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새로운 배움 (2)
아니나 다를까! 송재덕 과장이 백무용 교수와 함께 손을 씻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내심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에 대한 욕심도 능력이 될 때 부릴 수 있는 법이다.
‘그래. 이런 수술에서 내가 퍼스트를 선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 수술을 보는 것만도 의미가 있어. 그러데 과장님이 수술을 하시나?’
수술 가운을 입던 송재덕 과장이 김지훈을 보았다.
“지훈아, 이게 대장이야, 소아야? 응? 어느 쪽이야?”
대장이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고민할 질문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대답하면 될 일이었다. 김지훈이 숨도 쉬지 않고 대답을 했다.
“소아외과입니다.”
“그렇구나. 소아외과구나. 그래도 대장이 재밌어. 대장이. 아니다. 소아까지 하면 정말 좋겠네. 그래. 대장하고 소아를 다 하자. 좋다, 좋아. 지훈아, 좋지?”
결론은 역시 대장 파트를 하라는 것이었다.
“예? 예, 과장님.”
“대답을 잘해서 좋아. 지훈아, 나쁜 놈들은 구경만 하라고 하고 우리까리 열심히 수술하자. 너 세컨 잘 서잖아. 앞으로 쭉 서라. 쭉.”
아! 송재덕 과장마저 세컨을 쭉 서란다.
나지막한 대화가 오고 갔다. 손일석과 신현수는 대장 조영 사진을 보며 소곤거리고 있었다.
외과만 6명에 마취과와 간호사들까지 좁은 수술실이 꽉 찼다.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 한마디에 수술실 분위기가 돌변했다.
“마취 시작하겠습니다.”
마취과 교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6개월에 불과한 아이였다. 인투베이션부터 마취제의 종류와 유지 용량까지 통상적인 것이 없었다. 인공호흡기는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폐가 너무 작아 조그만 공기 주머니를 이용해 사람이 직접 호흡을 유지시켜야 했다.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작고 여린 몸.
공기나 통할까 싶은 가느다란 인투베이션 튜브.
공기 주머니를 압박할 때마다 힘없이 움직이는 작은 가슴.
팔에 꽂힌 바늘.
똑똑 떨어지는 수액 방울.
모든 것이 애처롭게 보였다. 그러나 감정에 휘말릴 때가 아니었다. 수술은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바짝 긴장을 하며 세컨 자리에 서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송재덕 과장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퍼스트 자리에 섰다. 백무용 교수가 눈빛을 굳히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과장님,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송재덕 과장이 고개만 끄덕였다.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홍재순과 눈을 마주친 김지훈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좌하복부를 가로로 절개했다.
성인 4명이 자그마한 아이를 둘러쌌다. 여유 공간이 나올 수가 없었다. 김지훈이 몸을 뒤로 쭉 빼고는 팔만으로 복벽을 벌렸다. 장난감처럼 작은 수술 기구들을 보는 순간 정말 어린아이를 수술한다는 실감이 다가왔다.
‘정신 바짝 차리자.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다치겠어.’
얇은 복벽이 열리자 다소 빵빵해진 대장이 삐져나왔다. 그래도 성인의 대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가늘었다.
백무용 교수가 익숙하게 대장의 시작 부분부터 차례차례 확인하며 병변 부위를 찾았다. 상행 결장에 이어 평행 결장, 그리고 하행 결장까지 정상적으로 보였다. 에스 장 결장을 끌어내는 순간 병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에스 장 결장의 3분의 2 지점부터 직장 상부까지 새끼손가락 굵기도 안 될 정도로 가늘어져 있었다. 2년차들의 시선이 일제히 수술 부위에 집중됐다.
백무용 교수가 툭툭 자극을 주었다. 대장 특유의 물결이 치는 것 같은 운동이 쭉 이어지다 병변 부위에서 급격히 사라졌다. 육안으로도 병변 범위가 충분히 확인됐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결정이 남았다.
어떤 수술을 할 것인가?
2년차들의 귀가 활짝 열렸다.
단순히 수술 과정만을 보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사실 대장을 자르고 이어 주는 과정은 크기만 다를 뿐 성인과 똑같았다. 그보다는 어떤 수술을 할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어젯밤에 거품을 물고 토론했던 결과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김지훈도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자못 궁금했다. 병변을 수차례 만져 보며 신중하게 생각을 거듭한 백무용 교수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원 스텝으로 하겠습니다. 간호사, 준비해요.”
송재덕 과장이 고개만 끄덕였다.
간호사가 준비를 하는 동안 잠깐 시간 공백이 생겼다. 손일석과 신현수가 눈빛을 교환하며 병변을 보고는 대장 조영 사진 앞에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자신의 말이 맞았다고 기뻐하지도 않았고, 틀렸다고 실망하지도 않았다. 2년차들이 수술실에 들어온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점이 아니었다.
적절하고 정확한 판단과 결정!
바로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동기들의 모습에서 외과 전공의가 가져야 할 마음과 자세를 보았다. 뿌듯하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두 분 다 단순히 병변만을 보고 결정하셨을 리가 없어. 나이부터 상태까지 모든 것을 다 감안하셨겠지. 이런 경우에는 원 스텝으로 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잘 기억해 두어야겠어.’
백무용 교수가 병변 부위를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직장 상부까지 10센티미터 정도 자르겠습니다.”
송재덕 과장이 신중한 표정으로 병변을 살폈다.
병변을 확실하게 없앤다고 정상 부위까지 과도하게 자른다면 수술 후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반면 병변에서 충분한 간격을 두지 않으면 병변이 남거나, 혹은 자른 부위의 부교감 신경절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이는 곧 수술 실패를 의미했다. 지금이야말로 경험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다.
“에스 쪽으로는 2센티미터 정도 더 자르자. 직장은 괜찮아 보여.”
김지훈이 교수들의 말에 최대한 집중을 했다. 백무용 교수가 아무 준비도 없이 수술에 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언을 구했다. 송재덕 과장 역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알려 주고 있었다. 말이 짧다고 해도 그 속에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수술 방법에 대한 모든 결정이 내려졌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어린아이의 조직은 여리고 약하다. 조금만 힘을 잘못 주어도 손상을 받을 수 있었다. 백무용 교수만이 아니라 송재덕 과장의 손도 신중하기만 했다.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띠띠띠띠띠!
6개월 된 아이의 빠른 박동 소리만이 들렸다.
한 시간에 걸쳐 에스 결장의 3분의 2 지점에서 직장으로 이어지는 부분까지 잘랐다. 정확하게 병변을 모두 제거했는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수술을 계속할 수가 없다. 백무용 교수가 남아 있는 대장의 양쪽 끝을 동그랗게 잘라 냈다.
“일석아, 프로즌(급속 냉동 생검) 빨리 갔다 와.”
원 스텝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확정은 조직 검사 결과에 달려 있었다. 남은 대장의 단면에 부교감 신경절이 충분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면 방법을 바꾸어야 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무턱대고 신경절이 부족한 부분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당한 길이의 대장을 반드시 남겨야만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고 생활할 수 있다. 하기에 결과가 나쁘면 일단 인공 항문을 만들어 준 후, 아이가 성장해 대장이 충분히 길어졌을 때 재수술을 해야 한다.
모두들 초조하게 손일석을 기다렸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결과가 정상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이 조그만 아이한테 인공 항문을 만들면 안쓰러워서 그걸 어떻게 봐?’
답답하고 초조하기만 한 시간이 흘렀다.
송재덕 과장조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찬 손일석이 문을 열며 말했다.
“선생님, 정상적으로 다 보인답니다.”
안도의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과장님, 연결하겠습니다.”
백무용 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가늘고 연약한 장이었다. 한 바늘 한 바늘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뜨지 않으면 연결 부위가 새거나 좁아질 수 있었다. 백무용 교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과감한 면에서는 둘째라면 서러워할 송재덕 과장도 신중하기만 했다.
띠띠띠띠띠!
심장박동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컷!”
마침내 대장이 연결됐다. 대변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내부 공간이 확보됐는지 확인한 백무용 교수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 모두 끝난 것이다.
이제야 송재덕 과장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잘됐다. 잘됐어. 요놈 또 수술할 일은 없겠지? 그치? 지훈아, 어때? 잘됐지?”
“예, 과장님.”
“그래그래. 아이구! 요만한 애들은 마음이 안쓰러워서 수술하기가 힘들어. 그래도 의사는 그러면 안 된다. 지훈아, 알지? 의사는 수술하면서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 나쁜 놈들, 니들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지훈아, 배 닫아라. 난 간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송재덕 과장이 허허 웃으며 나갔다.
김지훈이 홍재순에게 살짝 고갯짓을 하고는 퍼스트 자리에 섰다. 천안에 와 처음이었다. 더구나 영유아의 복부를 열고 닫는 수술은 선천성 유문 협착증 이후 처음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어떤 식으로 배를 닫는지 똑똑히 머릿속에 남겼다. 방법은 같아도 사용하는 실의 굵기부터 종류까지 성인과는 많이 달랐다.
길고 긴 수술이 끝났다.
서정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후에야 회복실로 옮겼다. 보호자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어린아이는 예외였다. 아이 엄마가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6개월 된 아이라고 고통을 모를까? 마취에서 깨어나는 그 기분 나쁜 느낌이 없을까?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자 아이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다. 수술이 잘 끝났는지, 어떻게 했는지조차 묻지 못했다. 아이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 같았다.
오더를 내던 김지훈이 왠지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가슴에 물끄러미 그 모습만 보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그제야 아이 엄마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수술은 잘됐나요? 설마 인공 항문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두 눈에 가득하던 눈물이 뺨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식을 향한 사랑과 아픔, 그리고 슬픔과 자책이었다. 입을 막은 손 사이로 울음소리가 삐져나왔다. 이토록 아프고 서러운 울음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그 순간 김지훈의 가슴이 턱턱 막혔다. 처음 본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술에만 거의 모든 정신을 집중시켰다. 간간이 아이의 고통을 생각했지만 엄마까지 이렇게 아파할 줄은 몰랐다. 수술이 잘 끝났고, 두 번째 수술이 필요 없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그것은 의사만의 기쁨이었다. 자식이 수술을 한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어머니, 한 번에 끝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이요? 정말이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눈은 웃고 있는데 눈물은 쉬지 않고 흘렀다. 입은 웃고 있는데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소아외과가 이런 것이었나?’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송재덕 과장의 웃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허허! 그래. 그렇구나. 잘 봤어. 그게 집도의야. 어떤 수술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해야지. 정민이 맞지? 정민이. 한 번에 하니까 좋다. 좋아. 니들 대장 안 할 거지? 나쁜 놈들.”
손일석과 신현수가 뒤를 따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수술에 대해 묻고 대답한 모양이었다.
송재덕 과장이 서정민이 잘 깨어났는지 살폈다. 아직도 울고 있는 아이 엄마에게 기분 좋은 미소를 보냈다.
“어머니, 잘됐어요. 우리 백 교수가 한 번에 수술을 끝냈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밥 먹고 똥 잘 싸면 됩니다. 흉이야 어쩔 수 없고. 근데 왜 울어요. 왜 울어. 수술 잘됐어요.”
송재덕 과장이 한참 동안 아이 엄마를 달랬다. 그 역시 자식을 둔 부모이기에 엄마의 마음을 더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울면 안 되지. 자꾸 울면 안 돼. 허어! 정민이도 우네. 에이! 엄마가 울면 안 되는데.”
아이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송재덕 과장이 이제야 김지훈을 보았다.
“지훈아, 수술 잘 봤지? 넌 뭘 배웠어? 뭘?”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수술에 필요한 판단과 기술적인 면을 배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큰 것이 있었다.
“소아외과에 대해 배웠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말에 손일석과 신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송재덕 과장의 눈치가 이상했다. 마치 뭔가 다른 말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소아외과? 음! 소아외과 맞지. 그래. 그래서 뭘 배웠어? 좋은 거 배웠어?”
“예. 수술도 잘 봤고, 아이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그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환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을 수술할 때는 특히 부모님들의 마음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송재덕 과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녀석! 이런 경우는 처음일 텐데 가장 중요한 걸 어렴풋이나마 느꼈구나. 암! 부모는 자식의 아픔과 슬픔을 대신 느끼는 법이지. 그래서 소아외과는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한다. 기특한 놈. 볼수록 탐이 나네. 준영아, 미안하다. 이놈은 내 거야.’
“그래. 그렇구나. 그것도 중요하지. 중요해. 니가 지훈이지? 지훈이 맞지?”
김지훈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지훈이 맞지?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소아외과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혹은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올바르게 보았다는 것이었다. 김지훈이 또 하나의 중요한 마음가짐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