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65화 (365/1,329)

제7화 우리는 왜 발전해야 하는가 Ⅱ (1)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차트와 엑스레이를 보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같은 파트가 아니라고 해도 환자를 보지 않고서는 파악을 했다고 할 수 없었다.

엄상훈 환자를 찾았다.

“환자분,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암을 진단받은 환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초췌하면서도 초조한 얼굴이었다. 통상의 병력과 과거력을 묻고 복부 진찰까지 끝냈다. 최근에 변을 볼 때 피가 묻은 것 같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소견이 없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말기 암 환자도 특이한 증세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어디에 발생하든 암은 더욱 무서운 질환이었다.

“별 증상이 없었는데 검사를 빨리 받으셔서 다행입니다. 일단 수술을 해 봐야 알겠지만 현재로는 2기 정도로 판단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위로가 될 말은 아니었다. 김지훈도 빤히 알고 있었지만 달리 할 말도 없었다. 파트가 다르기에 더 자세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려 하자 환자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물어봐도 될까요?”

“예. 제가 답해 드릴 수 있는 문제라면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묻기 어려운 말인지 한동안 이마만 문지르며 입을 열지 못했다. 답답한 한숨만 터트릴 뿐이었다. 이 역시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김지훈도 말없이 기다렸다.

한참 만에야 입이 열렸다.

“제 병명이 직장암이 맞죠?”

“예, 맞습니다.”

“수술이 잘된다면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장 두려운 일이다. 암 환자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의사는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정확한 상황을 전달할 의무가 있다.

다행히 엄상훈의 직장암은 2기였다. 다른 장기로의 전이도 없고, 직장 주변의 임파선도 사진상으로는 정상적인 크기였다. 암 덩어리 자체가 크고 깊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분의 경우에는 오 년 생존율이 70퍼센트가 넘습니다. 그리고 점점 항암 치료제가 강력해지기 때문에 예후는 해가 갈수록 좋아지는 추세입니다.”

“생각보다 살 확률이 높았네요. 말씀대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말입니다.”

한 가족의 가장인 엄상훈의 두려움 중 하나가 보였다.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은 김지훈이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최소한 남아 있는 어린 자식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는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환자분의 의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가요?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네요. 그런데 과장님께서 위치가 안 좋다고 하시더군요. 너무 항문에 가까워서 인공 항문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그 말씀이 나중에 다시 원래대로 만들 수 있다는 소립니까?”

직장암 환자다. 인공 항문을 만든다는 소리는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송재덕 과장의 성격상 외래에서 이미 수술 방법과 경과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을 했어야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확실하게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도 대장 문합용 스테이플러 때문일 것이다. 굳이 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직장암이 너무 진행돼 제거가 불가능한 경우였다. 하지만 엄상훈 환자는 후자의 경우가 아니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집도의가 아닌 이상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어떤 수술을 할지와 그에 따른 문제는 집도의가 설명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죄송합니다. 수술에 관한 문제는 과장님께 직접 들으셔야 할 문제입니다.”

엄상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처연해 보이기도 했다. 눈치가 있다면 김지훈이 대답을 회피하는 이유를 모를 수가 없었다.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아직은 자신이 암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못했을 시간이었다. 인정했다고 해도 내면적으로는 분노하거나 부정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인공 항문 문제는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상당히 어렵긴 하지만 스테이플러로는 가능한 선이라는 말을 해도 될까? 아니야. 과장님이 확실하게 수술 방법을 결정하기 전에는 말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럴 때는 절대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돼.’

안타까운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병실을 나오려는 순간 가족들이 들어왔다. 엄상훈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노부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이었다. 4인실에 입원을 했으니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돈이 많은 집도 아닐 것이다. 그만큼 엄상훈의 어깨에 걸린 짐도 많을 것이다.

가족들의 눈에 당혹감과 슬픔이 가득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눈물 자국마저 지우지 못한 아내의 모습이 눈에 박혔다. 아빠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는 두 아이의 슬픔이 가슴을 울렸다. 차마 자식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는 노부부에게서는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단지 암이라는 질환 하나만으로도 그런 슬픔을 주었을 것이다. 만일 인공 항문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충격에 빠질 것이다.

물끄러미 가족들을 보던 김지훈이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문득 여섯 가족의 생계가 오로지 엄상훈 환자의 어깨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주저하던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환자분, 죄송한데 지금 하시는 일이.”

치료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었지만 의사가 하는 질문이었다. 대부분 대답하기 마련이었다. 엄상훈 역시 환자였기에 별생각 없이 대답을 했다.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문득 어린 자식들을 걱정하던 엄상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역시 송재덕 과장이었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올라와 백무용 교수와 함께 양 파트 전공의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대뜸 김지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훈아, 환자 파악했지? 나쁜 놈들은 다 수술 방에 있었으니까 못했을 테고. 이 환자 설명 좀 해 봐. 천천히 해. 천천히. 어디 보자. 보자.”

송재덕 과장이 동네 아저씨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허허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미소가 다인 줄 알았다. 지금도 1년차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는 송재덕 과장이었다.

하지만 2년차들에게는 달랐다. 살짝 삐끗만 해도 살벌하게 탈 것이다. 발표할 때 이미 충분하게 경험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신중한 표정으로 발표를 하려는 순간 삐그덕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신현수가 흠칫 놀랐다. 송재덕 과장과 백무용 교수에, 두 파트의 전공의들이 모두 모여 있는 모습에 급히 뒤돌아섰다.

그때 송재덕 과장이 손을 흔들었다.

“나쁜 놈아, 어디 가니? 어디 가? 너희 파트 일 없으면 너도 앉아서 잘 들어. 아주 중요한 환자야. 잘 들어.”

신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구석에 앉았다.

곧 김지훈이 대장 조영술과 복부 CT를 보며 환자에 대해 설명을 했다. 역시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은 발표였다.

고개를 끄덕인 송재덕 과장이 물었다.

“지훈아, 호치키스로 할 수 있겠어? 어떠니? 너무 아래지. 7센티미터가 뭐니. 7센티미터가. 힘들다. 힘들어. 호치키스 써 본 적도 없는데 다음에 하자. 다음에. 쯧! 9센티미터짜리 오면 그때 하자. 그게 좋겠다.”

모두들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하자는 소리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련한 의사라도 경험이 전혀 없는 수술은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대장 문합용 스테이플러라는 새로운 기구를 사용해야 하는 데다 한계선인 7센티미터였다.

실패를 가장 두려워하는 외과 의사들의 속성상 송재덕 과장에게도 큰 부담일 것이다. 집도의도 아닌 의사들이 새로운 수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더욱 큰 부담이 따랐다. 묘하게도 그런 생각이 퍼지고 있었다.

김지훈조차 순간적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 눈가를 찡그리며 고민에 잠겼다.

‘설마 정말 수술하기 좋은 케이스를 찾으시는 걸까? 하지만 인공 항문을 만들기에는 너무 젊은 환자다. 이건 생각할 것도 없어. 무조건 해야 돼. 그래서 지금까지 다들 노력을 한 거잖아.’

여전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무조건 환자부터 생각할 일이었다. 아직 고등학교도 못 간 어린아이들을 생각하면 인공 항문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절대 실패가 두려워 포기할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과 인생이 걸린 수술이었다.

콧등까지 찡그리던 김지훈이 과감하게 입을 열었다.

“과장님, 해야 합니다.”

“하자고? 지훈아, 우리 다 처음인데 할 수 있을까?”

수술의 성공 여부는 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이 없었다. 환자에게 너무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아니라 환자만 생각하자. 엄상훈 환자만 생각하자. 더구나 과장님이 직접 집도하는 수술이다. 과장님이 못하시면 다른 어떤 의사도 못한다.’

김지훈이 고개를 꼿꼿하게 세웠다.

“과장님, 환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송재덕 과장의 눈이 반짝였다. 굳이 더 듣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송재덕 과장도 처음 하는 수술이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일종의 자신감이 필요했다. 그런데 치프도 아닌 2년차가 강하게 주장을 했다. 그 속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보였다.

‘녀석! 재순이한테도 저런 눈빛을 보였나? 없던 자신감도 생기겠어. 역시 진짜 써전이 될 만한 놈이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러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니? 어떻게 해? 하다 안 되면 그냥 마일즈하면 되는 거야? 그래?”

암을 포함해 항문까지 제거하고 인공 항문을 만드는 전통적 수술을 마일즈(Mile's) 수술이라고 부른다. 스테이플러 사용을 포기하거나 실패하면 결국 마일즈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름이 없었다.

송재덕 과장이 묻는 것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막연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공연히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패가 두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실패한다고 해도 다음 환자를 위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믿습니다. 의사가 신이 아니고 환자 역시 부품만 갈아 끼우면 되는 기계가 아닌 이상, 시도하는 것 자체가 발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발전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환자가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그것뿐이야? 다른 이유는 없니? 정말 없니?”

의사는 환자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직업이다. 의사인 이상 일단 살리고 치료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지만, 엄상훈 환자의 경우는 그만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삶의 질! 혹은 삶을 유지하는 일!

“우리가 치료하는 환자는 한 명이지만, 그 환자의 어깨에는 어린아이 둘과 부인, 그리고 연로하신 부모님이 있습니다. 환자가 수술 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의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놔두고 실패가 두려워 의사에게 편한 길로 간다면 도리어 평생 후회할 것 같습니다.”

기대 이상의 대답이었다. 한동안 김지훈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던 송재덕 과장이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백무용 교수도 이제야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그래. 환자의 목숨만 중요한 게 아니야. 암! 아니지. 어떻게 사는지도 굉장히 중요해. 그러니까 우리도 발전해야지. 만에 하나 실패하면 인공 항문 만들면 된다. 그래도 의미가 있는 일이야. 하자. 해 보자. 백 교수, 수술 언제 할까? 언제? 누구랑 들어갈까?”

“말씀하신 대로 제가 지훈이와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니?

이미 의논을 했다는 말이었다.

“그래. 그럼 내 치프하고 일석이까지 우리 셋에, 백 교수하고 지훈이 해서 다섯이 들어가자. 다섯. 좋다. 좋아. 나쁜 놈아, 다음 주 월요일에 수술할 거니까 1년차하고 함께 준비 잘해. 환자 감기 안 걸리게 잘 봐라. 잘 봐.”

송재덕 과장은 이미 스테이플러를 사용해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누군가의 입을 빌려 수술을 해야 하는 이유 등을 말하고 싶었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그 입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낸 것이다.

손일석이 어깨에 바짝 힘을 주며 대답을 했고, 김지훈은 난데없는 말에 입이 쫙 찢어졌다. 참관이라도 반드시 할 생각이었는데 직접 참여할 수 있다니 하늘이 준 기회였다.

잠시 미소를 감추지 못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며 얼굴을 굳혔다.

‘후우! 좋은 기회지만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수술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돼. 시간 나는 대로 수술 테이프를 다시 봐야겠어.’

각오를 다지는 김지훈을 힐끗 보며 나가던 송재덕 과장이 갑자기 홱 돌아섰다.

“아! 발표한 놈이 한 놈 더 있잖아. 나쁜 놈 말이야. 그놈 어디 있어? 어디 있니?”

신현수가 잔뜩 얼굴을 굳힌 채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자신은 생각도 못한 김지훈의 말에 가슴이 답답했다. 어쩌면 수술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는 더욱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월요일이면 박경일 교수의 수술과 겹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나쁜 놈, 너도 들어와. 발표를 했으면 최소한 봐야지. 지훈아, 그렇지? 내 말이 맞지?”

그제야 신현수의 얼굴이 조금은 풀렸다.

‘역시 과장님이시네. 우리 셋이 죽을 고생을 하며 발표를 했는데 당연히 다 들어가서 봐야지.’

김지훈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예, 과장님.”

“그래그래. 우린 발전해야 돼. 그래야 우리한테도, 환자한테도 좋은 거야. 암! 좋고말고. 지훈아, 넌 대장이다. 대장. 나쁜 놈들 빼고 니가 하자. 할 거지? 그치?”

이제는 확실히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김지훈이 순간 흠칫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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