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53화 (353/1,329)

제1화 2년차 셋이 모여도 결국 2년차일까? (2)

김지훈의 목소리가 심각했다.

“변비면 에스 결장만이 아니라 직장에도 변이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여기 좀 봐. 에스 장 하부에서 변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그 밑으로는 하나도 안 보이잖아. 게다가 직장 수지 검사를 했을 때 변이 전혀 안 만져졌어. 이걸 선천성 변비라고 할 수 있어? 안 그래?”

손일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훈아, 그렇긴 한데 설마 요렇게 조그만 애의 대장이 막혔다는 거야? 사진은 좀 이상하게 보인다만, 그럴 게 뭐가 있어? 현수야, 안 그래?”

김지훈과 손일석의 시선이 신현수에게 쏠렸다.

지연 배출된 태변과 만성적인 변비.

복부 사진상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이상 소견.

직장 수지 검사에서는 만져지지 않는 변.

신현수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의심되는 질환이 있었지만 너무 과한 생각이었다.

반면 만일 선천적으로 타고난 만성 변비가 아니라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질환일 수도 있었다.

“김지훈, 설마 너 선천성…….”

신현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난 그 질환을 의심해.”

의아한 표정을 짓던 손일석이 깜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표정이었다.

“설마 선천성 거대 결장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육 개월 된 아이다. 그건 태어나자마자 바로 증상이 나타나잖아.”

“드물지만 영유아 때만이 아니라 성인이 돼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어. 그리고 만일 이 애가 선천성 거대 결장이라면 상당히 위험한 상태야. 다른 애들한테는 아무 문제도 안 될 장염이 패혈증까지 유발할 수 있거든.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의심되면 바로 검사하고 수술까지 하잖아. 갓난아이를 즉시 수술하는 이유가 뭐겠어? 늦으면 애 잡는다. 일단 소아과에 다시 연락을 해야겠다. 아무래도 불안해.”

김지훈의 말에 신현수조차도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천성 거대 결장은 쉽게 볼 수 있는 질환이 아니었다. 그런데 진단의 정확성을 떠나 상당히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손일석이 대신 궁금증을 풀기 시작했다.

“지훈아, 너 이런 환자 본 적 있어?”

“야! 오천 명당 한 명이야. 말이 그렇지, 보기 쉽겠어?”

“근데 어떻게 그 정도로 자세히 알아? 설마 학교 다닐 때 배운 걸 아직도 기억하는 거야? 니가 머리가 조금 좋긴 하다만, 그 정도 수준은 아니잖아?”

“너보단 좋아, 인마. 홍재순 선생님하고 이론 공부했다고 했잖아. 소아 탈장에 대해서 배우다가 우연히 선천성 기형을 몇 가지 알려 주셨어. 근데 그중의 하나가 걸리네. 에이! 솔직히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어린애를 어떻게 수술을 해.”

그때 마침 소아과 2년차가 내려왔다. 동기이자 소아과의 기대주인 정준석이었다. 1년차는 소아 중환자실에 붙잡힌 것이 틀림없었다.

김지훈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 준석이네. 제일 믿을 만한 놈이 딱 나타나네.’

“준석아, 잘 지냈냐. 마침 잘 왔다. 빨리 와 봐.”

“어! 지훈아, 일석아, 잘 지냈어? 현수도 있네. 니들 토요일인데 응급실에 왜 다 모여 있어? 오프 안 가?”

김지훈이 피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이 사진 이상하지 않아?”

“그래? 어디 보자. 이름이 서정민이면 1년차가 단순한 변비라고 진단을 내린 것 같은데. 뭐가 있어?”

소아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 복부 사진도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탓에 다른 과 전공의들의 우려는 대부분 별것 아닌 걸로 끝나는 일이 꽤 있었다. 그래도 소문이 자자한 일반 외과 김지훈의 말이었다.

유심히 사진을 보던 정준석의 표정이 점점 구겨졌다.

“지훈아, 내 눈에는 대장 폐쇄가 의심되는데 너도 그래?”

“그렇지? 직장 검사를 했는데 변이 없었어.”

“육 개월 된 아이의 대장이 막혔다면……. 어후! 큰일 났네. 지훈아, 아이부터 봐야겠다.”

정준석이 부리나케 환자를 보고 노티를 했다. 소아과 3년차까지 내려왔다. 역시 같은 임프레션(Impression:임시 진단)을 내렸다.

다소 미심쩍어하던 손일석이 놀란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신현수의 미간에도 주름이 잡혔다.

진단이 정확하든, 의심으로 끝나든 간에 최소한 소아과 치프와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곧 소아과 치프가 보호자에게 검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어머니, 단순한 만성 변비가 아니라 선천성 거대 결장이라는 질환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대장 조영술을 바로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병이죠? 지금 바로 검사를 해야 한다고요?”

소아과 치프가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물론 선천성 변비의 가능성도 빼놓지 않았다.

“원래는 기다렸다가 아침에 하면 좋은데 이틀이나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 만일 장염이라도 발생하면 패혈증이 옵니다. 특수 조영제를 이용하면 정민이한테 큰 무리가 되는 검사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 엄마가 당황한 채 어쩔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다행히 아이 아빠가 막 도착해 곧바로 검사를 시행할 수 있었다. 다들 검사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응급실 밖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번쩍거렸다. 응급실 인턴들이 재빨리 환자를 보고 검사를 냈다.

흉부 사진을 걸던 인턴의 고개가 저절로 김지훈을 향해 돌아갔다. 마치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것 같았다.

“뭔데 나부터 봐?”

떡하니 프리에어가 떠 있었다.

김지훈이 시계를 보았다. 송재덕 과장의 손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아직은 한참 비장을 떼고 있을 시간이었다. 수술이 끝나면 바로 이어서 할 여유가 있었다.

손일석이 혀를 찼다.

“이왕 올 거면 조금만 더 일찍 오지. 살짝 빡빡한 간격을 두고 이어서 하면 얼마나 좋아. 오늘은 배 닫는 것도 물 건너갔네. 그나저나 호석이 이 자식은 어디 갔어? 당직실에서 자고 있나?”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손일석이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난 안호석이 부지런히 스케줄을 챙겼다. 당직 3년차가 수술 중이기에 노티도 수술 방으로 올라가서 해야 했다.

얼마 후, 송재덕 과장이 내려왔다. 치프에게 마무리를 맡긴 모양이었다.

“지훈아, 빤뻬리 있다고? 어디 있어. 빨리 보자, 빨리. 이어서 해야 하는데 수술 당직 아니지? 음! 아니구나. 환자부터 보자. 환자부터. 천천히 보자.”

참 장단 맞추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천천히 보자는 말은 습관에 불과했다.

송재덕 과장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을 모두 끝냈을 때 대장 조영술 결과가 나왔다. 정준석이 줄줄이 사진을 걸고 있었다.

송재덕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뭐냐, 이거? 대장이 막혔네, 막혔어. 어허! 몇 개월 안 된 애잖아. 큰일이다, 큰일. 너 소아과구나? 생긴 거 보니까 딱 소아과네. 애는 괜찮아? 장염 안 왔지? 오면 안 된다. 장염 왔어? 안 왔어?”

정신이 하나도 없는지 정준석이 잠시 눈만 멀뚱거리다 김지훈의 눈짓에 급히 대답을 했다.

“예. 다행히 장염이 발생한 상태는 아닙니다.”

“음! 그래그래. 다행이다, 다행. 지훈아, 이거 뭐야, 이거? 사진이 왜 이래? 나쁜 놈들, 너희들 눈에도 보이지? 진단명이 뭐야? 도대체 뭐니?”

자연스럽게 나쁜 놈들 2명에게 눈길을 주었다. 주말인데 응급실에 2년차 3명이 모두 있다는 것이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손일석이 재빨리 대답을 했다. 과장 파트 2년차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선천성 거대 결장이 의심됩니다.”

“그래. 그렇구나. 근데 그게 뭐니?”

송재덕 과장이 모를 수가 없는 질환이었다.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손일석은 헛기침만 했고, 신현수도 막상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대충 말했다가는 혀를 차는 소리나 나쁜 놈들이란 말만 들을 것이 뻔했다.

송재덕 과장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김지훈에게로 향했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선천성 거대 결장(Congenital Megacolon).

대장의 일부에 부교감 신경절 결손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그 부위는 제대로 확장이 되질 않아 기능적 장 폐쇄를 유발하는 질환이었다. 발생률은 5천 명당 1명으로 대개는 태어나자마자 태변 배출이 안 되거나 지연되고, 이후 구토와 복부 팽만 등의 증세를 보인다.

의심되는 즉시 대장 조영술 등을 시행해 확진하고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 드물게 영유아가 돼서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가장 주의할 점은 장염 발생이다. 패혈증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생후 6개월 된 서정민 환자가 위험한 이유도 언제든 장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내친김에 수술법까지 간단히 설명을 하자 송재덕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 그럼 빨리 수술해야 되겠구나. 소아과, 너 누구니? 누구야?”

“예. 정준석입니다.”

“정준석이? 그래그래. 니가 준석이구나. 환자 수술할 수 있게 잘 준비하고, 월요일에 바로 컨설트 내라. 그때 보자, 그때. 그럼 우리는 수술 방 올라가야지? 지훈아, 준비되는 대로 올려라. 난 먼저 올라갈 테니까 천천히 해. 천천히.”

수술 준비를 하던 김지훈이 소아과에 입원하기 위해 병동으로 올라가고 있는 서정민을 보았다.

아이의 질병을 제대로 찾아냈다는 기쁨보다 착잡함이 앞섰다.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눈물범벅이 된 아이 엄마의 모습에 더욱 기분이 가라앉았다.

‘어린아이들이 아픈 건 언제나 보기 힘드네. 부모들도 참 힘들겠어. 그나저나 어느 파트로 컨설트를 낼까? 원칙상으로는 우리 파트로 와야 하는데, 하필이면 과장님이 직접 보셨으니까 애매모호하겠네.’

수술이 필요한 영유아들 중 상태가 좋지 않거나 몇몇 질환의 경우에는 소아과에 먼저 입원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아주 어린아이들은 그 자체로 전신 마취를 견디기 어렵다. 따라서 수술 전에 최대한 정상적인 상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수액의 종류부터 시작해 투여 속도는 물론 전해질 균형까지 성인과는 기준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연령대별로 말이다.

서정민의 경우에는 수술 전후에 걸쳐 더더욱 소아과와의 긴밀한 협진이 필요했다.

새삼 소아외과의 어려움을 상기한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이번 달부터 백무용 교수가 소아외과를 담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수술이 적기 때문에 맡은 면도 있었고, 라파로 준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할 때였다. 어쩌면 당분간 소아와 관련된 난이도가 높은 수술은 기존처럼 송재덕 과장이 해야 할지도 몰랐다.

‘에휴! 우리 파트로 와야 수술을 볼 기회가 있을 텐데. 그래도 이번 수술은 소아 수술 경험이 풍부한 과장님이 하시는 것이 좋겠지? 일석이 넌 좋겠다. 흔치 않은 기횐데 몰래 들어가서 볼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 빤뻬리 환자가 수술 방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일석에게 수술실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시간상 배를 닫을 때 퍼스트를 서라는 말이었지만 손일석의 입가가 쫙 찢어졌다. 뭐라도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 수술 실력이었다.

“지훈아, 응급실 잘 지켜라.”

신 나게 수술 방으로 올라가던 손일석이 입술을 모았다.

‘홍재순 선생님하고 하는 이론 공부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겠네.’

비록 두 번에 불과했고 홍재순이 있어 다소 불편하기까지 했지만, 자체 집담회는 정말 유익하고 즐거웠다. 또한 김지훈을 보며 은근한 긴장과 함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이번 일까지 겹치자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탄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손일석이 피식 웃었다. 자신만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신현수도 꽤 심각한 얼굴로 오프를 갔다.

문득 김지훈의 말이 떠올랐다.

‘항상 배워야 한다고? 이런 기분 나쁘지 않네. 좋았어. 지훈아, 니 말대로 다음 주부터는 더 열심히 할게. 자식! 구미 갔다 오더니 뭔가 또 달라졌네. 에이! 카멜레온 같은 놈.’

그 시간, 서울로 향하던 신현수도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무엇 하나 부럽지 않은 환경이었다. 당연히 부족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일반 외과라는 학문에 관한 한 항상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고, 조금만 더 알면 최고의 써전이 되는 길에 한발 더 바짝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결코 그 조금이라는 것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복부 사진과 병력만으로 선천성 거대 결장을 의심해? 홍재순 선생님과 공부를 한 덕이라고? 그것만은 아니야. 얼마나 더 집중하고 노력해야 하는 걸까?’

자체 집담회 때와 응급실에서의 모습이 좀처럼 지워지질 않았다. 사실 환자와 질병을 두고 보이는 열의와 열띤 토론에 은근한 흥분까지 느꼈다. 스스럼없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손일석의 성격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왜 나는 그게 안 되지? 홍재순 선생님과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도 지훈이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걸까? 이러면 안 돼. 지훈이가 집담회를 주도하는 건 내가 최고의 써전이 되는 일과 아무 상관도 없잖아.’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신현수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전화기를 들었다.

“서연아, 시간 있으면 술 한잔할래? 그냥 가슴이 좀 답답한데 얘기할 사람이 없네. 시간이 너무 늦었나?”

잠시 통화를 한 신현수가 모처럼 멋을 냈다.

한때는 김지훈을 좋아했던 윤서연이었다. 그때는 분노가 앞서고, 질투에 눈이 멀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자신은 윤서연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희한하게도 자신을 피했던 윤서연이 마음을 열었다. 연인이나 이성이 아니었다. 함께 대학을 다녔고,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친구로 대해 주는 모습이 서운하면서도 편안했다.

그때 이후로 점점 윤서연을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지금은 또 달라지고 있었다. 힘들고 고민거리가 생길 때마다 윤서연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지금도 신현수는 스스로도 연유를 알지 못할 은근한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 때문인지 정말 즐거운 만남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신현수가 술기운으로 벌게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즐거움 뒤에 숨었던 답답함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때 부드럽게 가슴을 파고든 윤서연의 말이 떠올랐다.

‘현수야, 홍재순 선생님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내게 왜 물어봐?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그리고 너희들끼리 집담회를 하는 건 좋은 일 아니야? 넌 정말 장점이 많아. 자존심만 조금 숙이면 아마 너보다 멋진 남자는 정말 찾기 어려울 거야. 어쩌면 자존심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

자존심을 숙이면 멋진 남자가 된다?

‘따로 만나는 사람 있냐고? 없는 거 알면서 왜 물어봐? 요즘처럼 날이 추울 때면 늑대 목도리가 생각나긴 하더라.’

차가운 밤바람에 윤서연의 뺨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차마 어깨에 손을 두르지는 못했다. 대신 목도리를 풀어 목에 걸어 주었다.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윤서연이 목도리를 한 채로 집으로 들어갔다. 목도리가 누구 것인지 잊을 윤서연이 아니었다.

윤서연이 이제는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 전에 자신이 변하고 있었다.

문득 최고의 써전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훈이도 홍재순 선생님과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이 맞지는 않았을 거야. 도대체 어떻게 마음을 열었을까? 일석이가 한 말만으로는 납득이 되질 않아. 정말 배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사람에게 그런 능력은 또 뭐야?’

신현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김지훈은 영원한 딜레마일지도 몰랐다. 반면 홍재순은 당면한 문제였고, 자신이 잘못한 일도 있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그래. 먼저 잘못했다고 말하자. 그런 방식의 집담회라면 분명 내게도 필요해. 이건 서연이 말대로 자존심을 숙이는 게 아니야. 단지 지훈이가 먼저 말을 꺼냈을 뿐이야.’

신현수의 숨결을 따라 하얀 입김이 길게 퍼졌다. 기분 좋은 미소가 함께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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