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60화 (360/1,329)

제4화 이러다 대장으로? (2)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퍼스트에게 수술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전공의를 가르치는 교수들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는 말수가 적어지는 것은 물론 말투까지 바뀌는 송재덕 과장이었다.

생각할수록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과장님 말투에 신경을 쓰면 안 되지. 왜 이렇게 자꾸 애먼 생각을 하지? 수술에 집중하자. 과장님이라면 이걸 어떻게 처리하실까?’

손상 부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스승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원칙을 잊었다. 퍼스트를 서고 있지만 집도의 입장에 서서 판단해야 할 문제였다.

‘내가 집도의라면 먼저 환자에게 가장 안전하고 유리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집도의가 결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다.’

송재덕 과장의 말대로 너무 많이 찢어졌다. 그런데 대개는 너덜너덜하거나 갈기갈기 찢어졌어야 할 대장이 예쁘게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부위를 살짝 다듬으면 마치 칼로 자른 것처럼 매끈한 면을 만들 수 있었다.

‘대장은 직경이 큰 데다 가로로 찢어져서 일차 봉합을 해도 좁아지진 않겠어. 찢어진 면과 주변 대장이 이 정도 상태라면 잘 붙을 가능성이 높다. 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가로 손상과 세로 손상은 달랐다. 심각한 세로 손상을 1차 봉합하면 장 내부가 문제가 될 정도로 좁아지기 십상이었다.

가로 손상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좁아지는 정도가 덜했고, 장기적 경과도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봉합 부위가 점차 정상적인 크기로 회복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자르는 것과 1차 봉합은 회복 속도 자체가 달랐다. 관건은 역시 환자에게 어떤 수술 방법이 가장 유리한지였다.

심각한 기색으로 고민하던 김지훈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라면 일차 봉합을 하겠습니다.”

“그래? 이유가 뭐야? 이거 대장이다, 대장. 안 붙으면 난리난다, 난리. 재수술이 문제가 아니야. 똥이 나오잖아. 똥이.”

대장 수술을 할 때 외과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였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판단 근거를 말했다. 송재덕 과장이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래. 그렇구나. 지훈이 니 말도 맞다. 그럼 해 봐. 자신을 갖고 해. 자르지 말자. 그러자.”

지금 대장 수술을 해 보라고 한 건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 폭탄 발언이었다.

김지훈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제가 하라고요?”

“왜 눈은 동그랗게 뜨고 그래? 넌 두 달만 있으면 3년차야. 3년차. 수술해야지, 수술. 천천히 하자. 천천히.”

대장과 소장의 봉합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심지어 바늘구멍으로도 내용물이 새 2차 복막염을 일으킬 수 있는 장기가 바로 대장이었다.

김지훈이 입을 꾹 다문 채 수술 방법을 상기했다.

열에 아홉은 떠올랐다.

나머지 하나까지 필요할까?

필요했다. 대장 수술의 위험도를 고려할 때 사소한 과정조차 무시할 수 없었다. 만일 끝까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집도를 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좀처럼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후우! 안 되겠어. 이 상태에서 수술을 한다고 하기에는 너무 불안해.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자신이 서질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고 퍼스트를 서는 것에 만족해야 할 상황이었다. 답답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던 김지훈이 입을 열려다 말고 멈칫거렸다. 송재덕 과장의 눈에 서린 믿음이 보였다.

그 순간 홍재순이 생각났다.

수술 팀을 믿고 불안과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 사람은 바로 김지훈 자신이었다. 노련하기만 한 송재덕 과장도 첫 번째 대장 수술을 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했다. 쓸데없는 두려움은 머리를 굳게 하고, 손만 어지럽게 할 뿐이었다. 함께하는 수술 팀을 믿지 못하면 어떤 수술도 하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송재덕 과장이 파트너다. 실수할 기미가 보이면 즉각 바로잡아 줄 것이다. 다시 손을 바꾼다고 해도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난 할 수 있다. 내가 힘들어하면 날 도와줄 의사들이 있다. 난 이 환자를 책임질 준비가 됐다.’

김지훈이 눈에 힘을 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송재덕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도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훈아, 수술 방법은 결국 똑같아. 원칙만 지키면 돼.’

가볍게 어깨를 흔들어 긴장을 푼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멧젬(Metzenbaum:수술용 가위) 주세요.”

잠시 손상 부위를 보던 김지훈이 과감하게 손을 움직였다. 손상 부위를 다듬었다. 송재덕 과장의 손이 빠르게 오가며 흐르는 피를 닦았다.

“니들 홀더(Needle Holder:봉합용 수술 기구). 실은 3번으로 주세요.”

첫 바늘을 뜨는 순간 가물가물했던 나머지 하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장 수술은 주로 응급 수술에서 세컨을 서면서 본 게 다였다. 그나마 많지도 않았다. 구미에서 홍재순과 함께 잠깐 책으로 본 적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자 마치 어제 했던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바늘 한 땀의 간격과 층마다 필요한 실의 종류와 굵기.

봉합과 타이를 하는 방법.

연결 부위가 새지 않도록 보강을 하는 방법.

본능처럼 손이 움직였다.

바늘 끝으로 전해지는 두꺼운 대장의 느낌이 전신으로 전해졌다. 두려움이 사라지며 손끝에 강한 자신감이 실렸다. 어느 틈엔가 찢어졌던 대장이 말끔하게 봉합됐다.

결코 운이 아니었다. 그동안 매 수술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한 결과였다.

송재덕 과장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허허! 이놈 참 희한한 놈일세. 지적할 게 없네. 그사이에 이 정도로 발전해서 왔단 말이지. 남 주기에는 정말 아까운 놈이야. 에휴! 그런데 왜 준영이 손이 보이는 거야?’

감탄 뒤에는 아쉬움과 기쁨이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송재덕 과장이 허허 웃었다. 꾹 닫혀 있던 입이 다시 열렸다.

“잘했다. 잘했어. 배 닫자. 지훈아, 대장 하자. 대장. 넌 타고났어. 손을 보니까 간담도는 이렇게 수술하기 어렵겠다. 대장 하자. 응? 대장이다.”

잠깐 사이에도 참 많은 말을 했다.

“천천히 하자. 천천히.”

“예, 과장님.”

천천히는 무슨!

지금부터는 빠르게 움직일 때였다.

따뜻한 물 10,000cc로 두 번째 세척을 시행했다. 다시 한 번 내부 장기를 확인한 후 드레인을 4개 박았다. 대장 내용물이 샜기 때문에 최소한 이 정도는 넣어 주어야 했다.

배를 닫는 과정만 남았다. 손이 바람처럼 움직여야 할 때였다.

휙! 휙! 휙!

두 개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자 어느새 배가 닫혀 있었다. 마취과가 미처 환자를 깨우지도 못했다.

송재덕 과장이었으면 벌써 깨웠겠지만 김지훈이 하는 탓에 방심을 한 것이다.

“마취과, 뭐 했니? 수술 다 끝났다. 졸았니? 허허! 천천히 깨워. 천천히. 아이고! 피곤하다. 응? 나쁜 놈이구나. 넌 왜 아직 안 나갔어? 아뻬는 끝났니? 잘 끝났지?”

“예, 과장님.”

송재덕 과장이 신현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수술실에서 나갔다. 문가에 선 신현수가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장 봉합을 할 때부터 쭉 지켜봤다. 솔직히 대단했다. 몇 번의 경험만으로는 결코 수술하기 쉽지 않은 부위가 대장이었다. 전 텀에 송재덕 과장의 파트를 돌며 대장 봉합을 해 보았지만 지금도 자신감을 갖기는 힘들었다. 아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장 수술을 해 봤나? 2년차 때 대장 파트를 돈 적이 없잖아. 그럼 구미에서? 아니지. 홍재순 선생님 손이 그 정도로 빨라지려면 수술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을 거야. 더구나 대장 수술 자체가 적은 병원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그때 김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송재덕 과장이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칭찬과 다름이 없었다. 수술을 잘한다는 신현수 자신도 처음 대장을 봉합할 때 여러 번 지적을 받았다.

그 사실이 떠오르는 순간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분노나 질시가 아니었다. 이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자 불타는 열의였다.

‘네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신현수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만일 먼 훗날 김지훈과 하나의 수술 팀이 된다면 자신이 주도하고 싶었다. 자존심이 아니라 최고의 써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 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남김없이 끌어내야 할 때였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생각 자체가 답답했을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 널 이긴다.’

아버지가 가진 능력을 배제하는 순간 신현수의 가슴이 도리어 뻥 뚫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환하게 보였다.

***

천안에서의 3주째 생활이 시작됐다.

오후 일과가 끝난 후 교수들과 전공의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발표가 시작됐다. 송재덕 과장은 천안 병원 과장이자 주임 교수다. 당연히 대장 수술에 쓰이는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첫 번째로 발표해야 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다. 김지훈이 다소 긴장된 얼굴로 발표를 했다. 대략의 개념만 잡았을 뿐인데 발표가 끝나자마자 송재덕 과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왠지 평소와는 달랐다.

“지훈아, 호치키스를 쓰는 이유가 그거 하나니? 호치키스가 잘 맞물렸는지 어떻게 아니? 지훈아,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예. 그게 세 번째 페이지를 보시면… 그러니까 이게…….”

처음부터 진땀을 뺐다. 점점 송곳 같은 질문이 이어지며 송재덕 과장의 목소리가 슬슬 높아졌다. 준비가 생각보다 미흡하다는 의미였다. 아니면 기대치가 엄청 높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수술 테이프는 봤니? 봤어?”

“예, 봤습니다.”

“두세 번 보고 봤다는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우리 모두 처음 보는 거야. 처음. 근데 이게 뭐니? 뭐야? 지훈아, 이게 뭐야? 이래서 환자한테 사용할 수 있겠어?”

송재덕 과장의 이런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쯧쯧! 에이! 에이! 지훈아, 이건 아니지. 아니다.”

혀 소리에 이어 ‘에이’ 소리가 연타로 터졌다.

점점 하얗게 질려 가던 김지훈이 결국 한 줌 재로 변했다.

“에이! 발표를 들었는데 난 잘 모르겠다. 이걸로는 부족해. 그치? 분명히 부족해. 다음 주에는 확실히 알 수 있겠니? 그땐 누가 발표해? 누가? 지훈이 니가 또 하니?”

송재덕 과장이 끝까지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순서는 이미 정해졌다. 손일석이 벌써부터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들었다.

“나쁜 놈이 하는구나. 나쁜 놈이. 너 내 파트다. 열심히 해라. 열심히. 그럼 수요일에 라파로는 누가 발표하니? 누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신현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을 들었다. 그런데 송재덕 과장의 표정이 묘해졌다.

“음! 현수 니가 하는구나. 열심히 준비해라. 라파로. 그거 배워야 한다. 암! 배워야지.”

어라? 신현수는 나쁜 놈이 아니다.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발표가 끝나자 총치프까지 눈을 부라렸다.

“지훈아, 혀 차는 소리에 에이 소리까지 나왔다. 그다음이 뭔지 알지? 야야야, 이 소리 터지면 2년차 이하로는 모두 죽는 거야. 누구 때문에? 바로 김지훈 너 때문이지.”

섬뜩한 경고였다. 오래간만에 등짝을 땀으로 흠뻑 적신 김지훈이 발표가 모두 끝나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그렇게 강인했던 정신력이 송재덕 과장 앞에서는 무력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일까?

“어이구! 과장님한테 저러 면이 있었나? 첫날부터 이러시면 어떻게 하냐. 죽는 줄 알았네. 일석아, 준비 단단히 해라. 현수야, 너도 만만하지는 않겠다.”

손일석과 신현수가 입술을 모은 채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신현수가 논문을 꺼내며 눈에 불을 켜자 손일석도 허겁지겁 논문을 펼쳤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 다음에는 수술 테이프까지 더 철저하게 준비하자. 이 정도에 약해지고 쓰러질 내가 아니지. 파이팅! 아무리 타도 절대 죽지는 않는다. 숨 쉬면 돼.’

역시 정신력하면 김지훈이다.

순식간에 여유를 찾은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일석아, 현수야, 내일 자체 집담회 준비하자.”

이런! 숨도 돌리기 전이다.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홍재순이 들어왔다.

김지훈의 손에는 이미 필요한 자료들이 들려 있었다.

“선생님, 3등분 하면 되죠?”

“같이 준비한다며? 그리고 내일부터는 우리도 확실하게 하자. 준비가 미흡하면 아예 들어오지 마. 지훈아, 구미에서 어떻게 했는지 똑똑하게 알려 주고. 오더 내자.”

홍재순의 마지막 말에 2년차 3명이 동시에 입을 벌렸다. 전공의들의 일과는 아직 안 끝났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그걸 잊을까?

이미 2년이나 해 온 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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