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59화 (359/1,329)

제4화 이러다 대장으로? (1)

칭얼대는 소리가 스테이션에서도 들렸다. 아이 엄마가 정민이를 안은 채 복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남은 한 손으로는 수액이 걸려 있는 폴(Pole)대까지 밀고 있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안쓰러웠다.

이럴 때는 정말 힘들다. 어깨에 걸린 피로가 더욱 심해진다.

김지훈이 애써 웃었다.

“어머니, 정민이 가스 나왔어요?”

아이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눈가에 드리운 어둠이 더욱 진해진 것 같았다.

김지훈이 폴대를 잡으며 조용히 병실로 향했다.

서정민이 엄마를 꼭 잡은 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하얀 가운들만 나타나면 바늘로 찌르거나, 상처를 치료한다고 아프게 하니 겁을 낼 수밖에 없었다.

칭얼대는 아이를 억지로 침대에 눕히자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입술을 맞대며 달래는 엄마의 눈가도 붉게 물들었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정민아, 상처 좀 보자. 괜찮아. 잠깐만 보자.”

어린아이의 피부는 약하고 여리다. 정민이를 달래 가며 조심스럽게 거즈를 열었다. 종이테이프를 붙였던 자리마저 빨갛게 짓물러 있었다. 안쓰럽기만 했다.

다행히 상처는 잘 아물고 있었다.

“어머니, 수술한 자리는 괜찮네요.”

아이 엄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 모습에 왠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말을 못하니 청진을 해야 장 기능 회복 여부를 알 수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을 때 방귀를 뀌었을 수도 있었다.

눈을 꼭 감은 김지훈이 온 신경을 청진기에 집중했다.

어른에게는 일도 아닌 것이 어린아이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우는 아이의 장 소리는 더더욱 듣기 힘들었다.

정민이의 울음소리와 청진기가 배에 비벼지는 소리만이 들렸다. 잡다한 소리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장 소리를 찾아야 했다.

몸부림치며 우는 서정민을 달래 가며 청진을 하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들릴 때가 됐다. 아니, 그래야 했다.

자리를 바꾸어 가며 청진을 하던 김지훈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뭔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온 신경을 집중하자 미약하지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꼬르륵! 꼬르륵!

장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기능이 돌아왔다면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들려야 했다. 울음소리만 들렸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리며 청진기 위치를 바꾸었다. 아이 엄마가 의아한 눈초리로 김지훈을 보았다.

꼬르륵! 꼬르륵!

확실한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또 들렸다.

“어머니, 장 소리가 들리네요.”

김지훈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어머! 정말이에요? 정말 소리가 들리세요?”

아이 엄마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 순간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뽕!

김지훈과 아이 엄마가 서로를 보았다. 간절하게 기다리던 소리를 들었는지 묻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분명했다.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자 아이 엄마가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드디어 기능이 돌아왔단 말이지. 좋았어.’

미약하나마 장 기능이 돌아왔다. 수술한 지 벌써 5일이나 지났다. 이젠 자극을 주어 더욱 확실하게 기능을 돌려야 할 때였다.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돌아온 김지훈의 손에 장갑과 젤리가 들려 있었다.

정민의 항문에 새끼손가락을 넣고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기능이 돌아왔다면 자극에 반응해 직장이 크게 확장될 것이다.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감쌌던 직장이 스르르 열렸다.

김지훈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반응이 생각보다 강하네. 정민아! 진작 이랬어야지.’

그간의 걱정을 조금은 덜었다. 한동안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자극을 주었다. 효과를 확실히 본다고 너무 오래하면 도리어 통증만 줄 것이다.

서정민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미 얼굴까지 새빨개졌다.

김지훈이 슬며시 손가락을 뺐다.

“어머니, 일단 가스가 나왔고, 장에 자극도…….”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서정민의 엉덩이에서 시원한 소리가 들렸다.

부르룩! 부우욱!

우렁찬 방귀 소리였다.

부우욱! 부우욱!

이렇게 시원하고 기분 좋은 방귀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연달아 들렸다. 드디어 서정민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늦은 시간을 따라잡기라도 할 것처럼 힘차게 말이다.

아이 엄마가 입을 벌린 채 말을 하지 못했다. 김지훈도 할 말이 떠오르지가 않아 웃기만 했다.

“선생님, 우리 정민이가 지금 방귀를 뀐 거죠?”

“그럼요. 이게 방귀 소리죠. 냄새가 장난이 아니네요.”

아이 엄마가 활짝 웃으면서도 눈가는 빨갛게 변했다.

“내일 아침에 다시 확인할 때 기능이 확실하게 돌아왔으면 모레부터는 물을 시작할 수도 있겠네요. 물만 잘 먹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그냥 회복됩니다. 어머니, 조금만 더 참으세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드디어 물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민이의 바싹 마른 입술만 보아도 가슴이 찢어졌던 엄마였다.

아이 엄마가 줄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병동으로 돌아가는 김지훈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음이 즐거워서인지 발표 준비도 술술 풀렸다. 응급실 콜도 즐거웠다. 미친놈처럼 혼자 실실 웃던 김지훈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응급실 당직이 아니라 수술 당직이었다.

‘가만, 날 불렀다는 건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지?’

후다닥 달려 응급실에 도착한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응급실 당직인 신현수는 물론 송재덕 과장과 당직 치프까지 있었다. 그런데 신현수의 손에 들린 차트가 두 장이었다.

아싸! 양방이다.

왠지 모를 기대감이 팍팍 치솟았다. 가끔은 좋은 일이 연달아 터질 때도 있어야 일할 맛이 나는 법이다.

“치프야, 현수하고 아뻬 해라. 난 지훈이하고 빤뻬리 할게. 빤뻬리.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니. 어! 지훈이 왔구나. 수술하자, 수술.”

드디어 퍼스트다!

일요일 밤, 정말 기분 좋은 소리가 연타로 터졌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수술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20분 후 수술 방으로 환자를 올리기만 하면 됐다.

김지훈이 차트를 확인하고는 슬며시 처치실로 들어갔다. 빤뻬리 환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환자분, 죄송합니다만 진찰 좀 다시 하겠습니다.”

환자의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 그럴 만도 했다. 아파 죽겠다는 사람을 두고 인턴부터 송재덕 과장에 이어 자신까지 최소 네다섯 명은 진찰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술은 단순한 손기술이 아니다.

다시 한 번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김지훈이 신중하게 환자의 배를 진찰한 후 처치실을 나왔다. 3년차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송재덕 과장이 손짓을 했다.

“지훈아, 뭐 했니? 뭐 했니? 어디 갔다가 오는 거야?”

“예. 잠깐 환자 좀 봤습니다.”

송재덕 과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휙 돌아서서 수술 방으로 향했다. 치프가 고갯짓을 했다. 김지훈이 급히 뒤를 따랐다.

“지훈아, 이 환자한테 특별하게 신경을 써야 할 게 있어? 뭘 신경 써야 돼?”

“예전에 아뻬가 터져 수술한 병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복막과 장이 유착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배를 열 때부터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그렇지. 그렇지. 배를 한 번이라도 연 사람은 조심해야 돼. 그치? 참 신기해. 왜 공기와 접촉하면 배 속의 장이 주변에 들러붙는지 몰라. 신기하지?”

신기할 것은 없다. 외부 공기와 내부 장기가 접촉하면 염증 반응이 생기며, 일종의 흉을 만든다. 그 탓에 장이 주변 조직에 들러붙는 것이다. 하지만 송재덕 과장의 말이다. 이 정도는 반드시 그렇다고 해야 한다.

“예, 신기합니다.”

“허허! 너도 그게 신기했구나. 나도 쭉 그랬어. 근데 어디가 터진 것 같아? 소장이야? 대장이야?”

장은 총 길이가 5미터에 달하는 데다 서로 중첩돼 있어 복부 CT로도 감별하기 힘든 문제였다. 생각하는 척은 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을 보던 송재덕 과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장일까? 그럴 거야. 그게 감이 있어. 뭔가 많이 만져 보다 보면 소장하고 대장은 달라. 음! 그렇지. 그래. 지훈아! 그래서 대장이 재밌다. 준영이 그놈도 그걸 잘 알면서 그러네. 에이! 무뚝뚝하면 말이라도 좋게 해야 하는 거 아냐? 지훈아, 그치? 내 말이 맞지?”

‘뭔가 가르쳐 주시는 것처럼 그러시더니, 스승님 얘기로 끝내시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야?’

수수께끼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건졌다. 소장과 대장이 손상을 받았을 때 느낌이 다르다는 말이 뇌리에 박혔다. 많은 빤뻬리 환자를 보았지만 이런 소리는 처음이었다.

송재덕 과장은 확신하는 걸까?

얼마나 많은 경험과 집중이 필요할까?

“지훈아, 정민이 가스 나왔니? 나왔어?”

“예, 과장님. 아까 막 나왔습니다.”

“그래? 잘됐다. 잘됐어. 에이! 빨리 나오지, 이제 나오면 어떻게 해? 수술한 지 벌써 오 일이나 됐잖아. 백 교수가 방구 안 나온다고 끌탕을 하더라. 그 냄새가 뭐가 좋다고 기다려. 이제 밥 먹고 똥 잘 싸면 퇴원이네. 엄마가 제일 좋아하겠다. 그치? 좋다. 좋아.”

입가에 미소를 건 송재덕 과장이 허허 웃었다.

수술은 함께했지만 엄연히 파트가 달랐다. 그런데 항상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은연중에 환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는지도 몰랐다.

곰곰이 송재덕 과장의 말을 곱씹던 김지훈이 갑자기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오늘도 말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지훈아, 이 환자도 교통사고지? 너도 운전 조심해라. 조심해. 대개 손 빠른 놈들이 성격도 급해서 운전을 막 해요. 난 절대 안 그래. 아주 천천히 해요. 천천히. 지훈아, 재순이는 어때? 응? 홍 치프 말이야. 걔는 천천히 하지. 그럴 거야. 느긋느긋한 성격이 어디 가겠니? 그치? 내 말이 맞지?”

그저 웃기만 해야 했다.

하긴 손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발이 빠른 레이서가 바로 홍재순이라는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수술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김지훈이 끙끙대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과장님 말씀대로 만일 소장이 아니라 대장이 찢어졌다면 어떻게 수술을 해야 하지. 그걸 확실하게 기억해야 퍼스트를 제대로 서는데.’

외상에 의한 복막염의 원인은 대부분 소장 손상이었다. 대장과 위의 손상은 상당히 드물었다. 게다가 대장 파트는 1년차 때 돈 것이 다였다. 김지훈이 흐릿하기만 한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야속한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곧 수술이 시작됐다.

언제나 그렇듯 송재덕 과장은 수술이 시작되자마자 입을 꽉 닫았고, 손은 변함이 없었다. 칼을 들자마자 순식간에 배를 갈랐다. 환자가 예전에 수술을 받았던 자리인 하복부를 열 때만은 극도로 신중했다.

“들러붙었네. 여기부터 떼고 진행하자.”

막상 배 속의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치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서걱! 서걱! 서걱!

수술용 가위로 예전 수술 부위에 들러붙은 조직들을 거침없이 분리했다. 김지훈이 눈에 힘을 주었다. 무척 까다로운 부위라고 생각했었는데 송재덕 과장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배 속에 생기는 흉 조직은 얇고 가는 비닐 막처럼 만들어진다. 그 속에는 어떤 혈관도 분포하지 않는다. 이 조직만 정확하게 구분한다면 출혈 없이 박리할 수 있었다.

사실 해부학에 정통하고 경험이 풍부한 외과의에겐 그 미세한 조직이 하나의 선처럼 뚜렷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전공의에겐 그 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경험과 실력의 차이이기도 했다.

김지훈이 내심 혀를 찼다.

‘어후! 어떻게 저 선을 단번에 파악하시지? 대단하시네. 역시 고수야. 그럼 대장 손상이 의심된다고 하셨는데, 정말 배 속으로 보지 않고도 그게 감별이 되나?’

어느새 복벽이 완전히 열리고 배 속이 드러났다.

복벽을 좌우로 활짝 벌리는 순간 김지훈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마치 뒤처리가 안 된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처럼 역겨운 냄새가 확 퍼졌다.

송재덕 과장의 말대로 평행 결장의 중간 부위가 5센티미터 정도 찢어져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김지훈이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대장이 터졌다. 내용물이 더 흘러나오면 배 속이 온통 똥 천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물로 씻어도 어딘가에는 변이 남는다. 새로운 복막염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수술 과정이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을 때는 원칙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또한 좋은 수술 팀은 의사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경험이 많은 간호사라면 손짓만으로도 필요한 기구를 정확하게 제공할 것이다.

“장 겸자 주세요.”

송재덕 과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시작한 것이다. 김지훈이 송재덕 과장의 손에 맞추어 재빨리 찢어진 부위의 끝을 장 겸자로 막았다.

“과장님, 석션하겠습니다. 간호사, 따뜻한 물 미리 준비해 주세요.”

물로 대장이나 소장 내부를 씻는 것은 금기다. 이유는 간단했다. 똥물이 넘쳐 온 배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일부러 복막염을 만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석션으로 대장 속의 걸쭉한 내용물과 약간의 고형 성분을 제거한 후, 더 이상 새어 나오지 않도록 거즈와 탭을 이용해 손상 부분을 꼼꼼하게 감쌌다.

간, 위, 비장, 소장을 차례로 확인했다.

군데군데 타박으로 인한 멍들이 관찰됐지만 수술적 처치가 필요한 손상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대장 손상에만 집중하면 된다.

따뜻하게 데워진 물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찌이익! 찌이익!

석션 통으로 배 속을 세척한 물이 쫙쫙 쏟아지기 시작했다. 덩어리라면 혹시 모르지만 물과 희석된 대장 내용물이 눈에 보일 리는 없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남으면 안 된다.

물 10,000cc를 사용해 1차 세척을 끝냈다.

대장 손상을 처리할 때였다.

송재덕 과장이 간만에 입을 열었다. 비록 단순한 과정이었지만 지금까지는 실수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훈아, 5센티미터면 많이 찢어진 거다. 자를까? 자르지 말까? 어떻게 하지? 응? 어떻게 해?”

어라? 이상하다. 항상 듣던 말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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