 확인한 송재덕 과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환하게 드러난 대장 장간막의 임파선 역시 정상적인 소견을 보였다. 나직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상행 결장부터 시작해 에스 결장까지 신중하게 확인했다. 깨끗했다. 이제 암 덩어리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야 할 때였다. 조심스럽게 에스 결장을 끌어당겨 직장 상부를 노출시켰다. 통상 손으로 대장 문합을 할 수 있는 부위였다.

송재덕 과장이 신중하게 직장 상부를 촉진했다. 아무것도 촉진되지 않자 눈빛을 굳힌 송재덕 과장이 수술용 가위를 들었다. 골반 입구를 덮고 있는 복막을 자르며, 그 속에 묻힌 직장을 노출시키기 시작했다.

골반 조직과 직장의 경계는 상당히 불명확했다. 그만큼 서로 단단하게 연결돼 있다는 의미였다. 수술용 가위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스멀스멀 피가 배어 나왔다.

상당한 출혈이 발생했다. 김지훈이 재빨리 거즈와 석션을 이용해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 시야를 확보했다. 뒤이어 백무용 교수가 전기 소작기를 이용해 지혈을 했다.

골반 속으로 조금씩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출혈은 더욱 많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부위였고, 경험이 풍부한 송재덕 과장은 멈추지 않았다.

서서히 골반 속에 숨은 직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표면은 거칠었고, 피에 물들어 시뻘건 색을 띠고 있었다. 같은 대장인데도 다른 부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상당히 좁아진 시야 탓에 간신히 출혈 부위를 닦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골반 조직과 박리된 직장의 중간 부분이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암 덩어리였다.

아직 박리하는 과정은 끝나지 않았다. 암을 제거하고 에스 결장과 이어 주기 위해서는 더 깊이 박리해야 한다. 이제는 송재덕 과장의 손을 보기도 힘들었다.

출혈이 심해 거즈로는 감당할 수조차 없었다. 거즈를 넣어 피를 닦을 공간 자체가 없었다. 석션으로 흘러나오는 피를 빨아들여 간신히 최소한의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다였다.

수술 기구를 사용할 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송재덕 과장이 골반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과 거즈만을 이용해 직장을 분리해 내기 시작했다. 오직 손으로 전해지는 감촉과 감각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수술용 모자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장갑은 피로 번들거렸다.

째깍! 째깍!

띠! 띠! 띠! 띠! 띠!

송재덕 과장이 눈을 감았다. 눈가를 찡그리며 한참 동안 손끝의 감각에만 집중했다. 암 덩어리 하부의 직장을 적절하게 확보했는지 가늠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드디어 손이 빠져나왔다.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분리된 직장 주변으로 빠르게 피가 차올랐다. 수술 팀 전체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지혈을 했다.

10분이 넘도록 씨름을 한 끝에야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출혈을 제어할 수 있었다.

노련한 송재덕 과장조차 불안한 모양이었다.

“마취과, 환자 바이탈 어때? 괜찮아?”

“괜찮습니다만, 수혈 시작했습니다.”

수술 팀의 긴장이 확연하게 치솟았다. 마취과를 믿고 계속 진행해야 할 때였다.

“백 교수, 이 정도면 될까?”

눈을 마주친 백무용 교수가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 암 덩어리와 확보된 직장을 확인했다.

“예. 충분히 확보한 것 같습니다.”

“스테이플러를 사용할 길이로 충분하겠지.”

송재덕 과장이 다시 묻자 백무용 교수도 재차 확보된 직장을 확인했다. 충분했다. 이제 에스 결장과 암을 포함한 직장을 잘라야 한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김지훈이 재빨리 간호사를 보며 말했다. 수술 기구조차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진 골반 내 공간은 압박 이외에는 지속적인 지혈이 불가능했다. 수술 위치상 세컨이 자신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있었다.

“골반 속을 압박할 탭 주세요.”

김지훈이 손일석에게 눈짓을 하며 조심스럽게 박리된 직장 주변으로 탭을 몇 장 밀어 넣었다. 송재덕 과장의 눈가에 잔주름이 생기며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그래. 이렇게 제때에 알아서 움직여 줘야 수술하기 편하지. 어떤 때는 이놈들이 치프들보다 나을 때가 있어.’

“좋아. 백 교수, 에스 결장부터 자르자.”

여유가 있다면 충분하게 잘라 주는 것이 암 수술의 원칙이었다. 송재덕 과장이 암 덩어리에서 10센티미터 위를 가리키며 수술용 가위를 다시 잡았다.

에스 장 결장으로 들어가는 동맥의 시작 부분부터 대장 쪽을 향해 부채살 모양으로 장간막을 잘라 나갔다. 이 부분에서 머뭇거릴 송재덕 과장이 아니었다.

수혈까지 하는 상황인 데다 언제 수술이 모두 끝날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백무용 교수는 물론 김지훈까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어느새 에스 결장을 잘랐다.

대장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단면을 잘 마무리한 송재덕 과장이 직장으로 이어진 장간막을 자르기 시작했다. 장간막은 복강 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 역시 수월하게 제거했다.

이제 남은 부분은 암 덩어리와 그 하부에 위치한 직장이었다. 통상의 수술은 이 과정에서 항문을 포함해 직장을 모두 제거하고 인공 항문을 만들면 끝이었다.

어떻게 보면 제거만 하기 때문에 수월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수술은 스테이플러를 사용한다. 가장 어려운 과정은 아직 시작하지도 못했다.

송재덕 과장이 잠시 숨을 돌렸다. 신중한 눈빛으로 절단된 대장을 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에스 결장은 잘랐지만 암과 직장은 여전히 자르지 않은 상태였다.

잠시의 침묵이 깨졌다.

“간호사, 스테이플러 준비해요.”

드디어 스테이플러를 이용한 수술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하얀색 스테이플러가 유난히도 하얗게 보였다. 김지훈이 전에 없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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